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022
[134p에 기록된 장소, ‘망자의 강’이 재현되었습니다.]
[천상의 존재에 의해 망자의 강이 봉인된 상태입니다.]
새하얀 공간이 사라지고, 어느새 대성은 거대한 암굴 속에 있었다.
그는 이 암굴이 귀왕의 영지로 향하는 통로였다는 걸 단박에 떠올렸다.
드넓은 암굴 가장자리엔 피처럼 검붉은 강물이 넘실거리는 중이었다.
망자의 강이다.
이 강을 건너면 귀왕의 영지로 향할 수 있다는 건데, 문제는.
‘배가 없잖아.’
강을 건널 수단이 없다.
암굴이라는 특성상 뗏목으로 엮을 나무는 당연하고, 성인 남성을 실을 만한 발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귀왕의 영지까지 닿은 강의 길이는 20㎞ 남짓.
헤엄을 쳐서 건너는 게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다.
이게 평범한 강이었다면 말이다.
‘마신도 함부로 건너려 했다가는 몸이 녹아버리겠지.’
정확히 말해선 강물에 스민 죽음의 기운이 살아 있는 자의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앗아 가는 것이다.
관자놀이에 총알이 박혀도 멀쩡한 육체라지만 맨몸으로 이곳에 뛰어드는 건 미친 짓.
몸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피골이 녹고 영혼이 증발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리라.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대성은 강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면에 조심스레 손가락을 담가보았다.
칙-
‘곤란하게 됐군.’
피부와 근육이 부식되고 뼈가 드러난 손가락을 보며 대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10초쯤 지나니 근섬유가 정밀하게 이어지고 녹았던 피부에 새살이 돋았다.
그때.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
아이템 구현 퀘스트-1 (진행 중)
‘134p 귀왕의 영혼수감소’
난이도 : 중
내용 : 망령의 강을 점령 중인 천상의 존재들을 박멸하십시오.
제한 시간 : 30분
목표 : 백(白)의 지주 0 / 20
보상 : 악충의 가호
구현화 : 영혼수감소 + 50%
-----
[확인되지 않은 간섭자 발견.]
[제거 승인 대기 중.]
머리 위쪽에서 무기질적인 소리들이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천장을 올려다보니 촘촘하게 박힌 종유석 사이로 새하얀 거미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해선 거미 형태로 빚은 석고 같았다.
<백(白)의 지주-직립형>
종족 : 기계 생명체
「천상의 존재들이 만들어낸 자율 행동 병기입니다.」
[승인 완료, 간섭자를 제거합니다.]
퓩-!
[어떤 마수가 절대자께 경고를 보냅니다!]
시스템 음성이 들려오기 무섭게 무리 중 한 마리가 둥그런 독탄을 뱉어냈다.
총알 같은 속도로 독탄이 날아왔으나, 회피하는 데에는 뒤로 살짝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치이익-
독탄과 닿은 암굴의 지면이 짓물러지고 희뿌연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나 대성의 눈엔 그 어떤 이채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정도면 굳이 성가시게 피할 필요도 없겠군.’
망자의 강처럼 아예 몸을 푹 담가 회복할 틈도 없이 몸이 녹아버리면 모를까.
주먹 크기도 안 되는 독액 한 덩이쯤이야, 피할 가치도 없었다.
퓩-!
물론 그렇다고 넋 놓고 맞아줄 이유 또한 없었고.
천장의 지주 한 마리가 독탄을 뱉어내는 것과 동시에 대성이 심판의 단검을 빼 들어 녀석을 향해 투척했다.
쉭-!
위에서 발사된 독탄과 아래에서 치솟은 단검이 교차하며 서로를 스쳤다.
파각-!
단검은 정확히 지주의 단단한 몸통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치직-! 칙-]
일격을 맞은 녀석이 잡음을 내뱉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쯧.”
대성이 혀끝을 찼다.
독탄에 맞아 녹아내리는 옷깃을 흘겨보며, 그는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은 자신의 판단을 후회했다.
옷깃 너머의 살갗이 증기를 뿜어대며 부식되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되었다.
의복은 그러지 못했다는 게 문제지만.
“망할 새끼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가족이 선물해준 거라는 게 떠오르자 대성의 이마에 피가 확 몰렸다.
그는 방금 바닥에 떨어진 지주를 향해 질주한 뒤, 맨주먹으로 놈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박살 냈다.
빡-!
드러난 단면 안에서 푸른 구슬이 광채를 뿜어내는 게 보였다.
