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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0화 (10/180)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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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現世)의 육체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옵니다.]

드디어 100%!

짜릿한 성취감이 대성을 휘감았다.

이 지긋지긋한 강림 퀘스트와도 이젠 안녕이다.

“통보할 거 있으면 빨리 알려줘.”

원래 같으면 퀘스트를 완료하자마자 미련 없이 판테온에서 내보내달라고 했을 거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구현화 작업이 끝났으니 나머지 메시지들이 뜰 것이다.

대성이 묵묵히 기다리던 가운데, 역시나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절대자의 옥체 구현 완료. 현세(現世)의 육체가 본래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육체가 완전히 수복되고, 현세에서도 지옥의 시스템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절대자 전용 아바타를 해제합니다.]

[지금부로 현세의 육체로 판테온 시스템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지나감과 동시에.

마치 필름의 컷이 바뀐 것처럼 대성의 의복이 달라졌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과 검은 띠가 둘러진 도복 하의 대신,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아바타가 해제되고 현세의 육체가 이곳에 소환됐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몸에 걸쳐진 환자복은 10초도 안 되어 그 원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찌직- 뚜둑-

환자복의 천이 종잇장처럼 찢기고 단추가 하나둘씩 터졌다.

“…….”

이게 무슨 일인가, 대성이 의문을 느끼기 무섭게.

위잉-

정면의 바닥이 타일 하나 크기로 갈라지며 전신 거울이 올라왔다.

대성은 거울 앞에 서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건…….”

환자복이 너덜너덜 찢어져 있었다.

본래 10년 동안 최소한의 영양 공급만 받아왔던 대성의 비쩍 마른 몸에 걸맞은 사이즈였다.

하지만 지금 대성이 되찾은 근육 덩어리 몸을버티지 못하고 찢어져나간 것이다.

하의 또한 상의만큼은 아니더라도 군데군데 찢어져 그 너머의 우람한 대퇴근이 윤곽을 드러냈다.

유순했던 눈매는 한층 더 날카로워졌으며, 새까맣던 짧은 머리는 백발의 더벅머리가 되었다.

[현세에 완전히 ‘강림’하신 걸 진심으로 경축드립니다, 절대자여.]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허물을 벗은 나비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상반신 곳곳에 새겨진 눈에 익은 흉터가 그의 기분을 불쾌하게 했다.

80년 세월 동안 겪은 크고 작은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상처들.

겨우 떨쳐냈다고 생각했거늘.

“기어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군.”

이 모습이 더 익숙하다고 생각해버린 자신조차 원망스러웠다.

대성은 한숨을 쉬며 완전히 회복된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휙, 휙-

오른팔을 위아래로 휘젓고, 주먹을 쥐었다.

문제없음.

탁, 탁-

제자리 뛰기를 몇 번, 그리고 거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뛰어보았다.

문제없음.

‘이 정도면 됐다.’

일상생활엔 지장이 없으리라.

오히려 일상생활 그 이상이 가능할 정도의 활력이지만…….

[보상 ‘절대자를 위한 특별 자양강장제 엑기스’가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정보]

이름 : 절대자를 위한 특별 자양강장제 엑기스

분류 : 소비

‘절대자의 스태미나와 체력을 80% 회복시켜주는 자양강장제입니다.’

대성의 발아래에 청심환 같은 아이템이 형성되었다.

“필요 없다.”

대성은 그걸 미련 없이 발로 걷어차 버렸다.

이젠 수행해야 할 퀘스트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 확인했으면 됐다. 날 이만 여기서 내보내줘.”

[현세에 강림하셨으므로 앞으로 횟수 제한 없이 판테온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

그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전혀 관심 없다는 투였다.

횟수가 어찌 됐든지 간에, 그는 판테온에 흥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보다 계속 이렇게 붙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육체는 어느 정도 본래의 기력을 되찾았다.

이곳에 계속 있을 이유가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두 번 말하게 하는군.”

대성이 살짝 발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여기서-”

내보내, 라고 말하려던 순간.

끼에에에엑-!!

귀청을 찢어발기는 비명 소리가 판테온에 한가득 울려 퍼졌다.

“……윽!”

아니, 판테온이 아니다.

머릿속.

