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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의 카르마-130화 (130/134)

00130 연(緣)(1) =========================

타셀 칸 에반 아마리스 황제가 집권한 뒤 3년 간, 칼리스토니아 제국은 엄청난 변혁의 시간을 거쳤다. 처음 1년 동안은 내전에 피폐해진 제국을 정상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지만 그것은 한편으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젖어있던 귀족들을 서서히 변화시키기 위한 초석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전방위적으로 흐트러진 제국 내의 산업과 시스템을 복구한다는 핑계로 원래는 영주들의 고유 권한이던 영지 통치권을 3년간 황실과 반반씩 공유토록 했기 때문이다.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타셀이 제국 내를 돌아다니며 목격한 병폐를 조목조목 짚으며 지적한 데다 '귀족들도 전쟁 복구에 힘이 부칠테니 황실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식으로 회유했고, 타셀로부터 봉작 받은 이들부터가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서자 결국 타셀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그렇게 제국 전체의 상황을 보고받게 된 타셀은 우선적으로 영지민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귀족들의 특권의식을 야금야금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 방법으로 시행된 게 전 제국민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허락한 것이다. 원래 영주에게 영지민들이란 제 소유의 노예들이나 다름없었는데 이주가 가능해지면 영지민은 더 이상 영지민이라 볼 수 없었다. 그저 제국민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영지에 거주민이 적어지면 자신의 수입도 적어지고 영지가 쇠퇴하는 것이라 영주들이 오히려 영지민을 유치하기 위한 선정을 베풀어야 했다.

큰 반발이 있어 마땅한 제도였지만 이 법안이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케일런 덕분이었다. 케일런이 지나간 지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인적 자원을 수탈했기 때문에 제국 내 인구 밀도가 기형적으로 변화해버렸던 것이다. 오히려 이주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반발하는 귀족들이 대거 들고 일어날 판이었다.

그렇게 이주의 자유가 보장된 백성들에게는 제국 자체에 대한 소속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또 시작된 것이 신분증명서 제도였다. 이제까지는 사람이 태어나거나 죽어도 파악할 방도가 없었는데 신분증명서가 생겨나자 서서히 제국 인구의 파악이 가능해졌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법규와 제도를 만드는 데 참고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권의 향상, 최소한의 인권 보장, 학교의 설립, 계급 제도의 정비, 도로와 상·하수도의 개설 및 정비, 주변 국가와의 국교 정상화 등의 굵직굵직한 법안들이 귀족 회의를 통과하면서 제국은 대변화의 시기를 맞았지만 그것이 큰 반발에 부딪히지 않은 것은 또 아이러니하게도 통치 자체를 등한시한 전 황제 알테리온 덕분이었다. 만약 알테리온이 제 입맛에 맞게 어떤 법안을 전 제국에 정착시켰더라면 그것을 고치는 게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알테리온은 그야말로 제국을 다스리는 데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진 법안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타셀이 강력하게 법안을 정착시키는 게 수월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분을 위한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그 분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전 황제나 1황자가 이렇게 도와줄 줄 누가 알았겠어?"

테이블에 올려져있던 사과 한 알을 아삭아삭 베어 먹으며 타셀이 추진하는 일들에 대해 설명해주던 미하일이 심지만 남은 사과를 창밖으로 집어던지며 말했다.