이놈들의 실질적인 생명줄인 코어임에 분명하리라.
파각-!
대성의 솥뚜껑만 한 손이 코어를 우악스럽게 쥔 뒤, 그대로 손가락에 힘을 주어 산산조각 냈다.
퓨퓨퓻-!
한 마리를 죽이기 무섭게 나머지 열아홉 마리가 일제히 기관총처럼 집중포화를 가했다.
‘옷이 녹는 건 못 참는다.’
천장에서 빗발치는 독탄 세례가 대성의 몸에 닿기 일보직전.
파앙-!
대성의 육신이 크게 부풀어 올라 폭풍 같은 마력을 쏟아냈다.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마력의 소용돌이가 방어막이 되어, 비처럼 쏟아지던 독탄을 모조리 튕겨냈다.
퓨퓩-! 퓩-!
놈들이 몇 번 더 독탄을 쏟아냈으나 대성의 몸을 감싼 마력의 불길에 속절없이 가로막힐 뿐이었다.
‘저놈들은 내려올 생각이 없어.’
지주들은 높은 천장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구질구질하게 한 놈씩 일일이 천장에서 떼어낼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면.
‘한 번에 떨어뜨린다.’
슥-
대성은 시뻘건 강기에 휩싸인 두 팔을 들어 올린 뒤, 꽉 쥔 주먹을 바닥에 내려쳤다.
콰아아앙-!
암굴 가득히 벽력이 울리고 지축이 마구잡이로 삐걱거렸다.
쿠르릉-!
진원지를 중심으로 흩어진 충격이 급기야 천장까지 뒤흔들자,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던 종유석이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렸다.
당연히.
[치직- 칙-!]
그곳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던 백의 지주들에게도 영향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쩌적-
금이 간 천장이 넓게 갈라졌다.
지지대를 상실한 거미들이 두세 마리씩 뭉텅이로 바닥에 떨어졌다.
스무 마리 전부가 떨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됐다.’
이제야 놈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생겨났다.
백의 지주가 대성에게 틈을 주지 않은 것처럼, 대성 또한 녀석들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팍-!
튀어 나가,
쾅-! 쾅-!
한 마리씩 착실히 연타를 박아 넣었다.
[치직-!]
파죽지세로 주먹질이 휘몰아칠 때마다 폭음이 요란스레 터져 나왔다.
꽈직-!
대성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백의 지주들이 으깨지고, 허물어졌다.
꽈직-!
외피를 파괴하고, 손을 집어넣어 구슬을 쥔 뒤, 으스러뜨린다. 어렵지 않은 작업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스무 마리째의 배를 꿰뚫고 코어를 부술 무렵, 시스템이 갱신되었다.
[절대자께서 클리어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보상 ‘악충의 가호’가 지급되었습니다!]
[현재 구현율 : 귀왕의 영혼수감소 50%]
시스템 메시지들이 사라지고, 지면에 새하얀 불꽃이 잠깐 타오르다 이내 사그라졌다.
불꽃이 꺼진 자리엔 검은 플레이트 아머 한 벌이 가지런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상으로 주어진 악충의 가호임에 틀림없다.
‘시스템이 하필 지금 방어구를 지급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대성은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보상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보상 정보]
이름 : 악충의 가호
분류 : 방어구
‘백의 지주들을 구성하는 철갑으로 만든 갑옷입니다. 물리 피해 감소 및 망자의 기운에 면역을 가집니다.’
고유 성능1 : 천상의 존재들이 가하는 공격에 한하여 방어력이 20% 상승합니다.
대성의 관심은 고유 성능이 아닌 다른 문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망자의 기운에 면역을 가진다는 건…….’
그는 바닥에 놓인 악충의 가호를 장착하고 싶다고 의식했다.
고오오-
그러자 아머의 주변으로 다시 한번 새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백색의 불길이 산들바람처럼 날아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불꽃이 걷히자 대성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모습이 되었다.
‘번거롭게 일일이 입을 필요가 없어서 좋군.’
대성이 흡족해하며 곧장 망자의 강을 향해 걸어갔다.
아까 그랬던 것처럼, 우선은 수면에 손가락부터 담가보았다.
치익-
불길한 소리가 나긴 했으나 강물은 플레이트 아머의 손가락 부위를 녹이지 못했다.
아이템의 성능을 확인한 대성은 이번엔 좀 더 과감히 강물 깊숙한 곳까지 다리를 집어넣었다.
