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2화 (12/180)

# 12

012

밥숟갈을 쥔 대성의 손이 굳었다.

80년 만에 지구의 음식, 그것도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으려던 대성의 기분이 급속도로 식었다.

쾅쾅!

“아줌마! 좋은 말로 할 때 문 여는 게 이로워! 분명 경고했다?”

“잠수 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우리가 병신 호구로 보여, 이년아!”

문밖에서 욕설 섞인 고함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밖에 있는 녀석들이 문을 두드릴 때마다 문고리에 잠긴 쇠사슬이 짤랑짤랑 흔들렸다.

“10초 줄게! 그 안에 안 열면 싹 다 뒤엎어버릴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십! 구!”

짤랑짤랑.

쾅쾅!

여러 가지 잡음이 뒤엉키며 대성의 신경을 마구 긁어댔다.

“…….”

대성은 숟가락을 내렸다.

“오! 사! 삼!”

짤랑짤랑!

쾅쾅!

탁.

마지막은 대성이 숟가락을 탁상에 놓는 소리였다.

고대하고 그리워했던 식사의 순간을 망쳤다는 것도 물론 화가 났지만…….

그보단 저들의 입에 계속 오르내리는 ‘아줌마’, ‘이년’ 따위의 단어들이 혜정을 지칭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에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 일!”

대성은 몸을 일으켜 신발장으로 향한 뒤 문을 열었다.

“땡! 이 쒸불년 오늘 제대로 초상 함 치러보…… 어?”

문밖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참으로 대조적인 두 명이다.

한 명은 멸치처럼 빼빼 마른 몸에 머리를 깨끗이 삭발했고, 다른 한 명은 풍선처럼 배가 둥글게 부푼 멧돼지 같은 인상이었다.

그중 멸치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입장에선 만나야 될 사람과 전혀 다른 남자가 문을 열고 튀어나온 셈이니.

“엥? 그년이 아니네? 뭐지, 집을 잘못 찾아왔- 쿡?!”

멸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바윗돌처럼 커다랗고 투박한 대성의 손이 멸치의 얼굴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끄어어억-!!”

공중에 뜬 멸치가 비명을 지르며 두 발을 버둥거렸다.

대성이 녀석의 얼굴을 잡고 들어 올린 것이다.

관자놀이가 짓이겨지는 고통은 절로 비명이 나올 수준이다.

휙!

대성은 붙잡은 멸치를 그대로 집 안으로 끌어당긴 뒤 문을 닫았다.

이 일련의 과정이 전부 벌어지기까지 5초가 채 안 걸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옆에 있던 멧돼지는 반응조차 못 했다.

정신 차려보니 밖에 홀로 선 처지가 된 멧돼지가 그제야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니! 이게 뭔! 야! 야 이 새끼야!”

당황한 멧돼지가 문고리를 잡고 입구를 열어젖히려 했다.

하지만 어느 틈에 안쪽에서 사슬을 걸고 잠근 탓에 열리지 않았다.

“이런 개……!”

멧돼지가 분개하는 한편.

안쪽에선.

우당탕!

“억!”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멸치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

대성이 차가운 눈길로 멸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을 구른 멸치가 찢어진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욕을 뱉기 시작했다.

“쒸부럴, 너, 너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새끼야? 이러고도 나중에 사지가 멀쩡할 줄 알아아아악!!”

살벌하게 흘러나오던 멸치의 목소리가 절규로 변했다.

이번엔 대성의 맨발이 녀석의 무릎을 개미 밟듯이 짓밟았기 때문이다.

“…….”

“흐억, 헉, 꺼어억…….”

단숨에 무릎 관절이 쥐포처럼 으깨진 멸치가 침을 줄줄 흘렸다.

대성은 누가 씹다 뱉은 껌처럼 멸치의 무릎을 자근자근 밟아대며 허리를 숙였다.

무저갱처럼 새까만 대성의 동공이.

공포로 얼룩진 멸치의 동공과 정확히 맞부딪쳤다.

“너희들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새끼들이지? 이러고도 나중에 사지가 멀쩡할 줄 아나?”

대성은 방금 멸치가 발악하며 뱉은 문장을 그대로 똑같이 돌려주었다.

‘와, 완전 미친 새끼야, 이놈……!’

멸치가 간질 환자처럼 전신을 경련시키기 시작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신경이 헤집어지는 무식한 격통에 머리가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이성이 마비되고 두려움밖에 남지 않은 멸치는, 지금 대성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우, 우리는 금융 업계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

멸치가 순순히 실토하자 대성은 무릎을 밟고 있는 발끝에서 힘을 살짝 풀었다.

“이, 이 집에 유, 윤혜정이라는 년이 우리한테 오천만 원을 빌렸어.”

“…….”

전혀 처음 듣는 얘기다.

그렇다고 아주 황당하게 들려 못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내심 궁금하긴 했다.

10년 동안 그는 쭉 병원에서 의식을 잃은 채 입원했어야 했다.

그는 대학병원의 병원비가 얼마 정도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쓰러져 가는 집안 경제 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라는 건 안다.

“이, 이자가 월 25%거든? 근데 씨바, 이자는커녕 원금도 안 갚은 탓에 지금 윤혜정인지 뭔가 하는 년이 줘야 될 액수가 3억을 훌쩍 넘어! 덕분에 울 형님 개빡쳤다고!”

