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23화 (23/180)

# 23

023

두 개의 불꽃이 각각 영혼수감소와 확장의 룬이라는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금빛의 광휘는?

‘우선 다른 아이템부터 확인하는 게 좋겠지.’

영문 모를 빛의 정체를 알아내기 이전에 일단은 이곳에 온 목적인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수거.”

대성이 두 개의 불꽃을 향해 시선을 맞추며 짧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맨 왼쪽에 있던 불꽃이 둥실둥실 떠올라 대성의 오른손 중지에 모여들었다.

불길이 가라앉자 자색 수정이 박힌 검은 반지가 대성의 중지에 끼워져 있었다.

[보상 정보]

이름 : 영혼수감소

분류 : 아티팩트

‘귀왕만이 가지고 있던 유일무이한 재보입니다. 반지에 부착된 룬석이 망자의 영혼을 빨아들여 사령으로 전락시킵니다.’

특수 스킬1 [수감] : 지정한 대상이 사망했을 시, 대상의 영혼을 아티팩트 속에 수감할 수 있습니다.

특수 스킬2 [부활] : 수감한 영혼을 사령 병사로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특수 스킬3 [기억 공유] : 지정 사령의 일부 기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수감된 영혼의 양 : 0 / 20]

마신이 단일 개체로서 지옥 최강이었다면, 귀왕은 영혼수감소를 통해 압도적인 머릿수로 지옥의 권좌 중 하나를 지배했던 자.

열람 정보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일개 아티팩트 하나에 무려 세 개의 스킬이 잠재되어 있었다.

물론 스킬의 위력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귀왕이 아닌 대성이 소환하는 사령 병사는 너무나도 약했다.

또 수감 가능한 영혼의 양도 그다지 많지 않고.

빛 좋은 개살구기는 하나, 어쨌든 당초 목적인 ‘시체 수거’와 ‘정보 확보’엔 이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렇다고 스무 마리는 너무 적지 않나 싶지만.’

물론 이런 단점을 보완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가운데에 있는 불꽃이 사그라지며 두 번째 보상이 생성되었다.

이번에 생성된 건 어떤 아이템 형태의 보상이 아니었다.

죽을 사(死)라고 적힌 문자 하나가 지글지글 불타오르며 바닥에 새겨졌다.

확장의 룬.

대성은 영혼수감소를 낀 오른손을 문자가 새겨진 방향으로 내밀었다.

[영혼수감소에 ‘확장의 룬’을 새겨 넣으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대성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내 확장의 룬이 다시 불꽃이 되어 타오르더니 자색 수정안에 흡수되었다.

수정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한층 더 명도를 높였다.

[현재 수감된 영혼의 양 : 0 / 100]

수용 한계치가 정확히 다섯 배 늘어났다.

얼마가 됐든 어차피 시체 처리에만 사용할 거라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챙길 수 있는 건 챙기는 게 현명하지 않겠는가.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망자의 강을 건넌 시간, 그리고 오벨리스크를 무너뜨린 시간을 합하면 30분이 좀 덜 될까?

슬슬 외진 골목 안에 방치했던 시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건 티끌까지 손에 넣고 간다.’

대성의 시선이 마지막 세 번째 금빛 광휘에 고정되었다.

저게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보상 관련해서 시스템이 이상한 함정을 쳤을 리도 없다.

시스템의 가호로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대성은 그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마수들이 빛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기운에 몸서리를 칩니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대자께 신중해지시기를 간청합니다!]

“내가 너희들 말에 따를 의무라도 있나?”

마수들은 흉흉하다고 느꼈지만, 대성에게는 아무런 이상한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불꽃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수거.

팡-!

그러자 빛이 폭사했다.

어지러이 흩어진 빛은 입자 형태로 쪼개져 대성의 왼쪽 손등 위로 응집되었다.

이윽고.

“이건?”

대성이 눈을 치켜떴다.

손등 위에 무언가 표식 같은 것이 새겨졌다.

아니, 언뜻 보기엔 그냥 사선으로 그어진 흉터에 가까웠다.

표식은 표식인데, 단순한 디자인도 그렇고 손등에 새겨진 위치도 그렇고 어떤 문신의 ‘일부’처럼 보이는 형태였다.

그때였다.

댕-

종음이 들려오나 싶더니, 돌연 사위가 빛으로 환해졌다.

