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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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홉 고블린이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지축이 들썩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임에도, 성찬호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공포로 인해 다리가 풀린 것이다.
저항할 힘도 없는 일반인인 그로선 그저 겁에 질린 눈으로 눈앞의 몬스터를 바라볼 뿐.
“그으윽……!”
홉 고블린이 가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음을 내뱉으며 손에 쥔 거대 도끼를 위로 들어 올린 순간.
암막(暗幕).
돌연 눈앞이 새까매졌다.
죽음을 앞둔 성찬호의 상황을 빗댄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 반대.
홉 고블린의 시야가 뭔가에 가로막혀 어두워진 것이다.
“그으……?”
뭐지?
놈이 그런 의문을 품은 것과 동시에.
푸우욱-!
“거, 어억……?!”
날카로운 날붙이가 놈의 목젖을 꿰뚫었다.
녀석이 핏물을 쏟아내며 후방으로 기울어지던 그때.
“그쪽이 아니야.”
녀석의 얼굴을 타고 올라 목에 단검을 꽂아 넣은 장본인, 대성이 짤막하게 덧붙이며 팔을 뻗었다.
대성이 뒤로 쓰러지던 놈의 얼마 없는 머리칼을 한 움큼 낚아채 단단히 붙잡더니,
쾅-!
아래로 낙하하는 몸에 힘을 실어, 휘청거리던 놈의 머리통을 그대로 땅에 메다꽂았다.
땅거죽이 튀어 오르고 아스팔트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목덜미 부근까지 땅에 쑤셔 박힌 홉 고블린은 부르르 몸을 경련하나 싶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지옥에서 온 녀석은 아니군.’
손목을 가볍게 회전시키며 몸을 풀던 대성이 그렇게 판단했다.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같은 덩치여도 마수 놈들은 이렇게 맥없이 쓰러져주지는 않았어.’
지옥의 마수들과 비교하면 이놈은 한 주먹거리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덩치가 아까운 놈이다.
‘하지만 마수가 아니면 뭐지?’
그게 의문이었다.
일단은 아까 전부터 계속 느껴지던 기운의 정체가 저 하늘 위의 균열에서 비롯된 거라는 건 확실했다.
균열이 열리고 난생처음 보는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 기억에 지구는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상공에 떠오른 균열 안쪽에서 머뭇거리는 잔챙이 고블린들을 올려다보며, 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한편.
겁을 집어먹은 건 고블린들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죽다 살아난 참인 성찬호가 넋이 나간 얼굴로 대성을 바라보았다.
그가 각성을 했다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니 몬스터와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육체가 강화됐으리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그것도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홉 고블린을 때려잡았다고?’
홉 고블린은 말하자면 고블린이란 종족에서 수장에 위치하는 놈이다.
고블린이란 종족 자체는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 그다지 치명적이라는 인상이 덜하다.
하지만 고블린이든 뭐든, 한 무리의 헤드에 위치한 이상 그때부터는 위험종, 달리 말하면 ‘네임드’로 분류된다.
실력 있는 사냥꾼이 진지하게 임해야 퇴치할 수 있는 놈이란 말이다.
‘근데 이놈은 대체…….’
설마 그 희박하다는 A급 각성자란 말인가?
짧은 순간에 성찬호의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스치던 와중.
“찬호야.”
“어, 어어?”
대성이 부르자 성찬호가 상념에서 퍼뜩 벗어났다.
성찬호의 눈에 비친 한대성이란 남자는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는 평범한 친구가 아니었다.
같이 책가방 메고 등교를 하고, 농담 따먹기를 하던 그런 이미지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여기에 있으면 너도 휘말릴 것 같다.”
“뭐?”
의문을 내뱉은 성찬호의 시선이 무심코 대성을 따라 위로 향했다.
그리고 헛숨을 삼켰다.
“케르륵-!”
“케륵-!”
균열의 테두리를 붙잡고, 고블린 중 몇 마리가 고공 낙하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수장의 죽음에 특공을 망설이던 녀석들이 뭔가 결심이라도 다진 모양이다.
상대가 만만찮기는 해도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판단한 걸까?
멍청하긴. 대성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짧게 덧붙였다.
“도망쳐.”
“어, 어어. 도망쳐야지. 근데 넌?”
“나 뭐.”
“넌 도망 안 쳐?”
“내가 왜.”
일체의 망설임 없이 대성이 그렇게 되물었다.
물어본 쪽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의 즉답에, 성찬호가 경기를 일으켰다.
“대가리에 총 맞았냐? 너 혼자서 저놈들이랑 싸우겠다고?”