역시 별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플레이트 아머는 분명하게 강의 저주로부터 대성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그럼…….”
첨벙-!
대성이 수면 안쪽으로 서슴없이 몸을 날렸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대자께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송구스러워합니다!]
[어떤 마수들이 절대자의 뛰어난 수영 실력에 탄복합니다!]
“알면 닥치고 있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물살을 헤쳐서 새카만 통로를 벗어나자 아득한 폐허가 드넓게 펼쳐졌다.
귀왕의 영지.
강물의 끝자락에 도달한 대성은 수면을 벗어나 땅에 발을 디뎠다.
말라붙은 대지 위로 뼈대만 앙상한 고목들이 삐걱거렸다.
‘아무도 없군.’
귀왕이 주둔했던 지역이니만큼, 본래 이곳은 산 자를 사냥하는 망자들이 빼곡히 존재했었다.
하나 천상의 존재인가 뭔가 하는 놈들에게 차원 봉인을 당한 탓일까.
황망한 대지 위로 대성 자신과 고목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귀왕이 살던 고성도 사라졌고.’
대성은 고성으로 들이닥쳐 귀왕을 죽이고 그곳을 자신의 새로운 거주지로 삼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당시에도 혈투의 여파로 고성의 절반가량이 반파되기는 했다.
근데 지금은 아예 건물의 흔적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귀왕의 고성이 사라진 점에 대해 대단히 안타까워합니다.]
귀왕의 고성은 굳이 따지자면 지옥의 랜드 마크 같은 곳이었다.
자신들의 자랑스러웠던 유산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녀석들 입장에선 슬플 수밖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처음에는 고성 안으로 진입한 다음 퀘스트를 수행하는 방식일 거라고 예상했으나, 그건 아닌 모양이다.
일단 무작정 앞을 걸어가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구궁-
땅이 울리기 시작했고,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 올라온다.’
맨틀 깊숙한 곳에서부터 거대한 뭔가가 지하로부터 솟구치는 느낌.
대성은 지면에 닿은 발바닥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근원지가 여기는 아니고…….’
좀 더 앞.
땅을 훑던 대성의 눈길이 슬며시 앞쪽을 향했다.
콰드득-!
그와 동시에 지면이 드높이 솟아오르나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원통 기둥이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다.
<천상의 오벨리스크>
분류 : 건축물
「천상의 존재들이 설계하고 신석을 깎아 만든 건축물입니다. 오갈 데 없는 망령을 잡아 가두는 수용소의 역할을 합니다.」
시야에 들어찬 건물의 크기는 귀왕의 고성보다 조금 작은 정도.
기둥 하단부에는 네모난 타일이 갈라져 있었는데, 마치 출입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기에 들어가면 다음 퀘스트가 시작되는 건가?’
그렇게 예상했으나, 눈앞에 뜬 퀘스트의 정보가 그의 짐작이 틀렸음을 알려주었다.
-----
아이템 구현 퀘스트-2(진행 중)
‘134p 귀왕의 영혼수감소’
난이도 : 상
내용 : 오벨리스크가 생성하는 천상의 피조물들을 제거하십시오.
제한 시간 : 2시간
목표 : 천상의 피조물 0 / 1,000
보상 : 확장의 룬
보상2 : 공적 포인트 + 5,000pt
구현화 : 영혼수감소 + 100%
-----
출입구로 보였던 오벨리스크의 하단부가 쩍 갈라졌다.
키에엑-!
캬아악-!
건축물 안쪽의 심연으로부터 흉험한 울음소리가 마구 들끓었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동포의 변절에 안타까워합니다.]
[어떤 마수가 깊이 침음합니다.]
시스템이 보내는 메시지의 의미는, 심연 바깥으로 울음소리의 정체들이 나타나던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키에엑-!
그것은 사슬이 어지러이 뒤엉킨 백색 철갑을 입은 망자들이었다.
살이 녹아내리고 뼈가 드러나는 형태를 한 인간형의 마수들.
그들은 한때 귀왕이 이끌던 군대의 병사였으나, 지금은 좀 달랐다.
마수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이상, 그들이 한때 귀왕의 병사였던 뭐든 지금은 대성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나 녀석들은 명백히 적대감을 드러내며 그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두두두-!
‘저 기둥 때문이겠지.’
간단한 정황.
오벨리스크라는 저 기둥이 귀왕의 병사들을 변절시킨 것이다.
팡-!
[‘혈귀화’가 발동됩니다.]
