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4화 (4/180)

# 4

004

다음 날.

아침 아홉 시가 되자 대성은 잠에서 깨어났다.

지옥엔 낮밤이 없다.

시간개념이 모호하니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물론 너무 오래 자면 불의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기에 아예 퍼질러 잘 순 없었지만…….

어쨌든 대성에겐 일정한 생활 리듬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는 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지구로 귀환한 지 아직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몸이 벌써 시차 조정에 들어간 것일까?

잠에서 깬 대성은 그냥 멍하니 천장의 주름을 세거나, 창문 너머의 풍경을 구경했다.

사지가 굳었으니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대성은 문이 열리기도 전에 저 너머에 누가 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를 찾아올 이는 혜정이나 간호사가 전부니.

“들어가도 되지? 들어간다.”

하지만 문짝 너머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덜컥-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

“…….”

처음 보는 여자애였다.

나이는 10대 후반…… 얼추 열아홉 살 정도 됐을까.

아침 아홉 시. 그리고 10대 여자.

주말도 아니니 학교에 가는 게 당연해 보였지만, 그녀는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지극히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얼굴이 마주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성은 그녀가 누군지 모르니 입을 다물었다 쳐도.

찾아온 쪽인 여자애도 한동안 말없이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뭔가를 꾹 참고 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다,

“후우…….”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엉엉 울 줄 알았지?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

“흘릴 눈물은 이미 집에서 다 흘리고 오는 길이야. 울어도 여기선 절대 안 울어. 쪽팔리거든.”

여자애는 그렇게 말하더니 대성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거리가 좁혀지니 방금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빨갛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으니.

“깨어난 거, 축하해.”

“……어.”

대성은 엉겁결에 대꾸했다.

맥락을 보아하니 자신이랑 관련이 있는 여자애인 듯하다.

아예 기억에서 사라진, 생판 남이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느껴졌다.

하지만 스크래치가 잔뜩 난 그림을 보는 것처럼 흐릿했다.

‘누구지. 누구더라.’

느낌이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대성은 필사적으로 떠올리려 했지만 80년의 장벽은 너무나도 두터웠다.

“왜 말이 없어? 기뻐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아니면 10년 만에 깨어나서 어디 맛이라도 간 거야?”

안 되겠다.

도무지 안 떠오른다.

대성은 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나 같이 아리따운 여동생-”

“누구지?”

둘의 말이 겹치고.

기나긴 침묵이 돌았다.

***

혜정은 오늘도 어김없이 하나뿐인 아들의 문병을 갔다.

오늘은 대성이 좋아하던 크림단팥빵도 몇 개 사 왔다.

아무리 기억장애가 있다고 해도, 본래의 입맛마저 완전히 잊어버리진 않았으리라.

맛있게 빵을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볼 생각에 혜정이 싱글벙글 웃으며 병실 앞에 도착한 그때.

벌컥-!

세차게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잡으려던 혜정이 깜짝 놀라며 멈칫했다.

“지, 지수야?”

문턱에 선 여자애, 한지수는 울고 있었다.

10년 만에 깬 아들을 찾아간 친딸이, 울고 있다.

어머니 된 입장에선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다.

“왜, 왜 그래. 왜 울어?”

“저 병신한테 직접 물어봐!”

지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친 뒤 혜정의 곁을 지나쳤다.

“아, 아니. 이게 대체……. 지수야! 얘! 한지수!”

혜정은 병상에 누운 대성과 멀찍이 떠나가는 지수를 번갈아 보았다.

아무래도 지수를 달래는 게 먼저라 생각했는지 혜정은 복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

병실에 홀로 남은 대성은 말없이 이불을 꾹 쥐었다.

“…….”

설마 가족, 그것도 여동생이었을 줄은.

아직도 귓가에 선하게 맴돈다.

이 병신 빡대가리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동생을 못 알아보냐?

방금 지수가 융단폭격처럼 퍼부은 욕설이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 대성이 본인에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

“……지수한테는 엄마가 잘 말해놨어. 미안해. 내가 미리 걔한테 일러뒀어야 했는데. 너 기억장애가 조금 있다고…….”

잠시 뒤.

병실로 돌아온 혜정이 복잡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들.”

“응.”

“우리 지수가 늦둥이잖아. 한두 살도 아니고, 너랑 무려 일곱 살씩이나 차이 나니까…….”

