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27화 (27/180)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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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호의 집은 목동에 있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그중에서도 거의 최고층에 가까운 30층.

현관문을 지나쳐 휘황찬란한 거실로 들어선 대성은 살짝 놀랐다.

드넓은 평수며 인테리어 등, 호화스럽다는 인상이 직관적으로 전해져서였다.

“미안, 대성아. 너 기절해 있는 동안 이 형이 좀 졸라 잘나갔어.”

“…….”

“뭐라 말이라도 좀 해봐, 인마. 설마 질투하는 건 아니지?”

벽면 하나가 통째로 유리창이었고, 그 밖으로 아득히 펼쳐진 야경은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대성은 유리창 앞에 우뚝 선 채 그 야경을 말없이 구경했다.

‘눈밭을 이불 삼아 잤던 나에겐 사치스런 곳이다.’

싫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드는 괴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늑함의 정도로만 따지면 오히려 지금 가족들과 함께 사는 달동네가 더 편하고 좋았다.

하지만,

‘엄마랑 지수는…… 좋아하겠지. 내 가족은 나랑 달리 지옥이 아니라 지구의 환경에서 쭉 살아왔으니까.’

넓은 집. 그리고 아름다운 야경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다.

혜정과 지수는 지금의 환경에도 만족한다 하였으나, 만일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결코 마다하지 않으리라.

행복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선천적인 본능이자 당연한 권리였으니.

“여기…….”

“응?”

대성이 입을 열어 이렇게 물었다.

“여기서 살려면 얼마 정도 있어야 하지?”

“전세로 20억, 월세면 보증금 1억 원 기준으로 1,300만 원?”

눈이 뒤집히는 금액의 향연이었으나 대성은 그저 무표정했다.

저 드라이한 반응이 너무 놀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서 저러는 건지 성찬호는 헷갈릴 지경이었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대성의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 하나가 스쳤다.

‘지금 내가 가진 돈에서 조금만 더 모으면 가능하겠는데?’

얼마 전 대금업을 운영하는 놈들로부터 뺏은 돈이 5억.

거기다 강현도가 바친 골프백에 들어 있었던 액수가 그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거금이라 가정할 경우.

여기서 전세를 내서 산다는 것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거기다 놈이 말했던 블랙마켓. 거기서 일이 잘 풀린다면 30억가량이 더 들어온다.’

그 돈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취할 수 있으면 이곳보다 더 좋은 환경의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할 터.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대성이 가볍게 물었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뭐?”

성찬호는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호기심으로 묻는 건가 싶어서 대충 그럴싸한 대답을 돌려줬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저기밖에 없겠네.”

성찬호가 검지를 하나 폈다.

위쪽으로.

대성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당연히 천장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얼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위층에 여기보다 더 비싸고 좋은 집이 있다는 말이군.”

“소위 말하는 ‘펜트하우스’란 거지. 사람 꼭대기에 앉아야 직성이 풀리는 부자 새끼들이 눌러사는 곳.”

본인이 생각해도 실없는 말인지 성찬호가 피식 웃었다.

대화가 이 정도 흐르니 왜 대성이 저런 질문을 한 건지 알 것도 같았다.

“마음이 섰냐?”

“…….”

“사냥꾼 해보려고?”

“어.”

즉답이 튀어나왔다.

***

“일단 좀 씻어. 웬 거지가 들어오니까 보안 경비가 기겁을 하더라.”

대성은 확실히 씻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샤워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피륙에 말라붙었던 혈흔들이 때와 함께 씻겨 내려갔고, 대성은 금방 깔끔한 모습이 되었다.

대성이 팬티 한 장만 입은 반라 차림으로 머리 위에 수건을 얹어 물기를 탈탈 털어내며 거실로 나오자,

“이게 다 뭐야.”

진수성찬이 펼쳐져 있었다.

대성이 목욕을 하는 사이 성찬호가 야식집이란 집에는 온통 다 전화를 해서 배달 음식을 시킨 것이다.

