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017
“내가 못 살아, 정말.”
다음 날 오후.
혜정은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알바 간다는 애가 휴대폰을 놓고 가면 어떡하니, 정말.”
혜정은 휴대폰을 주워들더니 못 살겠다는 듯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오빠. 내가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소개해줄…… 응? 헉!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지났어?!
지수가 알바 늦었다며 온갖 난리를 쳐댄 게 1시간 전이다.
아침부터 대성과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답지 않게 늦장을 부리고 만 것이다.
급하게 세안만 하고 나서다 보니 휴대폰을 깜빡 잊은 모양이었다.
“……밤길에 퇴근하는 애가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안 그래도 치안이 별로 좋지 못한 달동네다 보니 딸을 둔 어머니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내가 다 불안하네.’
그러다 혜정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난처한 빛을 띠었다.
‘근데 나도 시간이…….’
그녀가 일하는 식당이랑 지수가 일하는 카페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 위치했다.
지수에게 휴대폰을 전해주고 출근하면 늦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그녀는 식당 주방장이기에 지각하면 더더욱 곤란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혜정이 난색을 표하던 그때.
“내가 전해줄게.”
“어?”
혜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용케 간파한 대성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아들이 전해주겠다고?”
“어.”
“뭐, 그래준다면야 엄마는 고맙긴 한데……. 지수 일하는 가게가 어딘지도 모르잖아.”
“알려주면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
“아니, 말로 설명하기엔 좀 애매한데…….”
약도를 그려주기도 뭣하고.
어쩌면 좋을까 혜정이 고민하다, 이내 묘안을 떠올렸다.
혜정은 휴대폰을 이리저리 매만지더니 대성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들, 잠깐.”
“…….”
“봐봐.”
그녀가 가까이 온 대성에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이 나와 있었다.
“여기 빨간색 점 찍힌 거 보이지?”
“어.”
“이게 지수가 일하는 가게 위치야.”
“어.”
“그리고 여기 파란색 점은, 아들이 있는 곳이고.”
“이거 따라서 가면 된다는 거지?”
“응, 할 수 있겠지?”
대성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
“…….”
혜정은 자기도 모르게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다.
‘걱정된다, 걱정돼.’
그래도 스물여섯이나 먹은 아들인데, 이 정도도 못 할까 봐 의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혜정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럼 아들 믿고 출근한다?”
“어.”
“진짜 영 모르겠다 싶으면 거기 저장된 번호로 엄마한테 연락하고.”
“어.”
도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단답의 연속에, 혜정은 뭔가 더 덧붙이려다 그냥 포기하고 집밖을 나섰다.
‘애가 말수라도 좀 늘면 좋으련만.’
벌써 세 번째 쉬는 한숨이었다.
***
“하아…….”
같은 시각. 한숨을 쉬는 건 혜정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카운터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난 뒤, 지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점장한테 엄청 깨졌다.
헐레벌떡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점장의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따로 가게 뒤로 불러서 잔소리를 한 것도 아니다.
손님들 보는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있는 대로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물론 지각이 잘 한 행동은 아니지만…… 억울한 마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1분 늦었잖아.’
5분, 10분도 아니고 1분. 그 정도는 그냥 눈감아줄 법도 한데.
게다가 집에 나섰을 때의 시간을 감안하면 1분 늦은 건 기적에 가까울 수준이었다.
‘차라리 10분쯤 늦었으면 몰라.’
“저기요.”
‘1분 늦었다고 이 많은 손님 앞에서 게으른 년이라느니, 짤리고 싶어 환장했냐느니…….’
“저기요?”
‘아니, 근데. 나 지각한 거 이번이 처음 아냐?’
“저기요!”
“힉!”
갑자기 맞은편에서 들려온 고성에 지수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상념에서 벗어나 고개를 드니 아까부터 기다리던 손님이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주문은 뭐로 하시겠어요?”
“아메리카노 레귤러로요.”
