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3화 (3/180)

# 3

003

좁쌀 크기도 못 되는 모래알 하나하나가 용암이라도 머금은 것처럼 뜨거웠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작열감이 모공을 헤집는 기분이었다.

-……! ……!

뼈와 살이 녹을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대성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붉게 물든 창공 저 너머에서 내리쬐는 열감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끼릭. 께루룩.

옆으로 돌아누운 자세로 몸이 마비된 그의 눈앞으로 눈이 일곱 개 달린 도마뱀이 기어갔다.

-헤윽, 학……!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었다.

대성은 간신히 입을 벌려 혀를 길게 빼었다.

뭐라도 좋으니 지금은 일단 배를 채워야 했다.

하지만 낌새를 알아챈 도마뱀은 쪼르르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

허탈함에 대성의 움푹 파인 눈동자가 탁해졌다.

스르르.

눈이 막 감기려고 했다.

졸려서가 아니라, 기운이 허해져서 탈진해버린 것이다.

-자면 안 되는데…….

정신을 잃는 순간 죽는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저절로 닫히는 눈꺼풀을 의지만으로 제어하는 건 무리였다.

잠시 시야가 까맣게 되고.

펑-!

-……!

지뢰라도 터진 것 같은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대성이 반사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뜬 그의 얼굴엔 거대한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위를 보았다.

지네인지 지렁이인지 모를 녀석이 길쭉한 몸뚱이를 내뺐다.

동그랗게 뚫린 입 안에는 송곳처럼 예리한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퀴르르르르륵!!

샌드웜.

황무지 아래에 서식하며, 부지불식간에 땅 위로 고개를 내밀어 먹잇감을 유린하는 마수.

샌드웜이 그 거체를 구부려 먹잇감인 대성을 바라보았다.

휘리릭-!

이내 녀석이 몸을 뒤틀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빌어먹…….

대성이 메마른 어조로 욕을 내뱉음과 동시에.

무저갱처럼 새까만 샌드웜의 구강 속 이빨들이 그의 몸을 으깼다.

***

꿈이었다.

“으아아아아악-?!”

벌떡!

마취에서 깨어난 대성이 발광하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허억, 허억, 허억……!”

넘어갈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쿵쾅거리는 맥동을 느껴가며 그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꾸, 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막은 아니었다.

눈앞까지 샌드웜의 이빨이 들이닥쳤던 그 광경이 아직도 생생했지만, 꿈이란 걸 깨달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오래가지 않았다.

“…….”

대성은 입가를 파르르 떨어대며 팔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새끼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 개자식들이…….”

자신은 지구로 귀환했다.

하지만 의식을 차리고 나니 온몸이 마비가 된 것이다.

놈은 자신을 ‘의사’라고 했는데 눈에 훤히 보이는 공갈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꼼짝도 안 하는 건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저항도 하지 못한다.

저항을 하지 못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놈들이 무슨 수작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라도 이 상태에서 벗어나야 했다.

“후욱, 훅…….”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선은 몸에 닥친 상황부터 파악해야 했다.

“좋아…….”

지옥의 생활은 마치 게임 같았다.

즐겁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게임 같은 ‘시스템’, 즉, ‘상태창’이란 게 존재했다.

대성은 자신의 현재 상태, 레벨, 경험치, 능력 등이 표시된 상태창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상태창에는 현재 자신에게 가해진 ‘상태 이상’도 표시되었다.

독이면 독, 화상이면 화상, 이런 식으로 말이다.

“상태창.”

대성은 상태창을 소환했다.

…….

하지만 허공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자꾸 자기도 모르게 까먹는데, 여기는 지구였다.

지구로 귀환한 이상, 지옥의 시스템이 적용될 리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뜻이잖아.’

상태창이 생기지 않으니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도 알 수가 없게 됐다.

대성이 고개를 풀썩 떨어뜨리며 대책을 강구하던 그때였다.

저벅, 저벅-

“……!”

문 바깥, 복도 쪽으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대성이 상념에서 벗어나 발소리에 집중했다.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탁-

바로 문 앞에서 소리가 멈췄다.

그 시점에서 대성은 바쁘게 눈알을 굴려 무기로 삼을 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입으로라도 무기를 휘둘러 맞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무기로 쓸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성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문을 쳐다봤다.

이때 문고리가 빙그르 돌아가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어……?”

먼저 소리를 내뱉은 건 오히려 들어온 쪽이었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건 50대 중반쯤 된 여자였다.

여자는 과일이 잔뜩 든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성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툭, 데구르르.

여자는 맥없이 바구니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

대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바닥을 구르는 과일을 눈으로 좇을 때.

“아, 아아……. 아아!”

느닷없이 여자가 입을 꾹 틀어막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침대 위의 대성에게 다가왔다.

“윽……!”

잠시 방심했던 대성이 고개를 치켜들며 눈에 독기를 실었다.