뇌리에 직접 주입시키는 것 같은 생생한 절규에, 대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비명 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아보아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대성의 불쾌함이 극에 달하기 직전, 절규가 잦아들었다.

그러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멈췄음에도 비명의 메아리가 아직도 신기루처럼 귓가에 맴돌 지경이었다.

“……후욱, 욱.”

후유증 때문인지 두개골이 쩌렁쩌렁 울리는 기분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어느 정도 진정을 되찾은 대성이 귀를 뗀 순간.

시스템이 문장을 띄웠다.

[판데모니움에 봉인된 수억 마리의 마수가 비탄(悲歎)합니다!]

[절대자여, 천상(天上)의 존재들로부터 지옥을 구원해주십시오.]

“…….”

대성은 거칠게 맥동하는 심장을 가라앉힌 뒤에야 물을 수 있었다.

“그게 대체 뭔 소리야.”

[지옥은 새로운 군주, ‘한대성’을 맞이하였으나, 절대자께선 지구로의 귀환을 선택하셨습니다.]

[절대적 군주의 공백이라는 틈을 타, 천상의 존재들이 지옥의 시공간을 봉인했습니다.]

[천상의 존재들로 인해 판데모니움에 갇힌 마수들이 절대자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언제나 기계적인 대답만 되풀이하던 시스템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마치 SOS 신호를 보내듯, 도와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

대성은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천상의 존재, 그리고 판데모니움.

난데없는 단어들이 섞여 있긴 해도 얼추 갈피는 잡혔다.

‘그러니까 나보고 도와달라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뜻을 헤아리고 나니까, 이번엔 어이가 없었다.

대성은 피식 웃었다.

그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고개를 위로 들고, 형체도 없는 시스템을 향해 물었다.

“그 판데모니움에 갇혀 있다던 놈들 말이야.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볼 수 있나?”

[아르고니악의 수정구가 판테온의 상황을 중계 중입니다.]

[지옥의 마수들은 판데모니움 속에서 절대자만을 바라볼 것입니다.]

아르고니악의 수정구라면 지정한 상대방의 모습을 송출해주는 아이템이다.

“볼 수 있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도 그 둥근 표면에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다는 의미.

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오른팔을 치켜 올리더니.

슥-

“그놈들에게 하는 대답은 이걸로 대신하겠다.”

보란 듯이 중지를 세웠다.

대성은 어떤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 판데모니움인가 뭔가에 갇힌 마수들이 입을 싹 닫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장면이 말이다.

“뭐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가?”

[마수들이 절대자의 대답에 크게 낙담합니다.]

[몇몇 고위 마수가 절대자께 감히 이유를 여쭙니다.]

“이유?”

설마 진짜로 모를 줄은 예상 못 했다.

아무리 머리가 나쁜 놈들이라고 해도, 이건 상식 아닌가.

“나는 네놈들한테 고통받아왔다.”

칼바람처럼 날이 선 목소리로 대성이 그렇게 말했다.

“하루하루가 네놈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지. 그 시간이 무려 80년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나보고 도와달라고? 내가 너희들의 군주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야만스런 짐승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토록 뻔뻔하기까지 할 줄은.

아니. 오히려 멍청한 짐승들이니까 부끄러움이란 걸 모르는 걸까?

“난 너희들한테 나를 군주라고 떠받들라고 한 적이 없다. 원하지도 않았고. 그딴 자리, 줘도 안 받아. 난 너희들의 군주가 될 생각이 없다.”

[격이 높은 대상의 마력을 감지. 아르고니악의 수정구에 오류가 발생합니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대자께 자비를 갈구합니다.]

사용자보다 강한 대상자를 감시할 경우, 수정구의 성능은 크게 반감한다.

그 대상자가 현재 느끼는 감정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일수록 더더욱.

전파를 차단하듯,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마력이 방화벽 역할이 되어주는 셈이다.

즉, 마수들이 뚫어져라 보는 수정구의 영상엔 지금쯤 노이즈가 지저분하게 끓고 있을 터.

그 노이즈처럼 마음도 끓고 있을 마수들의 절박한 모습을 머리에 담으며, 대성은 덧붙였다.

“난 너희들을 구원해줄 생각이 없다.”

화룡점정으로.

“판데모니움인가 뭔가, 거기서 평생 고통받고 있어라. 쓰레기 같은 짐승들아.”

