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006
“제 아들이 걸었다고요?”
“예.”
주치의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혜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한 주치의의 말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혜정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붕붕 휘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6개월은 넘게 걸린다고 하셨으면서 어떻게 벌써?”
“그게……. 실은 의사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검사 때는 근육이 많이 굳은 상태라 서 있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아아! 아무래도 신께서 우리 아들을 축복해주시나 봐요!”
“예, 뭐. 그거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되는 사태이긴 하네요.”
무신론자인 그였지만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혜정은 주치의와 대화를 마친 뒤 곧바로 대성이 있는 병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노크를 하는 것도 잊고 문을 활짝 열었다.
“대성아!”
병실에 들어선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아들의 뒷모습이었다.
“엄마?”
인기척을 느낀 대성이 뒤를 돌아 그녀를 보았다.
“아…….”
10년 만이다.
의식을 되찾은 아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본 게.
혜정은 환희 때문에 무너지려는 다리에 힘을 바짝 줬다.
그리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대, 대성아. 잠깐. 이쪽으로 와서 엄마 좀 꼭 안아줄 수 있겠니?”
“어, 응…….”
대성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혜정에게 다가갔다.
쥐라도 걸린 사람처럼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걷는 모습을 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뻐 죽을 것만 같았다.
슥-
이내 혜정의 코앞까지 다가온 대성이 팔을 크게 벌려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이 전달하는 따스함을 오롯이 느끼며, 혜정은 한 가닥 눈물을 흘렸다.
훌쩍이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네가 마지막으로 엄마 안아줬을 때가 너 초등학생 때였어. 중학교 올라가더니 징그럽다며 어찌나 진저리를 치던지…….”
“그랬었구나.”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째서 그때의 자신은 엄마를 안아주는 걸 싫어했을까?
아무튼 확실한 건, 이건 대성에게도 결코 나쁜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엄마가 원하면 자주 안아줄게.”
대성의 품에 얼굴을 묻은 혜정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에는 이제 문제가 없다.
걷거나, 혹은 누군가를 안거나…….
하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아직은 버거웠다.
팔에 힘을 준다거나 달리는 행위 등은 무리였다.
주치의가 경악한 대로 놀라우리만치 빠른 재활 속도긴 했다.
이게 다 시스템의 은총 덕분이다.
하나, 이 정도론 아직 멀쩡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긴 힘들었다.
최소한 달리기 정도는 가능해야 재활 치료가 끝이 난다.
깨어난 지 어느덧 보름이 가까워졌다.
그동안에도 그는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았다.
이제 걷는 건 마스터했으니, 주로치료실이 아닌 병원 건물 밖 산책로에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하지만 5m를 채 달리기도 전에 몸의 중심이 무너져버리곤 했다.
지구력의 문제가 아니라 다리 근육이 마구 삐걱거렸다.
대성은 산책로에서 뜀박질을 수차례 시도해본 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걷는 건 가능하니 마음 같아선 한시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지만 병원에선 허가를 내려주지 않았다.
그는 병실의 창문 앞에 서서 멍하니 도심의 풍경을 구경했다.
‘그때처럼 또 퀘스트가 나타나면 좋으련만.’
강림 퀘스트 이후로 진전이 통 없으니, 그제야 회복의 비약이 지닌 소중함을 통감했다.
문제는 퀘스트가 또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지만.
“상태창. 퀘스트.”
지구에도 홀로그램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렇게 부르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감감무소식.
대성의 마음이 갑갑해졌다.
‘순 자기 멋대로인 새끼.’
이미 회복의 비약이라는 단물을 맛봤기에 지금의 더딘 재활 치료가 더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해지니 또 그놈의 불안 증세가 도지려고 했다.
빨리 몸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심지어 그 불안감은 가시화되기까지 했다.
이를 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평범한 도시가 아주 잠깐 황폐한 대륙처럼 돌변한다든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혀 처음 보는 괴물로 둔갑한다든가.
