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6화 (16/180)

# 16

016

퀘스트는 전부 끝났다.

대성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 불꽃이 넘실거리듯 새빨간 하늘을 느긋이 바라보았다.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지만.’

판테온을 거쳐 포식자의 숲에 들어온 지 1시간 정도 흘렀다.

과연 현실의 시간도 똑같이 흘렀는지는 나가서 직접 확인해보기까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지옥의 80년이 지구에선 10년이었지.’

만약 지구에서도 똑같이 1시간이 흘렀다면 좀 곤란해지리라.

그 뒤로 1시간이 지났다면 혜정이나 지수 둘 중 하나는 집으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집에 왔더니 오늘 막 아침에 퇴원한 대성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 적잖이 놀랄 것이다.

‘썩을. 빨리 좀 줘라.’

병원에서 했던 강림 퀘스트 때도 그랬고, 보상의 지급이나 구현화 작업의 진척에는 어느 정도 딜레이가 존재했다.

조급해진 대성이 발을 동동 굴리던 그때.

[구현화 아이템 ‘아공간 포켓’의 로딩(Loading)이 완료되었습니다!]

[2,000pt의 공적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아이템, ‘심판의 단검’의 로딩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젠 어느 차원의 세계에서도 해당 아이템 사용이 가능합니다!]

메시지들이 쭉 이어졌다.

‘어디 한번…….’

그는 아공간 포켓을 사용하겠다고 ‘의식’한 뒤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텅 빈 허공이 수면에 파문이 생기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대성의 손은 그 파문 속에 푹 파고든 상태였다.

‘심판의 단검.’

그리고 방금 보상으로 받은 심판의 단검을 의식한 순간, 파문 속에 파묻힌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손목까지 푹 담긴 손을 뒤로 빼내자, 그의 손엔 어느샌가 단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아공간 포켓은 멀쩡히 작동하고……. 이게 심판의 단검인가.’

대성은 포켓에서 꺼낸 심판의 단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도신에 수수께끼의 문자가 음각된 은색 단검.

이것의 정보를 확인해보고 싶지만 그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빨리 나가보실까.’

대성의 옆 허공에 검은색 균열이 떠 있었다.

[해당 지역에서 퇴장해 판테온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판테온에서 퇴장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판테온에 들를 이유는 없겠지.’

그가 선택한 건 당연히 후자였다.

이내 대성의 몸이 균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5억을 쓸어 담을 시간이 왔다.

***

“……좋아.”

뚜둑-

균열을 타고 지구로 돌아온 대성은 어깨의 뭉친 근육을 풀었다.

이제 사채업자 놈들의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 금고 안의 돈을 싹쓸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대성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판테온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노을이 졌었던 하늘엔 짙은 어둠이 조금씩 깔리고 있었다.

대성은 혀끝을 찼다.

‘……지구도 똑같이 1시간이 흐른 모양이군.’

그렇다면 서둘러야 한다.

건물 입구에 도착한 대성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덩치들의 시체를 넘고 금고로 다가갔다.

대성은 20장 단위로 묶인 노란 신사임당 다발을 쥔 뒤 옆으로 팔을 뻗었다.

그러자 손에 있던 돈다발들이 아공간 속으로 사라지듯 빨려 들어갔다.

스윽, 스윽-

돈을 옮겨 담는 그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돈뭉치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수록, 거꾸로 포켓 내부에 저장된 금전 사정이 두둑해졌다.

“아공간 정보 열람.”

명령어를 입에 담자 목록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재보 목록]

무구 : 심판의 단검

기타 : 한국 화폐(100,000,000)

2분도 안 돼서 1억을 벌었다.

물론 대성은 1억을 벌었다는 사실보다도 아공간 포켓이 멀쩡히 작동한다는 점에 더 만족했다.

“여긴 됐고…….”

금고 한 통을 탈탈 털어버린 대성은 다음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금고 안의 1억을 포켓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렇게 1억은 2억이 되고, 2억은 3억이 되고…….

5분 정도 지났을까?

그렇게 총 5억 원의 현금이 대성의 수중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엄마랑 지수도 고생을 덜 해도 되겠지.’

문득 가족 생각을 하던 대성의 머릿속에 잊고 있었던 게 스쳤다.

어머니가 해주었던 밥.

아까부터 왜 이렇게 허기가 지나 했더니, 밥을 못 먹고 나왔었다.

“망할 새끼들.”

대성은 진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죽어 있는 사채업자들의 시체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한 뒤, 건물을 빠져나갔다.

***

대성은 금방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니 혜정이 그를 반겼다.

그녀는 방금 막 퇴근한 건지 옷을 갈아입던 참이었다.

“어, 아들!”

“엄마.”

“어디 나갔다 들어오는 길이니? 아니, 집에 왔는데 네가 없어서 깜짝 놀랐잖아.”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히 사정을 털어놓을 순 없는 노릇.

대성은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생각해냈다.

“잠깐 산책.”

“밥도 안 먹고? 기껏 차려놨더니……. 혹시 맛이 없었니?”

“아니, 별로 식욕이 없어서. 좀 걸으니까 배가 고프네.”

“으응.”

혜정이 안도감 어린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만든 밥이 아들 입맛에 맞지 않았을까 봐 내심 걱정한 모양이다.

“어휴, 근데 산책도 산책 나름이지. 밥이 다 식어버렸잖니.”

“미안.”

“미안할 건 없고.”

혜정은 재차 웃음을 터뜨리며 앞치마를 걸쳤다.

