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1화 (11/180)

# 11

011

당일.

병원에서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대성은 퇴원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병원을 나서기 전에 근처에 있는 의류매장에서 옷 한 벌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10년이 흘렀다고는 하나 과거와 현재의 대성은 체급부터가 급이 달랐기 때문이다.

통이 큰 후드 티와 체육복이라는, 비교적 캐주얼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병원을 나섰다.

“…….”

진짜 퇴원이다.

고요히 불어오는 미풍을 만끽하며, 대성은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해방’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기간 동안엔 지구로 귀환해도 귀환한 게 아닌 것 같았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정상화된 육체는 완벽히 자신의 것이 되었다.

걷고 뛰는 데 문제가 없으니 밟고 있는 땅의 감촉도 사뭇 다르다.

먹구름처럼 마음속에 드리워졌던 불안 증세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슥-

상념에서 헤어 나온 대성은 슬며시 눈을 떠 위를 올려다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구름과 더없이 청명한 하늘.

‘그래. 역시 난 지구로 귀환한 거야. 틀림없어.’

이제는 굳이 억지로 되뇌지 않아도 머리와 마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구로 귀환했다는 사실을.

“아들.”

그때, 옆에서 같이 걷던 혜정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좀 어때? 10년 만에 집에 가는 기분은?”

“좋지.”

“응. 엄마도 좋아.”

혜정은 헤실헤실 웃으면서 마음속 깊이 안도했다.

여전히 무뚝뚝해 보였지만 이전과는 다른 평온함이 그의 얼굴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

집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물론 대성에게는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으나 혜정이 무리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둘은 병원 부지를 나서자마자 택시부터 잡았다.

조수석에 앉은 혜정은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아저씨, 상계동으로 가주세요.”

“……?”

혜정의 말을 들은 대성이 뒷좌석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부릉-

기사가 시동을 걸고 택시가 길을 나아갔다.

“엄마.”

“응?”

“우리 집은 흑석동이잖아. 그런데 왜 상계동으로 가?”

“……아.”

혜정이 침음했다.

마치 은근히 거짓말을 하려다가 들켰을 때 보일 법한 반응이었다.

대성은 룸미러에 비친 혜정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메모리칩을 통해 복구된 기억에 의하면 자신의 집은 분명 흑석동이다.

혜정이 입을 열었다.

“아, 그…… 너 입원해 있는 동안 이사를 한 번 갔어.”

“그렇군.”

“근데 이사한 집이 예전 집보다 많이 작을 거야…….”

“상관없어.”

“엄마가 일찍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네가 알고 있던 집이 아니라서 많이 섭섭하지?”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지구로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감지덕지한 일이니.

또 10년이나 흘렀으니 그동안 이사를 했다고 이상할 건 없다.

다만, 내심 의심스러운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

사실 대성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혜정이 몰래 숨기고 있는 사실이 몇 가지 있다는 걸.

-아드님이 각성하신 것 같습니다.

-그, 언젠간 저한테 미리 부탁을 하셨었지요. 혹 아드님이 깨어나셨을 땐…….

-애가 놀랄 수도 있으니까, ‘대격변’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그래도 이제 슬슬 얘기를 해드리는 게 좋을 겁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되었고, 또 어떻게 변해버렸는지를

“…….”

아까 병원에서 몰래 훔쳐 들었던 의사와 혜정의 대화.

그 대화로 미루어 보자면…….

자신은 각성했다.

근데 이 각성이라는 건, 대격변이라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

하지만 혜정은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신이 알지 못하도록 병원과 사전에 협의를 보았다.

‘메모리칩을 통해 복구된 기억 속에도 각성이나 대격변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

절대자를 위한 메모리칩은 80년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줄 만큼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줬다.

그럼에도 아예 처음 듣는 개념이란 건,

‘내가 의식을 잃었던 10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나 보군.’