“오지 마.”

절대영도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오면 죽여버릴 거야.”

그럴 만도 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가 다가오니 그럴 수밖에 없다.

멈칫.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대성의 차가운 어조에 여자는 일순 당황했다.

하지만 치미는 눈물을 잠시 억누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성아.”

그 순간.

파지직-!

“으으윽……?!”

뱀처럼 구불구불한 전류 한 줄기가 그의 뇌리를 관통하듯 스쳤다.

“허억, 허억, 허억……!”

어떤 특수한 언령(言霊) 같은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목소리를 귀에 담는 순간 두개골 안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대, 대성아!”

갑자기 그가 관자놀이에 십자 힘줄을 그리며 고통스러워하자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가오려 했다.

“오, 오지 말라고 했잖아!”

“대성아.”

“닥쳐!”

머리가 아픈 것뿐만이 아니라.

단검으로 심장을 헤집는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격통에 대성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성아…….”

“그 이름 부르지 마……!”

“대, 대성아. 나야…….”

대성이 목을 마구 비틀며 비명을 질렀지만 여자는 그에게 접근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 누군지 모르겠어?”

“네가 누군데……!”

어느새 여자는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비쩍 마른 여자의 몸이 그의 얼굴에 가느다란 음영을 드리웠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꿈속에서 코앞까지 닥쳤던 샌드웜의 번들거리는 이빨이 잔영을 그리며 스쳤다.

슥-

여자가 두 팔을 한 아름 크게 벌린 순간.

“씨, 바알……!”

대성은 질끈 눈을 감았다.

아무리 마신을 단신으로 때려잡고 지옥을 제패한 그라고 하여도.

무방비한 상태에서 뻗쳐오는 죽음의 마수 앞에서 덤덤할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대성은 눈을 감은 채 살갗이 으깨지는 아픔에 대비했다.

하지만 아픔 대신 느껴지는 건.

온기였다.

“……?”

대성이 의아해서 눈을 떴다.

포근했다.

“대성아.”

여자는 두 팔을 크게 벌려 그의 얼굴을 꼭 껴안았던 것이다.

“진짜로 나, 누군지 모르겠어……?”

“……? ……??”

당황하는 대성의 어깨가 쉼 없이 오르내렸다.

누구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냄새가 났다.

비강에 흘러 들어오는, 실존하는 냄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냄새였다.

대성이 냄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여자가 상냥한 손길로 대성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안 아프다, 안 아프다.”

-안 아프다, 안 아프다.-

희뿌연 광경이 펼쳐졌다.

-엄마가 다 혼내줄게.-

-그러니까 뚝.-

“엄마?”

대성이 그 단어를 입에 담은 순간.

쓰다듬던 여자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러기를 잠시.

“응.”

여자가 잔뜩 목멘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야.”

“엄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설령 그 시간이 평화와 여유가 없는 수라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결코 기억 속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게 하나 있었다.

그건 ‘가족’이었다.

하지만 20년이 흘렀을 땐 점점 기억 속의 얼굴이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릿속 어디에서도 ‘가족’, 혹은 ‘부모’란 존재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고 대성 스스로 자문했던 적도 있었으나, 지옥을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하지만 가족이란 존재 자체가 기억 속에서 소멸한 건 아니었다.

다만 아주 깊고 깊은 심연 속에서 잠들어 있었을 뿐.

그리고 그 잠들어 있었던 냄새와 얼굴들이.

“엄마……!”

“응, 엄마야. 대성아. 엄마야.”

바로 지금 이 순간, 수십 년이란 세월을 극복하고 나타난 것이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대성은 울지 못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눈물 흘리는 법을 까먹어버린 것이다.

눈물이 메말랐다고 표현해도 좋으리라.

“으아아아아!!”

그래서 그냥 한없이, 우는 소리만 계속 입 밖으로 흘릴 뿐이었다.

꺼이꺼이, 계속.

***

그의 착각과는 다르게 여기는 평범한 병원이었다.

평범한 병원이니 당연히 의사랑 간호사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냥 대성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꼴이다.

하나 그렇게 착각하는 것도 아주 무리는 아니었다.

‘병원…… 맞아. 지구엔 병원이란 게 있었지.’

자그마치 80년 만에 져보는 병원 신세, 그리고 타인에게서 받아보는 ‘치료’라는 개념.

“…….”

대성은 자신이 입은 환자복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지옥에선 모든 걸 혼자 하고, 혼자 짊어졌어야 했다.

부상을 치료하는 것, 약을 제조하는 것도 전부 혼자 해야 했다.

싸우다 다친 그를 치료해주는 ‘아군’은 없었다.

있어봤자, 레벨 업을 하면 체력을 회복시켜주고 포션 제조법을 알려주던 상태창 정도일까.

누군가로부터 받아보는 호의.