방점 같은 한마디를 날려주었다.

할 말은 전부 쏟아냈고, 볼일은 이미 진즉에 끝났다.

여기에 계속 머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 기분이다.

대성은 시스템에게 말했다.

“세 번째 말한다. 네 번째는 없다. 날 여기서 내보내.”

[절대자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메시지가 떠오르고, 대성의 발이 빛에 휘감겼다.

[판테온에서 퇴장합니다.]

***

새 하루의 동이 텄다.

혜정은 오늘도 어김없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문병을 갔다.

지수는 함께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녀가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험에 몰두해야 할 19살인 그녀가 이 시간까지 자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떠올릴 때마다 혜정은 가슴이 미어져 왔다.

“후…….”

혜정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늦어도 1~2개월이면 대성은 재활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것이다.

그렇게 퇴원하고 나면…… 지금까지 일부러 숨기고 있었던 집 사정을 모조리 털어놓아야 할 것이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

지금까지는 의도적으로 그 이야기들을 대성에게 숨겨왔었다.

10년 만에 정신을 차린 아들에겐 행복한 말들만 하고 싶었으니까.

물론 대성이 쓰러지기 전에도 집안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대성이 막 중학교로 진학하기 직전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나선, 혜정이 가장이 되어야 했다.

여기까지는 대성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의식을 잃었던 사이 더 나쁜 일들이 벌어졌다.

그 일들을 털어놓을 날이 오는 게, 혜정은 솔직히 말해 두려웠다.

아들이 빨리 퇴원했으면 하는 마음과, 퇴원한 아들이 집안 사정을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충돌했다.

‘……우리 아들한테는 화목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현실이 그러지 못하다는 게 너무 분하고 아쉬웠다.

또 이게 어미인 자신의 무능함이 원인인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의 문병을 가는 길이 설레고 행복한 한편, 막대한 양심의 가책 또한 느꼈다.

병실 문 앞에 선 혜정은 표정 관리를 한 뒤 노크를 했다.

똑똑-

“아들. 자?”

“들어와도 돼.”

그래도 기약이 보이지 않았던 아들이 의식을 되찾았기에, 절망감 이상으로 행복했다.

너무나도 멀쩡한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검은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혜정이 웃으며 문을 열었다.

“아들. 좋은 아…….”

혜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병실을 잘못 들어온 건가, 그런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

그럴 만도 하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비실비실하고 홀쭉했던 아들은 온데간데없이.

웬 새하얀 백발에다 건장한 체구의 근육질 청년이 병상 위에 누워 있었으니까.

혜정은 얼음장처럼 굳어 있다가 병실의 호수를 다시 확인했다.

잘못 찾아온 건 아니다.

근데 아들은 어디 가고, 웬 헬스장 트레이너 같은 젊은이가…….

무심코 혜정의 입에서 존댓말이 튀어나와버렸다.

“누, 누구신지?”

“엄마 아들인데.”

***

곧장 검사가 이어졌다.

혈액 검사, 소변 검사, CT 촬영 등. 검사란 검사는 모조리.

결과는 이상 소견 없음.

그래서 의사 입장에선 더더욱 답답할 따름이다.

‘일반적인 의학적 상식으론 설명이 안 돼.’

중년의 원장은 데스크 맞은편에 앉은 대성을 바라보았다.

혜정과 간호사가 그를 발견했을 땐 이미 입고 있었던 환자복이 걸레짝이 되고 난 뒤였다.

그래서 대성은 현재 엑스라지 사이즈로 환복한 상태다.

의사는 컴퓨터에 스캔된 결과지와 대성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검사 결과는 다 정상. 굳었던 근육도 완전히 돌아왔고……. 아니, 오히려 더……?’

증가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상인의 것과 비교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근육 세포들이 원상 복귀된 것도 모자라서…….

마치 수십 년을 꾸준히 운동한 사람처럼 골격근이 강철처럼 튼튼해진 상태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강골(强骨)이 엑스레이에 찍혀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신이 기적을 행사하시어 하루아침에 몸이 회복됐다고 치자.

‘몸에 난 상처들은 뭐지? 갑자기 탈색된 머리는 또 뭐고.’

이것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몸에 새겨진 흉터들은 최근에 막 생겨난 게 아니었다.

