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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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혈귀화를 해제한 대성은 피로감과 근육통을 느끼면서도 보상 정보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성취감을 느꼈다.
절대자의 기억을 일부 복구시킨다는 글귀가 그를 기쁘게 했다.
툭-
그때, 바닥에 자그마한 검은색 칩 하나가 떨어졌다.
이게 그 보상이리라.
“어떻게 쓰는 거지?”
대성이 칩을 들어 유심히 살펴보던 그때.
[퀘스트 완료로 인해 판테온에서의 체류 시간이 종료됩니다.]
[강림 퀘스트 수행 기간 동안 판테온은 하루에 한 번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가상 아바타가 해제됩니다.]
[현실로 복귀합니다.]
***
“……윽!”
대성의 중심이 가볍게 흔들렸다.
느닷없이 시야가 반전되더니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깨닫고 보니 그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역시 꿈이 아니었군.”
꿈이었다면 절망했으리라.
꿈이 아니라는 건, 그 기억을 복구시켜준다는 메모리칩도 진짜 있다는 거겠지.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이게 어디 갔- 윽!”
대성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머리를 붙잡았다.
갑자기 몰려오는 두통. 그리고 뇌에서 느껴지는 작열감.
익숙한 고통이었다.
귀환하고 나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봤을 때도 느껴졌던 그 아픔.
즉, 기억이 돌아왔다는 일종의 신호다.
“…….”
대성은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그는 망각한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머리에 쥐가 날 때까지 떠올리고 또 떠올리려 했다.
네다섯 시간 전이었다면 의미 없는 헛짓이었겠지만…….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메모리칩이 제대로 효과를 보이는 걸까.
기억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물론 사소한 일상의 단편 하나하나까지 복구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적어도 각별하게 지냈던 이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자신이 처한 가정 상황 정도는 떠올릴 수준이 되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허공에 겉돌기만 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물줄기처럼 머릿속에 몰려왔다.
조각처럼 흩어졌던 과거의 커다란 사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정교하게 짜 맞춰졌다.
심연의 한구석에 봉인되었던 기억들이 단숨에 복구되는 공정이니, 뒤따르는 두통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감내했다.
이로써 조금이라도 주변 이들에게 새겨진 마음의 상처를 덜어낼 수만 있다면…….
‘어머니. 내 여동생, 한지수.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내 친구 성찬호.’
흐릿했던 키워드들의 윤곽이 서서히 뚜렷해졌다.
시커먼 터널의 저 끝에서 마침내 빛을 발견한 듯한 카타르시스.
그리고 대성이 그 빛에 발을 들인 순간.
팟.
정적이 찾아오고.
찌잉-
귀에 가벼운 이명이 맴돌았다.
그 시점에서 대성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아련히 중얼거렸다.
“……생각났어.”
아주 조금이지만.
아주 약간의 편린을 되찾았을 뿐이지만.
충분했다.
결코 잊으면 안 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잊어버리고 만 사람들은 완벽히 떠올렸으니.
가족, 그리고 베스트 프렌드.
***
보상과는 별개로 대성에게는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구현화’라는 녀석에 대해서였다.
“구현화가 뭐지?”
텅 빈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흠…….”
그러고 보니 판테온은 하루에 한 번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일이 되자마자 판테온에 입장해 시스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좋으리라.
순순히 알려줄지는 막연하지만.
마침 밤도 깊었겠다. 대성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던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살짝 문틈으로 고개를 비쭉 내민 건 여동생, 한지수였다.
그녀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는 줄 알았는데.”
“안 자.”
애당초 자는 줄 알았으면 문병을 오지도 않았으리라.
끼익-
지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병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대성이 그녀를 흘겨보며 물었다.
“왜 왔어.”
“면회 시간 끝나기 전에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뭘.”
“미안하다는 말.”
지수의 입술이 물결 모양으로 흔들렸다.
성격은 물론이요, 자존심 또한 갈대처럼 억센 그녀다.
항상 만만하게 굴었던 오빠 앞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가려니 괜히 낯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사과해야 될 일에는 응당 사과를 하는 게 도리다.
