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018
사무실을 가득 메운 비릿한 피 냄새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지만…….”
형사과 반장인 홍성빈도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강력계에 몸담으면서 온갖 더러운 꼴을 봤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손에 꼽았다.
“현장을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진 건 또 오랜만이네.”
홍성빈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틱, 틱-
“후…….”
허공을 흐르는 희뿌연 담배 연기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훑고 지나갔다.
시신은 불법 대부업을 운영하던 조폭 일원들.
고상하게 죽었으면 모를까, 하나같이 어디가 으깨지거나 꺾인 더러운 꼴로 죽어 있었다.
우웨에에엑-
얼마나 끔찍한 광경이었는지 신참내기 순경 하나가 속이 뒤집혀 토악질을 할 정도였다.
현장을 한번 훑어본 홍성빈이 옆에 대기 중인 순경에게 물었다.
“건물 CCTV 조회해봤어?”
“그…… 확인해봤더니 죄다 모형이었습니다.”
“씨댕, 누가 깡패 새끼들 아니랄까 봐.”
건물에서 악취가 새어 나온다는 주민의 신고가 아니었으면 이들은 미라가 될 때까지 썩었으리라.
그는 현장의 사진을 찍거나 지문과 혈액 샘플을 채취하는 수사관들을 지나쳐 사무실 구석으로 향했다.
거기엔 내부가 텅 빈 금고가 하나 놓여 있었다.
‘으레 있는 조직 간의 트러블인가?’
잠시 가설을 세워봤던 홍성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 야쿠자 영화도 아니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할 리가 없지.’
더군다나 고작 대부업자 놈들 운영 자금 몇 푼 챙기겠다고 조직 단위로 일을 벌이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개인이 저지른 건가?’
의외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힘없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각성자’라면, 무능력자인 깡패 몇 놈 죽이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판을 벌린 의도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뒤처리에 공을 들인 것도 아닐뿐더러, 더욱이나 각성자란 신분이면 꼬리가 밟힐 위험이 몇 배는 더 커질 텐데…….
물론 CCTV는 가짜에다 주변에 마땅한 목격자마저 없으니 수사에 대단한 난항을 겪겠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히 미친 새끼구먼.’
홍성빈은 쩝, 입맛을 다셨다.
***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아무거나 골라봐.”
“…….”
“가격은 걱정하지 말고. 돈 모아놨다가 어디다 쓰겠어.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지. 아, 이거 요즘 잘나가는데. 오빠 생각에는 어때?”
“…….”
“대답 좀 해라, 이 소시오패스 오빠야. 답답해 죽겠네.”
지수가 쥐어준 휴대폰을, 대성은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둘은 근처 휴대폰 판매점에서 쇼핑을 하는 중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대성이 앞으로 사용할 휴대폰을 장만하기 위해서다.
10년 전, 그러니까 지옥에 떨어지기 전 그가 쓰던 휴대폰은 당연히 정지된 상태였고, 지금 와서 그걸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휴대폰이라.’
새로 나온 기기 코너를 쭉 둘러보며 대성이 고개를 저었다.
휴대폰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굳이 이렇게 가족의 돈을 털어 비싼 걸 사고 싶지는 않았다.
“싼 걸로 사.”
“제정신이야? 괜한 똥고집 부리지 말고 사준다고 할 때 받아! 누구는 씨,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는데…….”
일단 그녀 본인이 대성의 휴대폰을 마련해주겠다고 데려왔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기도 했다.
자기도 확, 마음 같아선 2년 쓴 고물 폰은 버리고 쌈박한 걸로 바꿔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바보 오빠는 굴러 들어온 복을 제 발로 차버리겠다고 하니, 보는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진짜 나 같았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지수님! 하고 절이라도 했다.”
“바꾸고 싶어?”
“응? 뭘?”
“그거.”
대성이 눈짓으로 지수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가리켰다.
지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흘겨봤다.
“어, 이거? 바꾸고 싶기는 하지. 근데 왜?”
“사줄게.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
돈도 없는 양반이 뭔 자신감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따져봤자 뭣하랴. 지수가 한숨을 쉬며 대성의 손에 든 폰을 뺏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오빠가 안 고르면 내가 대신 이걸로 고른다?”