“어차피 잘됐지. 곧 있으면 지수도 집에 올 시간인데, 이렇게 된 거 한꺼번에 같이 먹으면 되겠다.”

“어.”

혜정이 식어빠진 음식들이 차려진 밥상을 치웠다.

대성은 그걸 은근히 아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먹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밥상을 몰리니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수 올 때까지만 더 참자.’

그래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80년 만에 해보는 가족과의 식사.

이 정도 배고픔과 아쉬움 정도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

“워! 이게 웬 진수성찬이래?”

잠시 뒤.

일을 마치고 집에서 돌아온 지수가 탁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오빠 퇴원한 날이라고 힘 좀 썼나 봐? 평소에 대충 처먹으라고 잔소리하던 울 엄마는 어디 갔대?”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지수 너도 얼른 손 씻고 앉아. 거의 다 됐으니까.”

“예, 예.”

지수는 킥킥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다 문틈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더니, 난데없이 대성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오빠, 퇴원 축하해.”

“어.”

“하, 저 맥 빠지는 리액션 어쩔. 유머 감각 되찾으려면 천년은 더 걸리겠네.”

잠시 뒤.

온 가족이 바닥에 놓인 탁상을 둘러싸 식사를 시작했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그리고 각양각색의 나물과 김치 종류의 반찬들.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고슬고슬한 휜 쌀밥까지.

한 푼이 아쉬운 없는 살림인 걸 감안하면, 지수가 방금 말한 대로 꽤나 거창한 메뉴였다.

전부 대성을 위해서 마련된 것들이었다.

이날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먹겠냐고 생색을 내듯 화려한 반찬들.

후룩-

대성은 숟가락을 들어 우선 찌개 국물을 한 모금 먹었다.

긴말이 필요 없었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불필요했다.

지옥에 있을 땐 방금 때려잡은 마수들의 살점을 구워 먹었었다.

양념이나 조미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 돼지, 닭처럼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싱겁고, 질기고…….

탈이 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

그런 식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그의 미각은 어느 시점에서 이상하게 변한 상태였다.

주로 자극적인 맛을 느끼는 혀의 기관이 퇴화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아들, 맛은 좀 어때?”

“…….”

잘 끓여진 빨간 국물이 혀와 맞닿은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메모리칩이 기억을 복구시켜줬을 때랑은 비교도 안 되는 짜릿함이었다.

죽어 있던 미각 세포가 80년의 세월을 무시해버리고 살아났다.

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많이 먹어, 아들. 밥은 많이 있으니까. 더 필요한 거 있어?”

“이거면 돼.”

수저를 움직이는 대성의 손이 점차 빨라졌다.

‘이거다.’

엄마가 해준 밥.

이거면 충분했다.

포식자의 숲에서 구현화 퀘스트를 완료하고 보상을 얻었을 때보다.

아공간 포켓으로 현금 5억 원을 쓸어 담았을 때보다.

그는 지금 이 엄마 밥 한 끼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실례일 것이다.

“……훌쩍.”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한 건 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지수가 밥을 우물우물 씹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줬다.

“아, 엄마. 밥맛 떨어지게 왜 울고 그래.”

“하지만…… 그.”

혜정 본인도 주책없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감정을 추슬렀다.

“10년…… 만이잖니? 이렇게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밥 먹는 거.”

이 순간을 그리워했던 건 대성뿐만이 아니었다.

텅 빈 거실을 볼 때마다 혜정은 슬픔을 삼키면서 생각했었다.

저기에 우리 아들이 앉아서 밥을 먹으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내 딸 지수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그 염원이, 지금 이 순간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혜정은 애써 눈물을 뚝 그친 뒤, 먹먹함 가득한 목소리로 대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랑해, 아들.”

“나도.”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지만 대성도 나름대로 진심이었다.

다만 표현이 서투를 뿐.

“…….”

슥-

대성과 혜정의 시선이 자연스레 지수를 향했다.

지수가 딸꾹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 둘 다 갑자기 나를 봐? 뭐. 설마 나한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

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도무지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지그시 그녀를 응시할 뿐.

실제로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수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씨. 밥 먹다 오글거리게…….”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대성의 밥그릇에 제육 한 점을 얹어줬다.

“자. 내 마음이야.”

“…….”

대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혜정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새벽.

식사를 마치고, 혜정과 지수는 깊은 잠에 들었다.

“…….”

그에 반해 대성은 쉽게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아직 생활 리듬이 지옥에서의 시절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독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조금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

그는 이부자리에 잠든 가족들의 얼굴을 보았다.

좁디좁은 한 칸짜리 방에서 온 가족이 자야 하는 신세.

그래도 혜정과 지수 모두, 잠든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대성은 그 표정을 보며 나지막하게 다짐했다.

‘이 행복을 지켜야 한다.’

그는 조금씩 깨달아갔다.

지옥의 생활은 혹독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인정사정없는 마수들한테 목숨을 잃게 되니.

그 말은, 즉 자기 목숨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게 없으니 머리가 복잡해질 일도 없었다.

그런데 지구는 다르다.

여기엔 본인 말고도 지켜야 될 ‘가족’이 있다.

물론 시시각각 목숨을 노리는 마수들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행복이란, 꼭 그런 괴물들이 아니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해.’

만일 주제를 모르는 것들이 감히 자신의 가족을 위협한다면-

‘그때는 오늘처럼 판테온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도륙을 내버리겠다.’

굳은 결심과 함께.

대성은 조용히 주먹을 꾹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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