수도 아르카나 북쪽의 엘런은 제국 내에서도 탐내는 이가 많던 금싸라기 영지였다. 비옥한 농지와 온화한 기후 같은 자연 조건도 그렇거니와 수도와 가깝고 티리엘 및 트렌퀼리엄 상단이 지나는 길목으로서 통행세를 거둬들인다는 것까지,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요소가 없었다. 그 땅이 평민 여기사 출신의 카시야에게 돌아갔으니 배 아파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던지, 카시야가 에르논과 함께 외국을 떠돌던 지난해에도 엘런을 황제령으로 편입하시라는 상소가 꽤나 올라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중 황제가 진지하게 여겼던 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상소를 올린 자들이 다스리는 영지의 통치 상황과 엘런의 통치 상황을 비교해주면 다들 입들을 싹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알리시아가 카시야에게 보내준 관리들이 정말로 유능했기 때문에 엘런의 통치 상황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영주가 신검의 현신이자 내전을 종식시킨 공신이고, 그 영주의 반려가 제국 내 단 하나밖에 없다는 대마법사라는 사실은 엘런 지역민들의 자부심을 충족시켜 주어 엘런의 영지민은 충성심이 높았다. 더군다나 평민 출신의 영주라 그런지 성에서 일하는 관리나 관리의 부관에 능력 있는 평민들을 많이 채용한다는 점은 그들의 만족감을 드높이고 자신들도 출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요소 중 하나였다. 특히 엘런 지역 기사단장 쿠론은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주와 친구라고 했다. 쿠론의 부인인 루나엔은 심지어 영주가 쿠론에게 소개시켜준 아가씨였다는 것도 영지 내에서 미담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꽤 나이차가 나는 이 부부의 주도권은 루나엔 쪽이 확실히 휘어잡고 있어서 커다란 덩칫값도 못한다고 다들 쿠론을 비웃었지만 그게 진짜로 그들을 비아냥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그 부부의 금슬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번 황제 탄신일 연회에는 올 수 있는 거냐?"

"가야죠. 작년에 못 가뵌 것도 죄송하고…."

응접실에 놓인 커다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미하일이 가져온 서류들을 살피던 카시야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미하일은 현재 황실 주도로 만들어지고 있는 특수 기사 훈련원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문서를 카시야에게 가져온 참이었다. 여전히 제국에서 암살과 정보 수집에 있어 최고는 카시야 델 로만 백작이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거구나. 3년 전만 해도 네가 이런 미인인 줄은 몰랐는데."

"제 얼굴이 변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카시야가 제 얼굴을 손으로 더듬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웃는 거 말야. 사람은 생긴 게 다가 아니야. 인상에 따라 외모가 달라 보이거든. 전에는 너, 거의 웃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지금은 꽤 예쁘게 웃을 줄도 알고. 이 오라버니가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한다."

뻔뻔스레 자신을 오라비라 칭하는 미하일에게 카시야는 다시 유쾌하게 웃어보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이렇게 잘 웃게 된 게 신기했다. 에르논과 여행의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타셀 집권 첫 해와 두 번째 해에는 여행은커녕 황궁 밖으로 거의 나올 수도 없었다. 수도에 저택이 생겼지만 무지막지한 업무량 때문에 저택에 돌아와서는 잠 밖에 잘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카시야가 군사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선진적인 사회 제도에 대한 아이디어 역시 많다는 것을 알아챈 타셀이 그녀를 황제 직속 '정책연구회의'의 부의장까지 맡기며 일을 시켰던 탓이다. 카시야는 그 당시 타셀에 대한 충성심이 반 정도 깎여나갈 만큼 일에 시달렸다. 그리고 약속했던 1년 반이 지나자 좀 더 있어달라는 타셀의 부탁까지 냉정하게 끊어내고는 에르논과 함께 제국을 벗어나버렸다. 그리고 거의 1년 동안 칼리스토니아 이외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실컷 자유를 누린 뒤 다시 제국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와서도 수도의 저택이 아닌 엘런의 영주성에서 머물고 있었다. 수도에 올라가면 황제나 황후의 부탁에 또 귀찮은 감투를 써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르논은?"

"서재에요. 작년에 타이안과 인테르노아에서 배웠던 마법에 대해 연구한다고 요새 잠도 거의 안 잡니다."

"쯧쯧. 아직 신혼인데 벌써부터 신부를 독수공방 시키는 거야? 그래서 말했잖아. 마법사들이 괜히 독신이 많은 게 아니라니까? 그 작자들은 마법이 늘 1순위라서 이상적인 배우자감이 못 돼요."

