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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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과 성찬호가 향한 곳은 평범한 고깃집이었다.
가게에 들어오면서 빠르게 메뉴판을 훑은 성찬호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부터 했다.
“이모, 여기 삼겹살 2인분이랑…… 아, 너 술 마셔도 되냐?”
퇴원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배려하는 차원에서 물어본 질문이리라.
대성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찬호가 싱긋 웃으며 소주 2병을 시켰다.
잠시 후.
불판 위에 2인분의 삼겹살이 자글자글 구워지고, 초록색 소주병이 가지런히 세팅되었다.
“건배!”
“…….”
대성은 말없이 유리잔만 들어 올렸다.
그래도 성찬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와 유리잔을 부딪쳤다.
고기가 자글자글 구워지고, 소주잔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졌다.
물론 일방적으로 말을 하는 쪽은 성찬호였고, 대성은 그냥 묵묵히 앉아서 이야기만 듣거나 가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성찬호는 어색해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그를 대해주었다.
영원히 깨어날 것 같지 않았던 친구가 의식을 되찾고 같이 술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는 눈치였다.
[다음 소식입니다. 금일 오전 일곱 시경, 한 대부업체 사무실에서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현장에선 관계자 서른네 명이 숨진 채 발견되어…….]
“와, 세상 참 험악하네. 갱스터 무비야, 뭐야?”
가게 벽면에 달린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성찬호가 감탄 아닌 감탄을 터뜨렸다.
TV를 등진 자리에 앉아 있던 대성이 고개를 돌려 뉴스를 보았다.
[경찰 측은 급히 용의자 물색에 나섰으나 당시 현장에 설치된 CCTV가 모형인 탓에 수사에 큰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화면 안에선 패닝, 클로즈업, 줌인아웃 등, 온갖 기법의 카메라 워킹이 난무하며 현장의 참극을 아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대성은 저 장소가 무척이나 눈에 익다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저번에 내가 다녀온 곳이군.’
마치 어제 조깅을 뛰고 온 산책 코스를 바라보는 것처럼 심드렁한 감상이었다.
“이야,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네. 조폭을 죽여? 얼씨구? 금고에 돈까지 빼갔다고? 아주 그냥 지 혼자 블록버스터를 찍고 있구먼.”
성찬호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에게 있어선 본인과 하등 관련 없는 남 일이기에 저렇게 태연히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지만…….
“…….”
대성에겐 아니었다.
남 일이 아닌 걸 넘어서, 저 경찰들이 눈에 핏대를 세우고 찾는 범인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술잔을 빠르게 비운 대성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조폭이란 건 죽이면 안 되는 놈들인가?”
“뭐, 죽어도 싼 새끼들이긴 하지.”
“죽어도 싼 새끼면 저놈들은 왜 범인을 찾으려고 하지?”
“뭐?”
성찬호는 순간 이놈이 농담이라도 던지는 건가 싶었지만, 대성이 그럴 성격은 아니라는 걸 떠올리고는 진지하게 대답해줬다.
“대성아, 조폭이고 뭐고 다 떠나서…… 사람을 죽이면 일단 그건 살인죄예요. 잡혀간다고.”
“잡혀가면 어떻게 되지?”
“벌써 취했냐?”
“아니.”
“어우, 씨. 술이 확 깨네.”
이젠 반쯤 어이를 상실한 성찬호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허허 웃었다.
“잡혀가면 재판에 서겠지. 살인죄니까 뭐 집행유예고 자시고 직방으로 5년형은 가볍게 나오겠네. 그럼 감방 생활 시작하는 거고 그때부터 인생 종 치는 거지, 뭐.”
“…….”
살인죄라니. 지옥에선 그런 게 없었다.
애초에 그런 걸 규정하는 법률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죽였으면 그냥 거기서 끝이다. 전리품을 챙기고 시체를 밟고 가던 길을 마저 갈 뿐이다.
남겨진 시체는 다른 마물들이 파먹든, 썩어 문드러져서 해골이 되든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대성은 교훈을 하나 얻었다.
지구에선 살육을 하면 뒤탈이 남는다는 소중한 교훈을.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경우엔 수습할 방법도 마련해둬야겠군.’