“네가 나한테 왜 미안해.”
“꼬, 꼭 그렇게까지 요목조목 몰아붙여야겠어? 내가 이렇게 용기 내서 사과하러 왔는데?”
“아니.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그녀가 딱히 자신에게 해를 끼친 기억은 없었는데.
지수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전에 있었던 일 말이야. 거기에 대해 사과하려고.”
“아.”
지수가 처음으로 문병을 온 날.
대성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자 욕을 마구 퍼부으면서 병실을 뛰쳐나갔을 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가.
하지만 직후에 이어진 지수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내가 너무, 오빠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아. 응, 하기야. 10년 만에 깨어났는데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게 당연하지.”
“…….”
그것은.
감정이 무뎌진 대성조차도 살짝 놀랄 정도로 성숙한 발언이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도 굉장히 섭섭했을 텐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호의’나 ‘배려’ 같은 걸 80년 동안 받아보지 못한 대성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물론 아직도 섭섭하긴 해.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그것도 하나뿐인 여동생 얼굴을 잊다니.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다 이해해.”
“……한지수.”
“그냥 오빠는 원래부터 좀, 등신이었으니까. 못 알아볼 수도 있지. 응,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해 못 할 것도 없더라.”
문장만 떼놓고 보면 비꼬는 걸로 보이겠지만,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우수에 가득 차 있었다.
대성도 그 말을 문장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덕에 별다른 오해는 하지 않았다.
“기억장애는 여전해도, 이제는 거동이 가능하다면서? 병신에서 반병신 수준으론 진화했구나. 다행이야.”
참으로 착한 여동생이구나.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훈훈한 분위기가 병실 안을 가득 채워갔다.
얼굴에 씁쓸할 미소를 드리우며, 지수가 입을 열었다.
“얼마 안 있으면 곧 내 생일이야.”
“그래?”
“그런데 오빠가 의식을 차린 시기랑 가깝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하늘이 내게 선물을 주시는구나. 기적이라는 이름의 선물이 말이야.”
“…….”
“그래서 오빠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괜히 더 화가 났던 것 같아. 믿었던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똥이 들어 있는 걸 본 기분이라 해야 하나?”
거기까지 말한 지수가 눈치를 보듯이, 눈동자를 슬쩍 굴렸다.
“……뭐. 오빠는 등신이라 내 생일이 언젠지도 모르겠지만.”
“4월 6일.”
“뭐?”
지수의 두 눈이 순식간에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대성이 태연스레 물었다.
“아냐?”
“어, 어……. 맞, 는데…….”
참으로 이상하다.
일평생 봐왔던 여동생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 못 하는데, 생일은 몇 월 며칠인지 기억한다니?
지수는 본인의 생일이 대성이 의식을 찾은 날과 가깝다고 했지, 정확한 날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 오빠. 어, 어떻게 내 생일은 또 기억을 하네?”
“…….”
대성이 무심한 눈으로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계적인 어조로 말했다.
“기억이 조금 돌아왔어.”
“……!”
지수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며, 그녀가 확인 차 물어보았다.
“그, 그럼……. 오빠 쓰러지기 전에, 내 마지막 생일 때 오빠가 나한테 줬던 선물도 기억나?”
“…….”
이런 기억도 복구되었을까?
메모리칩으로는 어디까지나 굉장히 가까운 관계의 인물들만 떠올릴 수 있을 뿐.
사사로운 에피소드까지 기억나게 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각별한 사이일 수밖에 없는 가족의 생일 날.
그날 자신이 뭘 해줬는지는, 아슬아슬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선물 안 줬잖아.”
“아…….”
“미안하다.”
대성이 굴곡 없는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지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렁거리는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쪽팔린 일.
“기, 기억 돌아온 거, 축하해. 엄마한테도 말하면 되게 기뻐하겠네. 그럼 난 이만 간다. 수고!”
“어.”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듯이 작별의 말을 쏟아내며 병실을 나섰다.
문을 닫고 복도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그녀는 마음 놓고 조용히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훌쩍이다 얼추 마음을 추스른 지수는 휴대폰을 꺼내 혜정에게 문자 한 통을 넣었다.