"아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귀국한 뒤로 제가 밀린 업무 때문에 바쁘다보니 에르논 혼자 자야할 때가 많았거든요. 요새는 마법 연구라도 한다니까 제가 덜 미안해졌죠."

"아, 예, 예. 또 제 남편 흉보는 건 싫대지. 그렇게 부부 금슬이 좋으면, 너희도 슬슬 2세를 볼 때가 되지 않았냐? 너희보다 늦게 결혼한 쿠론네는 벌써 둘째 임신 중이라며."

그 말에 카시야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소를 짓고 있기는 한데 어딘지 난처한 듯한 표정이었다.

"왜? 에르논이 고자냐?"

"예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에르논이 들었다면 미하일 경을 창밖으로 날려버렸을 겁니다. 하하하. 아이가 안 생기는 게 누구 탓이냐고 굳이 묻는다면, 아마 제 탓이겠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 제국에 너만큼 신체 건강한 여자가 어딨다고."

"지나치게 신체 건강해서 그럽니다."

"뭐? 너 나랑 스무고개 하냐?"

"저는 기사직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은 곧 신체 단련을 게을리 할 생각이 없다는 말과 같고, 오랫동안 기사직을 수행하기 위한 고강도의 신체 단련은 여성의 월경을 끊기게 합니다."

미소를 띤 채 설명하는 카시야의 모습에 미하일은 입까지 벌리며 놀랐다. 외간남자라면 외간남자인 제 앞에서 월경 운운하는 건 카시야라 그렇다 치지만, 귀족 사회에서 여성이 불임이라는 것은 월경 운운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치부였다.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하는 그녀에게 안 됐다는 표정을 지어야할지,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어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에르논은, 그래도 괜찮대? 아니, 어차피 로만 백작가의 가주는 너니까, 넌? 넌…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거야?"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몸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까놓고 말해, 기사직을 더 수행한다는 것은 거의 무리죠.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후, 후계자는? 너희들 사이에서 애가 없으면 너희가 40대쯤 되었을 때부터 엘런을 차지하기 위한 귀족들 다툼이 볼 만 해질 거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죠, 뭐. 이러다가 덜컥 아이가 생겨버릴 수도 있는 거고요."

태평한 카시야의 태도에 미하일은 철없는 여동생을 둔 오빠라도 된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시 쳐다본 카시야의 표정이 전에 없이 평온해서 더 이상 잔소리를 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페레이아 경은 잘 지내십니까?"

"아, 그 녀석이야 뻔뻔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지. 지금 사교계 최고의 신랑감 아니겠냐.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미하일이 자신만만하게 엄지로 저 자신을 가리키며 으스댔다. 카시야는 절대 그럴 리 없다 생각이야 했지만 굳이 오랜만에 만난 벗의 심기를 긁을 필요는 없다 여겼다. 다만 루크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에게 남녀 사이에 가질만한 감정은 전혀 없었지만 전생에 이어 이번 생까지 그의 마음을 져버린 게, 아니, 알아채지도 못했었다는 게 계속 미안했다. 하지만 루크는 저에게 고백했던 성축일의 밤 이후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장에서 맺어진 친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행동을 보였을 뿐이다. 그게 정말 고맙고 미안해서 카시야는 루크가 잘 지내는지는 꼬박꼬박 확인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놈 자식, 아무래도 결혼 생각이 없는 것 같아. 겉보기로는 이 여자, 저 여자 갈아치워 가면서 연애질은 하는데 옆에서 보기에 그 자식이 진심으로 대하는 여자는 없는 것 같거든. 한 평생 청춘일 것도 아니고 이제 슬슬 결혼해야 할 때인데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네가 한 번 설득해봐라. 그래도 네 말은 좀 듣잖냐. 너희 부부 금슬 좋은 것도 자랑해가면서, 결혼이 요렇게 좋은 거다 꼬드겨보라고. 너도 친구가 돼서는 인마, 너 혼자 달달하면 다냐?"

미하일의 오지랖에 카시야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야말로 절대 루크에게 결혼을 권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건 정말 그에게 못 할 짓이다.