대성은 오른팔로 턱을 괴고 차창 밖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도심의 갖가지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오지에 온 것처럼 낯설지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이 또한 메모리칩의 효과겠지.

“음?”

하지만 문득 어느 지점에서 그는 이변을 느꼈다.

차가 출발한 지 20분 정도 흘렀을까.

도심지를 벗어나 외곽으로 접어들수록 그 이변은 명확해졌다.

‘뭐지?’

아예 시골 바닥도 아닌데 건물의 개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아니, 줄어든 게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멀쩡한’ 건물들이 별로 없었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거목처럼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빌딩들.

반파된 건물 근처에는 건축 자재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흡사 미사일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듯한 광경이었다.

‘10년이란,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야.’

차창 밖의 도시…… 아니, 폐허를 눈에 담으며 대성은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끝날 만큼 긴 시간도 아니지.’

그래도 전쟁이 시작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그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면 결론은 단 하나.

‘지구는 지금 어떤 전쟁이 진행 중인 건가? 아니, 이건 너무 지레짐작일 수도…….’

하나 지레짐작으로 치부하기엔 붕괴된 건물들의 숫자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단순한 화재 등으로 인한 참사라기엔 스케일이 달랐다.

미사일에라도 폭격당하지 않으면 이런 으슥한 장면이 나올 리가 없었다.

[오늘 1분 뉴스는 방금 들어온 속보로 대체하겠습니다.]

그때 택시 내부의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방금 오전 5시 30분경.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게이트 프렉쳐(Gate fracture)가 발생했습니다. 출몰한 몬스터는 5등급의 오크로 밝혀졌으나, 인근을 담당하던 사냥팀들의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에잉, 수성구면 내 옛 고향인데 염병할. 하여간 사냥꾼이란 놈들도 아까운 세금만 축내지 도움은 쥐뿔도 안 돼요!”

소식을 들인 기사가 짜증을 내며 라디오 채널을 확 돌려버렸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끊기고 복고풍의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투박하면서도 감미로운 원로 여가수의 음색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그 멜로디 사이로 대성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나 봐.”

“…….”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지만 혜정이 희미하게 반응을 보였다.

룸미러에 비친 그녀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뒤.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가 멈췄다.

만 원 조금 안 되는 요금을 지불한 뒤, 둘은 차에서 내렸다.

“아들. 지금 막 퇴원해서 피곤할 텐데, 근처 카페에서 조금만 더 쉬었다 갈래?”

“아니.”

대성이 고개를 젓자 혜정은 멋쩍게 웃으며 앞장을 섰다.

도착한 장소는 허름하다 못해 으스스하기까지 한 달동네였다.

둘은 경사가 꽤 되는 비탈길을 올랐다.

‘10년 사이에 세상만 바뀐 게 아니라 집 사정도 많이 바뀌었나 보군.’

뭔지는 몰라도 경제적 사정이 대단히 악화된 듯했다.

여기서 하늘만 붉은색이면 지옥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전에 흑석동에서 살았던 집도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균 수준은 되는 아파트였다.

“에휴, 후…….”

비적비적-

좀처럼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길을 느긋이 걷던 중, 혜정이 지친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

한참 앞서 나가던 대성이 되돌아가서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탁탁-

얼른 업히라는 듯이 자신의 등을 두드렸다.

“아, 아들! 엄마는 괜찮아! 그보다 대성이 네가 나보다 더 힘들 텐데…….”

“잔말 말고.”

두말 않겠다는 듯, 대성이 한 번 더 등을 두들겼다.

혜정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뻐하며 그의 등에 업혔다.

“우리 아들, 등이 참 넓고 따뜻하네. 10년 전보다 더.”

둘은 오르막길을 전부 오른 뒤 허름한 옆길로 빠졌다.

이윽고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판잣집이 나타났다.

대성이 한동안 가만히 서서 집을 바라보던 가운데, 혜정이 삐걱대는 문짝을 열어젖히며 물었다.

