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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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이 왜 사회악이라 불리는가.
당연히 그들이 사람들에게 ‘공포’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도 다 옛날 얘기.
정체불명의 게이트를 뚫고, 아예 종족 자체가 다르며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몬스터가 등장한 오늘날.
조폭은 더 이상 시민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대에서 조폭들이 괴멸하지 않고 그나마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수영이 말고 우리 조직 내에 각성자가 몇 명 정도 있지?”
협회로부터 범죄 등의 이유로 자격 권한을 박탈당한 사냥꾼을 조직원으로 포섭해서 전력 증진을 꾀하거나.
혹은, 지하경제에 눈독을 들이는 클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거나.
“한 열댓 명 정도……. B급이 3명, 나머지는 전부 C급입니다만.”
“수영이도 B급이었지?”
“네.”
“우리 조직 각성자 중에 수영이 정도면 꽤 쓸 만한 편에 속할 텐데…….”
강현도가 초조한 눈으로 휴대폰의 메시지함을 바라봤다.
“이 녀석, 왜 오늘은 연락이 없느냔 말이야.”
신흥동파의 대표적인 자금 수입원 중 하나였던 대부업이 어떤 미친놈 하나한테 박살이 나버렸다.
강현도는 그 미친놈이 만만한 미친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단 그때 현장에 있던 부하가 죽기 직전에 보낸 사진을 통해 놈의 신원을 겨우 캐낼 순 있었다.
사진으로 봐도 피비린내가 절로 나는 것 같은 참상에, 강현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수영이 무사히 이 또라이 새끼를 족쳐야 할 텐데…….’
문제는.
[사장님, 타깃이 친구와 만나 고깃집에서 밥 먹고 있습니다. 잘하면 오늘 조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진행되는 대로 계속 보고드리겠습니다.]
이 문자 이후로 그 미친놈을 암살하기 위해 보낸 정수영에게서 연락이 없다는 거다.
슥-
강현도는 엄지로 스크롤을 밀어 올리며 이전 로그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녀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꼼꼼히 타깃의 동향을 일거수일투족 보고했다.
보고는 됐으니까 제발 빨리 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너편 동네에서 게이트가 터졌다는 말은 듣긴 했다만, 그거랑 정수영한테서 연락이 없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그런데 그런 정수영한테서 갑자기 보고가 뚝 끊겼다?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사장님이 예상하신 것보다 훨씬 만만찮은 놈인데요, 이거. 최대한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정수영이 그를 처음으로 미행했던 날 보낸 문자다.
‘B급 사냥꾼 상위였다던 정수영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하다는 건데…….’
차갑게 식은 땀방울이 강현도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정수영이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에 ‘오늘 조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결행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결과 보고가 아직까지도 오지 않는다는 건…….
‘설마 당한 건 아니겠지?’
강현도가 그렇게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던 중.
“으, 으아아!”
“X발! 씨이이발!”
“막아! 막으라고, 새끼들아! 위층에 못 올라가게 해!”
“살려줘! 보지만 말고 나 좀 살려달라고 이 새끼들아!”
난데없이 사무실 아래층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부정적인 상념에 젖어 있던 강현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같은 사무실 안에 있던 보좌관 조직원을 향해 물었다.
“…….”
하지만 보좌관 또한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비규환이 들려오는 문만 바라볼 뿐이었다.
***
불과 1분 전.
징-
1층 로비의 자동문이 활짝 열렸다.
“응?”
로비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조직원 두 명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굳이 이 시간에 방문할 관계자는 없을 텐데?
하지만 그 의문은 자동문을 지나치고 건물로 들어온 존재를 본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어어-
온몸에 먹물을 흠뻑 뒤집어쓴 것처럼 새카만 인간이었다.
놈은 기괴하고 음울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연신 뱉어냈다.
마치 좀비 같았다.
“…….”
“…….”
경비를 선 조직원이 다른 한 녀석한테 가보라고 눈짓했다.
녀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좀비를 향해 다가갔다.
“좀비도 아니고 이 꾀죄죄한 새끼가 어디라고 여길 함부-”
콰직-!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좀비가 팔을 휘저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직원의 얼굴 가죽이 절반 이상 뜯겨나가는 데는.
털썩!
조직원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뭔……!”
순식간에 동료가 죽은 걸 본 경비 조직원은 패닉에 빠졌다.
그어어-
부패한 피부 위로 좀비의 안광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직후, 좀비가 패닉 상태인 경비 조직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 으아아!”
하나 그도 눈 뜨고 죽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공포감 이상으로 압도적인 저항 본능이 그를 움직인 것이다.
“이, 이 새끼! 너 뭐 하는 새끼야!”
그가 허리춤에서 회칼을 꺼내 들어 좀비에게 휘둘렀다.
콰직-!
서슬 퍼런 회칼의 끝이 좀비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팍-! 시커먼 체액이 튀고, 좀비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경비 조직원은 좀비의 몸 위로 올라타며 웃는 건지 화내는 건지 모를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하. 이, 이 새끼가……. 뭐,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넌 진짜 오늘 제대로 좆-”
그때였다.