이미 염증 단계를 지나치고 궤양이 파이다가 피딱지가 가라앉은 걸 넘어서…….

그 피딱지가 완전히 떨어지고 수술로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남은 것들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하루 만에 진행될 순 없다.

인위적인 염색약으로 물들인 게 아닌, 자연스럽게 색소가 빠져나가 탈색된 백발은 또 뭐고.

“저, 선생님?”

착잡한 얼굴로 입을 다문 의사를 향해, 대성의 뒤에 서 있던 혜정이 걱정스레 말을 걸어왔다.

“제 아들한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의사가 힐끔 대성을 바라보았다.

“우선 저희들이 해드릴 수 있는 모든 조치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부로 퇴원 절차를 밟으셔도 무방하세요.”

“저, 그럼……. 대성이 몸에 일어난 이것들은 다 뭐죠?”

“그건…….”

의사는 잠깐 고민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당사자 앞에선 좀 곤란한 이야기니, 잠깐만 저랑 따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

병원 뒤편.

혜정만 따로 불러낸 의사가 짤막하게 말했다.

“아드님이 각성하신 것 같습니다.”

“…….”

혜정이 일순 놀랐다.

의사는 가운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양해를 구했다.

“아, 예. 피우세요.”

칙-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이고, 의사는 연기를 한 모금 들이켰다.

회색 연기를 길게 뱉어내며 의사가 말했다.

“각성이 뭔지는, 어머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예…….”

“각성을 한 사람들에겐 다양한 특이적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얼굴에 반점이 생긴다든가, 키가 커진다든가. 혹은 아예 무증상인 경우도 드물게 있고요.”

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각성으로 인해 비롯된 신체적 변화는 상식선에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아드님처럼 말이죠.”

“그럼 역시…….”

“예. 단 하루아침에 아드님께서 저렇게 변하신 건, 각성말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의사는 담뱃불을 조심히 꺼뜨렸다.

“크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각성했다는 건 일반인보다 훨씬 더 건강한 육체를 얻었다는 의미니 기뻐하셔도 될 일이죠.”

“……그럴까요.”

“그래도 일단은 아드님 본인 앞에서 통보할 순 없으니, 이렇게 따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의사는 나름대로 혜정을 배려해주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뭐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사람에 따라선 호재(好材)이기도 하여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의사가 대성 앞에선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이미 대성이 의식을 되찾기 훨씬 전날부터, 혜정이 부탁한 한 가지 사항 때문이었다.

“그, 예전에 저한테 미리 부탁을 하셨었지요. 혹 아드님이 깨어나셨을 땐…….”

“애가 놀랄 수도 있으니까, ‘대격변’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불과 10년인데, 그 10년 동안 너무나도 많은 게 달라졌다.

그 모든 변화를, 대성이 급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 된 자의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대성의 병실에선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라디오도 물론이다.

텔레비전, 라디오에는 뉴스가 나오니까.

그 뉴스가 대성의 귀에 흘러들어 가는 일이 없도록 병원에서 조치를 취해달라고 혜정은 부탁했었다.

“그래도 이제 슬슬 얘기를 해드리는 게 좋을 겁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되었고, 또 어떻게 변해버렸는지를.”

정권 교체.

정세 변화.

의사는 지금 겨우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예, 그건 이제…… 어머니인 제 몫이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들이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협회’를 방문하셔서 각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뿐이죠.”

“…….”

혜정은 침묵했다.

그녀의 얼굴 위로는 다양한 감정이 스치고 있었다.

걱정, 불안, 초조. 홀가분함.

그 이상으로 확연한 희망 또한.

“저, 선생님. 제 아들은…… 이제 퇴원할 수 있는 게 확실하지요?”

“예.”

의사의 대답을 재차 들은 그제야.

혜정은 안심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정말.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생은 어머님이 더 많이 하셨죠. 아드님의 퇴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혜정의 어깨를, 의사는 상냥하게 토닥여주었다.

***

한편.

이 모든 대화를,

‘곤란한 얘기라고 해서 뭔가 했더니…….’

몰래 숨어서 지켜보던 대성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전부 듣고 있었다.

‘저게 다 뭔 소리야?’

각성.

협회.

대격변.

그것은 메모리칩으로 되찾은 기억 속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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