“어.”
“…….”
이 이상 대화를 계속했다가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다구리엔 장사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저 수많은 고블린을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아니, 홉 고블린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쉽게 죽일 정도면 상관없을까?
그보다 도망치라고 해서 친구를 놔두고 혼자 도망쳐도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혼선처럼 꼬여 성찬호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자신까지 휘말리고 만다.
그리고 백날 떠들어봤자 대성의 고집을 꺾지도 못할 터.
“너 인마! 좀만 쫄린다 싶으면 바로 튀어! 알겠지? 바로 튀어야 한다! 뒈지기만 해봐!”
“어.”
갈등 끝에 겨우 결정을 내린 성찬호는 대피 중인 시민들의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성찬호는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대성을 돌아보았다.
대성은 물살을 가로막는 댐처럼 우두커니 서서 고블린 무리와 대적하고 있었다.
‘시발.’
녀석에게 믿고 맡긴다. 이게 지금 잘한 판단인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담당 사냥꾼이란 새끼들은 아직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고 뭐 하는 거야!’
애당초 시추에이션 자체가 되게 이상했다.
싸워야 할 의무를 지닌 놈들은 정작 나타나지도 않고, 자신의 애먼 친구가 대신 싸워주는 꼴이라니.
‘세금만 처먹는 돼지 새끼들!’
***
“시발! 눈치 없게 주말에 기어 나오고 지X이야, 개새끼들!”
같은 시각.
신랄한 욕을 내뱉으며 밤거리를 질주하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고윤호.
그는 현재 대성이 있는 난곡동의 담당 사냥꾼이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검은 아반떼 말고도, 후방엔 중형 세단 두 대가 바쁘게 뒤따르는 중이었다.
전부 고윤호가 이끄는 협회 소속 사냥팀의 멤버들이었다.
“기어 나올 거면 주중에 기어 나오든가, 씨팔. 기분 좋게 자고 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야!”
주중과 주말의 구분이 딱히 없는 클랜과는 달리, 협회 산하의 사냥팀 소속 멤버들은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뭔가.
날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칼 퇴근, 주말 휴무, 정년퇴직을 인생의 업으로 삼는 직종 아닌가.
반대로 말하자면 날벼락이 떨어지면 그만큼 혼돈에 빠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이트 프렉쳐(Gate fracture)가 하필 지금 벌어져? 그것도 관측기가 잡아내지도 못하는 놈이?’
좀처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있다.
게이트를 일정 시간 이상 닫지 못하면 균열이 생겨나 내부의 몬스터들이 외부로 현신한다.
그 현상을 프렉쳐라고 부르는데, 보통은 그런 사달이 벌어지기 전에 사냥꾼들이 나서서 조기 수습을 하는 게 통상적이다.
하나 정말 부득이하게 프렉쳐 현상이 발생한다 해도, 역시나 큰 문제는 없다.
협회의 관측기가 프렉쳐의 조짐을 잡아내고 미리 시군구 전역에 경보를 울리니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그 관측기조차 잡아내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 공진(共振) 반응을 보이는 프렉쳐도 희박한 확률로 발생할 때가 있다.
‘그 희박한 확률이 왜 하필 내 담당 구역에서 일어나는 건데 썅!’
고윤호 입장에선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진 대구광역시의 담당 사냥꾼이 조기 진압에 실패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해임당한 게 불과 며칠 전 일이다.
그게 남 일이 아니게 될 줄은.
[속보입니다. 난곡동 인근에 게이트 프렉쳐 현상이 발생해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 사상자나 부상자는 없는 걸로 추정되어…….]
‘불행 중 다행이네.’
사상자랑 부상자가 없다는 앵커의 말에 겨우 안심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피해가 커졌다면 그날부로 철밥통 증발이다.
부아앙-!
고윤호는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실었다.
전속력으로 달린 덕에 그는 얼마 안 가 현장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먹자골목 현장은 그저 휑하니 바리케이드 하나 쳐지지 않은 상태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고블린들의 울음소리. 을씨년스런 골목 사이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시민들의 비명들이 작금의 다급한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텅-!
고윤호는 사냥용 무기가 들어 있는 메탈 케이스를 트렁크에서 꺼냈다.
그가 차량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양쪽 두 대의 세단에서도 무기를 든 멤버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가시죠, 팀장님.”
“그래, 젠장.”
거친 말이 아주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쉬어야 될 주말에 뺑뺑이를 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무장을 갖춘 사냥팀의 멤버들이 천천히 골목의 심연을 향해 걸어갔다.
케르륵-
케륵-!