푹-!
험한 말을 뱉으려던 그의 얼굴 정중앙을 뚫고, 단검 한 자루가 쑥 튀어나왔다.
녀석이 좀비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건물 안으로 들어온 대성이 뒤통수에 단검을 찔러 넣은 것이다.
촤악-!
대성이 단검을 뽑아내자 핏물과 뇌수가 뒤엉킨 액체가 실타래처럼 길게 이어졌다.
“명령을 내리지.”
대성이 바닥에 한가득 선혈을 흩뿌리며 죽은 경비 조직원을 발로 쳐냈다.
그 아래에 깔려 있던 좀비, 아니, 사령 병사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대성은 경비 조직원이 가지고 있었던 회칼을 사령 병사에게 건넸다.
“넌 내 뒤를 따라오면서 숨이 붙어 있는 놈이 있으면 이걸로 죽여라.”
그어어-
대성에게서 회칼을 건네받은 사령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에게는 이 정도 임무가 적당했다.
‘옆에서 날 거들어줄 만큼 강하지는 않군.’
몬스터도 아니고, 일개 깡패한테도 일격을 허용해버리는 방금 모습이 그 증거였다.
역시 귀왕이 아닌 자가 통솔하는 사령 병사는 약했다.
‘뭐, 고작 이깟 일에 이놈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껏 만든 사령 병사니 최대한 써먹고 싶었다.
행여 살아 있는 녀석이 있으면 안 되니 확인 사살을 대신 해줄 용도로만.
‘사령 병사의 쓸모는 그거면 충분하다.’
그가 지금 죽인 두 명을 굳이 사령 병사로 되살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약하고, 거추장스럽고…….
무엇보다 대성은 본인 손으로 직접 벌레들을 찢어버리고 싶었으며,
“뭐야, X발!”
“억!”
“누, 누구야! 넌!”
아래층 로비의 소동을 듣고 몰려온 벌레들 앞에서, 일일이 사령 병사를 제조하는 것도 구질구질하니까.
휘릭-
대성이 손에 든 심판의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
“밖이 소란스럽군.”
신흥동파에 속한 B급 각성자 윤도철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쾅, 쾅-
콰직-
으아악-!
문 바깥이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와 조직원들의 절규로 시끌벅적했다.
“…….”
다른 조직과 항쟁이 있을 거라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바깥의 침입자는 관계자 외의 인간이라는 건데, 윤도철은 내심 녀석의 정체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보나 마나 그 새끼군.’
어떤 사이코 한 마리가 대금업을 운영하던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뒤엎었다.
조직원을 몰살한 것도 모자라 금고 안의 돈까지 빼앗아 간 그 사이코에겐 척살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지금, 침입자 한 명이 건물에 쳐들어와 난장판을 피운다.
직접 보지 않아도 정황이 뻔했다.
침입자의 정체가 그 사이코란 게.
‘……암살자로 정수영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저놈이 여기에 있다는 건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군.’
정수영은 그와 마찬가지로 조직 내에서 가장 강한 B급 각성자였다.
한데 그런 그녀조차 죽이지 못했다는 건, 저 사이코의 힘이 만만찮다는 의미일 터.
‘과연 내 앞에서도 날뛸 수 있나 보자고.’
우두둑-
전의를 되새긴 윤도철의 몸이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걸치고 있던 새하얀 티셔츠가 군데군데 찢어지며 바윗돌처럼 단단한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성자의 능력을 발동해 일시적으로 근육을 증폭시킨 것이다.
정수영은 강했다. 하지만 그녀의 각성 능력은 암습에 특화되어 전면전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능력을 발동한 지금이라면 한 손으로 트럭을 뒤집는 것도 가능했다.
‘아주 그냥 몸통과 다리를 분리시켜주마.’
쾅-!
그가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자 문짝이 통째로 날아가 맞은편의 벽에 부딪쳤다.
저벅-
한 발짝 내디딘 윤도철은 모퉁이에서 고개를 돌려 복도 쪽을 보았다.
“응?”
끔찍한 모습으로 육체가 훼손된 조직원들의 시체가 복도 바닥에 줄을 잇고 있었다.
풍겨오는 피 냄새가 어찌나 비릿한지, 무심코 코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였다.
근데 이 정돈 예상했다.
문을 나서면 아수라장이 펼져져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윤도철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뭔가’가 저 멀리 시체들 사이에서 붉게 눈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어어-
‘뭐, 뭐야. 저건?’
그것은 검은 무언가였다.
사람? 아니, 저런 건 결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부패된 살이 뚝뚝 흘러내리고, 입으론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푹, 푹-!
이미 죽은 게 뻔히 보이는 시체들을 회칼로 찔러대는 그 모습은 절대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좀비?
‘저, 저게 그 사이코 새끼인가?’
저번에 두목이 얼핏 보여줬던 사진 속 이미지랑은 다른 모습에 윤도철이 당황하던 순간.
콰- 앙!
윤도철이 서 있던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던 측면의 벽이 부서졌다.
