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2화 (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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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꿔도 지옥 꿈만 꿨다.

활화산처럼 사방에 검붉은 불길이 치솟고 마수들이 날뛰는 지옥 꿈.

꿈속에서도 한대성은 미친 듯이 싸워야 했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녀석들에게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악몽이랑은 다르다.

악몽은 보통 꾸고 나면 식은땀이 흐르고 기분이 더러워야 했다.

하지만 꿈에서 깨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으니, 악몽은 아니다.

오히려 의미 없는 개꿈에 가까웠다.

항상 있었던 장소, 항상 겪었던 일을 꿈으로 꿀 뿐이니까.

길몽도, 흉몽도 아니다.

굳이 흉몽을 따지자면, 만 번에 한 번 꼴로 마수들한테 지는 꿈이 흉몽이고 동시에 악몽이었다.

깨고 난 뒤엔 기분이 더럽고 화가 났으니.

그리고 길몽을 따지자면-

“…….”

지금 꾸고 있는 꿈이다.

길몽을 마지막으로 꿨을 때가 대충 50년 전쯤이던가.

길몽의 배경은 지구였다.

아무리 엿 같은 상황이 펼쳐져도 배경이 지구면 그게 길몽이었다.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꿈에서 깨면 기분이 좋았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지구를 꿈속에서나마 봤으니.

그래서 길몽이었다.

그 길몽을, 30년 만에 꾸고 있다.

“…….”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건 새하얀 시트의 감촉.

그리고 눈을 뜨니까 석고보드로 마감 처리를 한 천장이 보였다.

지옥에선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색깔이 붉은색, 아니면 검은색이었다.

붉은색은 하늘이고 검은색은 동굴 천장이었다.

즉, 지금 이 꿈의 배경은 지구라는 결론이 나온다.

반대로 배경이 지구이니 역시 이건 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했다.

대성 본인의 기준으론 길몽이겠지만, 왠지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영영 꾸지 못했으면 좋았을 것을.’

꿈은 결국 꿈이다.

골백번을 넘게 꿔봤자, 꿈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악몽보다 더 불쾌했다.

하다못해 자각몽이 아니었으면 정말 행복했을 텐데.

잠에서 깨고, 결국 꿈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바닥에 머리를 마구 박을 거다.

“후-”

3m 높이의 천장에 닿을 만치 기나긴 한숨이 이어졌다.

기껏 지구 꿈을 꾸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만끽해야 했다.

대성은 그리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몸이 안 움직이는 건 이게 꿈이라서 그런 걸까.

여태껏 꾼 꿈 중에서 현실감은 제일 생생한데 몸은 움직일 수 없다니.

누구 사람 놀리나.

벌컥.

이때 침대 맞은편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

대성은 반사적으로 행동에 나서려 했지만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들어온 이는 하얀색 너스 캡을 쓴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침대에 누운 대성에겐 눈길도 주지 않으며 장대에 걸린 수액 팩을 갈기 시작했다.

비록 꿈이지만 다른 ‘인간’을 보니 더러웠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생각을 바꿨다.

되도록 오래 만끽하려고 했는데, 그냥 빨리 깨는 게 낫겠다.

이런 꿈은 길게 꾸면 꿀수록, 깨고 난 뒤의 허탈함도 비대해진다.

꿈에서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인 스스로를 강하게 한 대 때린다는 단순무식한 방법이 떠올랐다.

근데 손발이 꿈쩍도 안 하니 제삼자의 도움을 빌려야만 했다.

대성은 바로 눈앞에서 엉덩이를 씰룩이며 수액 팩을 가는 데 여념이 없는 간호사를 향해 말했다.

“이봐.”

“엄마야?!”

덜컹, 툭!

간호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갈고 있던 수액 팩을 떨어뜨렸다.

“어어, 어?”

환청이라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간호사가 두 손을 오므리며 주변을 살폈다.

“어딜 봐.”

“꺄악-?! 꺅?!”

“여기야.”

“힉……!”

다시 한번 호들갑을 떤 뒤, 간호사가 소리가 들려온 후방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마주쳤다.

시퍼렇게 뜬 대성의 무심한 눈동자와 말이다.

그대로 간호사의 몸이 굳었다.