[오빠 기억 돌아왔대.]
***
시간이 열흘 정도 흘렀다.
돌아온 기억을 바탕으로, 대성은 혜정과 지수가 문병을 올 때마다 옛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나 기억하는 건 어디까지나 굵직한 사건들뿐이라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된다는 게 어딘가.
그밖에도 대성은 열흘 내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판테온에 입장했다.
판테온은 하루에 한 번밖에 입장을 못 하는 대신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이전처럼 저녁 6~7시 사이에 자동으로 입장이 되는 형식이었다.
굳이 저녁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기에, 기억을 찾은 다음 날 대성은 기상하자마자 판테온에 들어가 퀘스트를 수행했다.
첫 퀘스트는 걸음마 떼기, 두 번째 퀘스트는 샌드백 파괴였다.
세 번째 퀘스트를 수행하기 직전에, 대성은 시스템을 향해 한 가지 질문을 날렸다.
“구현화가 뭐지?”
짧은 딜레이 후.
시스템이 대답했다.
[구현화란 판테온 내부에서 재현된 모든 요소를 다른 차원의 세계에 테라포밍(Terraforming)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구현화를 끝내면,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나?”
[현재 진행 중인 구현화 작업이 끝나면 현실에 계신 절대자의 육체가 완전한 정상화를 이룹니다.]
[정상화가 된 육체는 의식주를 행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영위하시는 건 물론, 스테이터스 시스템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얼추 예상한 대로, 구현화의 종료는 완벽히 몸을 회복함을 의미했다.
또,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고도 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대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몸이 완전히 회복하는 것뿐이니까.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구현화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렇게 열흘 동안 대성이 수행해야 했던 퀘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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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퀘스트-3 (진행 중)
‘육체 수복.’
난이도 : 최하
내용 : 10㎞를 달리십시오.
제한 시간 : 3시간
목표 : 남은 거리 10㎞
보상 : 절대자를 위한 자양강장제<中>×1
구현화 : 옥체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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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퀘스트-5 (진행 중)
‘육체 수복.’
난이도 : 하
내용 : 팔굽혀펴기를 1,000회 하십시오.
제한 시간 : 2시간
목표 : 현재 횟수 0/1,000
보상 : 절대자를 위한 자양강장제<中>×1
구현화 : 옥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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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의미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잡다한 퀘스트들의 향연이었다.
처음에 받았던 걸음마 떼기나 샌드백을 파괴하라는 내용과는 천차만별이다.
그것들은 보상이라도 좋았지, 자양강장제를 보상이랍시고 주는 저의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보상 정보]
이름 : 절대자를 위한 자양강장제<中>
분류 : 소비
‘절대자의 스태미나와 체력을 20% 회복시켜주는 자양강장제입니다.’
회복의 비약처럼 기적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하는 아이템은 아니다.
그냥 떨어진 스태미나와 체력을 회복시키는 게 전부.
어차피 체력은 판테온을 나서면 자동으로 회복된다.
즉 이 자양강장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거다.
판테온 내부엔 보상 등의 아이템을 보관해놓을 수 있는 별도의 인벤토리가 존재했다.
버리기는 뭣했기에, 대성은 모아놓은 자양강장제들을 전부 그곳에 쟁여두었다.
보상이 짜면 구현화 작업이라도 빨리 진행되어줘야 인지상정인데…….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현재 구현율 : 옥체 55%]
벌써 열흘씩이나 지났건만 이제 겨우 절반을 넘었다.
심지어 저 중 대다수는 샌드백 파괴 퀘스트 때 이미 얻은 거다.
달리기나 팔굽혀펴기 같은 퀘스트들은 하등 도움이 안 됐다.
보상은 보상대로 짜고, 구현화 속도는 굼벵이가 기는 듯했다.
“장난하나.”
열흘째 당일.
대성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다.
결판을 내기로 작정한 그는 아침 7시에 눈을 뜨자마자 판테온에 입장했다.
[절대자께서 판테온에 입장하셨습니다.]