“뭐야, 또.”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을 손으로 가리며 대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느샌가 눈앞에는 테두리가 금색의 띠로 둘러싸인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항상 보았던 격렬한 불꽃에 휩싸인 지옥의 메시지랑은 다른 형태의 홀로그램.

[……전에…… 있는…… 한을…… 득하셨…… 니다. 1 / 3]

마치 누군가 지우개로 지우다 만 것처럼 문장 곳곳이 지워져 있었다.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얻은 표식은 이것 말고도 두 개가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 낭비했군.”

관심은 없었지만 말이다.

뭔가 이득이 되어주는 물건인가 싶었는데, 영문 모를 퍼즐 쪼가리라는 사실에 짜증을 금할 수가 없었다.

보상 아이템의 수거를 마친 대성은 곧장 현실로 복귀했다.

***

관악구청 인근에 마련된 대형 대피소엔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난곡동 먹자골목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게이트 프렉쳐를 피하기 위해 다급히 몸을 숨긴 시민들이었다.

불과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쥐 죽은 듯이 시간을 보냈던 그들은, 현재 직원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대피소 바깥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인방 생중계 봤어?”

“와, 장난 아니더라.”

“관할 사냥팀 새끼들은 완전 날로 먹은 거지, 뭐.”

“근데 그 사람 누구야?”

몬스터가 쏟아지고 사냥꾼이 맹활약을 떨친 지 적잖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

대중들은 더 이상 새삼스레 몬스터나 사냥꾼의 존재에 대해 신기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피소를 벗어나는 시민들의 화제는 어느 정체불명의 사냥꾼에게 몰려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등장하여 혼자서 고블린 무리를 휩쓴 이름 모를 영웅!

어느 인터넷 방송 BJ의 영상에 담긴 그 영웅의 맹위는, 순식간에 오늘 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어떡한담.’

딱 한 명.

유일하게 그 영웅의 정체를 알고 있는 성찬호만이 난색을 표할 뿐.

‘이 새끼 진짜 졸라 세네.’

그는 동영상 사이트에 업로드된 영상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화면 속 흐리게 포착된 이는 틀림없이 대성이었다.

사냥꾼이 속보(速步)에 속보를 더하며 날뛴데다 화면을 가리는 인파가 더해진 탓에 사람들은 대성의 생김새조차 간파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놈 이거, 가서 판정 때리면 무조건 B급은 떠. 아, 아니, 어쩌면 A급도 잘하면…….’

대형 클랜의 영업팀장으로서 내리는 확신이었다.

‘근데 이 새끼 어디 다친 곳은 없겠지?’

불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문득 그런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곧장 휴대폰을 꺼내 대성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삐리리-!

성찬호는 마침 액정에 뜬 ‘이 실장’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실장님.”

[집이니?]

“아뇨, 아직 밖입니다.”

[그래? 그럼 잠깐 이거 끊고 톡으로 링크 보낸 거 확인해. 그거 보고 얘기하자.]

“그렇지 않아도 방금까지 막 보던 참에 실장님 전화 받은 겁니다.”

[오?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

이 실장이 잠깐 텀을 두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걔, 수소문해서 신상 파악한 다음에 우리 클랜으로 영입하자.]

“…….”

기름기 쫙 뺀 깔끔한 직구였으나, 성찬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

[재보지 않아도 딱 모양이 나와. 딴 놈들한테 가로채이면 땅을 칠 인재란 게. 그렇게 생각 안 하냐?]

“이미 딴 놈들한테 가로채였으면 어쩌려고요.”

그럴 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성찬호는 일단 그렇게 물었다.

[아, 그런가? 하긴, 저 정도 보배면 이미 딴 놈들이 침이고 뭐고 다 발라놨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한 99퍼센트쯤?”

[백 퍼센트는 아니란 거네?]

“…….”

[우리가 선수 칠 확률이 1퍼센트씩이나 있으면 혜자지 뭐. 성 팀장아, 괜히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말고 예스인지 노인지 대답이나 빨리 해줘.]

그의 의견이 어쨌든, 이 실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성을 영입할 모양이다.

“노, 라고 하면 저보고 뭐라 할 거잖아요.”

[정확하네.]

“아니, 근데 실장님. 99퍼센트가 괜히 99퍼센트가 아니에요. 진짜로 걔가 다른 클랜에 소속된 사냥꾼이면 어쩌시려고…….”

[앞에 골키퍼 있다고 배 깔고 드러누울 거니?]

저놈의 막가파 성격에 맞추느라 빠진 머리털을 모으면 시커먼 솜사탕이 나오리라.