돌이 된 간호사를 향해 대성이 굴곡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 있어.”

“어어, 어…….”

“날 세게 한 대 때려줘.”

“어어, 어?!”

“뒤통수를 갈겨야 해.”

“…….”

“그래야 내가 이 개꿈에서-”

“원장님?! 원장님!!”

대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행동 도중, 간호사의 발이 장대를 툭 건드렸다.

쇠 재질의은색 막대기가 대성의 바로 옆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이내 장대가 기울어지더니 정확히 대성의 정수리와 충돌했다.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다. 통증.

“…….”

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 잠에 들었더라?

잠을 자려고 바닥에 누운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마치, 갑자기 의식이 가라앉은 것처럼…….

“…….”

그제야 대성은 떠올렸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단 하나의 ‘메시지’를 말이다.

[지구로 귀환하시겠습니까?]

***

하나씩 점점 떠오른다.

꿈…… 아니, 정말로 지구로 귀환하기 전, 자신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

바로 언덕에 앉아 있었다.

자기를 마신(魔神)이라고 자칭하는 녀석의 시체로 이뤄진 언덕 말이다.

놈은 지옥계 암흑대륙을 살아가며 본 마수 중 가장 몸집이 컸다.

전신은 검붉은 마그마로 뒤덮였으며, 날의 길이가 웬만한 마탑보다 큰 불꽃의 검을 휘두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내리 80년을 맨땅에 헤딩해가며 살아남은 대성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천지가 뒤집히는 싸움을 이틀간 반복했다.

결과, 대성은 이겼다.

손쉽게 이기긴 했지만 과연 이보다 강한 놈이 또 등장할까 싶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다.

쓰러진 놈의 거체 위에 느긋이 앉아, 그는 일지를 작성했다.

‘오늘은 마신을 쓰러뜨렸다. 싸워보니 몸집만 큰 병신쪼다-’

까지 썼을 때, 갑자기 메시지가 하나 나타난 것이다.

지구로 귀환하겠습니까? ……라고.

-…….

처음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단언컨대 고민하느라 멍을 때린 게 아니다.

다만, 다짜고짜 지구로 돌아가겠냐는 메시지가 나타나니 머리가 새하얘졌을 뿐.

이미 기억에서 잊은 지는 오래지만, 80년 전에 일지에 적었던 바에 따르면.

자신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등굣길 도중 지옥에 떨어졌다.

그것도 아무 맥락도 없이.

바닥이 푹 꺼지고 어? 하는 사이 눈을 뜨니 지옥이라는 전개였다.

그리고 80년을 지옥에서 보냈다.

이제는 지구라는 행성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근데 맥락 없이 이곳에 떨어졌을 때처럼, 맥락 없이 지구로 돌아가겠냐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연히 멍해질 수밖에 없다.

정확히 10초 뒤에.

그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응, 응, 응, 응” 하고 외쳤다.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당연하다.

이곳엔 부와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헤어지기 아쉬운 인연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가 목숨 걸고 임해야 했던 혈전이었다.

비정하고, 잔혹하며, 야만적이기만 한 싸움 말고는 없었다.

이런 미친 곳에서 빼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

의사가 차트와 대성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본인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내 이름?”

병실 안에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80년 동안 단 한 번도 타인으로부터 이름을 불린 적이 없다 보니…….

아니, 애초에 이름을 불러줄 타‘인(人)’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름 같은 건 지옥에서 하등 쓸모가 없었다.

그곳은 그냥 강한 놈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야생의 사자가 자기 스스로를 특정한 ‘이름’으로 자각할까?

아니다.

사자는 자기를 그냥 사자라는 종족으로 기억할 뿐.

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아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항상 품에 간직하고 다녔던 일지.

그 일지의 맨 앞장에, 이름을 메모해뒀으니까.

대성은 품에 넣은 일지를 꺼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두 팔이, 아니, 전신이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왜 이러지?’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건 진즉에 깨달았다.

그렇다면 몸이 안 움직여질 이유가 없다.

아까는 꿈이겠거니 싶어서 몸이 안 움직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말이 다르다.

‘몸이 굳었다’는 이 상황이, 아까랑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무게감을 선사해줬다.