[지금부터 구현화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주어진 관문을 충실히 이행하시어 구현화를 완료하십시오.
항상 뜨던 형식적인 알림창이 지나고, 퀘스트가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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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퀘스트-10 (진행 중)
‘연습도 실전처럼.’
난이도 : 하
내용 : 지정된 목표물과 싸워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목표 : 크라잉 데몬 0/1
보상 : 절대자를 위한 자양강장제<中>×1
구현화 : 옥체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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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가 등장함과 동시에 바닥에서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광채가 사그라지자 굉장히 익숙한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크라잉 데몬(Crying demon)이었다.
녀석은 전반적으로 코끼리처럼 코가 긴 외형이지만 머리에 뿔이 달려 있었다.
크라잉 데몬은 맨 처음 대성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마수이기에 유독 뇌리에 남았다.
물론 지금의 그에게는 갓난아기보다도 약한 존재이지만.
“크륵! 크르르르륵!”
신장 2m의 녀석이 살벌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먼저 달려들지는 않는다.
녀석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재현해낸 ‘AI’니까.
대성이 먼저 건드리기 전엔 움직이지 않으리라.
그건 그렇고.
“…….”
간만에 좀 제대로 된 퀘스트가 나오긴 했다.
그냥 달리기만 하거나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움직이는 놈이랑 싸우는 게 훨씬 나으니.
하지만 대성은 왠지 영 성에 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퀘스트 정보창에 표시된 구현화 진척도가 10%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진척도에 10%를 더한다고 해도 100%까지는 턱도 없다.
대성의 안내심은 이미 끝자락에 다다랐다.
‘어떻게든 이번 한 번으로 끝낸다.’
답답한 것만 문제가 아니다.
빨리 몸을 회복해!
안 그러면 죽어!
이런 불안 증세에서 파생된 내면의 목소리가 그를 괴롭혔다.
“후우…….
대성은 한숨을 쉬었다.
“그 구현화라는 거 말이야. 어떻게 더 빨리 할 수 없나?”
시스템을 향한 질문이었다.
대답은 곧장 돌아왔다.
[판테온이 임의로 만든 강림 퀘스트에 한정하여 난이도를 자유롭게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구현화 작업이 더 빠른 진척도를 보입니다.]
“난이도 높여.”
대성은 망설임 없이 시스템에게 명령을 내렸다.
찔끔찔끔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도 이제는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이제 슬슬 이놈의 강림 퀘스트란 걸 끝마쳐 병상에서 훌훌 털어나고 싶었다.
[절대자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원하시는 난이도를 선택해주십시오. 최하 / 하 / 중 / 상 / 최상 / 지옥]
대성은 어중간하게 타협을 보고 싶지 않았다.
밀어붙일 땐 확실히 밀어붙인다.
그는 제시된 난이도 중 하나를 거리낌 없이 선택했다.
“지옥.”
[강림 퀘스트의 난이도가 ‘지옥’으로 조정됩니다.]
[현재 설정된 난이도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밸런스가 감지됩니다.]
[변경된 퀘스트의 가산 구현율이 남은 구현율보다 높습니다. 이 경우엔 퀘스트를 완료하셔도 구현율은 100%를 초과하지 않습니다.]
경고 사항 같은 시스템이 몇 개 지나갔지만 대성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냥 빨리 마무리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이게 진짜 내 마지막 싸움이 되겠군.’
마신 놈과의 혈전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이런 에필로그가 또 존재할 줄은.
어쨌든 싸움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이번 한 번으로만 딱 끝내고, 병원에서 퇴원하고, 평화롭게 지내자.
대성이 그렇게 한가로이 미래 설계(?)를 해나가던 중.
슈아아악-!
크라잉 데몬 근처에 광휘가 휘몰아치더니 녀석 대신 다른 존재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어.”
따분한 표정을 짓던 대성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난이도 ‘지옥’으로 설정된 만큼, 그에 걸맞은 녀석이 나타났으니.
“그래, 너라면…….”
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잉 데몬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상대.
녀석은 바로-
“내 갈증을 채워줄 수 있겠군.”
한대성.
지옥을 제패한 절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