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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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최후의 적이 나 자신일 줄은 몰랐는걸.”
예상치도 못했다.
강림 퀘스트의 난이도를 ‘지옥’으로 올렸더니…….
대폭 상승된 난이도에 맞추어 마신이라도 재현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또 다른 자신이 나타날 줄은.
“…….”
녀석은 마치 거울과 마주한 것처럼 똑 닮았다.
심지어 자잘한 흉터 하나하나까지.
대성은 녀석의 머리 위에 표시된 붉은색 이름을 보았다.
<절대자-한대성(분신)>
그리고 그 이름에 의식을 집중시키고 눈을 세 번 깜빡였다.
그러자 바로 지척에서 상대방의 정보창이 표시되었다.
<절대자-한대성(분신)>
종족 : 도플갱어
「지옥을 제패한 절대자를 근본으로 삼아 재현된 도플갱어입니다.」
「능력치, 스킬, 심리 상태 등 모든 요소가 완벽히 복제됐습니다.」
단순히 외견만 똑같은 게 아니다.
정보창의 설명대로라면 격(格) 그 자체가 일치한다는 것.
애당초 그저 겉모습만 카피한 거라면 난이도가 지옥으로 조정되지도 않았으리라.
자화자찬일지도 모르겠으나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나 가짜는 결국 가짜.
“진짜인 이쪽이 진다는 건 역시 말이 안 되지.”
대성은 교전을 준비했다.
방금 첫 소환된 크라잉 데몬과 마찬가지로 도플갱어는 선제공격을 해오지 않는다.
“빨리 끝내자.”
자기랑 똑 닮은 적을 때려눕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그게 대성이 망설이거나 불리해질 이유는 되지 못했다.
속전속결을 결심한 대성은 시작부터 혈귀화를 발동시켰다.
우웅-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이내 흉험하게 변한 기운이 그의 가슴 한가운데 응축되더니-
팡-!
강렬한 폭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붉은 수증기가 그를 감쌌다.
“그럼-”
혈귀화를 마친 대성이 발을 떼려던 직전.
팡-!
한 번 더 터져 나온 폭음.
대성이 의아한 눈길로 고개를 갸웃하다, 눈썹을 치켜 올렸다.
[…….]
“호오…….”
대성이 제법이라는 듯 가볍게 탄식했다.
도플갱어 한대성도 똑같이 혈귀화를 사용한 것이다.
녀석의 상반신 위로 검붉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단순히 날 따라 한 건가? 그게 아니면-’
한 가지 다른 명제가 사고를 스쳐 지나갔다.
하나 고민만 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가 보기로 했다.
팟-!
허리를 낮춘 자세로 대성이 크게 쇄도했다.
그의 발이 박차고 지난 자리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파였다.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든 대성이 주먹을 휘둘렀다.
목적은 속전속결.
그러니 목표는 안면 한가운데!
훙-!
무시무시한 마력이 응축된 스트레이트가 도플갱어의 얼굴에 작렬하기 직전.
[……!]
도플갱어가 곧장 자세를 낮췄다.
일직선으로 뻗치던 대성의 주먹은 의미 없는 허공을 갈랐고.
[칵……!]
도플갱어가 노이즈 잔뜩 낀 목소리로 기이한 기합을 내뱉음과 동시에.
자세를 낮춘 시점에서 이미 쥐고 있던 주먹을 수직으로 뻗어 올렸다.
쾅-!
도플갱어의 주먹은 그대로 대성의 턱에 적중했다.
“윽……!”
찡-
마치 10톤짜리 화물 트럭이 턱과 충돌한 것 같은 막대한 충격.
찰나, 대성의 시야가 네 갈래로 분산되었다.
어퍼컷을 맞은 대성의 몸은 그대로 수직 상승하여 100m가 넘는 높이까지 날아야 했다.
도플갱어 한대성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남은 연격(聯擊)을 마저 속행하기 위해, 도플갱어 한대성은 무릎을 최대한 굽힌 뒤.
팟-!
발바닥에 반동을 실어, 허공에 솟구친 대성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래, 역시 이놈은-’
폭발적인 속도로 날아가던 대성은 실시간으로 몰아치는 격통을 무릅쓰며 생각했다.
‘단순히 날 따라 하는 게 아니야. 그걸 넘어서…….’
시스템은 말했다.
능력치, 스킬은 물론.
한대성이란 자의 심리 상태까지 완벽히 복제했다고.
‘나와 똑같은 사고방식, 심리 체계로 움직인다.’
거기까지 사고를 전개한 시점에서.