“어.”

“너 쓰러졌을 때 걔가 아홉 살이고. 지금은 10년이 흘러 열아홉 살이니. 아이고, 나 같아도 한 번에 못 알아봤겠다.”

농담조로 말한 혜정이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갑갑한 마음을 감추려 애써 웃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이제는 누군지 알아볼 수 있지? 지수랑 함께했던 기억들, 떠올릴 수 있는 거지? 응? 딴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잖아.”

“응.”

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다.

혜정과는 다르게, 지수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옅었다.

80년의 세월이 이토록 잔혹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대체 자신은 어디까지 몰락한 걸까.

대체 얼마나 생존과 싸움에만 급급했으면, 혈육의 얼굴과 이름마저 잊어버리고 만 걸까.

가슴이 욱신거린 나머지 대성은 혜정 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아, 그래. 기분 전환 삼을 겸. 오늘은 모처럼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혜정이 제안했다.

“10년 만에 바깥공기 쐬는 거니까 ‘모처럼’이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나? 호호. 어쨌든, 아들. 어때?”

“……산책.”

대성이 그 단어를 낮게 뇌까렸다.

지옥에 있을 땐 산책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곳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사방팔방이 야성에 굶주린 마수들 천지였으니까.

하나 여기는 지구.

이유 없이 습격하는 마수도, 발을 들이는 순간 지하 깊숙한 곳까지 빨려 들어가는 늪도 없다.

무엇보다 신선한 바람을 쐬다 보면 침체된 기분을 조금이나마 환기시킬 수 있을 테니.

“가자. 산책.”

***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끼릭, 끼릭-

휠체어에 앉은 채, 대성은 무심히 주변을 살폈다.

환자복을 입은 병자들과 간호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

지직, 지직-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눈앞에 노이즈가 일었다.

시야가 뒤틀리며 초점이 일그러질 때마다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어딜 봐도 평범한 사람들이 난데없이 괴물로 둔갑하는 것이다.

‘마수?’

아니. 아니다.

그것은 80년 동안 지옥에서 살며 웬만한 모든 마수를 본 대성조차도 처음 보는 괴물들이었다.

“…….”

꾹, 눈을 감고, 다시 떴다.

그러니 원래대로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성은 방금 들이닥친 착시를 지우려는 것처럼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착각이겠지. 완전히 떨쳐내려면 당분간은 시간이 걸리겠군.’

무섭도록 냉정하게, 대성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1분마다 상기시키자. 나는 지구에 있다. 나는 지구에 있다. 나는 지구에 있다…….’

대성이 슬며시 눈을 감고 그렇게 되뇌고 있을 때.

윙-

자동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지는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광채를 느끼자마자 눈을 떴다.

환한 햇빛.

태양.

푸른 하늘.

유유히 흐르는 뭉게구름.

선선이 불어오는 바람.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대성의 망막에 아로새겨졌다.

“아…….”

본인마저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미약한 감정 변화였다.

대성은 무심결에 입을 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들.”

“…….”

“어때? 10년 만에 맡아보는 바깥공기는.”

흡-

대성은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켜 보았다.

티 없이 맑은 공기가 콧구멍을 간질였다.

없다.

시체 썩어가는 악취도.

비릿하게 올라오는 피비린내도.

두통을 일으키는 유황불도.

“난 정말-”

지구로 돌아왔구나.

……라는 뒷말은, 혜정의 의심만 살 수 있으니 그냥 삼켜버렸다.

말을 아끼는 대신, 이 공기를 조금 더 음미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주 잠시 뒤.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시체 썩어가는 악취, 비릿한 피비린내, 그리고 두통을 일으키는 유황불의 냄새가-

“응?”

대성은 번뜩, 눈을 떴다.

지직, 지직-

이번엔 더 커다랗고 거친 잡음이 시야를 마구 어지럽혔다.

푸른 하늘이 혼탁한 붉은색으로 변색되었다.

햇볕 내리쬐는 태양이 사라지고 검은 달이 두둥실 형성됐다.

녹음이 우거진 수풀과 나무가 온데간데없이 불타 사라지더니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지직, 지직-

-케륵! 케르르륵!

-그아아악!

“…….”

다시 한번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소리로만 끝나지 않았다.

대성이 눈길을 향하는 곳마다 괴물들이 마구 날뛰었다.

