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007
한 달 만에 나타난 퀘스트!
퀘스트의 유용성을 이미 한 차례 겪었기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정체 모를 장소에 떨어졌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꿈은 아닌 것 같고…….”
두루뭉술한 감각이 아닌, 너무나도 생생한 현실감.
하나 꿈이 아니라고는 해도 발생한 상황 자체가 굉장히 비현실적이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병원이 아니라 처음 보는 새하얀 공간에 갇혀버렸으니 말이다.
‘뭐, 놀랄 것도 없군.’
그는 이미 이보다 더한 불지옥에 떨어져본 적도 있으니까.
지금은 일단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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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퀘스트-2 (진행 중)
‘육체 수복.’
난이도 : 하
내용 : 지정된 목표물을 파괴하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목표 : 간드라 가죽 샌드백 0/1
보상 : 절대자를 위한 메모리 칩
구현화 : 옥체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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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은 내용보다도 보상에 우선 눈독을 들였다.
절대자를 위한 메모리 칩.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앞에 붙는 ‘절대자를 위한’을 보니, 결과적으론 이득이 될 보상이리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
빨리 퀘스트의 요구를 수행하고 보상을 챙기고 싶었다.
‘지정된 목표물…… 그러니까 간드라 가죽 샌드백이란 걸 파괴하란 말이지.’
간드라. 참 질리는 이름이다.
과거, 그는 사령들의 영지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다.
싸움은 장장 보름 동안 끊이질 않았고, 마침내 귀왕(鬼王)을 죽이고 나서야 종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나 거듭된 사투를 벌인 대성은 사경을 헤매야 했다.
골골거리던 중 사령의 영지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고대 도시, ‘신성 제국’에 회복의 샘이 있다는 정보를 상태창이 알려주었다.
대성은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영지를 벗어나 신성 제국으로 향하려고 했지만…….
제국 문턱에 대기 중이던 수문장이 대성을 방해했다.
그 수문장이 간드라다.
대성은 또 거기서 사흘간 바삐 싸워야 했다.
간드라는 개새끼였다.
오아시스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가로막았으니 말이다.
생긴 것도 얼마나 흉측한지, 몸은 털북숭인데 삐죽 튀어나온 고개엔 열 가닥이 넘는 촉수가 꿈틀거렸었다.
‘그놈 목을 따버리고도 분이 안 풀려 눈알을 뽑아버렸지.’
어디까지나 옛일.
추억으로 포장하기도 싫은 기억을 떠올린 대성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퀘스트에 집중해야 할 때.
‘그래서 그놈 거죽대기로 만든 샌드백이 어디 있다는 거야.’
대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의문을 느끼기 무섭게.
위잉-
갑자기 주변에 있던 바닥이 타일 크기로 갈라지더니 뭔가가 올라왔다.
그것은 퀘스트가 목표물로 지정한, 지지대가 설치된 샌드백이었다.
더 정확히는 간드라 모형의 스탠딩 펀칭백이라 할 수 있겠다.
샌드백 앞에 선 대성이 팔짱을 꼈다.
‘이걸 파괴하란 말이지.’
팔을 뻗어 샌드백 표면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명칭대로 간드라 가죽 소재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무지막지한 강도가 생생히 전해져왔다.
어디까지나 모형일 텐데도 진짜 간드라의 실물과 마주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응?”
그러다 문득, 대성은 앞으로 뻗은 자신의 팔을 쳐다보았다.
안에 굵직한 통나무가 들어찬 것 같은 근육 덩어리 팔뚝.
톡 하고 힘을 주면 바스라질 것 같던 비실비실한 팔이 아니었다.
‘왠지 아까부터 몸에서 힘이 마구 느껴지나 했더니…….’
대성이 양손을 활짝 폈다.
손바닥에는 딱딱하고 두꺼운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무기를 쥐지 않으면 결코 생기지 않을 굳은살.
그뿐만이 아니다.
여섯 갈래의 탄탄한 복근과 문신처럼 잔뜩 새겨진 흉터들.
그리고 환자복은 온데간데없이 검은 띠가 둘러진 도복 하의만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이건 마치-
‘지옥에 있을 때의 내 모습이랑 똑같잖아.’
그때처럼 우락부락한 실전형 몸매로 돌아온 것이다.
뭇 남성이 보면 부러워서 환장할 모습이겠지만 대성에겐 아니었다.
