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 피니셔(2) =========================
사신, 카시야 델 로만.
모두들 사신이라 부르는 그녀이지만, 사실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었다.
언제, 어떻게 군 생활을 시작했는지, 그녀가 몸담았던 부대는 어디이고 어떤 작전을 수행했었는지, 아니, 그녀의 이름이 본명이긴 한지….
그녀의 서류는 기밀에 붙여진 부분이 많았고, 듣도 보도 못했던 그녀의 진급에 불만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항의를 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대답은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나가라.'였다. 그러자 그녀가 엄청난 거물을 등에 업은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처음 소위로 임관한 곳은 실제 전쟁터의 군부대였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엄청난 스트레스의 연속인 그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제 상관이라는 데 불만을 가지지 않을 사병은 없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본국에서 저들을 무시해 이런 쓸모없는 여자를 소위랍시고 보냈다며 분통을 터트렸고, 그녀는 진급을 노리는 야심가로 여겨져 배척당했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거나, 왕따를 시키거나, 딱히 그녀라고 지칭하진 않았지만 그녀를 두고 하는 게 분명한 온갖 음담패설을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늘어놓는 등의 괴롭힘이 이어졌다.
그것은 카시야의 상관들까지 묵인한 행위였기 때문에 병사들은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그 모든 모욕에 대해 카시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병사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렸고 그녀 자신에 대한 조롱은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니 약이 오른 것은 병사들 쪽이었다.
분을 못 이긴 병사들은 카시야를 집단 린치하기로 모의하고 그녀를 아무도 없는 창고로 끌고 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엄청난 실수이자, 카시야가 기다려온 찬스였다.
취침 점호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 동료들 때문에 문책을 당하게 된 병사가 그 창고로 중위와 대위를 이끌었다. 사실 그들 모두 그날 있을 린치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이었고, 이 모든 게 다 짜여진 각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창고 문을 열자 그들의 각본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있었다. 건장한 남자 군인 일곱 명이 호리호리한 여자인 카시야에게 손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얻어터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창고 한 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던 카시야는 제 손에 묻은 제 것 아닌 핏자국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그들은 '살기'라는 게 어떤 건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대위가 그녀에게 적반하장격으로 죄를 물어 영창에 가둔 날, 그 대위는 대령으로부터 당장 카시야를 석방시키라는 명령과 함께 휘하의 사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엄중한 문책을 듣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저 상부에서 어떻게 집단 린치의 전말을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역시 빽 있는 년은 다르네, 겨우 이 정도 일에 대령까지 움직이는 걸 보니 빽이 보통은 아니네, 하는 정도였지만 날이 갈수록 모든 병사들은 카시야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계 같았다.
그녀의 텅 빈 눈동자는 적군이든 아군이든 모두에게 평등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데 적군과 아군의 차별을 두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승리를 위한 효율을 중시했다. 100을 가져갈 승리를 위해 30 정도의 아군의 희생은, 그녀의 생각으로는 수지맞는 장사인 것이다. 그 때문에 몇몇 작전에서 그 전날까지 부대끼며 살아가던 전우를 잃은 병사들은 그녀의 행동을 강력하게 비난하며 군사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 요청이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그녀가 수행한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아군의 희생은 그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뒷배가 있어서 재판을 피하는 것이라며 더더욱 비난 받던 카시야였지만, 어느 새벽, 그녀가 혼자 적진에 달려가 그들을 조롱하던 적장을 암살하고 오면서부터 그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어떻게 적장을 죽일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덕분에 그들은 3일 내로 그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아마 그 때문에 목숨을 구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리라.
그녀를 미워하던 대위는 그 때 대령으로부터 그녀의 별명을 들을 수 있었다.
'피니셔(finisher)'
전쟁을 끝내는 자.
그 때의 그 대위가, 지금 사령관실에서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는 램버트 대령이었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에 카시야가 어떤 용도의 도구인지 알게 되었다. 카시야는 어릴 때부터 암살자로 키워진, 세계에서도 손꼽을만한 인간 병기였다.
그녀의 존재는 일종의 조커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끼어들면, 그 전쟁은 승리한다. 그녀가 끼어들면, 그 전쟁은 빠르게 종결된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든 전쟁에 파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라 하더라도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소유'한 그 누군가는 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반드시 이겨야 할 고르고 고른 전쟁에만 그녀를 허락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존재는 기밀이기도 했다. 암살자로 파견된 그녀에 의해 누군가가 살해당해도, 공식적으로는 미군이나 연합군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문서상으로 카시야 델 로만이라는 군인은 존재하지만, 카시야라는 암살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가 암살자 카시야로서 죽는다면, 미군은 그녀와의 연관성을 일체 부인하고 그녀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카시야가 암살을 수행하는 도중에는 죄 없는 인간의 희생이 뒤따를 확률이 매우 높았고, 그녀가 사용하는 방식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방식일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램버트는 경악했다.