바닥에서 크게 도약했던 도플갱어의 신형은 이미 대성이 있는 위치까지 도달해 있었다.
‘입장을 반대로 생각해서.’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적이라면, 파훼법은 간단하다.
‘나라면 이번에 어떤 공격을 할까.’
만약 자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이어나갔을 ‘다음 공격 패턴.’
그걸 대성이 떠올렸을 땐, 이미 도플갱어 한대성이 그 행동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깍지를 낀 주먹으로-’
깍지를 낀 주먹으로.
‘정수리를 후려친다!’
정수리를 후려치려던 순간.
탓-!
대성이 도플갱어의 손목을 움켜쥐어서 일격을 막아냈다.
[……!]
결정타가 가로막힌 도플갱어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놈도 감정이란 게 있는 걸까.
그래, 사고방식도 복제했는데 감정이라고 못 할 게 있나.
대성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목에 힘을 잔뜩 넣은 다음.
쾅-!
그대로 도플갱어에게 박치기를 먹였다.
이마가 충돌함과 동시에, 둘은 타이밍 좋게 상승을 멈추고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보통 박치기는 쌍방에 대미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이다.
하나 의도하고 공격을 먹인 자와, 불의의 타이밍에 공격을 허용해버린 자가 체감하는 고통은 천지차이.
무지막지한 물리적 충격을 받은 도플갱어의 눈이 잠시 풀렸다.
그 틈을, 대성은 그냥 놓치지 않았다.
상대방이 허점을 보였으니 이번엔 이쪽에서 결정타를 먹여야 하는 법.
빙글-
대성의 몸이 공중에서 반 바퀴 회전했다.
그의 머리가 아래.
무릎이 위로 향하는 형태가 되었을 때.
빠각-!
흠결 없는 동작으로 회오리치듯 돌아가던 무릎의 끝이 도플갱어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카악……!]
도플갱어 한대성의 몸이 유성과 같은 속도로 떨어졌다.
쾅-!
녀석이 바닥과 충돌함과 동시에 땅거죽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랐다.
뭉게구름 같은 흙먼지가 일대에 한가득 일었다.
탓-
한 방 먹인 대성은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했다.
하지만 중심을 잡기도 전에 머리가 핑 돌더니 비틀거렸다.
“……윽.”
아무래도 처음에 허용했던 어퍼컷의 후유증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정신 줄을 붙잡지 않으면 의식이 흐려지려고 했다.
[카악……!]
흙먼지가 걷히고, 바닥에 파묻힌 도플갱어가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인 녀석의 몸에서 핏물이 찔끔찔끔 터져 나왔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만 따지면 도플갱어 쪽이 더 심해 보였다.
하지만 피해 수위를 숫자로 표현한다면, 둘의 수치는 같으리라.
턱 관절 아래부터 머리끝까지 오롯이 일격을 허용해버린 대성.
머리끝에서 턱 관절 아래까지 오롯이 일격을 허용해버린 도플갱어.
스코어로 치면 동점이다.
비틀-
둘의 몸이 동시에 흔들렸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나간다면 승률은 반반이겠군.’
이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복제한 도플갱어라면…….
지니고 있는 약점도 같을 수밖에 없다.
그 약점만을 노린다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론은 반대로 상대방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쓰러지는 쪽이 패배.
결국 승률은 50대50이다.
‘지구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냐 없냐의 기로가 놓인 싸움인데, 반반은 너무한걸.’
대성은 으깨진 치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슥 닦았다.
“만약 여기서 내가 패배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스템을 향해 질문했다.
[강림 퀘스트 특성상 페널티는 부가되지 않는 대신,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내가 죽으면?”
[강림 퀘스트 수행 중 사망할 시, 실제로 죽지는 않으나 현재 진행 중이던 구현화 작업이 모조리 초기화됩니다.]
“……죽는 거랑 다를 게 없군.”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니.
죽기보다 싫었다.
‘……100%까지는 바라지 않아. 하다못해 60, 아니, 70%로 승률을 끌어 올릴 방법이-’
대성은 그리 생각하며 퀘스트 창을 소환했다.
의미가 있든 없든, 난관에 봉착할 때면 버릇처럼 퀘스트 창을 소환해버린다.
그리고 거기에 아예 단서가 없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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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퀘스트-10 (진행 중)
‘육체 수복.’
난이도 : 지옥
내용 : 지정된 목표물과 싸워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목표 : 절대자-한대성(분신) 0/1
보상 : 절대자를 위한 특별 자양강장제 엑기스
구현화 : 옥체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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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난이도로 조정된 만큼 몇 가지가 달라졌다.