‘심상치가 않아.’
그리고 시커먼 연기 내지는 기운 같은 게 스멀스멀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이라거나.
왤까?
왜 이 지구의 맑고 투명한 공기가 때때로 서늘하고 퀴퀴한 기운으로 둔갑하는 걸까.
그냥 기분 탓일까?
‘제대로 맛이 갔나 보군.’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80년을 지옥에서 보내다 보니 오히려 지구의 공기에 적응을 못 하는 게 분명했다.
대성은 눈살을 찌푸린 채 미간을 꾹 부여잡았다.
슬쩍 눈을 떠 유리창에 반투명하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비쩍 마른 20대 청년이 거기에 있었다.
본인의 모습임에도 생면부지인 인간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지옥에 있을 때 그의 모습이랑은 너무나도 괴리감이 컸다.
비처럼 쏟아지는 회색빛 재를 맞아서일까, 그의 머리칼은 시간이 지날수록 탁한 흰색으로 변해갔다.
역경에 역경을 거듭하다 보니 초라했던 육체는 근육질의 거구가 되었고…….
수련과 전투를 반복하다 보니 몸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굳은살이 구석구석 새겨졌다.
그러면서도 신비롭게도 80년이 흘러도 나이를 거의 먹질 않으니,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젊은 혈기를 오롯이 신체에 저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모든 게 정반대였다.
딱 하나, 그냥 열 살 더 먹은 스물여섯 청년이라는 점 빼고 다.
영양 상태가 불안정하니 양 뺨은 안으로 움푹 파였고, 10년 동안 누워만 있어서 옆구리엔 갈비뼈가 앙상하게 보였다.
보기 흉하니 살이라도 더 찌우고 싶어 병원 밥이나마 많이 먹으려 했지만, 간호사들은 항상 정량만 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낙인 같았던 흉터들이 모조리 사라졌다는 것 정도?
“돌아온 게 어디야. 느긋이 살이나 찌워야지.”
몸 멀쩡히 움직이고 불안 증세 사라지고 보기 좋을 정도로만 살이 찌는 게 그의 목표다.
생각을 너무 했더니 피곤해진 대성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온 이는 혜정이었다.
“아들.”
그녀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병문안 올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으니 이상할 건 없지만, 지금은 유독 미소가 짙었다.
대성이 의문을 느끼고 있으려니-
“누가 왔는지 좀 봐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가려져 있던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헤이. 한대성!”
훤칠한 외모와 함께 정장을 걸친 2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가 시원하게 잇몸 미소를 지으며 대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넌…….”
대성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남성은 어딘가 아련한 기색으로 코를 훌쩍이면서도 상쾌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하, 새끼……. 아, 어이쿠. 어머님 앞인데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어쨌든, 진짜 깨어났구나, 너.”
“너, 는…….”
짤막하게 말을 더듬는 대성을 향해 남성이 다가왔다.
그리고 촉촉이 젖은 눈으로 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인마! 나야!”
“누구지?”
“…….”
정적이 스쳤다.
***
성찬호.
그는 대성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죽마고우였다.
진학한 중학교도 같은 곳, 심지어 곧 올라갈 고등학교까지 똑같은 곳에 배정되었다.
둘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끈끈한 우정을 공유해나갔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둘이 등굣길을 걷던 중이었다.
갑자기 대성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린 것이다.
방금 3초 전만 해도 멀쩡하게 수다를 떨던 녀석이.
그렇게 대성은 의식 없는 가사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성찬호는 절망했다.
하지만 10년이 흐르고, 대성의 어머니께 연락이 온 것이다.
대성이 깨어났다고.
연락을 받자마자 거래처와의 약속도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누구지?’
장도리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얘, 얘! 찬호잖아! 찬호! 찬호 몰라?! 둘이 그렇게 붙어 다녔는데……!”
