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3화 (13/180)

# 13

013

대성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멧돼지의 뒤를 밟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났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고 동네를 벗어날 때쯤.

“음?”

멀찍이서 멧돼지가 자가용에 탑승하는 광경이 보였다.

“쯧.”

대성은 혀를 찼다.

설마 차를 타고 왔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되면 미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멧돼지가 뭐라 중얼거리며 실신한 멸치를 뒷좌석에 휙 던졌다.

그러고 나선 자기도 운전석에 타더니 시동을 걸었다.

부릉-

차가 뻥 뚫린 동네를 막힘없이 나아가기 시작하자, 대성은 차량의 뒤를 쫓아 달음박질을 쳤다.

평범한 뜀박질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속도였다.

탁, 탁, 탁!

물리적으로 인간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운동 능력!

풀 스피드로 액셀을 밟은 스쿠터보다 살짝 빠를까?

자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 멧돼지가 타고 있는 자가용까지 앞지를 기세였다.

불어오는 바람이 대성의 얼굴에 맹렬히 들이쳤다.

눈을 가리고 있던 앞머리가 올백 헤어처럼 뒤로 넘어가며, 흉터 가득한 이마가 넓적하게 드러났다.

빠르게 질주하는 그가 지나친 자리엔 돌풍이 일었다.

이윽고.

자가용이 허름한 동네를 벗어나 번잡한 도심가로 접어들던 그때.

순조롭게 이어지던 미행에 사소한 제동이 걸렸다.

“흠.”

도로에 다른 수많은 자동차가 섞인 탓에 뭐가 멧돼지의 자가용인지 식별이 어려워졌다.

집요하게 적의 꼬리를 쫓아가던 대성은 호흡을 삼켰다.

그것은 스코프 너머로 타깃을 주시하던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숨을 참는 것과 비슷했다.

대성의 눈동자가 수축되었다.

그러자 마치 카메라 렌즈의 포커스가 조정되는 것처럼 주변의 이물이 흐려지고 멧돼지의 차량에만 초점이 집중되었다.

그는 일직선으로 유지했던 미행 경로를 변경하기로 했다.

건물과 건물 틈새의 골목으로 들어간 뒤.

파바박-!

재빨리 뛰어올라 배수관을 타고 순식간에 건물의 꼭대기까지 올라섰다.

건물 정상에 도착하니 시내를 한눈에 부감(俯瞰)할 수 있었다.

부릉-

신호가 바뀌고, 자가용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과 같은 타이밍에.

탓-!

대성은 다음 건물의 꼭대기까지 단숨에 뛰어넘었다.

건물에서 건물까지의 간격은 10m 정도 되었지만 대성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선은 집요하게 아래의 자가용을 쫓으면서도 건물을 타고 넘어가는 움직임엔 그 어떤 망설임은 물론, 실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행은 계속 이어졌다.

***

“크흑, 큭……!”

잠시 뒤.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멧돼지는 기거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대부 업체들이 으레 그렇듯 언뜻 밖에서 보기엔 그냥 낡고 허름한 오피스텔 정도로 보였다.

“그 씨X 새끼. 죽여버린다. 두고 봐……! 그 새끼고, 그 새끼 애미고 가족이고 죄다 씨바 회를 치고 말 테니까!”

아지트에 도착한 그제야 서러움이 극에 달했을까?

멧돼지는 뜯긴 코의 단면에서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를 틀어막으며 저주를 마구 퍼부었다.

녀석은 아직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멸치를 둘러메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염병,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아까부터 도통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니 멧돼지는 초조해졌다.

녀석은 엘리베이터에 타 4층을 누르고 닫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우웅-

누군가 밖에서 급하게 버튼을 눌렀는지 문이 다시 양쪽으로 활짝 벌어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였던 멧돼지는 성부터 냈다.

“니미 쒸벌! 아파 뒈지겠는데 어떤 눈치 없는 십새- ……으아아아악!!”

멧돼지의 입에서 공포 가득한 비명이 터졌다.

엘리베이터 앞엔.

대성이 서 있었다.

“어, 어어?! 어, 어어어……?!”

쿵!

다리에 힘이 풀린 멧돼지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

가늘게 찢어진 대성의 눈이 멧돼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는다는 초인적인 움직임을 30분 넘게 이어왔을 터인데, 그의 얼굴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너무나도 침착했다.

면벽수행을 하는 승려처럼, 그 어떤 일체의 감정도 없이…….