저편에서 들리는 고블린의 포효가 생생해질수록 멤버들도 임전태세에 돌입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상하군. 소리는 가까워진다만, 어째 우리만 일방적으로 거리를 좁히고 있는 듯한데.’
보통은 파죽지세로 날뛰며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들 놈들이다.
그런데 한곳에 머물며 흉흉하게 울기만 해대니 뭔가 이상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헐레벌떡 대피 중이던 시민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하나같이 다들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건 당연하지만…….
“응?”
뭔가 다르다.
공포에 질려 인사불성으로 달리는 민간인도 있는 한편, 묘하게 신이 난 목소리로 외치는 이도 틈틈이 섞여 있었다.
“와, 씨. 대박! 방금 봤음?”
“어디서 튀어나온 사람이지?”
“존나 잘 싸우던데?”
몇몇이 그런 감탄사를 내뱉으며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태를 수습하러 온 담당 사냥꾼들이 뻔히 이곳에 있음에도, 시민들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보다 더 대단한 뭔가를 보고 왔다는 듯이 잔뜩 흥분해 있을 뿐.
‘뭐야, 이건?’
시민들이 쏟아져 나오는 정면 방향을 주시하며, 고윤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
대성은 고블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히 그가 마물이나 몬스터를 보면 이유 없이 억하심정이 치미는 부류의 인간이라 그런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싸움이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내 식사 시간을 망쳤다.’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친구가 사 준 고기랑 술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근데 웬 잡것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좋은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그러니 죽이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를 않는다.
그뿐.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도 아까운 피라미들.’
대성의 손에 잡힌 단검에서 방금 절명한 홉 고블린의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퀘스트로부터 추가 보상으로 얻은 ‘심판의 단검’이었다.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수도 있었지만, 되도록이면 확실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놈들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참에 아이템의 성능도 확인해두고 싶었고.
‘정보 열람.’
[아이템 정보]
이름 : 심판의 단검
분류 : 무기
‘천상의 심판자들이 적을 처단할 때 사용하는 성물입니다. 골렘의 표피를 깎아 만들어 사용자의 손길을 인식합니다.’
고유 성능1 : 최대 100m 반경까지 원격 조작 가능. 사용자의 마력이 강할수록 위력이 상승합니다.
‘원격 조작이라.’
예상과 달리 원거리에 특화된 아이템이었다.
원격 조작이라면 투척과 동시에 회수가 가능할 테니 암살에는 편리하겠지만…….
‘이런 난전 속에선 굳이 원격 조작을 사용할 필요가 없겠군.’
“케륵-!”
대성이 단검의 정보를 열람하는 사이, 수십 마리에 달하는 고블린이 고깃집 주변을 에워싸듯이 포진해 있었다.
녀석들 중 제일 선두에 선 녀석이 맹렬히 포효하며 달려든 순간.
“케륵-!”
“케르륵-!!”
뒤에 있던 녀석들도 자신감을 얻고 무기를 치켜들고 대성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목표는 단 한 명. 그 한 명을 물어뜯기 위해 밀려오는 죽음의 홍수.
“한꺼번에 달려드니 편하네.”
하지만 대성은 여유를 띤 웃음을 지으며 놈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팍-!
“케르륵-!”
놈들과 거리를 좁히기 무섭게 선두에 있는 녀석의 목젖을 가르고,
“카, 악……!”
닥치는 대로 단검을 휘젓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곳곳에 솟구치는 피분수 사이로 대성이 악귀처럼 눈을 번들거렸다.
견제도 방어도 없다.
무차별한 학살만이 이어질 뿐.
***
“대…… 박.”
대피 중인 인파 사이로 누군가 그런 탄성을 중얼거렸다.
어느 이름 모를 누군가가 자아내는 무자비한 참극은, 제삼자의 눈에도 똑똑히 비치고 있었다.
마침 같은 장소에 있던 어느 유명 인터넷 BJ는 이때다 싶어 스마트폰으로 지금의 광경을 라이브로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 이거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임?;
└ 뭐야 저겈ㅋㅋㅋ 지 혼자 다 때려잡네.
└ 혼자서 고블린이랑 싸울 정도면 A급 사냥꾼 아님? 저 사람 누군지 아시는 분?
└ 말이 되냐. 주작인듯.
└ 응, 주작무새 등판했죠.
채팅창은 그야말로 불이 났다.
마구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는 신들린 솜씨로 고블린을 척살하는 이름 모를 사냥꾼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인파에 섞인 BJ는 도망치랴, 방송하랴, 아주 죽을 맛이었다.