족발, 피자, 치킨, 찜닭, 탕수육까지.

“고기 처먹다 그 사달이 났으니, 우리 분풀이는 제대로 한번-”

부엌에서 맥주와 유리잔을 챙겨 거실로 나오던 성찬호는 대성의 모습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워, 이놈. 몸 봐라.’

훤히 몸이 드러난 반라여서 오밀조밀 붙은 근육 조각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승모근부터 복근까지.

단순히 덩치만 비대한 근육 돼지가 아니라 딱 보기 좋게 잘록한 허리와 더불어 알맞은 밸런스를 지닌 체형이었다.

‘근데 저 상처는 다 뭐야.’

다만 근육의 결마다 패여 있는 상처들이 옥에 티라고 할까.

처음에는 아까 고블린과 싸웠을 때 입은 부상인가 싶었다.

하지만 흉이 져 있는 정도를 보아하니 오늘 바로 생긴 상처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피부과 시술로도 쉽게 지울 수 없는 세월의 흔적들이야.’

본인이 사냥꾼은 아니어도 웬만한 사냥꾼들 이상으로 사냥꾼들을 많이 봐온 성찬호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세월의 흔적이란 게 어째서 얼마 전 퇴원한 놈 몸에 새겨져 있느냐는 건데…….

‘저것도 어떤 각성의 여파인가?’

각성이 어떤 신체적 변화를 가져오리란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스파이더맨도 아니고 저 하룻밤 만에 생긴 근육질 몸에다 상처는 좀 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었지만.

“왜 아까부터 자꾸 봐.”

“어?”

대성이 불쑥 말을 걸자 성찬호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그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남자가 남자 반라를 뚫어져라 보는 장면은 이상하기는 했다.

“아, 미안. 네 몸 보느라.”

“그러니까 왜 보냐고.”

“개쩌니까 봤지, 인마. 부럽다, 부러워. 각성이 좋기는 좋구나.”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칭찬이었다.

대성이 옷을 갈아입은 뒤, 둘은 온갖 산해진미가 나열된 탁상 앞으로 가서 식사를 개시했다.

대성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랜 시간 신경을 쓰느라 허기가 쌓인 성찬호도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다.

둘은 술잔을 나누고 빠르게 그릇을 비워가며 대화를 나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성찬호였다.

“아까 나한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냐고 물었던 거, 사냥꾼 돼서 떼돈 벌고 싶어서 물은 거였지?”

“어.”

“그래, 가능해. 못 할 거 없지. 아니, 오히려…….”

크아!

소맥을 시원하게 들이켠 성찬호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이 건물을 통째로 매입할 수도 있어. 진짜 제대로만 하면.”

“진짜?”

“변호사, 검사, 판사, 의사…… 사냥꾼 앞에선 한 수 접어야지. 요즘 세상엔.”

말 안 통하는 괴물이 판을 치고 시민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세상에 법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사법 체계는 멀쩡히 돌아간다.

인간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근간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있었으니까.

바로 사냥꾼.

그들이 전선에 나서서 몬스터를 퇴치해주니까, 법이란 놈도 올바르게 작동하는 것이다.

판검사보다 사냥꾼이 더 많은 사회적 권위와 수입을 얻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였다.

“꾼이 사짜 직업을 압도하는 시대가 온 거지.”

“그렇군.”

“그래서 각성한 놈들이 운수가 좋은 거야. 각성자가 다 좋은 사냥꾼이 되지는 못해도 로또 긁어볼 기회라도 주어진 거잖아.”

비유는 이래도 역시 로또보다는 승산이 높은 게임이었지만.

보통은 C급 사냥꾼만 되어도 적당한 중소 클랜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

“내가 왜 너보고 이런 말을 하냐면, 너 협회 가서 판정 함 때리면 무조건 B급 이상은 떠서 그래.”

“B급이면 어느 정도지?”