“어, 으아, 으아아아?”

그런 대성의 얼굴 표정이, 도리어 멧돼지에겐 저승사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보였다.

분칠을 한 것처럼 새하얀 얼굴을 하고, 피처럼 붉은 눈을 번득이며 목숨을 취하러 온 사신(死神).

멧돼지에겐 대성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터벅-

대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연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니, 다 떠나서 이 새끼가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지?!’

사무실의 위치도 위치거니와, 자신은 차를 타고 왔기에 물리적으로 따라올 수도 없었을 텐데.

‘정말로 이놈은 무슨 귀신이라도 되는 거야? 아니면 내가 지금 빌어먹을 헛것을 보는 건가?’

표시등이 천천히 1층, 2층, 3층을 가리키는 그 짧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멧돼지의 머리를 스쳤다.

졸졸졸-

녀석의 검은 바지가 촉촉이 젖어들더니 엘리베이터 바닥에 노란 오줌이 고였다.

띵-!

4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한마디도 없었던 대성이 입을 열었다.

“어디야.”

“어, 어어?”

“너희 형님이란 놈이 있는 곳.”

“그, 그건…….”

멧돼지가 말을 망설였다.

무서워서 돌아버릴 지경인데도 저 질문에 솔직히 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든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담력이었다.

“…….”

곧장 답이 돌아오지 않자 대성이 뺨을 긁었다.

그러곤 몸을 숙여, 주저앉은 상태인 멧돼지와 눈높이를 맞췄다.

“뭐, 뭐야?”

멧돼지가 눈물콧물을 줄줄 흘리며 대성을 쳐다봤다.

슥-

콰직!

대성이 손을 뻗어 멧돼지의 이빨을 잡고 뜯어냈다.

“켁?”

“…….”

“케, 켁? 꺽, 끄어어억?!”

멧돼지는 어금니 하나가 빠진 잇몸을 두 손으로 휘적거리며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의리가 있구나.”

“아, 아아, 으아아아…….”

“그 의리,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도 지킬 수 있는지 보자.”

슥-

대성이 한 번 더 손을 뻗자.

“마, 마, 말할게요! 말하겠습니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

대성이 손을 멈췄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흐, 흐흑, 흐윽…….”

멧돼지가 오열했다.

지금 막 필사적으로 목숨 구걸을 하긴 했지만, 실은 마음 깊은 곳으로 예감하고 있었다.

자신은 오늘 죽는다는 걸.

***

“이런 시부럴.”

-혀, 혀, 형님……. 형님이십니까? 어, 어, 얼른 사무실로 좀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석현이 방금 전 받은 전화다.

사우나에서 시원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부재중이 서른 통이 넘게 와 있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서른 통 전부 부하 한 명한테 온 거였다.

-그, 급합니다. 빠, 빨리 좀 와주세요. 이빨, 이, 이, 이빨이. 제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게 뭔 엿 같은 경우야?”

개소리하지 말고 뭔 일인지 설명해보라고 물어봐도, 수화기 너머의 부하는 이상한 말만 해댔다.

이빨이니, 저승사자니, 뭐니…….

대마 잘못 빨아서 맛이라도 간 건가?

“말단이란 새끼가 감히 나보고 오라 가라 하네.”

김석현은 옷을 챙겨 입고 부랴부랴 사무실로 향했다.

내심 감은 잡혔다.

부하가 이상한 말을 하긴 했어도,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였으니 얼추 짐작이 갔다.

뭔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사건이 제대로 터진 건 확실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김석현은 살짝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끽-

그리고 김석현은 사색이 되었다.

“이, 이건 대체…….”

사무실 안에는 도합 여덟 명의 덩치가 피떡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전부 그의 부하들이었다.

항상 문을 열면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고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 오던 부하들이…….

지금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진 상태였다.

“…….”

사람은.

현실적으로 너무 놀라운 광경을 갑작스레 마주하면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

오히려 숨이 턱, 막히고 입을 다물게 되는 법이다.

꿀꺽.

목구멍 안으로 침을 삼켰다.

마구 흔들리는 김석현의 동공이,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들을 지나 사무실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엔.

한 남자가 덩치들을 밟고 서 있었다.

피로 얼룩져 살짝 연분홍이 된 백발을 가진 남자.

대성이었다.

대성이 혈흔 가득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

“너구나.”

“…….”

“이놈들이 말한 형님이.”

“…….”