고블린 한 마리가 튕겨져 나와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충돌하고, 정체 모를 남성이 번쩍 튀어 올라 놈들의 정수리에 단검을 박아 넣을 때마다 카메라도 휙휙 돌아갔다.
녹화 중인 음향엔 BJ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고블린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한데 뒤엉키고 있었다.
안전한 곳에서 방송을 보던 시청자 입장에선 이게 무슨 실제 상황이 아니라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비쳤다.
└ 화면이 너무 흔들려요 ㅠㅠ
└ 멀미 나 ㅅㅂ
└ 수전증 걸리셨나요?
└ 좀만 더 가까이서 찍으시면 안 됨? 뭐가 뭔지 암것도 안 보임;
‘아니, 미친 새끼들아. 그럼 난 뒈지라는 거야, 뭐야?’
물론 본인도 내심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지만…….
콰직-!
“케륵-!”
우득!
……저런 수라장에 휘말렸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 수는 어느새 1만 명 가까이 늘어났고, 조금만 앵글이 절묘하게 맞물렸다 싶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황급히 캡처 버튼을 눌렀다.
다들 난데없이 나타난 사냥꾼의 정체에 호기심을 보이고 신상 파악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거리며, 화질이며, 그다지 수확을 얻을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 ㅁㅊ 카메라가 사냥꾼을 못 따라가넼ㅋㅋ
발에 모터라도 단 것처럼 잔상을 새기며 고블린을 유린하는 그 움직임을,
각성자도 아닌 한낱 일반인 BJ가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
***
떼죽음을 당해 널브러진 고블린들의 몸뚱이가 시산혈해를 이뤘다.
“케륵, 켁……!”
순식간에 동족들이 몰살당하는 참상을 보고, 마지막까지 목숨을 부지한 고블린 한 마리가 겁에 질린 울음을 토해냈다.
찰박-
아스팔트 바닥을 적신 피 웅덩이를 밟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인간.
온몸에 동족의 피와 내장을 뒤집어쓰고 고고히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그 모습은,
“키, 익……!”
고블린의 눈엔 사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밤거리에 내려앉는 달빛이 그 귀신의 얼굴을 비췄다.
핏대가 잔뜩 선 두 눈.
심연을 집어삼킨 것처럼 그 속내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컥……!”
고블린은 숨통이 마구 조여오는 걸 느꼈다.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을 때리고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머리가 나쁜 녀석이라도 알 수 있었다. 예민한 생존 본능이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죽는다고.
“카악-!”
결국 녀석은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뛰고, 또 뛰었다. 저 귀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던 녀석은 이내 후미진 골목길 사이로 접어들었다.
숨을 생각으로 여길 들어온 건 아니다.
다만, 좁은 길로 방향을 선회하면 저 귀신을 따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내린 판단이다.
“허억……!”
하나 골목 끝에 가로막힌 벽을 마주한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놈이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그때.
슥-
벽 사이로 슬며시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
고블린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며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밥 먹을 땐-”
새카만 어둠을 헤집고 귀신의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서슬 퍼런 칼날을 타고 선홍빛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동족의 피다.
“개새끼도 안 건드린다고 했다.”
머릿속이 아득해진 고블린을 향해, 대성이 씹어 뱉듯이 말했다.
***
고윤호의 팀들이 참사가 벌어진 고깃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이 전부 수습된 뒤였다.
하지만 현장에 펼쳐진 광경은 그들이 상상한 것 이상을 훨씬 상회했다.
“……어우, 씨.”
“헉?”
“니미럴, 이건…….”
“…….”
모두가 그런 문장조차도 아닌 이상한 추임새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끔찍한 모습으로 절명한 고블린들의 시체가 태산처럼 쌓였고, 놈들의 피가 강물이 되어 흘러넘치고 있었으니.
이건.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사냥꾼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몬스터를 사냥했다기보다는…….
마치 날개 달린 전기톱이 놈들을 휩쓸고 지나간 것만 같은 지저분한 광경이었다.
“티, 팀장님. 이건 대체…….”
“…….”
나름 베테랑에 속하는 B급 사냥꾼인 팀원조차 혀를 내두르게 하는 참상.
팀원 중 한 명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고윤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라고 별수 있을까. 대답할 말이 궁색해진 나머지 그저 입만 꾹 다물었다.
‘어지간히 미친 새끼가 아니고서야 이건…….’
도망치던 민간인의 말로 정황을 따져보면, 먼저 현장에 있었던 사냥꾼은 혼자였을 터.
그렇다면 혼자서 이 수많은 고블린을 죽였다는 거다.