“집이 많이 좁지?”

“별로.”

대성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고민하는 기색 없이 나온 즉답이었다.

혜정은 아들이 배려를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하지만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진짜로 대성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축축한 동굴 바닥이랑 비교하면 천국이 따로 없지.’

대성은 박물관에 온 어린애처럼 구석구석 집을 훑었다.

부엌에 싱크대하며 화장실의 변기, 구석에 작게 핀 곰팡이까지…….

대성의 눈에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전부 반가웠다.

누군가한텐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조금 못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누추한 집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걸 80년 동안 누리지 못한 대성에겐 그야말로 축복이 따로 없었다.

오히려…….

‘과분하게 느껴지기까지 해.’

따뜻한 마룻바닥, 비바람을 막아주는 천장.

이런 건 지옥에선 꿈에도 못 꿀 축복 그 자체의 환경이다.

얼추 거실과 부엌을 둘러본 대성은 다음으로 옷방을 향했다.

말이 옷방이지 옷 자체는 별로 없었고 다 풀지 못한 짐 박스로 가득했다.

“이건.”

그러다 문득 대성의 이목을 사로잡은 옷이 하나 있었다.

바로 교복이었다.

상의에 달린 명찰에는 ‘한지수’ 석 자가 새겨져 있었다.

“…….”

대성은 말없이 동생의 교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 급하게 방 청소를 하는 혜정을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지수는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닌가?”

“아…….”

그 말을 들은 혜정이 잠시 하던 걸 멈추고 옷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수의 교복을 손에 든 대성을 보더니, 갑자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대성이 너도 퇴원했으니 슬슬 집에 대해 알 때가 됐지.”

“……?”

“잠깐 앉아서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 많이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일찍 알아두는 편이 좋지 않겠니?”

“그렇긴 하지.”

지구로 완전히 돌아온 이상, 이제는 지구의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장남으로서.

10년 사이 가족이 겪은 변화를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둘은 바닥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오해하지 말고 들으렴.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 대성이 너 죄책감 가지라고 하는 거 맹세코 아니야. 알겠지?”

“알겠어.”

“……너 병원비 보태려고, 지수가 학교를 자퇴했어.”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옥에 떨어진 첫날, 처음으로 마수와 맞닥뜨렸을 때도.

갈증이 극에 달해 황무지를 헤매며, 언제 샌드웜이 들이닥칠까 공포에 떨었을 때도.

생사를 오가며 간드라와 맞서 싸울 때도.

지금 이 순간만큼 마음이 아려오지는 않았다.

“엄마는…… 옛날이랑 똑같아. 식당에서 매일 일하고……. 그런데 그것만으론 병원비를 차마 감당해내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지수가, 학교 때려치우고 자기도 일하겠다고…….”

“말렸어야지.”

“당연히 말렸지. 엄마가 안 말렸겠어? 그런데 대성이 너도 오빠니까 알 거 아니니. 지수 걔 고집이 얼마나 센지…….”

암울한 얘기가 연신 이어졌다.

한마디, 한마디 뱉을 때마다 혜정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지금까지, 겨우겨우 충당했단다. 네 병원비.”

“…….”

“여기까지만 할게. 이 이상 얘기했다간, 대성이 너만 더 부담스러워질 테니까.”

“괜찮아. 그밖에 또 없어?”

“또 없다니?”

“나한테 꼭, 해줘야 될 얘기.”

“…….”

대성의 초점 흐린 눈동자가 지그시 혜정을 응시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지수가 학교를 자퇴했다는 얘기보다 더 심각하고 커다란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제3금융권에 종사 중인 대부업자들에게 급히 큰돈을 대출했다는 얘기.

그런데 지금 이 타이밍에 그 얘기를 꺼내도 될까?

차마 그럴 용기까진 없었다.

지금 이 짧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심적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이, 일단 지금은 이 정도…….”

“…….”

얼버무리는 것에 가까운 대답.