오히려 격한 흥분을 보인 건 옆에 있던 혜정이었다.
반면 성찬호는 애써 침착하게 그녀를 진정시켰다.
“어, 어머님. 괜찮습니다. 그, 저도 얘기는 들었거든요. 가사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사람은 드물게 단기 기억상실을 겪을 수도 있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찬호 너를 못 알아보는 게 가당키나 하니?”
“하하. 10년 전이랑 비교하면 제가 너무 멋지게 변해서 못 알아본 걸 거예요.”
목소리는 능청스러웠지만 실은 가슴 한편이 너무나도 아려왔다.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원망스럽진 않았다.
이해하니까.
“대성아, 몸 상태는 어때.”
성찬호는 정말로, 그 어떤 섭섭함도 없는 얼굴로 그를 걱정했다.
대성은 얼떨떨해하면서도 그 질문에 대답했다.
“괜찮은데.”
“그래? 다행이다. 아, 재활 치료도 완전 빠르게 진행 중이라며? 곧 있으면 퇴원할 수 있다고 들었어.”
“그건 잘 모르겠네.”
“퇴원하면 인마. 술이나 한잔하자. 내가 10년 동안…….”
성찬호가 말끝을 흐렸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내가 10년 동안, 너랑 술잔 기울이는 걸 얼마나 기다렸는데, 짜샤.”
“그렇군.”
계속해서 이어지는 짤막한 대답.
대화가 온전히 진행되지 않으니 성찬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옆에서 그걸 바라보는 혜정은 초조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성찬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대성아, 설령 있잖아. 네가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떠올릴 수 없다고 해도, 네가 쓰러지기 전에 나랑 보냈던 추억들을 몽땅 다 잊어버린다고 해도, 난 상관없다.”
“…….”
“네가 기억 못 하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또 추억 쌓고 우정 쌓으면 되니까.”
“그래.”
여전히 단답.
대성이라고 좋아서 이런 퉁명스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감정이 무뎌지니 할 말이 자연스럽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애당초 그걸 떠나서 그는 그럴싸한 문장이 말로 잘 튀어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말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자연스런 대화를 따라갈 정도로 언어 회로가 작동하지를 않았다.
80년.
80년 동안, 그 누구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말이 오가는 멀쩡한 형태의 대화를, 그는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일지라도 써서 한글을 까먹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지.
하지만 지능 수준까지 원시인은 아니기에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다.
누가 들어도 인사치레, 형식적인 질문이겠지만 그는 일단 말해보았다.
“잘 지냈어?”
다시 병실에 적막이 흘렀다.
성찬호는 잠깐 놀란 듯하다가, 이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냈지, 인마! 너보다 백배천배는 잘 지냈어! 곧 결혼할 여자도 있고. 또 그럴싸한 직장에 취직도 했고!”
“다행이네.”
한번 말문이 트이니 성찬호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런 시시콜콜한 근황 얘기를 해주는 게 그의 염원이었을 테니.
“너도 몸 좀 괜찮아지고 그러면 나한테 연락해. 내가 누구 낙하산 꽂아줄 수준은 안 돼도 윗선에 추천서 정도 넣을 짬은 되거든. 그, 게이트 시커라고 그냥 간단한 영업직-”
“찬호야.”
그때였다.
혜정의 목소리가 들리자, 성찬호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대성이 혜정을 흘겨보았다.
그녀는 성찬호를 향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혜정의 눈치를 본 성찬호가 얼버무리듯 화제를 돌렸다.
“어, 어쨌든. 빨리 털고 일어나.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그래.”
성찬호는 씩 웃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나 혜정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어머님,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성이 너도 좋은 하루 보내고.”
성찬호는 병실을 나섰다.
직후 혜정이 절박한 얼굴로 대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대성아, 찬호가 누군지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
“다른 사람들은? 찬호 말고 다른 친구들은? 담임선생님은?”
“…….”