혹독한 지옥의 야생 속에서 80년을 살다 보니 지구에선 당연한 상식이 그에게는 괴리감으로 다가왔다.
메모리칩으로 현대에 관한 상식과 기억이 일부 복구된 것과는 별개로, ‘문명’ 레벨의 간극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옥에는 흔적 없이 시신을 수습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었지.’
물론 그때는 시신 수습 용도가 아닌, 좀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해본 아이템이었지만.
이를 테면, 자신이 통솔할 ‘군단’을 만들기 위해서라든가.
대성이 그렇게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성찬호가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취기도 좀 돌고.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
“어.”
***
둘은 가게 입구를 나선 뒤 가만히 서서 서늘한 밤바람을 맞았다.
성찬호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다음, 연초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자욱한 회색 연기가 스산하게 퍼져 나간다.
그 연기를 가만히 눈으로 좇던 대성의 시선이 이내 성찬호가 문 담배에 꽂혔다.
입에서 담배를 뗀 성찬호가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피워볼래?”
“어.”
“……먼저 말 꺼내놓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너 흡연해도 되는 거냐? 퇴원한 지 한 달도 안 된 놈이…….”
“안 죽어.”
“아니, 어. 안 죽기야 하겠지…….”
말끝을 흐린 성찬호가 아래에서 위로 눈동자를 굴리며 대성의 풍채를 쓱 훑었다.
아무리 봐도 막 퇴원한 환자의 비주얼이 아니다.
‘……이놈, 이거. 분명히 각성했어. 백 프로야.’
그게 아니라면 사람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가 없다.
성찬호는 말없이 담배 한 개비를 대성에게 건네주었다.
대성이 담배를 입에 묾과 동시에 성찬호가 라이터를 내밀어 불을 붙여줬다.
구수한 향취가 폐부를 가득히 채워나갔다.
‘괜찮군.’
지옥에 떨어지기 이전에도 대성은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해보는 흡연.
빠르게 화학반응이 돌아오고, 머리가 핑 돌아가며 현기증이 일었다.
그 묘한 어지러움이 대성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감각이 살짝 둔해지면서 머릿속에 있던 고민이 희석되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연기를 빨아들이고 날숨으로 뱉어내는 대성을 보며, 성찬호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담배 처음 피워보지?”
“어.”
“근데 왜 이렇게 능숙하게 피우냐. 처음 피워보는 사람들은 다 죽을 듯이 기침만 하던데.”
“하나 더.”
“야, 담배가 무슨 과자도 아니고……. 이따 집에 가는 길에 내가 한 갑 사줄게.”
“고맙다.”
최초로 대성에게 ‘취미’란 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며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정적이 스치고, 성찬호가 문득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뭐 하고 살 거야?”
“몰라.”
“생각은 해봤어?”
“아니.”
“야, 사람이 생각을 좀 하고……. 아니, 내가 꼰대도 아니고 집어치우자. 뭐 아무튼 너도 나중에 돈 벌어야지. 계속 어머님 밑에서 빌붙어 살 것도 아니고…….”
“돈이라…….”
그의 아공간 포켓에는 현재 5억이라는 현금이 저장되어 있다.
귀찮은 문답은 질색이니 그 사실은 교묘하게 숨기며, 대성이 슬쩍 물어 보았다.
“5억 있으면 잘살 수 있나?”
“5억? 음, 5억 정도면 뭐……. 예금금리 따지고 뭐 따져보면…… 얼추 10년 정도는 무리 없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중간에 헛짓만 안 하면.”
“10년이란 말이지.”
“근데 갑자기 5억은 왜. 너 나 몰래 숨겨둔 돈이라도 있냐?”
“아니.”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얼굴로 시미치를 뗀 뒤, 대성은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10년이 지난 뒤에도 꾸준히 돈을 벌 만한 방법을 생각해봐야겠군.’
대부업자들 금고를 턴다는 발상은 이제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
그런 짓은 지구에서 꼬리만 밟힐 뿐인 위험한 행동이란 걸 방금 깨달은 참이니까.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안전하지 않아도 좋다. 험한 일이라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손을 더럽히는 일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뒤탈이 남지 않는, 깔끔한 루트이기만 하면 된다.