벌레가 들끓는 시체의 살점을 먹어치우며 동족상잔도 서슴지 않는 명명백백한 아수라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들?”

훅-

그 목소리를 기점으로, 세계는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

보기 드물게도 대성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혜정이 보였다.

“왜 그렇게 놀라? 괜찮니?”

“……어.”

작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성은 주변 경관을 바라보았다.

원래대로의 지구로 돌아온 걸 보며 그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꺼림칙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기운이 느껴졌어.’

지구의 공기, 지구의 기운이 아닌.

지옥처럼, 다른 차원 어딘가에서 비릿하게 풍겨오는 정체불명의 기운이.

단순한 환시, 환청치고는 너무나도 생경했다.

‘아니, 아니야. 이 이상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그냥 이건, 내 정신상태가 이상한 거야.’

분명 그럴 거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좀 더 시간이 흘러, 사흘째.

물건을 쥘 수는 있을 정도로 팔의 신경이 회복되었다.

대성은 재활 운동을 시작했다.

“윽, 으윽……!”

양쪽 은색 평행봉을 붙잡은 손이 오들오들 떨렸다.

두 다리는 지금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 상태로 발걸음을 한 번 뗄 때마다, 그의 목덜미에 힘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딱 세 발짝. 그게 한계였다.

대성은 옴짝달싹 못 한 채 잔뜩 얼굴 표정을 찡그렸다.

“도저히 못 걷겠다 싶을 땐, 무리하지 마시고 그냥 가만히 서계셔도 돼요.”

맞은편에서는 담당 주치의가 대성의 재활 운동을 도와주고 있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오히려 대성의 오기를 자극했다.

그는 어떻게든, 단 몇 발짝이라도 전진하기 위해 사력을 쥐어 짜냈다.

하지만 슬리퍼 밑창에 자석이라도 붙은 것처럼 발이 도무지 바닥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파들파들.

그렇게 10초가 지나고, 대성이 털썩 쓰러졌다.

주치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대성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어.”

“잘 하고 계십니다.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요. 음, 조금만 쉬었다 하실까요?”

“아니.”

냉담하게 말한 대성이 평행봉을 지탱한 팔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주치의가 대성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너무 무리하시면 오히려 더 악화되실 수도 있어요.”

“아직 무리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말하는 것과는 달리 대성의 숨은 벌써 거칠어져 있었다.

죽을 것같이 힘들다.

굳을 대로 굳은 근육을 억지로 움직이려 할 때마다 막대한 신경통이 일었기 때문이다.

대성은 그 격통을 씹어 삼키며 주치의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릴까. 내가 완전히 회복하려면.”

“어, 음. 글쎄요……. 꾸준히 반복하시면 한 반년에서 1년 정도…….”

“더 빨리는 안 돼?”

“이건 그냥 제 의견이지만, 최소가 반년이라 봅니다.”

“…….”

반년이란 말을 듣고 대성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조급할 건 없다.

급하게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완전한 회복까지 2년, 3년이 걸린다고 해도 그에겐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물론 한시라도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몸을 혹사시키면서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이 이토록 서두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불안 증세가 도지려고 해.’

자기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는 작금의 상태를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곧 죽음을 의미했다.

지옥에선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눈을 감고 수마에 빠지는 그 순간마저도 항상 경계심을 품어야 했다.

그렇게 80년을 보냈다.

하나 지구로 귀환했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본인도 안다.

몸이 굳은 상태라 할지라도 자신을 죽일 마수가 존재하지 않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쌓이고 각인되었던 ‘버릇’이란 놈이.

마모될 대로 마모되어버린 ‘여유’라는 감정이.

계속해서 그에게 채찍질을 했다.

움직여!

안 그러면 죽을 거야!

마치 그렇게 호통을 치는 것만 같아서, 계속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해서 깔끔히 지울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어떡하면 좋지?’

마음이랑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

최소 반년이라는 말에 대성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이 빌어먹을 재활을 더 빨리 끝낼 수-“

그때였다.

동아줄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대성이 고개를 든 순간.

[강림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거절할 시 퀘스트의 보상은 지급되지 않습니다.]

“이게 왜 갑자기 지금 나와.”

“네?”

어리둥절하게 묻는 의사의 말도 지금은 대성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려왔으니까.

동아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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