대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애써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말했다.
“대성아, 너도 많이 혼란스럽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떠올리려고 노력해봐. 네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그 사람들의 이름은 뭔지. 엄마도 많이 도울 테니.”
“응.”
대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희로애락이 무뎌졌다.
우정이라는 감정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원초적인 거부감은 건재했다.
바로, 자신을 아끼는 주변인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게 싫다는 거부감이 말이다.
‘단순히 몸을 회복하는 것에만 주력할 때가 아니야.’
떠올려야 한다.
‘내가 지옥에 떨어지기 전, 나를 아끼던 이들이 누구인지를.’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친구.
그들은 이걸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단기 기억상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대성은 안다.
이건 단기 기억상실이 아니다.
80년이 흐르면서, 그냥 까먹었을 뿐이다.
오로지 목숨을 건 사투만을 끊임없이 이어오고 인간성을 상실해가던 중, 아차 하는 사이에 망각해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뼈아픈 실책인지, 그는 지금에서야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병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거지?
이럴 거면 일지는 뭐 하러 꼬박꼬박 쓴 거지?
자신은 정말 이기적이다.
언젠간 지구로 귀환할지도 모른다는 기약조차 없었다곤 하지만, 아예 그냥 통째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다니.
변명할 생각은 없다.
변명할 시간에 생각하자.
혜정이 말했던 대로, 자신의 주변엔 누가 있었는지, 또 그들의 이름은 뭔지.
일지가 있었더라면 거기에 적힌 걸 토대로 단서를 수집할 수 있겠지만…… 지구로 귀환하면서 일지도 통째로 소멸한 듯했다.
대성은 한동안 머리를 붙잡고 기억을 떠올리려 발버둥 쳐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80년 전 인연, 얼굴, 그리고 추억들을 떠올리는 건 무리였다.
“……젠장.”
무심코 욕이 튀어나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떠올려도 모자랄 판에, 지금 이 순간에도 스치는 건 마수들의 흉측한 상판대기들뿐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불안 증세도 더 심해졌다.
대성이 질끈 눈을 감으며 끙끙 앓고 있던 그때.
[판테온(Pantheon)이 절대자의 왕림을 기다립니다.]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대성이 황급히 눈을 떴다.
일순간이었다.
벽이 있고, 침대가 있고, 창문이 있는 병실이 아닌.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
거대한 백짓장이 사방에 펼쳐진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현란한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 재질의 바닥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바닥에서 시선을 떼고 정면을 바라보면 마치 누가 눈앞을 A4 용지로 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여긴 어디지?
‘꿈인가?’
잠에 든 기억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대성은 문득 자신이 서 있는 상태란 걸 깨달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성의 넋이 잠깐 나가던 순간.
[절대자께서 판테온에 왕림하셨습니다.]
[신역이 ‘절대자의 일지’를 인식합니다.]
[일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상 아바타가 제공됩니다.]
[지금부터 구현화 작업에 박차를 가합니다.]
[주어진 관문을 충실히 이행하시어 구현화를 완료하십시오.]
[그럼 행운을 빕니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시스템 창들.
그러다 문득, 대성은 지금 자신이 침대가 아닌 바닥에 서 있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뭐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근육이 덜 풀려서 느껴지는 다리의 떨림.
그 떨림이,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꿈인가?”
잠에 든 기억은 없는데.
대성이 영문 모를 사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지옥에 있었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탁한 백발.
우락부락하게 부푼 근육들.
그리고 전신에 무수히 새겨진 크고 작은 흉터와 굳은살들.
대성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을 못 하고 있을 때, 곧바로 다른 알림창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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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퀘스트-2 (진행 중)
‘육체 수복.’
난이도 : 하
내용 : 지정된 목표물을 파괴하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목표 : 간드라 가죽 샌드백 0/1
보상 : 절대자를 위한 메모리 칩
구현화 : 옥체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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