손님한테서 카드를 건네받은 지수는 후딱 계산을 마친 뒤 아메리카노를 제조했다.
젊은 남자 손님은 카운터의 커피를 가져가며 슬쩍 지나가듯이 말했다.
“사람이 실수할 때도 있죠.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마세요.”
“…….”
아무래도 아까 점장한테 혼나던 걸 두고 하는 말인 듯싶었다.
자리로 돌아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지수는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고, 고맙…… 습니다.”
훈훈함도 잠시. 직후 막대한 자괴감이 휘몰아쳤다.
정말 꼬여도 단단히 꼬인 하루다.
‘점장한테 깨진 것도 모자라 손님한테 위로나 받고…….’
슬슬 정신이 흐려지던 참인 지수가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옆에서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부끄러워.”
“아…….”
2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 점장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신이 번쩍 뜨인 지수가 무심코 뒷걸음질을 치다 이윽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고맙습니다? 뭐가 그렇게 고마운데?”
“…….”
“손님이 좋은 말 좀 해주니까 막 힘이 나?”
“아, 아뇨.”
“지각한 건 그렇다고 치자. 근데 직장에서 멍 때리는 것까지 내가 넘어가야 하냐?”
“…….”
“다행히 저분이 성격이 좋으시니까 망정이지. 행여 잘못 걸렸어 봐. 손님한테 클레임 들어오면 뭐 네가 점장인 나 대신 책임질래?”
작게 움츠러든 지수가 어두운 얼굴로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대답을 해야 되는데…… 입이 마음처럼 떨어지지를 않았다.
“벙어리처럼 입 처닫고 있지만 말고 뭐라고 얘기를 해보라고, 얘기를!”
결국 참다못한 점장이 다시 한번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손님들의 이목이 카운터로 집중되었다.
이미 이것과 비슷한 광경을 몇 분 전에 본 손님들 사이에 싸늘함이 흘렀다.
‘……좀 너무하지 않나.’
‘그렇다고 저렇게 손님들 앞에서 화낼 필요는…….’
‘아, 밖에 나가서 하든가. 입맛 떨어지게…….’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점장 하는 짓이 거슬리든 말든, 결국 남의 일이니.
당사자인 지수만 죽을 맛이다.
간신히 울분과 분노, 그리고 공포 등을 삼킨 지수가 대꾸했다.
“제,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 안 해도 돼.”
“예?”
뭔가 대화 흐름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지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장이 턱을 까딱거렸다.
“앞치마 벗어.”
“자, 잠깐만요. 점장님……!”
“왜? 싫어?”
그러더니 점장이 카운터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손님들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면 아까 그 손님한테 가서 다시 사과하든가.”
“…….”
“짤리든가, 사과하든가. 둘 중 하나 선택해.”
지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점장이라는 직위 앞에 기가 눌린 것도 잠시뿐.
두려움이 지나가니 이내 활화산 같은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짜 점장이고 뭐고. 욕 한 바가지 쏟아붓고 때려치워 확?’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칠 수밖에 없었다.
점장 몰래 꾹 쥔 주먹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근데 여기 말고는…….’
그래도 청소년인 그녀에게 최저시급 확실히 보장해주고, 야간 파트도 맡겨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특히나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더 보태는 게 절실한 그녀에게 있어, 야간에도 일할 수 있다는 조건은 꽤나 중요했다.
‘여기 말고는…… 일할 만한 곳이 없어.’
요즘 같은 세상에 미성년자를 고용해주는 일터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참아야 돼.’
지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더러워도 한 번만 참자. 쪽팔린 건 한순간이야.’
그 한순간을 참고 넘기면 된다고, 그녀는 있는 힘껏 합리화를 하며 카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죄송-”
지수가 그렇게 운을 떼며 눈을 뜨던 순간.
무언가로 인해 시야가 가로막혔다.
손님들의 얼굴이 보여야 될 눈앞이 누군가의 몸에 가려졌다.
“……응?”