“…….”
성찬호는 꽁지가 다 떨어진 담배를 바닥에 버리며 대성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대성은 턱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성찬호가 뺨을 긁적였다.
‘즐거워야 될 술자리인데, 본의 아니게 너무 무거운 얘기를 꺼내버린 건가?’
하지만 성찬호는 불편한 기분을 곧바로 지워버렸다.
‘아냐. 어차피 이 얘기까지 포함해서, 녀석한테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고 한 거잖아.’
그러니 이 정도의 오지랖은 괜찮다고, 성찬호는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에 이어진 성찬호의 말은, 그런 합리화를 해도 될 만큼 솔깃한 제안이기도 했다.
“……대성아. 너, 우리 직장에서 일해볼 생각 없냐?”
“직장?”
“저번에 너 병문안 갔을 때 슬쩍 말 꺼낸 적 있었는데. 기억나?”
그러고 보니까 ‘게이트 시커’인가 뭔가 말했던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나 아무리 메모리칩의 기억을 뒤져봐도 게이트 시커라는 직업은 떠올릴 수 없었다.
“게이트 시커?”
“어, 그래. 게이트 시커. 오, 용케 기억하네? 내가 그쪽 부서 팀장이잖아.”
“게이트 시커가 뭐 하는 건데.”
“간단해. 그러니까, 하.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러다 순간, 성찬호외 뇌리에 얼마 전 혜정이 했던 당부가 빠르게 스쳤다.
‘……어머님께선, 각성이랑 대격변에 관한 얘기는 당분간 일체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지.’
너무나도 달라진 세상에, 대성이 자칫하면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 10년 만에 눈을 떴는데, 10년 전과는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뒤집혔다는 말을 들어봐라. 놀라서 까무러치는 게 정상이리라.
어머니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마음도 지나치면 거꾸로 독이 되는 법이다.
‘대성이 녀석도 이제 완전히 의식 찾았고…… 이젠 슬슬 알 때가 됐어. 언제까지 계속 숨길 수만도 없고.’
세상 전역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숨긴다고 영원히 숨겨지는가? 불가능하다.
허구한 날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단어가 ‘몬스터’, ‘게이트’, ‘사냥꾼’, ‘클랜’ 등 대격변과 관련된 것들뿐인데. 귀랑 눈을 막아봤자 소용없다.
‘대성이 어머님한테는 죄송하지만…… 녀석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대성은 ‘각성’을 했다. 확진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각성자의 모습이다.
그런 만큼 더더욱, ‘대격변’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성찬호는 마음을 굳혔다.
“야, 대성아.”
“어.”
“너, 네 스스로가 지금 각성했다는 건 자각하고 있냐?”
“각성?”
대성이 그렇게 되물은 순간.
쩌적-
“…….”
느닷없이 또, 아까 느꼈던 것과 같은 일렁임이 대성의 신경을 긁었다.
귓가에서 이명이 울리는 것처럼 머릿속을 불쾌하게 헤집는 소리.
“대성아, 내 말 듣고 있냐?”
옆에서 성찬호가 그렇게 물어왔지만 이미 모든 신경과 집중이 그 불쾌한 기운에 사로잡힌 대성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불안 증세 같은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심신이 흐트러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그렇다고 환청 같은 것도 아니었다.
대성은 환청인지 아닌지 분간도 못 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라는 거다.’
대성은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운 다음 귀를 기울였다.
쩌적, 쩌적-
유리잔에 금이 갈 때나 들릴 법한 소리.
아까는 지렁이가 등줄기를 기어가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감각이었는데, 이번엔 그 불쾌한 감각이 훨씬 더 커다랗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정체불명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진원지를 따라, 대성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쩌적- 쩌저적-!
허공에 돌연 거미줄 같은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야, 어디 아프냐? 왜 갑자기 멍을 때리고-”
이상하다는 듯이 그렇게 묻는 성찬호는 물론.
길을 걸어 다니는 행인 중 그 누구도 그 균열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직 대성을 제외하곤.
“…….”
바로 그때.
콰아악-!
1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 조금씩 일그러지던 균열이 순식간에 찢어발겨졌다.
