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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의 카르마-33화 (33/134)

00033 의심(5) =========================

막사를 나온 카시야는 분대원들이 머무는 천막으로 향했다.

그 사이 분대원들은 서로 자극받으며 카시야의 예상보다 더 열심히 훈련을 따라와 주었다. 사실 그것은 기대 밖의 일이었다. 여하튼 그 중 스윈델의 성취도가 가장 높았다. 특히 그가 더 마음에 든 것은 자신을 바라보던 그 분에 찬 눈빛이었다. 독기를 갖고 있는 자들은 꽤나 믿을 만 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 작은 독기 하나가 그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스윈델!"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막사의 문을 걷자 막사 구석에서 검을 닦고 있던 그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주변의 다른 분대원들 역시 갑자기 나타난 카시야로 인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윈델. 잠깐 나와라. 나머지는 편히 쉬도록."

스윈델은 주변의 동료들과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며 엉거주춤 일어나 카시야의 뒤를 따랐다.

카시야는 그를 데리고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여성인 그녀를 배려해준 덕분에 분대장 중에는 유일하게 혼자 쓰는 막사였다. 그 사이 스윈델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불길한 상상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밤중에 자기 막사로 데려간다고? 서, 설마… 이 마녀한테 따먹히는 건 아니겠지?'

밤중에 여성 혼자 머무는 막사로 가며 생각하는 게 이럴 정도로 분대원들은 카시야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스윈델은 막사 안의 작전 테이블 위에 펼쳐진 제국의 지도를 보고 다행히 자신의 순결은 지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윈델. 갑작스럽겠지만, 내일 새벽, 나와 함께 적진으로 침투해야겠다. 분대원들 중에 그나마 네가 제일 쓸 만하니까."

무심하게 던진 카시야의 발언에 스윈델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네가 제일 쓸 만하다.'는 건 카시야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들 중 최고의 칭찬이었다. 게다가 분대원들 중 최초로 작전에 투입된다니! 기사로서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심드렁한 척 하려고 해도 기쁜 기색이 스며 나오는 스윈델의 홍조 띤 얼굴을 보며 카시야는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들뜨지 마라. 죽으러 들어가는 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적진에 침투해서 케일런 진영과 황제 측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살아 돌아와야 한다. 여기 이 지도를 보면…."

카시야는 지도를 가리키며 그들이 침투해야 할 지역과 통과해야 할 관문에 대해 설명했다.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도 일주일은 걸릴 거리였다. 그리고 그 사이,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적진의 후방에 닿아야 전투에 휘말리지 않는다. 돌아가서 바로 짐을 싸도록. 짐은 최대한 가볍고 부피가 작게 싸야 한다. 출발은 내일 새벽 5시다. 질문 있나?"

"혹시, 암살도… 병행합니까?"

"아니.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다니면서 정보만 수집해온다. 그리고 지금 네 실력 가지고는 암살은커녕 죽지 않게 조심하는 것만도 벅찰 거다."

카시야의 말에 스윈델은 조금 실망한 것 같았지만 카시야가 경험했던 바로는 지금 이렇게 조금 자신감이 붙었을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였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아무한테나 덤벼들기 십상이었으니까. 거기에 대한 주의는 출발하면서 하기로 했다.

다음날 동이 아스라이 트기 시작했을 무렵, 말 두 마리가 진지를 벗어나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카시야는 남장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평소 차림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지만 가슴 부분을 조금 탄탄하게 감싸고 거무튀튀한 옷을 입은 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코와 입을 가리는 두건을 쓰기로 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카시야의 행동은 여성스러운 조심스러움이 없어서 언뜻 보면 곱상하게 생긴 소년병이라고 볼만 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무심하면서도 어딘지 서늘한 표정은 보통의 여자들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말을 열심히 달리면서 아무 대화가 없던 그들은 처음 말을 먹이기 위해 들른 시골 마을의 식당에 앉아 처음으로 마주보았다. 평소 카시야의 도발에 분해하던 스윈델은 내심 이번 작전에서 카시야보다 더 공을 쌓겠다고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카시야는 그의 그런 생각을 제 손금 읽듯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윈델. 함부로 나대지마라. 죽는 건 한순간이야. 한 번 봐주고 말고가 없다. 네가 분대원들 중 가장 나은 상태인건 맞지만, 그게 뛰어나다는 소리는 아니야. 만에 하나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면, 무조건 네 목숨 살릴 생각부터 해라. 알았나?"

고기 스튜를 떠서 입에 넣던 스윈델은 눈동자만 치켜떠서 카시야를 잠시 노려봤지만, 역시나 미동도 없는 그녀의 표정에 탐탁지 않은 수긍을 했다.

예정대로 7일을 달리니 케일런 진영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아즈렐 지방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둘의 움직임은 극히 조심스러워졌다. 어딜 가든 귀를 열고 주변인들의 얘기를 유심히 듣고는 여관방에서 서로 들은 얘기를 공유하고 정리하며 유용할만한 정보를 추렸다.

"전설의 신검 얘기가 꽤 많이 돌아다니더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소문은 저도 몇 번 들은 적 있습니다. 건국설화 같은 건줄 알았는데, 아까 들어보니 황제가 갖고 있는 마지막 카드가 그 검인 것 같더군요."

"음. 황제가 소문을 더 부풀렸을 수도 있겠어.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게, 왜 그 검을 갖고 있으면서 황제는 직접 이 모든 전쟁을 쓸어버리지 않느냐는 건데, 분명 황제는 어떤 이유로 그 검을 쓰지 못하게 된 게 틀림없어.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 자체가 있을 수 없지. 케일런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황제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것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지?"

