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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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벌어진 난곡동 먹자골목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중이었다.
군인 몇 명이 사건 현장을 수습하고 있었고, 통제선 너머로는 시민들이 그 광경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참사라고는 하지만 인명 사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매스컴은 난곡동에서 발생한 게이트 프렉쳐를 ‘참사’라고 표현했다.
다른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현장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와, 개판 났네, 진짜.”
“어우, 야 저기 떨어진 거 저거 고블린 팔 아니야? 나 토할 것 같아.”
“뭔 냄새야, 이거.”
“피비린내 아니야? 여기 근처 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분간 장사 접어야겠네.”
통제선 앞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눈앞의 참경과 짙은 피비린내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체불명의 사냥꾼이 휩쓸고 간 자리에 흥미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니 과연.
“완전 미친놈이었나 봐….”
구경꾼 중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현장 여기저기에 널린 고블린들의 찢겨나간 사지부터 흩뿌려진 뇌수까지….
사냥꾼이란 직업은 대개 프로페셔널하고, 철두철미하고, 깔끔하다는 세간의 인식이 모조리 증발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아이 씨, 뭐야. 밀치지 마.”
“잠깐만요, 잠깐만요. 좀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그때 한 남성이 인파를 헤집으며 현장 안으로 들어섰다.
대피소를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난곡동으로 달려온 성찬호였다.
그가 통제선을 넘으려고 하자 근처에 있던 군인이 급하게 제지를 가했다.
“엇, 선생님.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
“아, 밤중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 다른 게 아니라요.”
성찬호가 예상했다는 듯이 코트 안에 있던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소울 클랜> 영업1팀 대리.
성찬호.
지나가는 어린애도 이름 정돈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형 클랜 쪽 관계자.
명함에 적힌 직급과 이름 석 자를 본 군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순간 말을 잇지 못하는 군인을 향해 성찬호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잠깐 이쪽 현장을 살펴보라고 저희 쪽 윗선에서 오더가 떨어져서요. 그래서 잠시 구경만 좀 해도 되겠습니까? 하시는 작업들, 제가 방해는 안 할 테니.”
“어…….”
그 말을 들은 군인은 지척에 있던 선임을 향해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휘적휘적.
얌전히 그냥 들여보내라는 신호가 돌아왔다.
“네, 선생님. 그럼 이쪽으로…….”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성찬호는 경례 사인을 보낸 뒤 아까 있었던 고깃집으로 향했다.
“쉬- 벌. 우리가 청소부 노릇 하려고 짬밥 처먹는 줄 아나.”
“야, 여기 있는 골 조각은 네가 주워라. 난 비위 상해서 더는 못 해먹겠다.”
보아하니 고블린 육편들을 집게로 집어 수습하는 군인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게 다 그의 불알친구가 저지른 짓이라는 걸 저들이 알면 얼마나 까무러칠까.
성찬호는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 나 이 새끼. 좀 살살하지.’
성찬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런데 전화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대성이 보이지 않았다.
괜스레 마음이 초조해진 그가 휴대폰을 꺼내려던 찰나.
“어어! 저 사람 누구야!”
“이봐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번호판을 두드리다 말고 눈길을 홱 돌리자, 군인들이 기겁을 해대며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방향의 끝에는 피투성이 남자가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오직 성찬호만이 그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 친구지만 내가 봐도 무섭네.’
시뻘건 피가 거구에 달라붙은 그 모습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그건 그거고, 얼른 가서 상황을 수습하는 게 급선무일 터.
후우-
성찬호는 한숨을 쉰 뒤,
“대성아! 야, 한대성!”
다짜고짜 절박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리 외치며 대성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재빠르게 군인들을 제치며 대성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피 냄새, 땀 냄새 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그는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 대성이. 너 인마! 무사했구나! 연락이 안 돼서, 인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얼떨떨해진 대성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벙벙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군인 중 한 명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물었다.