달리기도 불가능한 허약 체질의 지구 몸이 아닌 바위도 으스러뜨릴 활력을 지닌 지옥 육체를 가졌음에도 그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마치 다시 지옥 생활로 돌아온 것 같아서 영 께름칙했다.
차라리 지구의 비실비실한 몸이 백배천배 나았다.
‘상태창.’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대성은 상태창을 소환했다.
왠지 지금이라면 상태창이 대답에 응해줄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명령어를 내뱉기 무섭게 상태창이 나타났다.
<한대성 [아바타 착용 중]>
* 가상 아바타를 착용 중입니다.
* 구현화가 마무리되지 않아 스테이터스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
* 아바타의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효과 : 실제 대상, ‘절대자’가 지닌 능력치의 20%를 재현합니다.
보통 같으면 레벨이나 이런저런 능력치들이 표시되었을 텐데, 지금은 좀 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여기에 들어왔을 때 구현화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고 했었지.’
그리고 구현화가 끝나지 않아 스테이터스를 표시할 수 없다는 저 설명.
짐작이지만 ‘구현화’라는 작업을 마무리하면 뭔가 실마리가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구현화를 마무리하기 위해선 퀘스트를 깨라고 했고.
결정적으로 퀘스트를 깨면 보상이 주어진다.
“시작해볼까.”
대성이 샌드백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
퍽! 퍽!
둔중한 타격음이 대기를 울렸다.
“후욱, 후욱……!”
대성은 벅차오르는 호흡을 착실히 관리하며 샌드백을 난타했다.
뜀박질도 못 하는 몸이었다가 간만에 주먹을 뻗으니 일말의 상쾌함마저 느껴졌다.
샌드백을 강타하는 그의 자세는 장기간 무술을 단련한 무인을 연상케 했다.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건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자세를 잡고 육체를 움직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주먹을 뻗고 어디를 가격해야 효율적으로 목표를 쓰러뜨릴 수 있는지는, ‘몸’이 기억했다.
애초에 80년을 매일 싸워온 대성이 고작 한 달 지났다고 자세가 무너질 리는 만무했지만.
퍽-! 퍽-!
바윗덩어리 같은 대성의 거대한 주먹이 쉴 새 없이 샌드백을 두들겨댔다.
일반인의 눈으로는휘둘러지는 팔의 궤적을 따라가지도 못할 무시무시한 속도.
그렇게 5분도 안 되어 일만 번을 넘게 때렸을까?
그제야 대성은 움직임을 잠깐 멈추고 숨을 헐떡였다.
그의 다부진 몸 위로 땀이 마르며 수증기 같은 김이 모락모락 피었다.
‘이거 했다고 숨이 차다니.’
100㎞를 쉬지 않고 달려도 다리에 쥐 한 번 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의 약함이다.
‘지옥에서의 내 육체를 20%만 재현했다고 했지.’
즉, 5분지 1의 전력밖에 내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뭐, 그때보다 약한 상태라고 해도 딱히 아쉬울 건 없다.
다만 문제는 눈앞의 샌드백이 너무나도 멀쩡했다는 점.
맨 처음 주먹을 뻗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성은 결코 설렁설렁 움직이지 않았다.
일격 하나하나에 전력을 실어 샌드백의 갖가지 부위를 타격했다.
몸의 부담은 커지겠지만, 그만큼 샌드백도 빨리 파괴될 테니까.
하지만 그만큼 전심전력을 쏟아부었는데도 샌드백은 파괴되기는커녕 흠조차 나지 않았다.
심지어 억하심정 가득한 간드라의 면상이 달린 목표물임에도.
진심을 실었으나 소용이 없다니. 대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제한 시간이 없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흠결 하나 없는 샌드백을 대체 어떻게 하면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단순히 파괴하는 결과만 요구하는 거라면…….’
대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샌드백의 표면을 크게 움켜쥐었다.
때려서 부수는 게 아닌, 찢어서 파괴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에 악력을 싣자, 대성의 승모근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대로 좌우로 찢어버리려고 했지만…….
미친 듯이 때려도 멀쩡한 놈을 단순히 힘으로 찢어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아무리 힘을 줘도 샌드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망할.”
대성은 주변을 둘러보며 무기 같은 게 있나 찾아보았다.
어디 날붙이 같은 게 있으면 그걸로 확 찢어발기면 될 문제니까.