"페레이아 경이 어린 애도 아니고, 다 자기가 알아서 할 겁니다. 워낙에 미남자 아닙니까.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기다 결혼하고 싶은 모양이죠. 아니면 미하일 경, 질투하십니까?"

"뭐? 너 지금 날 뭘로 보고! 질투도 격이 맞아야 하는 거지, 내가 왜 그딴 놈의…."

카시야는 끝도 없이 루크의 흉을 보는 미하일에게 적당히 맞장구쳐주다 기사단의 훈련을 참관해주길 부탁하고는 그새 뻐근해진 어깨를 풀며 에르논의 서재로 향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서재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니 어느새 등허리까지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묶고 책을 읽는 데 집중하는 에르논이 보였다. 신비로운 보랏빛 눈동자가 두꺼운 마법서의 글줄을 따라 움직이는 것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았다. 가만히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문득 에르논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제가 온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기척은 완전히 죽였었는데."

"네 냄새 나서."

그는 카시야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으며 숨을 들이켰다. 늘 맡고 있어도 맡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체취에 에르논의 입가에 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그가 카시야의 왼손을 잡아 올려 늘 하던 대로 입을 맞추자 카시야의 손가락에 끼워진 에메랄드 반지가 반짝거렸다. 알리스타스 공작의 보석함에서 꺼내 챙겨뒀던 에메랄드는 정말 품질 좋은 원석이었다. 그 에메랄드는 그들의 결혼반지와 카시야의 목걸이, 그리고 카시야의 검에 박혀 제 쓰임을 다했다.

"에르논. 일전에 얘기했던 아이 얘기…. 여전히 동의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나에겐 그 무엇보다 네가 더 중요해. 그리고 네가 아니라면 누가 특수 기사들을 키워내겠어? 미카엘도 널 많이 따르고 대신관이 워낙 똘똘하게 키워서 엘런을 물려받는 데 별 문제없을 거야. 우리가 낳은 아이가 아니면 어때? 함께 키우고 서로 사랑하면 그게 가족이지."

그들은 칼리스토니아로 귀국하면서 비밀리에 를뤼엔에 들러 대신관 아르헨을 만났었다. 여행을 하며 카시야는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고, 후계는 황제에게서 구해냈던 아이 미카엘을 양자로 들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미카엘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공포를 겪었기 때문인지 황제의 제물로 사로잡히던 때부터 신전에서 눈을 뜰 때까지의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도 카시야만은 기억했다. 신전에서 아르헨의 보호 하에 기초적인 학문을 공부하며 멍하니 지내던 아이가 오랜만에 신전을 찾은 카시야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껴안고는 놔주지 않았었더랬다. 자신을 지옥으로부터 꺼내준 이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믿음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카시야마저 흔들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 자연스레 미카엘을 양자로 들이는 계획을 품게 만들었던 것이다.

“조금 걱정은 되지만, 우린 잘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둘은 서로 미소를 주고받다가 이내 입을 맞췄다.

"오늘 저녁은 간만에 식당이 북적거리겠어요. 미하일 경이 떠날 때쯤엔 우리도 아르카나로 출발해야겠지만."

"자문이니 뭐니 핑계대지만 사실 미하일 경은 우리 데리러 온 거잖아. 황제 폐하도 날이 갈수록 꾀만 늘어가지고…."

"큭큭. 그러다가 황실 모독죄에 걸려들겠어요."

"으응. 그 지나치게 똑똑한 황제 폐하는 내 벌로 널 못 보게 만들 거야.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야. 그럼 난 노예처럼 죽어라 일해야겠지. 네가 살아있는 한 죽지도 못하고, 널 언젠가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황제가 시키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나갈 거야."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만드는 에르논의 엄살에 카시야는 또 소리 내어 웃었다. 그와 함께 한 이후로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인생이 만족스럽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하고 생각하며 카시야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작품 후기 ============================

진홍의 카르마, 곧 완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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