“맘대로 해.”
“어휴.”
마음 같아선 구닥다리 2G 폰으로 장만해주고 싶지만, 양심이 있으니 그만뒀다.
지수가 고른 건 요즘 잘나가는 부류의 스마트폰이었다.
그대로 직원에게 가서 구입 절차를 밟았다.
당연히 데이터는 몇 기가로 할 건지, 위약금이랑 할부금은 얼마 남았는지 등등은 옆에 앉은 지수가 대신 대답해줘야 했다.
잠시 뒤. 구매를 마친 둘은 판매점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같단 말이야.’
지수는 자신의 손에 쥔 신품 휴대폰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아쉬운 것보다도 기쁜 마음이 더 컸다.
“…….”
그녀는 어제 자신이 일했던 카페에서의 사건을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오빠가 아니었으면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할 뻔했다.
‘이건 그때의 답례야.’
그렇게 생각하니 기쁠 수밖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꼬리가 올라갔다는 걸 자각한 지수가 황급히 잡념을 지우며 말했다.
“기기변경만 한 거니까, 이전에 쓰던 휴대폰 번호랑 똑같아. 메신저 기록도 그대로 남을 테고.”
“그렇군.”
“뭔 말인지는 알고 대답하는 거야? 10년간 쌓인 부재중 전화랑 문자 기록이 고스란히 옮겨졌다고.”
대성이 의식을 잃었던 날 이후로.
분명 그의 수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안부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오빠 깨어났다고 답장 돌리면 아마 다들 기절초풍할걸?”
“…….”
지옥에 떨어지기 이전의 인간관계를 말하는 건가.
솔직히 대성은 그들의 기억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정말로 친했던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하면.
슥-
지수가 휴대폰을 건네자 대성이 그걸 받으려고 했다.
이때 아주 잠깐, 지수가 휴대폰을 쥔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대성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수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첫 선물이네?”
“무슨 선물.”
“오빠 깨어난 뒤로, 내가 처음으로 주는 선물.”
“…….”
“소중히 아끼도록. 막 다루면 내 손에 아주 죽을 줄 알아.”
그제야 지수가 휴대폰에서 손을 놓았다.
대성은 한동안 감정이 희미한 눈으로 그 휴대폰을 바라봤다.
‘나한테 준 선물.’
놀라운 일이었다.
방금 전까진 번거롭고 사치스런 물건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는데…….
가족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목숨을 걸고 소중히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집으로 돌아온 뒤, 대성이 처음으로 건드려본 어플리케이션은 메신저 함이었다.
화면을 본 대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
200통.
10년 동안 부재중으로 쌓인 문자의 개수였다.
그밖에도 100통에 가까운 부재중 전화도 밀려 있었다.
[대성아, 소식 들었다. 빨리 일어나, 새끼야. 기다리고 있을게.]
[대성아. 일어나면 연락 줘라. 나도 우리 가족도 다 널 위해 기도하고 있을게.]
[대성아, 너 중3때 담임선생이다. 어머님한테 얘기 들었다.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구나.]
대성아, 대성아, 대성아.
전부 그와 같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 그리고 그의 선생님들이 보낸 것들이었다.
“…….”
맥락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성에게 있어선 전부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다.
강림 퀘스트 때 받은 메모리칩은 정말 중요한 일부 기억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인연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하지만 알고 지낸 지 2년도 안 된 이들에 대한 기억까지는 복구시켜주지 못했다.
저들은 이렇게나 날 걱정해주는데, 나는 저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저들을 망각해버렸으니, 일어나면 연락 달라는 저 말에도 화답할 자신이 사라졌다.
공허했다.
마치 꼭,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꾹-
‘젠장.’
누구한테 하는 욕일까. 대성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제 목숨 챙기느라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주었던 저들을 멋대로 망각한 자신에게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
아니, 딱 한 명 있다.
가족과 더불어서, 메모리칩이 되돌려준 과거의 인연.
[대성아. 오늘도 문자 보낸다.]