‘내 몸이 왜 이러냐고.’

무심했던 대성의 눈에 처음으로 감정이 스쳤다.

자기도 모르게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차분히 근육에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무리였다.

마치 목구멍 아래쪽에 커다란 바위라도 들어찬 듯, ‘감각’ 자체가 희미했기 때문이다.

“에, 아무래도 몇 년 만에 깨어나신 거라 일시적인 기억상실이 온 듯합니다. 환자분 성함은 한, 대, 성-”

“후욱, 흑, 후윽……!”

“한대성 씨?”

“으윽, 으극……!”

대성은 치아가 으스러질 기세로 어금니를 꽉 깨물며 힘을 줬다.

그러나 두 손 두 발은, 뜻대로 움직여주기는커녕 힘줄 하나 돋지 않았다.

눈앞의 환자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표정이 험악해지자 의사는 당황하며 손을 뻗었다.

“한대성 ㅆ-”

의사의 손바닥이 대성의 어깨와 맞닿기 바로 직전.

콱-!

“아아악!”

그대로 대성이 고개를 옆으로 틀어 의사의 손을 물어뜯었다.

살갗에 파고든 대성의 이빨이 억센 턱 힘과 맞물리자 의사는 비명을 질렀다.

아예 뼈째로 찢어버릴 생각인지, 대성은 의사의 손을 콱 깨문 채 고개를 휘젓기까지 했다.

“한대성 씨! 한대- 끄아악!”

의사의 손목에서 선혈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워, 원장님!”

뒤에서 기겁하던 간호사가 황급히 의사를 잡아당겼다.

이빨 힘만으론 두 명분의 저항을 이겨내기 어려웠기에, 먼저 물러선 건 대성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피부가 뜯기진 않았지만 깨물린 상처로부터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의사는 무슨 짓이냐고 호통치지도 못하고 허리를 굽혀 물린 손을 움켜쥐어야 했다.

“내 몸이 왜 이래.”

“아윽, 으윽……! 예, 예?”

“왜 안 움직이냐고!”

대성이 크게 뜬 눈을 매섭게 희번덕거렸다.

“자고 있는 새에 마비 독을 넣었나? 아니면 주술? 저주? 이 개새끼들, 이게 뭐 하자는 수작이야!”

“화, 환자분. 그게 대체 무슨 말씀-”

“나한테 다가오지 마!”

의사가 발을 떼려던 순간, 대성이 찢어질듯이 외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마. 죄다 죽여버리는 수가 있으니!”

25년 전이었던가.

도저히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어서, 열병매화(熱病梅華)의 이파리를 쥐어짠 원액으로 갈증을 해결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

10분도 안 돼서 전신에 마비 독이 퍼진 것이다.

그대로 내리 열흘 가까이를 식음도 못 하고 작열하는 모래밭 위에 굳어 있어야 했다.

배고픔과 갈증은 견디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저를 배회하는 샌드웜이 모래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날엔, 저항도 못 하고 황천행이다.

그렇게 그는 열흘간 매초 매분을 공포에 떨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 되살아난 것이다.

“무슨 개 같은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대로 안 죽어!”

대성은 그렇게 절규하며 버둥거렸다.

아니, 몸이 굳어서 실제로 그러지는 못 했지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그나마 반응하는 고개라도 도리질 치는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발작 증세였다.

“이 개새끼들아!”

벌컥!

문이 열리고, 남자 간호사 다섯 명이 병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눈이 뒤집힐 대로 뒤집힌 대성은 소리 지르기에 급급했다.

“팔십 년을 싸웠어! 팔십 년!”

들이닥친 다섯 명 중 힘 좋은 두 명이 대성의 얼굴을 붙잡았다.

“이익! 개, 씹……! 그 어떤 새끼가 나를 죽이려고 해도 살아남았어! 그런데 네까짓 것들이 날!”

사색이 된 의사가 마취제가 든 주사기를 대성의 목에 갖다 댔다.

“네까짓 것들이!”

꾹. 엄지로 밀대를 밀자 원통 안의 액체가 목덜미 안에 스며들었다.

“네까짓……!”

팟-

마치 컴퓨터 전원이 나간 것처럼.

그의 의식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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