“네 번.”

“뭐? 끄아아- 웁?! 우우욱!!”

다시 대성이 발바닥에 힘을 주자마자 비명을 내지르던 멸치의 입을, 우악스런 손이 거칠게 틀어막았다.

대성이 여전히 냉담한, 하나 조금은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의 이름을 그 더러운 아가리에 담은 횟수다.”

“우우욱!! 우우우욱!!”

꼬챙이에 꿰인 활어 회처럼 멸치가 퍼덕거렸다.

대성이 주먹을 꾹 쥐고 팔을 위로 들었다.

멸치가 잠깐 비명을 멈추고 홉뜬 눈으로 그 주먹을 쳐다봤다.

훅-!

그 주먹이 낙뢰(落雷)처럼 눈앞에 닥쳐들었다.

***

뚝.

비명이 멈췄다.

“뭐, 뭐야?”

무슨 지옥의 숯가마에 들어간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던 멸치의 절규가 뚝 끊기니, 밖에 있던 멧돼지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의아한 건 의아한 거고, 안 그래도 조급한 마음에 비상이 걸렸다.

“이, 이런 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닥은 안 잡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멧돼지는 더 거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문을 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본인의 그 육중하기 그지없는 몸으로 문고리째로 뜯어내자고 결심하던 찰나.

끼익-

“어?”

저쪽에서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벌어지는 문의 틈새에 멧돼지가 집중하던 그때.

“……!”

문이 어느 정도 벌어지자마자, 뭔가가 그의 가슴 쪽으로 기대듯이 쓰러져 왔다.

“뭐, 뭐야.”

멧돼지가 의뭉스런 눈길로 쓰러진 것의 정체를 보았다.

직후 경악했다.

“어, 어어?! 야, 야!”

그건 그의 동료인 멸치였다.

녀석은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눈을 까뒤집고 실신한 상태였다.

잘 보니 한쪽 눈두덩이 무슨 웅덩이처럼 안쪽으로 깊게 패였다.

실명은 거의 확정이다.

터벅-

이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멧돼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집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성이 어느덧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끝에 고인 피가 이파리를 타고 흐르는 이슬처럼 한 방울씩 뚝뚝 떨어졌다.

멧돼지가 경기를 일으킬 기세로 외쳤다.

“이, 이 개새끼가! 진짜 제대로 뒈져볼라고-”

멧돼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대성이 다음 행동에 돌입했다.

슥-

“응?”

그는 피에 젖은 손을 뻗어 멧돼지의 코끝을 붙잡았다.

그리고 뜯어냈다.

“어어어억?! 느어어어어억?!”

대성은 기름기 가득 낀 멧돼지의 코를 바닥에 대충 던진 뒤.

말했다.

“살아서 돌아가게 해줄게.”

“히이, 흐끼이이익!!”

“그놈 데리고 너희들 본진으로 돌아가.”

대성이 손에 묻은 피고름을 바지에 슥 닦으며 짧게 덧붙였다.

“얼른.”

“아, 으허, 으흐어어어……!”

급기야 멧돼지는 눈물을 흘렸다.

눈물에 담긴 감정은 다양했다.

공포, 격통, 억울함, 분노…….

그중에서 공포가 제일 컸다.

녀석은 눈물콧물 쥐어 짜내며, 실신한 멸치를 등에 업고 후다닥 판잣집을 벗어났다.

“…….”

귀신같이 침묵이 찾아왔다.

줄행랑을 치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대성은 잠자코 바라봤다.

원래라면.

두 놈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근데 안면을 함몰시키고 무릎 뼈를 작살내고 코를 뜯어내는 선에서 끝냈다.

그답지 않은 자비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로 불쌍해서 베푼 자비조차 아니었다.

‘형님. 분명 형님이라고 했어.’

멸치는 돈을 갚지 않아서 형님이 화가 났다는 말을 했다.

그 형님이 분명 놈들을 이끄는 보스일 것이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순수 직감인데, 놈들이 규모가 꽤 되는 조직 단위로 움직이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 두 놈만 족친다고 해결될 상황은 아니고…….’

뒤탈이 남는 건 질색이다.

한번 시작했으면 뿌리를 뽑아야 후일이 안정되고 심신이 평화를 되찾는다.

지옥이 그랬으니까.

“…….”

대성은 고개를 뒤로 돌려 집 안쪽을 보았다.

혜정이 해준 밥이 있었다.

이미 식어빠진 지 오래다.

그래도 맛있을 거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이니까.

지금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마음 편히 저 밥을 먹을 수도 없겠지.

‘매듭을 짓자.’

대성은 문을 걸어 잠근 뒤, 멀찍이 앞선 멧돼지의 뒤를 조용히 밟았다.

마음 같아선 대놓고 안내하라고 하고 싶지만…….

‘놈이 의리 같은 걸 내세우며 입을 다물어버리면 그때는 본진을 알아낼 방법이 없어. 차라리 미행하는 쪽이 더 확실한 수단이다.’

대성은 기척을 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은 ‘형님’이라고 하는 놈들의 수장을 치는 게 아니다.

아예 그냥 놈들의 조직을 통째로 괴멸시키는 것.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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