하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날붙이로 쓸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이 정체 모를 공간 속엔 대성과 샌드백, 둘뿐이었다.
결국 맨손으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간드라 이 개새끼야.”
괜히 분노가 치민 대성이 모형 간드라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노려보았다.
녀석의 상판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저절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대성은 감정을 실은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다시 샌드백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고작 5분이다.
5분 했는데 안 됐다고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어차피 제한 시간도 없겠다.
지금은 진척이 없는 것 같아도, 1시간, 2시간……. 혹은 하루를 통째로 쏟아붓다 보면 결실을 맺을 수 있겠지.
“훅, 훅……!”
대성은 핏발 선 눈으로 샌드백을 전력으로 두들겼다.
***
그 후 세 시간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대성이 샌드백을 난타한 횟수는 무려 오천만 번을 훌쩍 돌파했다.
심지어 그 과정 중에서 단 한 번의 휴식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의 기세는 매서워졌다.
안 그래도 빨랐던 주먹이 이제는 허공에 잔상을 새길 기세로 속공을 퍼부었다.
아까는 숨이 벅차오를 때마다 호흡을 입 밖으로 뱉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적응하니 무호흡 상태로도 연타가 가능했다.
그런데 그뿐이다.
“간드라 개새끼가.”
호흡이 안정되고 주먹이 빨라지고 세지면 뭐 하나.
돌아오는 게 전혀 없는데.
샌드백은 멀쩡했다.
변화가 있다면 가죽에 붙은 털이 휘날릴 수준은 됐다는 것 정도?
“…….”
오늘 안에는 마무리할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웬일로 제한 시간이 없나 했는데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
’후우……. 생각해보자.’
대성은 털썩 주저앉아서 퀘스트 창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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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퀘스트-2 (진행 중)
‘육체 수복.’
난이도 : 하
내용 : 지정된 목표물을 파괴하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목표 : 간드라 가죽 샌드백 0/1
보상 : 절대자를 위한 메모리 칩
구현화 : 옥체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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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봤던 퀘스트처럼, 뭔가 돌파구로 삼을 만한 단서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문장을 곱씹고 읽어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지정된 목표물을 파괴하십시오.
이건 그냥 닥치고 파괴하라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건가.’
결국엔 근성만이 답일까.
마치 저 끝에는 빛이 있다는 말만 듣고 시커먼 터널 속을 막연히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냥 무식하게 휘두른다고 능사는 아닌 것 같고…….’
주먹이 아닌 다른 수단을 이용하고 싶어도 주변엔 먼지 하나 없었다.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 무슨 방법이…….’
퀘스트는 결코 그에게 불가능한 미션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 ‘아바타’란 걸 준 것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지구로 귀환한 대성을 굳이 지옥에서의 몸으로 되돌렸다는 건…….
‘그때로 돌아가, 그때의 감각으로 생각해보라는 거겠지.’
어렵지 않다.
끽해야 한 달 전.
그것도 무려 80년 동안 가지고 있던 육체, 그리고 정신 아닌가.
지금의 그는 지구인으로서의 감각보다 지옥에서의 감각이 더 생생할 때이다.
대성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야만적인 마수들을, 나는 그저 순수한 힘으로만 압도했나?’
아니다.
지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펼친 갖가지 권모술수, 계략.
그리고 냉철한 분석.
녀석의 약점은 뭘까. 녀석의 ‘상성’은 뭘까…….
그러한 분석이 결실을 맺어 자신의 손에 승리를 가져다주었던주요한 요소는-
‘스킬.’
스킬이었다.
대성을 단순히 힘만 센 인간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능(異能)을 다루는 초인으로 만들어주었던 녀석.
스킬은 보통 마수를 죽이면 일정 확률로 떨어뜨리는 구슬로 습득할 수도 있었고.
혹은 그냥 문득 우연히 지나치는 깨달음만으로 습득할 때도 있었다.
‘지금 이 몸이, 그때의 나를 20%밖에 재현하지 못한다는 건…….’
대성이 자신의 손바닥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어찌 됐든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겠군?’
대성이 눈을 감고 천천히 내면에 집중했다.
구현화가 마무리되지 않아 스테이터스는 표시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표시만 되지 않을 뿐, 마력은 똑같이 느껴졌다.
신체를 단련해주고 스킬을 사용케 하는 유형(有形)의 기운, 마력(魔力).