문지방에 선 김석현은 생각했다.

‘도망칠 수 있을까?’

돈 안 갚고 버티는 채무자들이 으레 할 법한 생각을 본인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안 돼. 불가능해.’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눈앞에 있는 이놈은 그냥 미친놈이 아니다.

그래도 나름 뒷세계에서 한 주먹 하던 부하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그것도 단신으로.

‘몸에 난 저 흉터는 지금 싸워서 생긴 상처가 아니야.’

조폭인 그로서도 사람 몸에 어떻게 저런 많은 흉터가 그림처럼 수놓아질 수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상대는 괴물이다.

그것도 규격을 아득히 뛰어넘은, 백전무패의 전장을 거듭해온.

김석현은 나름 어둠의 업계에서 십여 년을 살아남은 베테랑이었다.

대성이 지닌 진가의 10%를 알아볼 눈치 정도는 있었다.

어쨌든 결론은 도망치는 건 불가능.

김석현은 생각을 아예 접고 문을 닫아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본격적으로 대화에 나설 작정이었다.

“어, 어디서 보낸 식구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혼자 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얘기를 하자.”

“…….”

“아, 아무래도 넌 나를 모르는 모양인데 나도 널 처음 보거든? 그러니 대화를 하자고.”

“…….”

“사람이 말을 하잖아. 뭐라고 대답을 좀…….”

김석현이 그렇게 말하며 한 발짝 걸은 그때.

철벅-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밟을 때 나는 소리다.

이 경우엔 사람의 피였다.

김석현이 고개를 내려 발아래를 보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면 이런 평평한 바닥에 액체가 고일 정도일까.

무심코 김석현의 시선이 피 웅덩이를 지나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쓰러진 부하를 봤다.

“억……!”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눈알 두 개가.

구슬처럼 뽑혀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안구가 통째로 적출된 부하는 숨을 쉬지 않았다.

‘서, 설마-’

김석현이 어떤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턱-!

대성의 커다란 손이 김석현의 목을 무식하게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기도가 압박된 김석현이 메마른 비명을 토했다.

대성이 냉혹하게 말했다.

“너는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느라 말이 없었다.”

“켁, 켁, 켁……!”

“윤혜정.”

미친 듯이 발악하던 김석현이 그 이름을 듣고 잠깐 멈칫했다.

“내가 없는 동안 우리 엄마 많이 괴롭혔지?”

“끄, 끄윽……!”

숨이 점점 조여들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자 김석현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뱉었다.

“도, 도, 도온…….”

“……?”

대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귀를 기울여 보았다.

“돈이, 도, 돈 때문에…… 끅. 그, 그러는 거야……?”

“…….”

“그, 그거, 도, 돈이라면, 주, 줄게. 다 줄게……!”

“흠…….”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고작 튀어나온 게 돈 때문이냐는 질문이라니.

참으로 아둔한 놈이다.

그런데 아주 솔깃하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다.

핀트는 한참 어긋났어도, ‘돈’이라는 단어는 대성의 관심을 자극했다.

그의 집이 가난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돈이 없어서 어머니는 괴로워했고, 돈을 빌렸기에 이런 사채업자들한테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원인이 돈 때문 아닌가.

대성은 손에서 힘을 살짝 풀고 김석현에게 물었다.

“돈이 어디 있는데?”

“저, 저, 저기에……!”

숨통이 조금 트이자 김석현이 이때다 싶어서 손가락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엔 직사각형의 은색 금고 한 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 우리 사무실 전 재산이 저기 다 들어 있어. 그, 그냥 통째로 가져가. 그, 그 대신 목숨만 살려줘! 아, 그, 그래! 금고 비밀번호는-”

우득-

그것은 김석현의 경추에서 난 소리였다.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김석현의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대성은 목뼈가 끊어지고 즉사한 김석현의 시체를 바닥에 대충 던졌다.

그리고 금고로 향했다.

“…….”

굳게 닫힌 금고의 문엔 번호 키를 입력하는 방식의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는 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복잡한 술식이 걸린 마법진도 해제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엔 역(易)으로 수식을 짜거나, 진법의 핵이 되는 오브젝트를 부쉈어야 했다.

그때와 지금이랑 비교하면 이건 그냥 애들 장난 수준이다.

대성이 손잡이 부근을 잡았다.

탁-

콰드득!

그리고 금고의 문이 마치 비닐 포장지처럼 자물쇠째로 뜯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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