목표가 크라잉 데몬에서 절대자-한대성(분신)으로.
보상으로 주어지는 그냥 자양강장제가 특별 자양강장제 엑기스로.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현화 진척도를 무려 80%씩이나 채워준다.
당초 필요했던 45%를 한 방에 채워주고도 오버되는 수치!
자양강장제를 보상이랍시고 주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더 진정한 의미의 보상에 가까웠다.
‘잠깐.’
보상?
“…….”
대성과 그의 도플갱어는 모든 게 거울처럼 똑같다.
하지만 딱 하나.
도플갱어에겐 없고 자신에게는 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보상. 그래, 보상이야.’
그렇다.
그동안 강림 퀘스트를 완수하면서 손에 넣었던.
하지만 별 쓸모를 느껴서 사용하지는 않고 쟁여놓기만 했던.
‘자양강장제들.’
그 개수는 무려 10개.
자양강장제는 언제 어느 때든 쓸 수 있는 판테온의 인벤토리에 저장해두고 있었다.
대성이 팔을 뻗는 것만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쫙 갈라지더니 인벤토리가 개방되었다.
대성은 거기서 자양강장제 한 병을 꺼냈다.
[보상 정보]
이름 : 절대자를 위한 자양강장제<中>
분류 : 소비
‘절대자의 스태미나와 체력을 20% 회복시켜주는 자양강장제입니다.’
보상 정보를 본 대성은 새삼 놀랐다.
무려 체력을 20% 회복시켜준다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20%라는 숫자가 가진 소중함이 절절히 느껴졌다.
다섯 병만 마셔도 완전 회복이 가능하다는 말 아닌가.
‘무시할 아이템이 아니었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그야말로 축복이나 다름없는 아이템이었다.
슥-
대성은 자양강장제에서 시선을 떨어뜨리고 도플갱어를 보았다.
‘저놈한테는 회복 아이템이 없겠지. 하지만 나한테는 있다.’
승기(勝機)를 포착했다.
만일 도플갱어한테도 회복 아이템이 있었더라면, 놈은 이미 진작 사용했을 거다.
왜냐하면 오리지널인 자신이 지금 그러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없다는 의미겠지.
딸깍-
대성은 뚜껑을 열고 자양강장제를 들이켰다.
즉발성 소비 아이템인 모양인지 효과는 빠르게 발동되었다.
[크익……!]
대성이 무얼 하려는 건지 깨달은 도플갱어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쾅-!
녀석은 그가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걸 막으려는 듯, 땅을 박차 쇄도해왔다.
하나 이미 한 병을 마셔버린 대성의 몸은 상당히 회복이 진행된 상태.
빈사 상태로 비실비실 달려들던 녀석의 공격 따윈 손쉽게 회피했다.
[킥……!]
헛방을 친 도플갱어가 악에 찬 눈으로 후방을 돌아보았다.
뒤를 잡은 시점에서 놈의 머리통을 붙잡고 으깨버릴 찬스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여유였다.
아이템으로 체력이 회복된 대성과, 절반 이하로 체력이 떨어진 도플갱어 사이에 정당한 싸움이 성립될 리는 만무.
[카악-!!]
도플갱어가 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성에게 연타를 날렸다.
하지만 상처가 치유되고 몸이 가벼워진 대성은 그 공격을 가볍게 흘려버리거나 피해버렸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연격!
하지만 분노로 가득 차 정제되지 못한 동작은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허점에 파고드는 건 딱 한 번이면 충분했다.
푹-!
[커, 억……!]
대성은 오른손의 수도(手刀)를 날카롭게 세워 도플갱어의 목젖에 찔러 넣었다.
“이상하군.”
파각-!
찔러 넣은 손을 옆구리 부근까지 거두었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갈퀴 형태로 바꾼 뒤,
콱-!
한 차례 더 찔렀다.
이번엔 목젖이 아닌, 심장이 있는 흉부로.
[……!]
“나였다면 안 그랬을 텐데.”
두근, 두근-
도플갱어의 오른쪽 흉근을 꿰뚫은 손바닥에서 맥동이 느껴졌다.
녀석의 심장이다.
대성은 그걸 아예 통째로 쥐어뜯어버렸다.
촥-!
녀석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허공 위로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
심장이 뽑힌 도플갱어는 작동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졌다.
대성은 꿈틀거리는 녀석의 심장을 흘겨보며 말했다.
“보상이 짜니 이거라도 받아 가야겠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빠암-!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절대자께서 클리어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현재 구현율 : 옥체 100%]
[현세(現世)의 육체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