성찬호.
일전에 대성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말을 듣고 병문안을 와준 친구.
메모리칩이 복구시켜준 기억 속에서, 그와의 추억이 편린으로나마 떠올랐다.
그 말은, 즉 성찬호는 가족 못지않은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
“…….”
조금이나마 기억이 있는 이상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자신을 위해 병문안을 와준 그에게 ‘누구지?’라고 했었던 일도 사과해야 되고.
그런데 막상 뭐라고 첫마디를 꺼내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대성이 폰만 쥐고 가만히 침묵하던 그때.
부르르-!
휴대폰이 진동했다.
성찬호에게 온 메시지였다.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가 없었다.
[폰 개통한 거 축하! 나 곧 일 끝나는데 그때 술이라도 마시자! ㅋㅋㅋ]
***
약속 장소는 대성이 사는 집과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었다.
도착해보니 성찬호는 이미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성이 그에게 다가갔다.
“찬호야.”
“어…… 어?”
멍하니 서서 대성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성찬호가 순간 당황했다.
그럴 만도 하다.
웬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자기 이름을 부르니 놀랄 수밖에.
“누, 누구세요?”
“……?”
반면, 대성은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닌데 자신을 못 알아보는 성찬호가 의아했다.
그러다 뒤늦게나마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이 병원에 찾아왔을 때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지.’
성찬호가 병문안을 왔을 적엔 강림 퀘스트를 다 끝내지 못했었다.
당시의 대성은 지금 같은 백발에다 근육질 몸이 아닌,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비실비실한 육체였다.
친모인 혜정도 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성찬호는 오죽할까.
“나야. 한대성.”
“네? ……응, 뭐? 한대성이라고?”
성찬호의 시선이 대성의 커다란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잘 보니까, 그가 기억하는 한대성의 이목구비가 희미하게 남아 있기는 하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성찬호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본 대성이 재차 강조했다.
“나 한대성 맞아.”
“……어, 어어. 그래. 지금 다시 보니까 맞는 것 같…… 다.”
어쨌든 눈앞의 인간이 한대성인 건 확실했다.
‘그럼 이건…….’
본인의 직종이 ‘그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까.
성찬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각성?’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대놓고 당사자 앞에서, 그것도 대성한테 너 각성했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한 성찬호가 할 말을 잊은 와중.
대성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설명할 마음도 없고.
하나 성찬호가 질문을 해오면 그때는 뭐라고 대처하면 좋을까.
그냥 말하기 싫다고 시치미를 떼버리면서 상황을 모면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줄 것 같고.’
메모리칩 속의 기억 덕분일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성찬호에겐 왠지 모를 신뢰가 갔다.
그리고 실제로도,
“크흠! 새끼, 몸 좋아졌네. 부럽다, 인마!”
성찬호는 눈치 빠르게 대성의 사정을 고려해주었다.
그가 자신을 배려해 일부러 묻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대성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저녁 안 먹었지? 밥부터 먹으러 가자.”
“어.”
“이 형님이 괜찮은데 미리 알아봐 놨다. 믿고 따라와.”
성찬호가 씩 웃으면서 대성에게 어깨동무를 해왔다.
“…….”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역시 이 녀석은 믿을 만한 놈이다. 대성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바로 그때.
꿈틀-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순간.
마치 커다란 파도가 등 뒤에서 출렁이는 듯한 느낌이 엄습했다.
멈칫.
대성이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
방금 그 꿈틀거림.
기분 탓이 아니다.
아직 몸이 다 회복하지 못했을 때 간혹 느껴지고는 했던, 정체불명의 기운과 똑같은 놈이었다.
그때는 나약한 몸과 마음이 만들어낸 ‘불안 증세’라고 치부했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는데…….
‘입원 당시 기억을 떠올려서 나도 모르게 심신이 흐트러진 건가?’
대성은 성찬호의 질문에 한 발짝 늦게 대답했다.
“아냐. 아무것도.”
어쨌든 눈에 보이는 이변 같은 건 없으니 무시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대성은 가던 길을 마저 갔다.
하나 그는 몰랐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쩌적-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