“B급이면 대형 클랜에 입단할 수준은 되지. 아니면 협회 소속이 되든가. 어느 쪽을 택하든 봉급이 씨바.”

월수입 삼천은 우스울 정도.

각성 판정만 잘 나오면 한 방에 인생 역전인 셈이다.

“근데 넌.”

적당히 술기운이 올라 장난스럽게 말하던 성찬호가 그 대목에서 진지해졌다.

그가 손가락으로 똑바로 대성을 가리키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잘하면 A급 떠. 내가 장담한다.”

“A급이면…….”

“펜트하우스에서 살 수 있다고. 네 어머님이랑 동생이랑 같이.”

대성은 우물우물 씹고 있던 닭다리 살을 목구멍으로 꿀떡 삼켰다.

“내가 이 바닥에서 너 같은 각성자들 한두 명 본 것 같아? 지금까지 짬밥 먹어가면서 수도 없이 봤어. 내가 딴 건 몰라도 이 두 눈이 틀린 적은 없다 이거야.”

“흠.”

“대성아, 넌 대성할 새끼야.”

“그래?”

“여기선 웃어줘라, 인마. 괜히 사람 뻘쭘하게 만드네…….”

성찬호가 빠르게 소주잔 하나를 비웠다.

그러는 사이 대성은 허리를 뒤로 살짝 젖혀 천장의 샹들리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A급이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사냥꾼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강함이다.

하지만 대성의 마음속은 어느 위치가 돈을 더 많이 버냐로 등급을 책정하는 중이었다.

“A급보다 더 높은 건 없어?”

“있지. S급이라고.”

“S급은 A급보다 얼마나 돈을 더 많이 벌지?”

“링에서 마주친 학교 일진이랑 무하마드 알리 정도의 차이? 쨉이 안 되지.”

더 쉽게 이해를 시켜주고 싶었던 성찬호는 야경을 담은 유리창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양천구 쪽에 여기보다 더 큰 타워팰리스가 한 채 있거든. 거기 건물주가 조한울이란 놈인데, 걔가 S급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군.”

“왜. 네가 혹시 S급일까 봐?”

“그건 모르지.”

“거기까지는 바라지 마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까. 그래도 A급은 확실하니까 거기서 만족해, 그냥. 대한민국에선 A급도 탄탄대로야.”

“S급은?”

“딱 다섯 명 있다. 이백만 각성자 중에서 딱 다섯. 뭐, 네가 그중 여섯 번째가 될 확률은…… 으음.”

성찬호는 능구렁이처럼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가 절대로 S급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S급이 그리 쉽게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이놈은 머리가 좋으니 나중에 무조건 대기업 CEO가 될 거라고 속단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어쨌든 뭐, 사냥꾼이 되기로 결심한 건 확실하지? 지금이라도 번복할 생각은 없고?”

“없어.”

“그럼 잘 생각한 거야. 사람이 적성을 따라가며 살아야지.”

“사냥꾼이 되려면 지금부터 내가 뭘 해야 하지?”

“프로세스가 다 짜여 있으니 걱정 마. 그 부분에 관해선 내가 천천히 설명해줄 테니까.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자.”

성찬호가 테이블에 맥주잔을 놓으면서 자못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사냥꾼이 되려는 이유가 뭐야?”

“돈.”

“……솔직해서 오히려 좋긴 한데, 진짜 돈만 보고 사냥꾼이 되려는 거야?”

“적성을 따라가며 살라고 방금 그러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지?”

“……좀, 쌩구라라도 좋으니 멋진 말이라도 할 줄 알았지, 난.”

“멋진 말…….”

그런 건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성찬호의 바람대로 ‘돈’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를 말해보자면…….

‘역시 이것밖에 없지.’

“가족이야.”

“가족?”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도 지수도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넓은 집에서 다 같이 살아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명예는 필요 없다.