“저…… 이게 대체.”
“제 친구입니다! 여기 현장에 있다가 그만 대피소로 못 갔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달려온 거라…….”
“아, 혹시 여기 인근에 숨어계셨던 생존자십니까?”
“네, 그럼요. 아, 다행이다. 십년감수했네. 야, 대성아. 일단 병원 가서 진찰부터 받아보자.”
훌륭하게 연기를 선보인 성찬호는 대성을 부축한 뒤 슬그머니 현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때, 군인 한 명이 다급하게 그를 멈춰 세우려고 했다.
일단 현장에서 생존자가 발견됐으면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
“저기-”
탁.
하지만 말을 꺼냅기 무섭게 그 군인의 선임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보내. 그냥.”
“하지만 절차가-”
“대형 클랜에서 나온 사람한테 절차는 뭔 놈의 절차. FM도 사람 봐가면서 해.”
“으음, 알겠습니다.”
군인 둘이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성찬호와 대성은 무사히 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
칙-
라이터의 부싯돌이 돌아가고 담뱃불이 타올랐다.
후우-
성찬호가 열려 있는 차창 밖으로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슥.
조수석에 앉은 대성이 말없이 손만 내밀었다.
그 너무나도 알기 쉽고 뻔뻔스런 신호에, 성찬호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담배를 건네주고 손수 불까지 붙여주었다.
“후-”
고생 끝에 피우는 담배는 맛이 정말 각별했다.
자신을 노리던 벌레 새끼들을 박멸하고 산뜻해진 어깨가 니코틴의 힘을 받고 더욱더 가벼워졌다.
대성은 홀쭉하게 볼을 부풀리며 담배를 뻑뻑 태웠다.
연기 내뿜는 소리밖에 안 나는 정적 속에서 성찬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너 그거…… 필터까지 피우지 마. 폐 썩겠다.”
“괜찮아.”
“내가 너한테 뭔 말을 하겠냐. 그래, 피워라 피워. 아예 그냥 씹어 먹어라.”
외진 골목 안에 주차된 아우디 근처는 몹시 조용했다.
듣는 이 없고, 보는 이도 없다. 대성과 성찬호만이 단둘이서 밀담을 나누었다.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엄마가 걱정해.”
“새끼야, 걱정만 하시면 다행이지. 지금 네 모습을 어머님이 봐봐라. 백퍼 혼절하실 거다.”
“지금 내 모습?”
그 말을 들은 대성이 시선을 내려 이곳저곳을 살폈다.
사지란 사지엔 온통 피가 말라붙었고, 티셔츠 옷자락엔 고블린의 살점들이 질펀하게 묻어 있었다.
더불어 성찬호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 새끼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세차 값은 꼭 받아낸다.’
대성이 앉은 조수석 시트가 벌겋게 물드는 광경을 보며 성찬호가 눈물을 삼켰다.
“지금 네 꼴이 어떤지 좀 알겠냐? 알겠으면 우리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싸고 내일 아침에 가. 어머님한테는 그렇게 말해두고.”
“그래야겠다.”
확실히 이런 악귀 같은 꼴을 하고 집에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대성의 대답을 확실히 받아낸 성찬호는 그제야 시동을 걸고 외진 골목을 빠져나갔다.
부르릉-
아우디의 배기음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텅 빈 밤길을 내달렸다.
성찬호가 다음 말을 꺼낸 건 터널 안으로 접어든 뒤였다.
“안 물어보네?”
정확히는 질문이었다. 대성이 벌써 세 개째 담배를 물며 되물었다.
“뭘.”
“아까 그거 있잖아. 고기 먹다가 튀어나온 놈들.”
고블린을 말하는 거였다.
뭔가 했는데,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이야기라 대성은 흘려 넘겼다.
그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성찬호가 혼자 멋대로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딱, 너 쓰러지고 난 해에 벌어진 일이야.”
10년 전.