"그러게요. 그 신검이 아니라고 해도 황제에게는 신전이라는 우군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신전은 황제 쪽이라고 봐야 되니까요. 대신관도 황궁에 자주 출입한다고 하고…. 사람들 대부분이 히드레이 교도니까, 만약 세 진영이 팽팽해지면 나중에는 신전의 결정이 큰 결과를 만들지도 모르죠."

"흐음. 과연 신전은 이번 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그 속내가 궁금하군. 참, 내가 들렀던 번화가 상인들 말로는, 케일런 진영에 속한 귀족들의 사치품 제재가 강해진 모양이야. 그리고 귀족들이 이미 갖고 있는 사치품까지 뜯어간다더군. 여성들의 드레스에 달린 보석까지 말이야. 케일런이 만약을 대비해 온갖 물자를 모으는 것 같은데…. 과연 다들 아무 불만이 없을까? 귀족과 케일런 사이에, 지금 빼앗기는 것을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는다는 신뢰가 있느냐 하는 거지. 어쩌면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중립적 귀족들이 아직 더 남아있는지도 몰라."

타셀 쪽도 타셀의 기존 세력과 새롭게 합쳐진 세력이 공고하게 뭉쳐졌느냐 따진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지만, 연합된 시간이 오래 된 케일런 측 역시 아직 내부적인 진통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게 위안거리였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일부 인사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불만의 씨앗이었다. 카시야는 이 점을 이용해 내부 분란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드디어 케일런 측과 타셀 측의 첫 전투가 벌어졌다.

격전지는 카시야와 스윈델이 이틀째에 묵었던 지역이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게도 거주하는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카시야는 아마 타셀이 일부러 그쪽 지역으로 케일런 군을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전쟁이 발발하자 카시야와 스윈델 역시 긴장감을 갖고 정보 탐색에 더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까지는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민들 사이에 돌고 있는 소문을 수집했지만, 앞으로는 알리스타스 공작성이나 케일런 군 후방대 사이를 돌며 좀 더 고급 정보를 모아야 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스윈델. 미리 얘기해두지. 나는 네가 인질로 잡히더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혼자 도망칠 거다. 네 목숨 하나보다 우리가 모은 정보를 전하께 가져다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반대로 너 혼자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망쳐라. 전우애 운운하면서 우리 둘 다 죽게 되는 상황이 닥친다면 죽어서도 널 갈구겠다."

"흥! 그거라면 걱정 마시죠. 뒤도 안 돌아보고 혼자 도망칠 테니까! 마녀가 죽었다는 기쁜 소식을 우리 분대원들에게 전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카시야는 진심이 분명한 그의 눈빛에 만족하며, 그동안 가차 없이 굴렸던 자신의 방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촌각을 다투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 쓸데없이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최대 목표는 임무의 완수이지, 전우애 실현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둘은 알리스타스 공작성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공작성 안으로 잠입할 생각이었지만 알리스타스 공작성을 본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공작이 뱀 같은 작자라는 소리는 여러 번 들어봤지만, 그는 교활함에 더해 철두철미한 인간이었다. 성벽은 감히 기어오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성 안으로 통하는 문에는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을지 성 주변을 염탐했지만 개구멍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황궁보다 더한 경비였다. 고민 끝에 카시야는 알리스타스 공작성 침투를 포기하기로 했다. 내·외부인의 도움 없이 저 성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 큰 위험을 수반했다. 특히 케일런 진영의 고급 정보는 몇 명에게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말은 곧, 저 성의 출입문을 통과하는 천운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저 넓은 성 어딘가에 숨어있을 그 몇 명을 찾아내지 않는 이상 더 특별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게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했거니와, 혼자라면 모를까, 스윈델이라는 혹이 딸려 있는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더 어려웠다.

카시야는 비교적 침투가 쉬운 병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보급부대에는 기사와 병사들뿐만 아니라 물자를 나르는 일반 백성들도 많아서 숨어들기는 쉬웠다. 물론 보급 물자가 흘러들어가는 본진 쪽으로는 철저히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지역민으로 위장해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을 도와 보급부대의 창고에 물자를 쌓고 있노라니 지척에서 수군대는 병사들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기럴. 전쟁은 도대체 언제까지 하는 거여? 이제 금방 1년째라니까? 처음에는 1황자고 황제고 반년 안에 끝내겠다느니 헛소리들을 해대드만, 이게 뭐여? 하여간에 다 황제 놈이 미쳐가지고 이 사달이 난 거라니까."

"이 새끼, 또 낮술 처먹었나? 야 인마, 네 모가지부터 떨어지고 싶냐? 말조심해! 이번에 페레이아 경이 아주 작심을 하셨다니까, 믿어봐야지. 우리 같은 놈들이 별 수 있냐?"

"야. 이러다가 2황자가 이기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 설마, 죄다 죽일까?"

불안에 떠는 그의 목소리에 말대답해주던 이가 주변을 쓰윽 살피더니 목소리를 한층 낮춰 말했다.

"2황자는 항복하는 제국민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더라. 여차하면 그냥 투항하면 돼."

거기까지 들은 카시야와 스윈델은 다시 주변을 살피며 부대의 안쪽으로 몰래 잠입했다. 보급부대는 민가와 거리가 가까워 어수룩한 주변 거주민인척 하면 대부분 별 관심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카시야와 스윈델 역시 자신이 만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제국민인지, 최하급 평민 병사인지, 혹은, 정체를 숨긴 대마법사인지 말이다.

============================ 작품 후기 ============================

심심하니까! 내일부터 복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연참합니다.

그리고 전작 독자님들도 몇 분 보이는군요. 반갑습니다!^ㅁ^)/

+ 쇼에나 님. 후원쿠폰 저한테 쓸어담아주시는듯;; 감사합니다.ㅠㅗㅠ

밤 12시 7분에는 월요일분이 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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