근데 이번만큼은 그 막가파에 어울려줄 수가 없다. 성찬호는 제대로 선을 긋기로 했다.

“업계 상도에 어긋나요.”

[일일이 그런 거 따지면 우리 장사 못 한다. 책임은 내가 지고 비용은 클랜이 지니까, 성 팀장은 그냥 접촉이라도 어떻게든 해봐.]

성찬호는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애써 시치미를 떼, 화면 속 인재가 그의 베스트 프렌드라는 걸 숨기기는 했으나…….

솔직히, 본인도 이 실장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건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가 속한 <소울> 클랜은 국내 대형급 클랜이기는 하나 업계의 톱은 절대 아니었다.

상위 10순위의 대형 클랜 중 제일 끄트머리에 위치했으니까.

조금만 삐끗하면 그 순위에서마저 물러날 판.

이 실장이 집요하게 구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리고 자신이 몸담은 직장의 이름값이 떨어지는 건 성찬호도 바라지 않았다.

대성은 강하다. 그건 분명하다.

협회로 가서 제대로 판정을 받고, 그때 만약 A급이 나온다면 <소울> 클랜에 크나큰 전력이 될 터.

S급만큼은 아니어도 대한민국에서는 A급 사냥꾼도 굉장한 희소가치를 지녔으니까.

하지만…….

‘멋대로 행동하지 마, 성찬호.’

성찬호는 본인 스스로를 강하게 다그쳤다.

이 실장의 염원에 따라 대성과 아는 사이임을 어필하고 그를 클랜에 데려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성에게도 딱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실장 말을 들어보니, 일단 영입만 되면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해줄 게 뻔하다.

그런데 그건 너무 이기적인 짓 아닌가.

아직 대성 본인의 의사도 듣지 않았을뿐더러, 심지어 그는 자기가 각성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막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개판으로 돌아가는 세상사에 완전히 적응하지조차 못했는데.

그런 녀석을 자신이 멋대로 이 실장한테 소개한다?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얼마 전, 대성의 병문안을 갔을 때 괜히 들떠서 게이트 시커 얘기를 꺼냈던 적이 있다.

성찬호는 경솔했던 스스로를 아직도 후회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아.’

우선은 이 실장 몰래 대성에게 의사를 묻고 난 뒤에 일을 진행해도 늦지 않는다.

그게 올바른 순서다.

[성 팀장? 왜 갑자기 말이 없어. 지금 어딘데.]

“관악구청 근처요.”

[뭐? 네가 왜 거기 있어?]

“아니, 뭐. 친구랑 약속 잡은 장소가 거기였으니까요.”

[그럼 지금 대피소야?]

“방금 막 나와서 집 돌아가는 길입니다.”

바로 그때.

이 실장의 목소리가 흥분을 띠기 시작했다.

[그, 그럼 성 팀장도 거기 현장에 있었다는 거네? 야 이, 그걸 왜 지금 말해! 어때? 좀 뭔가 건질 만한 건 없었니?]

“…….”

시원스레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성찬호가 피식 웃었다.

“없었죠.”

***

같은 시각.

판테온에서 퇴장해 현실로 돌아온 대성은 일단 주변부터 살폈다.

그림자에 집어삼켜진 것처럼 새카만 골목 속엔 아무도 없었다.

‘고블린이라고 했었나.’

혼비백산하던 시민 중 누군가의 입에서 고블린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온 걸 들었다.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른다.

어쩌다자신이 없는 10년 사이에 그런 놈들이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다만 사람들은 그놈들을 두려워했고, 그놈들이 나타난 뒤로 길거리에 인적이 뚝 사라졌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나야 좋지.’

대성은 후드 여성의 시신을 유기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손을 뻗었다.

“응?”

그러다 문득, 앞으로 뻗은 팔을 보고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

그는 분명 악충의 가호를 입고 판테온에서 퇴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플레이트 아머가 아닌 아까 집을 나섰을 때 입고 있던 외출복 차림이었다.

‘시스템은 분명 구현화를 완료했다고 했는데?’

딱히 그 갑옷에 미련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고생 끝에 얻은 아이템인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으면 기분이 더럽지 않은가.

‘젠장, 뭐지?’

괜히 짜증이 솟은 대성이 오른팔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깡, 깡-

“음?”

보통 천 소재의 옷을 건드릴 때 깡깡, 하는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하나 대성은 얼마 안 가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짐작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현실로 돌아왔을 땐 외관이 드러나지 않나 보군.’