[사용자를 반인반마로 우화시켜줍니다.]
[활성화되면 일정 시간당 일정량의 HP를 소모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 및 스킬의 공격력이 300% 상승합니다.]
혈귀화를 발동시켜 붉은 강기를 두른 대성이 주저 없이 놈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쾅-! 열풍과 함께 휘둘러진 대성의 다리가 선두에 선 망자들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목표는 천 마리를 해치우는 것.
만약 이들이 코어를 장착한 기계 생명체였다면 작업이 2배로 늘어나니 성가셨을 터.
하나 이들은 천상의 존재로 둔갑했을 뿐인, 평범한 마수들에 불과했다.
‘이놈들 천 마리가 귀왕 한 마리보다 약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빠각-!
자세도 취하지 않고 엉망진창 주먹을 휘두를 뿐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망자들은 추풍낙엽으로 휩쓸려나갔다.
이때.
키에엑-!
케엑-!
시야의 사각에 위치한 망자들이 길쭉하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대성을 할퀴었다.
캉-!
하지만 유효한 타격은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부러진 쪽은 망자의 손톱이었다.
천상의 존재들에 한하여 20% 추가 상승하는 방어구의 고유 성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대성은 공방일체가 되어 놈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일일이 놈들을 다 상대했다가는 끝이 없다.’
현실과 판테온 사이에 시차가 거의 없다는 걸 알기에, 대성은 좀 더 시간을 단축하고자 했다.
‘오벨리스크의 피조물이라는 건, 이놈들은 저 기둥의 신호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즉, 오벨리스크가 놈들의 커맨드 센터라는 의미.
콱-!
켁-!
대성은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망자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 놈을 방패 삼아 앞으로 들어 올린 뒤, 지면을 밟아 내달렸다.
파바박-!
대성이 브레이크 잃은 대형 트럭을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진을 거듭했다.
그에 전방에 있던 마수들이 그 폭주에 휘말려 날아갔고, 오벨리스크를 향한 활로가 호쾌하게 뚫렸다.
탁-
콰지직-!
오벨리스크 바로 앞까지 당도한 대성은 방패 삼았던 망자의 몸을 반으로 찢어버린 뒤 기둥 하단부를 바라보았다.
카아악!
키에엑!
무저갱처럼 시커멓게 뚫린 입구가 마치 토해내듯이 망자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안쪽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게 좀 더 효과적이겠지.’
대성은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케에엑-?
눈앞의 적이 오벨리스크 안으로 들어서는 걸 허락해버린 망자들이 난색을 표했다.
몇몇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며 오벨리스크를 관망했다.
그 순간.
쿵-
쿵-!
쿵-!!
굳건한 첨탑의 석면에 균열이 새겨지더니, 그것이 이내 뱀처럼 타고 올라 꼭대기까지 주르륵 이어졌다.
급기야.
쾅-!
오벨리스크 내부를 쩌렁쩌렁 울리는 진동과 함께 망자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섞여 나왔다.
키에엑-!!
탑의 바깥에 있었던 망자들은 저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을 참상을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잠시 뒤.
콰- 앙!
높다란 오벨리스크의 꼭대기가 폭발함과 동시에 새하얀 파편들이 어지러이 비산했고,
쿠구구-
내부에서부터 상당한 손상을 입은 첨탑이 중심을 잃더니, 서서히 옆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이내.
쾅-!
오벨리스크가 완전히 땅으로 저묾과 동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간 흙먼지가 망자들의 대군을 휩쓸었다.
커맨드 센터를 상실한 녀석들은 그 먼지 속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퀘스트가 요구하는 할당량인 1,000마리를 채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벅-
대성이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뚫고 나오자,
[절대자께서 클리어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현재 구현율 : 영혼수감소 100%]
[구현화 작업 완료!]
[보상 ‘확장의 룬’이 지급되었습니다!]
[5,000pt의 공적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대성의 분투에 경의를 표하듯이 시스템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시끄러워.”
오히려 대성은 진저리를 쳤지만 말이다.
화륵-
여태까지 쭉 그랬던 것처럼, 불꽃이 타오르며 구현화 아이템과 보상 아이템이 생성되었다.
불꽃은 두 개. 하나는 영혼수감소고 하나는 확장의 룬이리라.
“후우.”
대성이 성취감에 젖은 한숨을 내쉬며 불꽃을 향해 다가선 그때.
“응?”
두 개의 불꽃 옆에서 처음 보는 금색의 빛이 영롱한 광휘를 쏟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