소설리스트

진홍의 카르마-1화 (1/134)

001 피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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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두두두두두두-

포탄이 대지를 내리치며 뇌를 터트릴 것 같은 굉음을 내질렀다.

황토빛 뿌연 연기를 헤치며 달리던 군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하자 보이지도 않는 상대편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스러져갔다. 이쪽 역시 맞은편에서 날아오는 총알에 맞은 자들이 높게 쌓은 담 아래에서 피 흘리며 괴로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사방이 죽음의 소리로 가득한 전장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어보였다. 모두가 죽음이라는 늪에 한 발을 담근 채 필사적으로 바르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결정하셔야 합니다. 놈들이 저기에 분명 숨어있습니다. 여기서 놓치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놈들과 상관없는 민간인들도 다수 있다지 않습니까! 죄도 없는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입니까?"

"놈들을 놓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또 테러로 죽을겁니다. 아니, 저기 있는 민간인들부터 놈들 손에 죽을테죠."

"놈들 손에 죽을 사람들이니 우리가 죽여도 상관없다는 말씀입니까?"

사령관실에 모인 이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제 주장을 외쳐댔다.

"그만!"

제일 상석에 앉아 차가운 눈으로 테이블 위의 지도를 바라보던 자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리자, 시끄럽던 방 안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하지만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50대 중반의 육군 중장은 다시 그의 곁에 앉아있는 대령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번엔 모두의 시선의 질문을 받은 대령에게로 모였다. 짧게 쳤던 까만 머리가 어느새 길어 눈가를 가리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푸르스름한 안광이 느껴질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턱을 받친 왼손 옆으로 건조하게 갈라진 입술이 굳게 다물려 있었고 테이블 위에 올라온 오른손의 손가락이 천천히 테이블을 두드리며 고요한 사령관실 안에 불편한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시야 델 로만.

여성으로서는 어쩌면 군 역사상 가장 높은 곳까지 다다른 자일 것이나, 공식적인 문서상에는 그 출신과 공적, 죽음마저 제대로 기록되지 않을 군인이며, 현재, 유럽과 미국에 수많은 테러를 일으키고 중동지역을 장악하려는 과격 무장단체 ICS와의 전쟁에서 최전방을 지휘하는 미군 사령관의 오른팔이다.

마흔이 안 된 젊은 나이에 이 높은 곳까지 오른 여군이라면 걸어온 길이 눈에 띌 법한데도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무시하지 못했다. 부대장 이상의 모든 간부들에게는 그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라는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진 지 오래였고, 그녀의 이름 앞에는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어다녔다. 하지만 아군의 입장에서는 이 모래바람을 잠재울 전쟁의 여신이었다.

그녀의 버석한 입술이 열렸다.

"도대체 뭘 고민하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폭격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 아니냐는 듯 얘기하는 그녀를 향해 폭격을 반대하던 이들이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미군은 민간인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소!"

"저기에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들까지 잡혀있는데, 지금 그게 인간이 돼서 할 소리요?"

하지만 카시야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군대의 가장 큰 의무는 승리해야 할 의무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발판삼아 서 있는 이유는 승리하기 위해서이지, 인류애 운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령관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저녁 6시 10분, 모술을 폭격한다. 이견(異見)은 받지 않겠다."

회의실 안에서 동조와 경악의 눈빛이 교차되었다.

사령관의 선언과 동시에 사령관실을 나서는 그녀의 뒤를, 한결같이 반대의견을 내던 백발의 노장군, 로버트 헤이글이 따라 나섰다.

"로만 대령!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민간인을 학살할 생각이오?"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앞서 걷던 늘씬한 인영이 멈춰섰다.

천천히 돌아보는 그녀의 눈에는 일말의 자비도 비치지 않았다.

"여기서 오늘 100명의 민간인이 죽지 않으면 다음달에 300명의 민간인이 놈들의 손에 죽습니다. 간단한 산수문제 아닙니까?"

"하지만!"

"그리고 사령관께서 아까 분명히 이견은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것 같은 그녀의 낮은 목소리는 40년을 전장에서 구른 노장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전원 퇴각! 전원 퇴각!"

"1분 후 카운트다운 들어갑니다."

"우리 쪽 병사들의 신병은 전원 확인됐나!"

짙은 다홍빛 노을이 사막을 물들여갈 때, 사령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콰과과광-!!!!!

굉음에 묻혀 어딘가에 숨어있을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민간인이 함께 죽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사령관의 곁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카시야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서늘했다. 그녀로서는 저 곳에서 몇 명이 죽어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군이 승리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 내린 오늘의 결정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존재 목적 자체가 승리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노을의 빛깔이 마치 핏빛같았다.