인간을 살상무기처럼 사용하는 거대 권력과, 자신이 살상무기로 쓰이는 것을 알면서도 무심했던 카시야가 두려웠다.
"카시야에 대한 내용은 일급 기밀이네. 카시야 델 로만 소위가 바로 그 암살자라는 것을 들키면 그녀는 거꾸로 암살당할 위험이 높아. 그건 우리로서는 큰 손실이야."
램버트에게 카시야의 비밀을 들려주던 대령이 당부했다. 그의 말은 사람의 목숨을 걱정하는 어투가 아니었다. 대령은 램버트에게 그녀가 '피니셔'로 작동할 때까지 그녀를 지키라고 당부했다.
그는 그 이후로도 카시야와 몇 번의 전장에 동참했다.
카시야는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늘 한결같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기계 같아지고 있었으니 한결같다는 것은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카시야가 피니셔로 활약했던 그 동안의 작전들을 뒤돌아보면 적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상황에서 적군의 주요 수뇌부를 제거해야 전쟁의 향방이 결정되는 구도였던 경우가 많았으니, 지금도 그 구도에는 얼추 들어맞았다.
하지만 그 동안은 카시야의 출격 직전 즈음에 그녀가 이길 거라는 확신이 들었던 데 비해, 이번은 뭔가가 모호했다.
"아흐마드의 은거지라는 곳…. 그거, 확실한 겁니까?"
램버트가 불안한 눈빛으로 카시야를 쳐다보았다.
"믿는 수밖에요."
불안한 램버트와는 달리 카시야는 특유의 건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흐마드라면 지난 번 모술 폭격 이후로 더 철저히 숨었을 놈인데, 너무 빨리 자신의 은거지를 들킨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첩보가 틀렸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놈들은 당신을 얌전히 죽여주진 않을 겁니다."
"나도 얌전히 죽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리 경고를 해도 카시야는 요지부동이었다.
죽겠다고 고집을 부린다기보다는, 자신이 죽든 말든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당신은… 죽는 게 무섭지 않습니까?"
테이블 위의 지도를 바라보던 카시야의 시선이 램버트를 향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무저갱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램버트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죽는 건, 별로 무서운 축에 들지 못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 의아한 얼굴을 한 램버트를 뒤로 하고, 카시야는 출격 준비를 위해 사령관실을 나섰다.
카시야는 레바논 난민 출신의 고아였다.
레바논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보트를 탔을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있었지만, 유럽에 도착할 때에는 그녀 혼자였다. 아직 어렸던 그녀는 이미 그때 인간으로서의 어떤 것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기나긴 굶주림, 파도와의 사투, 인간 본성 밑바닥에 깔린 이기심에 의한 많은 이들의 죽음, 종교의 허무함 등을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이 겪다보니 결국 죽음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겨우 땅에 발을 디딘 그들을 반기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일단 살았다는 안심과 함께 이성이 돌아온 어른들은 아이들만이라도 제발 받아달라고 유럽 여러 국가에 간청했고, 어느 날 인상 좋은 군인들이 와서 침식과 교육을 제공하겠다며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그렇게 뭣도 모르고 따라간 곳이 바로 '캠프 X'였다. 그 곳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도 사실 잘 몰랐다.
어차피 그 어디에도 생사가 기록되지 않은 아이들은, 그곳에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인간병기로 키워지며 서로를 죽이고 상처 입혔다. 극단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미치기도 했고, 자살하기도 했고, 대부분은 상대방에 의해 살해당했다.
캠프 X에 처음 발을 들인 아이들은 150여명이었지만 생존자는 고작 17명뿐이었다. 그 17명의 생존자는 사실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감정의 파편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그 어떤 무기보다 효율적으로 생각하며 움직이는 사상 최고의 병기였을 뿐이다.
지금은 다들 뭘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카시야가 아는 캠프 X의 생존자는 그녀 외에 한 명 뿐이었다.
내전으로부터의 목숨을 건 탈출과 캠프 X의 훈련을 거치면서 카시야의 머릿속에서는 인간성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특히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이 아주 모호해졌다.
'어차피 모두가 죽어가고 있고,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러니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게다가 카시야 본인은 은근히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란 명령과 수행밖에 없었다. 매 작전을 수행할 때마다 '이번엔 죽으려나.'하는, 반쯤은 도박을 거는 것 같은 마음으로 임했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 지쳐버리고 만 것이다.
'글쎄, 이번엔 어떨까. 이번엔 죽을 수 있으려나.'
허리춤에 단검을 차며 카시야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