그 사실 자체도 놀랍긴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 이렇게, 그 후속으로 따라붙는 상황들이 굉장히 경악스럽다.
상식 이상으로 지저분하게 몬스터를 도살한 점. 그리고…….
‘그래서 뭔데, 이건? 왜 안 보이는 건데?’
정작 이 난장판을 벌인 사냥꾼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
지저분하게 싸운 건 그렇다 치자. 목숨이 걸린 일이니 고상함 같은 걸 따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근데 문제는 이렇게 몬스터의 사체를 그대로 두고 사라지는 경우는 처음 본다는 거다.
몬스터의 사체나 부산물은 내다 팔면 큰돈이 된다.
그래서 보통은 사후 처리를 한 흔적이라도 있는 법인데…… 그것조차 없다.
“팀장님! 와서 이것 좀 보세요!”
그때 팀원 중 한 명이 바닥 어딘가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발자국 모양의 혈흔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사람의 것과, 고블린의 것.
누가 봐도 그 미친놈이 고블린을 추격한 흔적이었다.
“따라가 보자.”
“네.”
놈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은 발자국을 쭉 따라가 보았다.
일직선으로 이어지던 혈흔은 어느 기점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좁은 골목길이 있는 곳이다.
초입부터 넓게 깔린 어둠 사이로 풍겨오는 진한 피비린내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
고윤호와 그의 부하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골목 깊숙이 들어갔다.
얼마 안 가.
“우욱!”
그 끝자락에 펼쳐진 광경을 모두가 눈에 담은 순간, 비위 약한 팀원 중 한 명이 구역질을 해댔다.
거기엔,
“……몬스터보다 더한 새끼네, 이건.”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까지 훼손된 고블린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유기되어 있었다.
“보고서에 뭐라고 쓰지?”
고윤호에게는 마가 낀 하루가 따로 없었다.
***
이미 도망칠 사람은 다 도망쳐서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길거리.
텅 빈 건물의 그늘 안으로 몸을 숨긴 한 여성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엊그제부터 계속 대성을 미행하던 회색 후드의 여자였다.
‘미, 미친!’
그녀는 ‘윗선’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타깃인 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대성의 집 근처에 잠복하여, 사소한 동향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말고 지켜보며 때를 기다릴 것.
그리고 기회가 보이면, 서슴없이 죽일 것.
그것이 그녀가 받은 명령이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외출을 하는 타깃의 뒤를 밟았다.
타깃이 친구랑 만나 고깃집에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다.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만만찮은 타깃이란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타깃이 술을 마시고 정신이 느슨해진 틈을 타, 오늘에야말로 암살을 결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갑자기 게이트 프렉쳐가 터지고 고블린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래, 거기까지도 좋다 치자.
근데 방금 그건 뭐지?
갑자기 타깃이 미쳐 날뛰며 고블린을 혼자 때려잡는 게 아닌가.
만만찮은 놈이란 건 잘 알고 있었고, 조심하라는 경고도 미리 받아 놨다.
그런데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체가 뭐야, 저놈?’
회색 후드 여자가 건물 모퉁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온몸에 피를 흠뻑 뒤집어 쓴 타깃이 인적 없는 밤거리를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어쩌지?’
사람들은 다 대피소로 도망쳤기에 보는 눈은 없었다.
죽이려면 지금이 적기(適期)다.
하지만,
‘만일 실패했다가는…… 그때는 내가 죽을지도 몰라!’
좀처럼 몸이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맨손으로 홉 고블린을 죽이고, 고블린 무리를 잔인하게 몰살하던 그 솜씨.
최소 B급 사냥꾼이다.
자신도 같은 B급 판정을 받았다고는 하나 직감이 알려주고 있다.
저놈은 차원이 다른 놈이라고.
하나 명령을 받은 이상, 언젠간 죽이긴 죽여야 될 목표.
‘……놈은 지금 막 큰 싸움을 치르고 오는 길이야.’
고블린과 어렵지 않게 싸우기는 했지만 어쨌든 체력적인 소모는 존재할 터.
그리고 타깃은 이쪽의 기척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하려면 지금 하는 수밖에……!’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후드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윽고 무광 처리된 검은 권총 한 정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어떤 판정을 받았든지 간에, 사냥꾼도 결국엔 인간.
머리에 총알이 박히고도 살아남을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저런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쓸데없는 기교 따윈 집어치우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게 상책이이었다.
‘빗나가면 안 돼. 단 한 발로…….’
총구가 대성의 뒤통수 한가운데에 정확히 조준되었다.
‘단 한 발로 놈을 조진다.’
슥.
그녀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