어지러이 비산하는 파편 사이로,
훙-!
퍼걱-!
인영(人影) 하나가 재빠르게 튕겨져 날아가 맞은편 벽과 충돌했다.
“……?!”
윤도철이 급작스런 상황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방금 벽을 뚫고 날아온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런 개 같은.”
정체를 확인한 윤도철이 자기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인영의 정체는 목이 없는 시체였으니까.
목 없는 시체는 알로하셔츠를 입고 있었다.
신흥동파에서 이런 괴멸적인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는 녀석은 한 명밖에 없다.
그와 정수영에 더불어, 조직 내 세 명밖에 없는 B급 각성자 이도원.
‘설마-’
그 이도원이 당했단 말인가?
아니, 그럼.
침입자는 한 놈이 아니란 건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 윤도철의 의문은,
저벅-
직후에 이어진 짧은 발소리가 모조리 종식시켰다.
저벅-
한 사내가 허물어진 벽의 파편을 밟고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의 사내였는데, 온몸에 시뻘겋게 피가 말라붙은 탓에 백발이 아니라 적발처럼 보일 정도였다.
“…….”
“…….”
윤도철과 백발 사내의 시선이 교차했다.
식은땀 한 방울이 윤도철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는 천천히 눈동자를 아래로 굴려 백발 사내의 손을 바라보았다.
시퍼렇게 눈을 뜬 채 잘린 이도원의 목이, 백발 사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놈이다.’
이놈이 그 사이코다.
마치 세상이 슬로모션으로 흐르는 것만 같은 순간.
윤도철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너 이 개새-”
하지만 그게 생애 남긴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푸우욱-!
“꺽-?!”
백발 사내가 윤도철의 목젖에 단검을 찔러 넣었으니까.
윤도철의 숨통이 콱 조여들었다.
내뱉어야 될 숨이 가슴팍 부근에서 턱 막히고 시야가 흐려졌다.
윤도철이 목울대에서 핏물을 왈칵 쏟아내며 마지막으로 본 것은.
“허억, 헉……!”
감정 없는 눈으로 자신을 무심히 응시하는 백발 사내의 붉은 동공.
푹-!
푹-!
그리고 백발 사내의 어깨 너머로 정체 모를 좀비가 시신들의 몸에 열심히 단검을 찔러 넣는 광경이었다.
마치 시체를 파먹는 까마귀처럼.
죽기 전에 최후로 보는 광경치고는 악몽이 따로 없었다.
***
윤도철의 두 팔이 축 늘어지는 걸 확인한 대성이 놈의 목울대에 꽂힌 심판의 단검을 쑤욱 뽑아냈다.
‘지금쯤 열심히 도망치고 있겠지. 강현도.’
적잖은 소란을 피웠으니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피난길에 올랐을 거다.
물론 놈이 내일의 태양을 보게 할 생각은 없었다.
“수거.”
대성이 손을 내밀며 명령어를 중얼거린 순간.
슈와악-
복도에 한가득 널브러진 시신들이 가루가 되어 영혼수감소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현재 수감된 영혼의 양 : 32 / 100]
‘아직 여유롭군.’
영혼수감소는 시체뿐만이 아니라 그 시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육편까지 전부 빨아들인다.
그래서 대성은 조직원의 수가 100명을 초과할 경우를 걱정했었다.
그때는 용량이 꽉 찬 영혼수감소가 시체와 그 흔적을 흡수하지 못할 거고, 그렇게 되면 뒤탈이 남게 될 테니까.
‘이런 부분에선 지옥에 비하면 조금 귀찮군.’
죽이면 그냥 죽이는 거지.
그 뒤처리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이 대성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영혼수감소 덕에 그 많던 시체가 지금은 깨끗하게 소멸되었다. 핏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슥-
강현도를 쫓으려던 대성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시체들이 전부 사라지자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사령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후각은 굉장히 뛰어나지. 죽은 자, 산 자를 정확하게 구분해낼 정도로.’
사령 병사는 죽은 영혼과 살아 있는 영혼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었다.
전면전에는 무용지물이어도, 정찰이나 수색 같은 전략적인 측면에선 쓸모가 꽤 많은 셈.
이를 테면,
“온전히 숨을 쉬는 자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라.”
이 건물 어딘가에 있을, 바퀴벌레를 찾아내는 작업에 말이다.
그어어-
사령 병사가 코를 벌름거리며 대성의 어깨 옆을 지나쳤다.
마약탐지견처럼 킁킁대는 녀석을 향해 대성이 짤막하게 덧붙였다.
“그놈이 있는 방향을 향해 뛰어라. 그리고 붙잡아라.”
명령이 떨어진 그 순간.
파바박-!
지금까지 흐느적거리기만 했던 사령 병사가 두 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골격이 약해 평소엔 걸어 다니는 녀석이지만, 어쨌든 내 명령에는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으니.’
주인이 달리라면 달릴 수밖에 없는 게 사냥개의 숙명인 법.
탁-!
목표물을 향해 달려 나가는 사냥개의 뒤를 따라 대성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