이런 건 80년 만에 지구로 귀환한 대성에겐 너무나도 생소했다.

“몸이 많이 굳었대.”

침대 옆 동그란 의자에 앉은 대성의 어머니, 윤혜정이 말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움직이기가 많이 힘들 거야. 못해도 최소 반년은 재활 훈련을 해야 된대.”

“응.”

“아까는 난리도 아니었다면서? 깨자마자 의사 선생님 손을 아주 아작을 냈다던데.”

“날 해치려는 줄 알았지.”

“얘가 간만에 눈 뜨니까 무슨 해괴한 소리를……. 너 누워 있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이셔. 이따 선생님 오시면 꼭 죄송하다고 사과드려. 꼭.”

“응.”

“으휴…….”

이어지는 짤막한 대답에 윤혜정이 못 살겠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윤혜정이 힐끗, 아들을 바라봤다.

탁한 동공으로 그저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그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 대성은 정말 병원이 떠나도록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그것은 분명 통곡이었다.

그렇게 10분을 넘게 오열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척 봐도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라는 게 느껴졌다.

의사 또한 누누이 통보했으니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가 좀 많이 낯설게 느껴지네. 친모인 내가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만서도…….’

그녀가 알고 있는 아들의 성격은 무척이나 밝았다.

대인 관계, 학창생활 모두 문제없었다.

오히려 친모인 그녀가 봐도 뿌듯할 정도로 성격 좋은 아들이었다.

물론 몇 년간을 가사 상태에 빠졌으니 그 활달했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대성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성격을 떠나서, 마치 사람 그 자체가 뒤바뀐 느낌이었다.

혜정은 가슴이 아리는 걸 느끼며 대성 몰래 입술을 꾹 물었다.

‘퇴원하면, 혹시 모르니 정신과 치료도 받아봐야-’

“엄마.”

“으, 응? 어!”

한창 상념에 사로잡히던 중 불쑥 말이 들려오자 혜정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대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놀라.”

“으, 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왜 불렀니?”

“이야기해줘.”

“뭘?”

“다.”

대성이 진중하게 말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고, 엄마는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고. 나는 그동안 어떻게 됐으며. 모조리 다.”

“그…… 선생님 말씀으론, 근황 얘기 같은 건 네가 하루 이틀 더 안정을 취한 다음에 하는 게 좋다고-”

“괜찮아. 그냥 해줘.”

“…….”

대성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이야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걸 듣고 쇼크에 빠지진 않을까 혜정은 걱정했다.

하지만 본인이괜찮다고 하니, 우선 차근차근 하나씩 말해주기로 했다.

정리하자면.

지금은 2028년 3월 17일.

대성은 10년 동안 가사 상태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지옥에서 그가 보낸 시간은 무려 80년이었지만.

어쨌든 지구의 시간은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얘, 10년이란다, 10년. 10년씩이나 잤으니 우리 아들 이제 당분간 잠 안 자도 되겠네?”

행여 그가 충격받았을까 봐, 혜정은 애써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래봤자 이 이야기를 듣고 내심 놀랐을 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성의 반응은 의외였다.

“다행이네. 10년밖에 안 지나서.”

“어, 응?”

“여기도 거기랑 똑같이 시간이 흘러가면 어쩌나, 두려웠어. 돌아왔는데 날 기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정말 끔찍했겠지.”

대성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을, 혜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10년밖에 안 지났다니. 정말 다행이군.”

“어, 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이 다행이라고 하니…….”

“계속 얘기해줘.”

대성이 조용히 재촉하자 혜정은 남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혜정 본인에 대해선, 그냥 그럭저럭 잘 지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너 빼고 다 잘 지냈어, 욘석아.”

그 뒤로 한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쉼 없이 이어졌다.

자그마치 10년 분량.

저녁놀마저 완전히 저물고 밤하늘이 찾아올 때까지 이야기는계속되었다.

“그래서 있지. 너 일어나면 해주려고 벼르고 있던 크림 스파게티를 하루 종일 연습하면서-”

똑, 똑.

한창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저…… 실례지만 환자분 면회 시간 끝나서 이제 슬슬 나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그럼 아들, 엄마 이만 가볼게.”

혜정이 아쉬운 기색으로 손을 흔들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대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도 올 거야?”

“그럼. 우리 아들 퇴원할 때까지 매일 올 건데?”

“응.”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병실 밖을 나섰다.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연신 손을 흔들었다.

쾅.

문이 닫히고.

스르르-

그녀는 문짝에 등을 기댄 채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양 손목을 관자놀이에 가져다대며 중얼거렸다.

“좋은 얘기만 하자……. 좋은 얘기만 하자……. 좋은 얘기만 하자…….”

장장 다섯 시간 넘게 이어진 이야기들은, 모두 행복한 것뿐.

…….

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제3금융권에서 빚을 졌다는 이야기는 뺐다.

언젠간 들키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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