동시에 그 균열 너머의 어둠으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나오기 무섭게.
“으악?!”
대성이 우악스런 팔을 길게 뻗어 성찬호를 뒤로 밀쳤다.
쾅-!
둘 사이에 넓은 간격이 생기고, 그 지점 한가운데를 맹렬히 강타하는 거대한 나무 몽둥이 한 자루.
균열을 빠져나오자마자 아래로 낙하하여 성찬호의 정수리를 내려찍으려던 ‘녀석’이 혀를 찼다.
“이건 또 뭐 하는 새끼야.”
아스팔트 바닥에 깊게 박힌 나무 몽둥이를 빼내려 낑낑대는 녀석을 보며 대성이 혀끝을 찼다.
키는 성인 남성 언저리 정도.
녹색 피부에 아가리 위로 누런 송곳니가 기다랗게 굽어진 녀석.
‘마수? 아니, 처음 보는 괴물이군.’
케륵-
케르륵-!
녀석이 낑낑대며 내는 짜증스런 울음소리와 더불어 일대에 사람들의 세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악-!”
“고블린! 고블린이야!”
“시발, 뭐야! 몬스터가 갑자기 왜 튀어나와?!”
“경보도 안 울렸잖아, 니미럴!”
주변이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롭게 길을 걷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아아악!”
“도망쳐!”
고깃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가게 바깥의 고블린을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대피했다.
물론 정직하게 가게 정문을 통해 도망을 치는 멍청이는 없었다.
고블린이 나타난 정문이 아니라 가게 뒷문, 혹은 가게 측면의 유리창을 깨뜨리며 거의 뒹굴듯이 벗어나고 있었다.
“…….”
케륵, 케륵…….
아까부터 도통 바닥에 깊숙이 박힌 몽둥이를 빼내지 못한 녀석이 애처로운 울음을 흘렸다.
대성은 녀석의 정수리를 한 손에 움켜쥔 뒤.
우드득, 콰지직-!
그대로 위쪽으로 팔을 젖혔다.
그러자 무슨 배추 뽑혀 나오듯 고블린의 머리가 찢겨나가며 척추까지 통째로 몸통과 분리되었다.
그렇게 놈은 단말마를 내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절명했다.
“…….”
대성은 척추뼈와 살갗이 덜렁덜렁 흔들리는 고블린의 머리통을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잘린 단면 아래로 비처럼 쏟아지는 피 분수 너머, 바닥에 주저앉아 경악에 사로잡힌 성찬호가 보였다.
“야, 너, 너……. 그거…….”
“이건 뭐 하는 놈들이지?”
“너야말로 뭐 하는 놈인지 묻고 싶다, 새끼야! 무슨 고블린 대가리를 수확하듯이…….”
어쨌든 이로써 대성이 각성을 했음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각성도 안 한 일반인이 맨손 악력으로 고블린을 죽일 순 없을 테니.
“헉!”
그때, 허공에서 소용돌이치는 균열로 눈길을 돌린 성찬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균열의 테두리를 붙잡고, 무수한 숫자의 고블린이 낙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갑작스런 돌발 사태라 주변엔 상황을 수습할 클랜도 없었다.
저 정도 머릿수라면 제아무리 대성이라도 힘에 부치리라.
그렇게 속단한 성찬호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대성을 이끌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슈욱, 쾅!
그 순간, 시커멓고 커다란 덩어리가 잔상을 그리며 떨어져 둘 사이를 벽처럼 우뚝 막아섰다.
땅이 움푹 파이며 아스팔트 가루들이 연기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크르르-”
연기 너머 언뜻 드러나는 근육질의 다부진 실루엣.
울음소리부터 달랐다.
아까 제일 먼저 특공을 감행한 녀석보다 3배는 커다란 몸집.
홉 고블린이었다.
“크르르, 크르-!”
“아, 아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성찬호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
반면 홉 고블린의 후방에 선 대성은 냉철하게 전황을 파악해나갔다.
‘맨손으로는 곤란하겠군.’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러면 난잡한 개싸움이 되어버린다.
성찬호가 휘말리고 만다.
‘깔끔하게. 놈의 숨통을 한 번에 끊어야 돼.’
대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