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화 (1/18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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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여기에 온 지 열흘이 지났다. 기록을 남기자. 나는 얼마 안 가 죽겠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흔적은 남기고 죽자. 다행히 가방에 공책 여섯 권이랑 펜이 있었다. 등교하던 중에 여기로 떨어진 게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이곳의 하늘은 붉다. 게다가 난생처음 보는 괴물들이 득실댔다. 첫날엔 뿔 달린 코끼리처럼 생긴 놈이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고 했다. 나는 몽둥이에 얻어맞아가며 겨우 녀석을 제압했다.’

‘잠은 근처에 있던 빈 동굴에서 해결했다. 동굴엔 썩은 고기들이 나뒹굴었다. 이 동굴이 현재 내 집이다. 나는 축축한 바닥에서 눈물을 흘리며 첫날을 지새웠다.’

***

-31일.

‘ㅅㅂ, 이건 사는 게 아니다. 동굴에 쌓인 썩은 고기로 연명하는 것도 이젠 질린다. 배가 미친 듯이 아프다. 햇빛도 없고, 춥고. 이렇게 사느니 뒈지는 게 낫지.’

-40일.

‘혹시나 싶어서 동굴 밖으로 나가봤는데 덩치가 산만 한 괴물 새끼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나는 겨우 녀석에게서 도망쳤다. 이젠 동굴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말자.’

-42일.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여길 온 뒤로 단 하루도 가족 생각을 안 해본 날이 없어요. 잠에서 깨면 집일 것 같은데, 현실은 참 가혹하네요. 사랑해요. 돌아가면 꼭 안아드리고 싶어요.

-53일.

‘그냥 죽자. 이렇게 사느니 그냥 죽는 게 낫다. 염병 이딴 걸 써봤자 뭐 해. 어차피 죽을 건데.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가 이 말을 진작 했어야 했는데.

***

-1년.

‘눈앞에 막 홀로그램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레벨 업? 스킬?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헛것이 보이는 걸 보니.’

-1년. 31일.

‘오늘 손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이거 실화냐. 스킬이란 게 진짜로 발동되는 거라니. 이거면 하급 마수 새끼들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익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

-6년. 214일.

‘황무지를 넘어갔다가 지하로 통하는 길을 발견했다. 현재 레벨 42. 이젠 지나가는 거대땅굴벌레도 한 손으로 때려잡을 수준은 된다. 황무지에서 날 이길 녀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하 아래서 올라오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은데, 내려가볼까?’

-24년. 87일.

‘무려 24년 만에 무기다운 무기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괴물들 꺼 뺏어 썼는데. 칼리우스의 공방엔 쓸 만한 게 참 많았다. 나는 얼마 전 용철 기사에게서 뺏은 돌을 박아 넣어 멋진 검 한 자루를 만들었다. 이름은 뭐가 좋을까.

-34년. 3일.

‘드레이녹스 투기장을 정복했다. 이걸로 검투사 생활 종료다. 뭣보다 그리드인가 뭔가 했던 그 뺀질거리던 화신족 새끼를 족칠 수 있어서 참 행복한 하루다.

-41년. 57일.

‘불의 대지에 도착했다. 여긴 땅바닥부터 해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무슨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열기가 후끈후끈한 빌어먹을 장소다. 사시사철 폭염이 훅훅 찌는데 여기서 산다고? 염왕 이 새끼는 또라이임에 틀림없다.

-67년. 195일.

‘심연의 전쟁은 종국에 치달았다. 귀왕을 족쳤으니 놈들은 지휘 체계를 잃고 허둥댈 것이다. 새벽제국의 멸망이 머지않았다.

-79년. 365일.

‘날 여기로 데리고 온 장본인이라 주장하는 마신을 족쳤다. 마침 오늘이 연말이구나. 썩 나쁘지 않은 한 해 마무리다.

***

-80년. 1일.

‘워프 게이트가 나타났다. 지구로 귀환하겠냐고……?’

‘이거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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