대성은 혜정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분명 뭔가 더 있어.’

아까 병원에서 의사와 나눈 얘기와는 별개로.

더 큰 집안 사정이 몇 가지 남아 있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혜정은 지금 누가 봐도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대성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일단 알겠어.”

“어, 어디 가니?”

“피곤해서 자려고.”

“으응, 그래. 들어가서 쉬렴.”

지금은 서로가 피곤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에 하기로 했다.

대성은 혜정의 곁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 용도의 매트리스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대성은 그 위에 누우며 생각했다.

‘……민폐덩어리가 따로 없군.’

그리고 자신을 저주했다.

어쩔 수 없다. 의식을 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혜정도 그걸 알기에 절대로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근데 어떻게 죄책감을 안 가질 수가 있을까.

객관적으로 따지면 자기 때문에 다 이렇게 된 건데.

자신의 병원비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지옥에서는 잘 싸우면 그만이었다. 그저 강하기만 하면 앞날 걱정 않고 무난히 살아갈 수 있었어.’

그런데 지구는 아니다.

지구는, 특히 대한한국은 압도적인 무력이 생존 수단으로 직결되지 않았다.

잠시나마 그걸 잊고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귀환하고 나면 모든 게 만사형통일 거라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지옥만큼이나 잔혹할지도 모른다.

“…….”

스윽-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대성은 눈을 감았다.

불안과 죄책감과는 별개로 몸에 밀려드는 안락감.

그 안락감이 본인도 모르게 그를 잠결로 밀어 넣었다.

***

그렇게 내리 세 시간을 잤다.

아무래도 자신이 자각하던 것 이상으로 피곤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집이라는 사실이 주는 편안함이 그를 더 깊은 잠에 몰아넣은 걸 수도 있고.

“으, 음…….”

대성은 부스스 눈을 떴다.

병원 침대도 이만큼 편안하지는 않았는데, 역시 집은 집이다.

바람이라도 쐬어 잠기운을 떨쳐내자고 결심한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엄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거실로 나가보니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뭔가 싶어 봤더니 작은 탁상 위에 음식과 쪽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대성은 쪽지를 집어 들어 내용을 읽어보았다.

<엄마 일하러 나간다. 밥 차려놨으니까 먹어. 식었으면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리고.>

“…….”

그러고 보니 혜정은 주 6일을 식당에서 일했다.

아까는 비탈길 하나 오르는 것도 힘들어했었는데…….

어떻게든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보겠다고, 그녀 나름대로 본인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성은 울컥 치미는 감정을 집어삼키고 탁상 앞에 주저앉았다.

따뜻한 현미밥과 구운 김, 그리고 빨간 제육볶음.

아들 퇴원 기념인 건지 메뉴도 상당히 호화스러웠다.

“…….”

입술을 잘근 깨문 뒤, 대성은 현미밥 한 숟갈을 크게 떴다.

생각났다.

메모리칩으로 인해 복구된 기억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로 기억이 떠올랐다.

80년 전.

지옥 대륙에서 한 달을 채 보내기도 전에.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맛대가리 없는 잡풀을 뜯어먹으며, 얼마나 꿈에 그렸던가.

어머니의 손맛.

“…….”

대성이 입을 크게 쩍 벌려 밥을 밀어 넣으려던 그때.

쾅쾅-!

“……?”

밖에 있는 누군가가 현관문을 세게 두드렸다.

단순한 노크라기엔 손짓이 상당히 거칠었다.

“어떤 개자식이.”

좋은 시간이 산산조각 났다.

대성은 거칠게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조진다.’

그렇게 결심한 대성이 문고리에 손을 뻗던 찰나.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잠수 타지 말고 빨리 이 문 열어!”

“이보쇼! 우리가 여까지 올라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판자 째로 뒤집어버리기 전에 처기어 나와, 이년아!”

밖에서 흉흉한 고함이 들려왔다.

대성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 하는 새끼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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