무기였던 심판의 단검이랑은 달리, 방어구인 악충의 가호는 현실에선 장착을 해도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계속 입고 있는 게 좋겠어.’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했던가.

지금부터 그가 해야 될 일을 생각하면 그편이 더 좋으리라.

덜컹-

대성은 쓰레기통의 뚜껑을 위로 열어젖혔다.

후드 여성의 사체는 그 안에 착실히 유기되어 있었다.

아직 보는 눈은 없다.

대성은 오른 중지에 끼워둔 영혼수감소를 바라보았다.

악충의 가호와 마찬가지로 아티팩트인 영혼수감소도 투명해진 탓에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지에 감촉이 느껴지는 걸 보니 영혼수감소 또한 무사히 구현됐음이 분명했다.

“수감.”

그 순간.

고오오-!

후드 여성의 시체가 통째로 재가 되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반지 위의 자색 수정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영혼수감소는 망자의 몸에서 빠져나온 거라면 무엇이든지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빨아들였다.

심지어 골목 어귀에 뿌려져 있던 여성의 혈흔과 떨어져나간 살점마저.

잠시 뒤.

현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해졌다.

“사령 병사 소환.”

[사령으로 부활시킬 영혼을 선택해주십시오. 1. <지구인1>]

영혼수감소는 네임드로 특정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저렇게 종족명으로 카테고리를 묶었다.

대성은 지구인1이라고 명명된 후드 여성을 사령으로 부활시켰다.

반지를 낀 중지에서 칠흑색 연기가 으스스하게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는 수면과 섞인 먹물처럼 허공 위로 퍼지더니, 이내 인간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툭!

그어어-

전신이 썩어 문드러진 사령이 바닥에 널브러져 서늘한 냉기를 토해냈다.

녀석은 인간의 형체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을 뿐, 후드 여성의 외견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령은 움직이기만 하는 빈껍데기일 뿐. 실질적으로 영혼을 소유한 자는 나다.’

그리고 그 영혼과 공명함으로써 사령이 생전에 지녔던 기억을 엿보는 것이다.

영혼과 공명하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했다.

그어어-

컥?

사령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선 대성이 녀석의 턱을 부여잡았다.

“누구냐.”

그가 사령의 텅 비어 있는 눈두덩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뒤에서 사주한 벌레 새끼는.”

바로 그때.

화르륵-!

교차되는 둘의 시선 사이로 푸른 불꽃이 튀었다.

어떤 만화적 비유 같은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불꽃의 선이 생겨났다.

사령이 지닌 기억이 선을 타고 대성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부르셨습니까.-

-어, 그래. 수영아. 미안한데 네가 수고 좀 해줘야겠다.-

어느 건물의 사무실 내부.

한 풍채 좋은 남자가 후드 여성을 부르고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주르륵 펼쳐졌다.

남자의 이름은 강현도.

신흥동파의 두목이었다.

대성이 보는 기억은 후드 여성의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명령을 받은 그녀가 건물 입구를 나선 뒤 담배를 입에 물더니,

-개새끼. 하여튼 성가신 일은 나한테 다 떠맡겨요.-

고개를 뒤로 슥 돌리며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덕분에 대성은 건물의 외관을 훤히 파악할 수 있었다.

외관 자체는 얼마 전에 뒤엎었던 사채업자들의 사무소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대성은 그밖에도 얻을 수 있는 단서들은 꼼꼼히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주변의 풍경, 기억 속에 기록된 건물의 세부 주소지 등.

하나하나, 전부.

‘건물에 있는 CCTV도 전부 모형이군.’

이젠 더 이상 뒤탈을 남기지 않으리라 교훈을 얻은 대성이 건물의 CCTV 상태까지 확실히 확인했다.

좀 더 시간이 흘러.

-미쳤어, 미쳤어! 저 새끼는 괴물이야! 저딴 걸 어떻게 내가……!-

가뿐 숨소리와 함께 1인칭 시야가 아찔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안면에 들이닥치는 벽돌과 이내 옆으로 확 꺾이는 풍경을 마지막으로 암전이 펼쳐졌다.

그녀가 절명하는 순간이 담긴 최후의 기억이었다.

필요한 정보를 확보한 대성이 사령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신흥동파의 본거지까지 가는 경로는 지금 엿본 기억을 통해 생생히 알 수 있었다.

“3분이면 도착하겠군.”

이젠.

잠자는 맹수를 건드린 개새끼들을 몰살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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