의아함을 느낀 지수가 시선을 좀 더 위로 향했다.
거기엔 대성이 있었다.
“오…….”
……빠, 라는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대성의 눈은 그녀가 아닌 좀 더 옆, 점장에게 향하고 있었다.
“윽……?!”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여동생인 지수조차도 침음을 삼킬 정도로.
차갑고 살벌했다.
이마에 십자 힘줄이 잔뜩 돋은 대성이 처음으로 입에 담은 한마디는,
“어디서 자꾸 이런 개새끼가 튀어나오는 거지?”
순수한 의문이었다.
***
혜정의 걱정과는 달리 대성은 별문제 없이 지수가 일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
웬 쓰레기 같은 놈한테 모욕을 당하는 여동생을 본 순간.
화가 나기도 하고, 진심으로 궁금해지기도 했다.
“뭐, 뭐? 아니, 손님 지금 뭐라고 하셨…….”
콱-!
“웁?!”
대성이 팔을 뻗어 우악스런 손으로 점장의 턱을 움켜쥐었다.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화나는 건 화나는 거다.
눈앞에서 가족이 치욕을 당했는데 참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짤리든가 사과하든가, 둘 중 하나 선택하라고? 그럼 나도 선택지를 주지. 나한테 손발이 짤리든가 죽든가, 너도 선택해라.
“……! ……!!”
아예 광대뼈가 입 안으로 파일 기세로 턱이 붙잡힌 점장이 저항했다.
그러다 문득,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가, 갑자기 이게 뭔……!’
괴물 같은 악력이었다.
점장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기분이리라.
“…….”
대성이 가늘게 눈을 좁히며 고개를 기울였다.
고민된다.
이대로 손가락에 힘을 줘 턱을 바스러뜨릴 수도 있지만…….
‘그러다 한 번에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고통을 주고 싶은데.
고민되기도 하는 한편, 자신이 없었다. 힘을 조절할 자신이.
“읍……! 으읍……!”
핏발 선 점장의 두 눈이 서서히 초점을 상실해갔다.
대성이 손가락에 차츰 힘을 줄 때마다 얼굴 근육이 조여들고 뼈가 압박되어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꺼져가는 의식이 딱 하나의 문장만을 떠올렸다.
‘이러다 진짜 죽는다……!’
작금의 광경을 바라보던 손님들도 헛숨만 삼키며 침묵했다.
대성도 이 이상 복잡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감정에 따르기로 했다.
‘죽여버리자.’
방금 지수에게 쏟았던 폭언.
그리고 그 폭언을 들을 때 지었던 지수의 표정.
인내란 게 가능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오빠!”
이성을 상실한 대성이 점장의 얼굴을 으깨기 1초 전.
벼락처럼 날아든 지수의 외침이 그를 일순 멈칫하게 했다.
“…….”
대성이 무표정한 눈으로 지수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대성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다 진짜 죽겠어.”
“그래서?”
“그래서, 는 개뿔이 그래서야! 얼른 놔! 괜히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
“내가 난처해지잖아. 얼른.”
그 말을 들은 대성이 그제야 손에 힘을 풀었다.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던 점장이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학……! 학……!”
죽다 살아난 점장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광대뼈를 어루만졌다.
부러지거나 금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만약 거기서 조금만 더 힘을 줬다면, 자기 얼굴은 깡통처럼 으스러졌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니 호흡이 가빠진 점장이 신음만 흘리던 가운데.
“짤리든가, 사과하든가. 둘 중 하나 선택하라고 했죠.”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앞치마를 벗어 던지더니 바닥에 툭 던졌다.
얼굴이 식은땀 범벅이 된 점장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울컥하고 뭔가가 그녀의 마음속에 치밀어 올랐다.
방금 대성이 보인 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걸까.
이번엔 아주 조금이나마, 그녀는 울분을 토해낼 수 있었다.
“제발…… 그따위 성격으로 살지 마요. 다음에 한 번만 더 제 눈에 띄었다간…….”