세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이트가 나타나고 다른 차원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그 몬스터에겐 현대 병기가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몬스터를 죽이고 채취한 에테르를 정제해서 제련한 무기로만 죽일 수 있다.
정제한 에테르는 오러라는 물질로 성질이 바뀌고, 그걸로 개인 병기를 만든다.
바로 오러 웨폰이다.
“그런데 그 오러 웨폰이라는 게, 개나 소나 쓸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오러의 힘과 ‘감응’할 수 있는, 일부 선택받은 인간.
그들이 바로 ‘각성자’다.
“그리고 그 각성자란 것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서 된 게…….”
“후우-”
“……사냥꾼이라고 하는 놈들인데 너는 지금 내 얘기를 들어가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겠지, 지금?”
“듣고 있어.”
다만 지루할 뿐.
고리타분하고, 아무런 자극도 되어주지 못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지옥에서 보냈던 80년, 그리고 지구에서 흐른 1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건 알겠다.
그 변화란 게 괴물의 등장, 그리고 그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는 인간 군상을 의미하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지루하고 따분하군.’
이미 80년을 숨을 쉬고 신체 활동을 하는 1분 1초 매 순간 지옥의 마수와 싸워왔던 대성이었다.
그에게 무슨 괴물이 있다느니, 사람들이 그 괴물과 싸우고 있다느니 같은 얘기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80년이란 시간이 그의 신경을 무덤덤하게 만든 걸지도 모르고.
“…….”
대성이 차창 너머 빠르게 스쳐 가는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옆에선 성찬호가 열심히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냥꾼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협회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산업 체계가 재구축됐다느니, 사냥꾼들끼리 팀을 짜서 클랜을 만들었다느니, 같은.
“그래서 대성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도 대성은 꼬박꼬박 반응해줬다.
“어.”
“너 사냥꾼이 될 생각은 없냐?”
“사냥꾼은 각성한 놈들만 될 수 있다면서.”
“그래. 그러니까 될 생각 없냐고.”
“난 각성 같은 거 한 기억 없는데.”
“아냐, 너 분명 각성했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척하면 척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오러 웨폰도 없이 맨몸으로 고블린을 죽일 수는 없었다.
확신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성찬호를 흘겨보며, 대성이 꽁초를 차창 밖으로 튕겼다.
“난 별로 생각 없는데.”
“생각이라도 하는 티를 내고 생각 없다는 말을 해라, 좀.”
전면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사냥꾼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즉, 성찬호는 이제 막 퇴원한 불알친구에게 목숨 거는 일을 해보라고 종용하고 있는 셈.
물론 본인과 같은 클랜의 사무직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고, 그 말을 전하려고 오늘 고깃집에서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대성이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홉 고블린을 때려눕히고, 단 하룻밤 만에 이름 없고 정체 모를 다크호스로 부상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며 그는 판단을 철회했다.
이놈은.
‘사냥꾼으로 자리 잡으면 대성(大成)할 놈이다.’
확신했다.
<소울 클랜> 영업1팀 대리직의 명예를 걸고.
지난 세월의 노하우와 안목을 통해 단언컨대.
이놈은 포텐셜을 터뜨리기만 하면 대박이 보장된, 타고난 사냥꾼이 될 그릇을 지녔다.
문제는.
‘근데 이 녀석이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어쩐담. 이걸 설득을 해, 말아.’
그렇다고 사냥꾼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기적이었다.
어디까지나 판단은 대성이 내리는 거고, 성찬호는 불알친구의 의사를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연달아 담배 다섯 개비를 주섬주섬 꺼내던 대성이 스치듯이 말했다.
“그 사냥꾼이란 거, 돈 많이 벌 수 있으면 그땐 또 모르겠지.”
끼익-!
때마침 차가 빨간불에 걸렸다.
성찬호는 스치듯 지나간 대성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돈 많이 벌 수 있냐고?”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걸 말이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