그 마력의 흐름이 근섬유 곳곳에 미약하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가능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마력이 존재한다는 건, 빼도 박도 못 하게 스킬도 존재한다는 거니까.
대성은 저 망할 샌드백을 파괴할 수 있을 만한 스킬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지옥에 있을 때 그가 주로 사용했던 스킬은 혈귀화(血鬼化)였다.
혈귀화는 전신에 흐르는 마력을 일시적이나마 극성으로 증폭시켜주는 효과를 지녔다.
스킬이 해제되고 난 뒤의 피로감만 버텨낸다면,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그의 적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빈사 상태에서 간드라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혈귀화 덕분이었지.”
대성은 혈귀화를 쓰기로 결심했다.
“혈귀화.”
그렇게 읊조리는 순간.
눈앞에 시스템이 나타났다.
<스킬 정보>
혈귀화 Lv.10(Max)
[사용자를 반인반마로 우화시켜줍니다.]
[활성화되면 일정 시간당 일정량의 HP를 소모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 및 스킬의 공격력이 300% 상승합니다.]
시스템이 스킬 정보를 한 차례 보여줌과 동시에 효과가 활성화되었다.
쿵-!
트럭과 충돌했을 때나 들릴 법한 굉음이 몸속에서 들려왔다.
몸속의 혈기와 마력이 증류수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대성은 가쁘게 숨을 헐떡였다.
혈귀화는 몸에 막대한 부하, 그리고 후유증을 가져다준다.
그야말로 100년에 가까운 수련을 거듭해야만 간신히 얻을 수 있는 힘을 단시간에 받아들이니 과정이니.
고오오-
혈귀화를 활성화시키자 대성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수증기의 색깔이 붉은색으로 변질했다.
[‘혈귀화’가 발동됩니다.]
[사용자를 반인반마로 우화시켜줍니다.]
[활성화되면 일정 시간당 일정량의 HP를 소모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 및 스킬의 공격력이 300% 상승합니다.]
시커멓게 물들여진 흰자 한가운데, 새빨간 동공이 번뜩였다.
본래는 사용 도중에 이성의 끈을 붙잡아야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20%밖에 스킬을 재현하지 못했으니 부담감도 그만큼 줄어들었으리라.
그럼 위력도 2할밖에 못 낸다는 거겠지만…….
“충분해.”
다른 목소리가 하나 더 중첩된 듯한 극저음으로, 대성이 그리 말했다.
본인이 애용한 스킬이기에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설령 1%밖에 위력을 못 낸다고 해도.
혈귀화는 결코 저따위 샌드백도 파괴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스킬이 아님을.
척-
대성이 자세를 잡고.
“……!”
맹렬히 주먹을 휘둘러 샌드백을 가격한 순간.
퍽, 이 아니라.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공호에 미사일이 직격할 때나 날 법한 무지막지한 굉음!
“…….”
슈우욱-
샌드백에서 희뿌연 김이 솟아올랐다.
간드라 모형 한가운데에는.
휑- 하니 구멍이 뚫린 상태고.
“…….”
대성은 퀘스트 창을 쳐다봤다.
퀘스트가 완료될 때 들렸던 팡파르 효과음은 들리지 않았다.
홀로그램에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표시되었다.
“그렇군.”
대성이 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괴하라는 게 그러니까-”
턱.
우악스런 손으로 간드라 모형의 대가리 부분을 움켜쥐며 그가 말했다.
“아주 그냥 개박살을 내버리란 말이지.”
혈귀화를 쓴 그는 평상시와는 다른, 이성을 내던지고 파괴 본능에 한층 더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감정 표현 또한 더욱더 풍부할 수밖에.
대성은 보기 드물게도 잔학무도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
쾅-! 쾅-! 쾅-!
연달아 이어지는 폭음.
과연 누가 그 폭음을 단순히 샌드백을 주먹으로 칠 때 나는 소리로 알아들을까.
쾅-! 쾅-!
1분…… 아니, 30초면 충분했다.
파지직-!
정확히 16격(擊)째에, 샌드백은 허공에 붕 떠올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사방에 잔해가 흩뿌려짐과 동시에, 빠밤-!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절대자께서 클리어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현재 구현율 : 옥체 40%]
[보상 ‘절대자를 위한 메모리 칩’이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정보]
이름 : 절대자를 위한 메모리 칩
분류 : 기타
‘절대자의 기억이 담긴 SD카드입니다. 절대자의 기억을 일부 복구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