그 대목에서 지수는 말을 흐리며 대성을 흘겼다.
“그땐 이번처럼 끝날 생각은 하지도 말고요.”
“…….”
점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멀뚱멀뚱 멍청한 점장의 시선을 무시한 채, 지수는 대성의 손을 붙잡고 카운터를 벗어났다.
가게 입구를 나서기 직전.
“시팔! 두고 봐! 고소할 거야! 고소할 거라고! 여기 CCTV에 다 찍혔어! 이 개 같은 연놈들아!”
결국 대성이 ‘선’은 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점장이 악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대성과 지수는 물론.
제삼자였던 손님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지만.
대성이 물었다.
“고소…….”
“복수하겠다는 거지. 저 찌질한 새끼. 하, 일이 복잡해지겠다, 또.”
“복수?”
그 단어의 의미만큼은 똑똑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걸 모르는 점장은 계속해서 추하게 외쳐댔다.
“씨바, 이거 엄연히 상해죄야, 알아?! 합의해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으니까 너희들끼리-”
“복수해봐.”
그 순간.
공기가 가라앉았다.
“어?”
점장은 하려던 말이 목구멍에서 턱, 하고 막히는 걸 느꼈다.
입구에 선 대성이 슬쩍 고개만 돌려 점장을 노려보았다.
서늘한 살기가 점장의 등줄기를 훑었다. 쭈뼛쭈뼛 털이 섰다.
이 감각은 뭐지.
기분 탓인가?
“해보라고.”
남자의 등 뒤에서, 마치 지옥불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 찰나의 환상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저 말에 담긴 진의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경고.
점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자.”
대성은 그 말만을 남기고 지수와 함께 가게를 빠져나갔다.
***
“…….”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는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지수를 향해 물었다.
“왜 말렸어?”
그 질문이 튀어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수가 후진했다.
그녀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오더니 말을 쏟아냈다.
“몰라서 물어? 어제 막 퇴원이 인간이 하루 만에 감방 들어갈 일 있냐고!”
“감방?”
“염병. 말을 말자. 이 미친 오빠.”
그녀는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화낼 기력이 사라지니 걸음걸이도 더뎌졌다.
지수는 느릿하게 걷는 대성과 보폭을 맞추며 날카롭게 따졌다.
“결국 나 알바 짤렸어. 어떡하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돈을 못 번다고! 돈을!”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건가?”
“…….”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오히려 잘된 거지.”
이 일을 계기로 지수는 더 이상 헛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대성이 원하던 바였다.
“…….”
오히려 잘된 거지.
그 한마디에, 총알처럼 말을 쏟아내던 지수가 말없이 입술만 부르르 떨었다.
이 대책 없는 오빠를 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답답했던 걸까.
아니면.
“…….”
그 상황에서 자신을 위해 기꺼이 화를 내준 오빠를 향한 고마움 때문일까.
‘……딱딱한 줄로만 알았는데.’
툭-
그녀가 주먹으로 대성의 어깨를 괜히 한번 쳤다.
“왜 때려.”
“몰라.”
“…….”
“아, 씨. 열 냈더니 배고프네. 우리 뭐 먹고 들어갈래?”
“음…….”
“엄마 일하는 식당 콜?”
“좋지.”
“미친. 그냥 한번 던져본 말이었는데…….”
지수는 곧 죽어도 ‘고마워’ 이 한마디를 못하는 본인의 부끄럼 많은 성격이 참으로 한탄스러웠다.
***
대성과 지수가 걷고 있는 곳과 한참 떨어진 지점.
한 여성이 골목 모퉁이에서 고개만 내민 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
후드를 눌러쓴 탓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여성은 멀찍이 떨어진 대성을 한 번,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사진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좀 어벙하긴 해도 실물이 더 압권이네.”
미행의 대상이 사진 속의 인물임을 확신했다.
이제는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죽이려면 고생깨나 해야겠어.”
회색 후드의 음영 너머.
여성의 입술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