미국, 유럽, 중동 등지에서 악에 받친 ICS의 테러가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한 달 전의 폭격으로 ICS의 주요 인사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전에 비해 테러가 소규모이고 체계가 없습니다. 아히드 빈 칼리드가 확실히 죽은 것 같군요."

"그 놈이 죽으면 뭘 하나, 또 똑같은 놈이 치고 올라올 텐데."

"2인자들을 죽이는 건 결정적인 타격이 못 됩니다. ICS 지도자, 아흐마드 알리 모하메드가 죽지 않으면 이놈들은 다시 뭉치게 되어있습니다!"

사령관실은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 회의 중이었다.

거기에 얼마 전 민간인 100여 명을 죽인 폭격에 대해 전 세계 언론에서 연합군을 비난하고 있다는 소식이 추가로 올라오자, 테이블에 둘러앉은 장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카시야 델 로만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속속들이 전해져오는 각종 기밀문서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장교들은 사령관보다는 자신들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곳에선 사령관도 그녀의 의견을 실행에 옮기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빠르게 문서를 넘기던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한참 손에 든 문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카시야가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전쟁을 끝내야 할 시점이 왔나 보군요."

한참을 움직이지 않던 그녀가 '전쟁을 끝내야겠다.'는 말을 꺼내자, 사령관을 포함한 모두가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때 사령관실에서 한 번도 울린 적 없던 하얀 전화기의 벨소리가 울렸다. 카시야를 제외한 모두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전화기는 대통령과의 직통 전화기였던 것이다.

"대통령각하."

사령관은 짧은 인사 후 건너편의 얘기를 귀에 담았다. 전화기를 든 그의 시선이 카시야에게 향하자 장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알겠습니다."

사령관은 여전히 짧게 대답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숨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령관실에서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기밀이네. 절대 새어나가서는 안 돼."

그는 다시 숨을 들이켜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흐마드의 거처가 확인되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어. 암살조를 먼저 보낸 뒤 만약 기한내로 암살조가 돌아오지 않으면, 모술에서처럼 타깃 도시에 무차별 폭격을 가할 예정이다."

사령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교들이 벌떡 일어섰다.

"암살조를 한두 번 파견합니까! 결국 똑같이 민간인을 학살하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지난번 모술 폭격 때에도 끝까지 반대하던 로버트 헤이글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러니 암살이 성공하길 바라시죠."

흥분한 헤이글에게 사령관의 곁에 있던 카시야가 차분히 대답했다. 그러자 분노가 극에 달한 노장군은 악을 쓰듯 물었다.

"도대체 누가 제 발로 사지에 들어가겠답니까!"

그러자 카시야의 입술에는, 그들이 최초이자 최후로 보는 것임에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제가 갑니다."

순간, 사령관실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폭격을 반대하는 사람이든, 찬성하는 사람이든 카시야가 내뱉은 말을 머릿속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제 정신이오?"

가까스로 목소리를 낸 노장군이 경악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카시야를 바라보며 물었다.

카시야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놀람도, 긴장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죽은 정보원이 몇 명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짧게는 4년, 길게는 17년을 훈련시킨 특수요원들이 서른 명도 넘게 죽어나갔습니다. 그들은 죽어도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으니 사실은 그보다도 많은 숫자겠죠. 그렇게 찾아낸 놈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 미꾸라지같은 놈을 찾아낼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암살에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이 기회를 놓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늘 서늘한 그녀의 목소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듣는 이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미군 대령이 암살자로 직접 움직인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카시야의 왼편에 앉아있던 젊은 소령이 정신을 차리고 따져 물었지만, 곧이어 가만히 듣고 있던 사령관이 무겁게 대답했다.

"소령이 보고 들은 적이 있건 없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오. 방금,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명령하셨으니까."

모두의 얼굴에는 경악이 어렸다.

"…D-Day는 언제입니까."

착잡한 어투로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카시야가 대답했다.

"6월 13일 밤9시입니다. 그때까지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폭격하십시오."

6월 10일 오후 4시, 사령관실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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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물들어가는 시간>을 썼던 레몬개구리입니다.

이번에는 판타지에 가까운 로판을 들고 왔습니다.

안타까운 사건으로 조아라 독자님들도 많이 떠나신 것 같아 초보 글쟁이는 글을 내놓으면서도 마음이 허하네요.ㅠㅗㅠ

선작, 추천, 코멘트는 제가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잘 부탁드려요~!

오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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