돈은 필요해도, 그게 단순히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지구는 오로지 돈이 절대적이다. 자본주의의 논리로 사회가 맞물리고 만물이 돌아간다.

이것이 지옥과 지구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을 대성은 깨달았다.

‘지옥에선 아무리 괴물을 죽여도 내게 돌아오는 행복이 없었어. 하지만 지구는 다르다.’

괴물을 죽임으로써 돈을 벌고, 결과적으로는 가족을 부유하게 해줄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사냥꾼’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이유였다.

싸우는 건 지긋지긋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걸로 가족에게 영원불멸할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지긋지긋함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러나 질렸다는 이유만으로 눈앞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고생을 하는 광경을 멍하니 볼 수만도 없지 않은가.

“새끼, 진작 그렇게 말하지. 돈 보고 한다는 말보단 듣기 좋다.”

어차피 대성이 가족 타령을 하지 않아도 녀석이 사냥꾼이 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생각이었다.

그래도 일단, 이런 멋진 이유라도 들어두고 싶었다.

‘가족의 행복이 목적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대성이 이놈. 진지해.’

그리고 진지한 자만이 기꺼이 목숨을 걸 수도 있고 살아남을 확률도 올라가는 법 아니겠는가.

“사냥꾼이 되려면 뭐부터 해야 되냐고 물었지?”

끄덕-

대성이 긍정을 표하자, 성찬호가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

“우선 정리를 해보죠.”

같은 시각. 어느 대형 빌딩의 레스토랑 안.

입가에 길게 칼자국이 난 회색 머리 남성이 냅킨을 들어 입에 묻은 소스를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아, 먹으면서 들으세요, 먹으면서.”

칼자국 남성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손짓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덜덜덜-

공포에 질려서 오들오들 몸을 떠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신흥동파의 막내인 유진성.

그는 조직의 건물에 불어닥친 피바람을 피해 이곳까지 도망쳐 왔다.

그리고 유진성에게 따뜻한 스테이크 한 접시를 대접한 칼자국 남성의 이름은.

이석우.

대한민국 10대 클랜 중 하나인 <홍마> 클랜의 총괄 단장이었다.

크흠-

이석우가 헛기침을 했다.

“다시 해보죠. 그러니까 어떤 정신 나간 놈이 혼자서 그쪽 조직을 풍비박산을 냈다는 거 아니에요?”

“예, 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좀 많이 곤란하군요.”

본래 <홍마> 클랜은 2주 뒤 신흥동파와 중요한 거래를 나눌 계획이었다.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폐공장이 거래 장소였고, 거기에 단장인 본인이 직접 나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돈을 줘야 될 조직이 통째로 공중분해가 됐다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는 소식이었다.

이석우는 당혹스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입가에 난 칼자국을 긁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 인상착의는 기억해요?”

“피, 피가 잔뜩 묻은 새, 새하얀 백발에 키가 190에 달하는 거구였습니다.”

“또.”

“주, 죽어간 저희 형님들, 그, 그리고 조직원이 흔적도 없이 그놈 손가락에 빨려 들어가서-”

“그거 진짜예요?”

“예, 예…….”

“…….”

수직으로 벽을 달리거나, 오러의 성질을 변화시켜 손에서 불벼락을 일으키는 게 각성자들의 능력이라고는 하나…….

시체를 흔적도 없이 빨아들인다?

그쯤 되면 그냥 마법이 아닌가.

“그 정신 나갔다는 사람, 정말 대단하네요.”

“…….”

“우리한테 이 말을 전달한 이유는? 겨우 살아남았으면 그냥 그대로 쭉 살아가시지, 왜?”

“가, 가, 갈 곳이 없었습니다.”

“하긴. 깡패 새끼가 경찰에 신고를 해봤자 그것도 자살행위긴 하겠다.”

덜덜-

“근데요.”

“예, 예?”

“아, 아까부터 왜, 왜 그렇게 마, 말을 더듬으면서 덜덜 떨어요?”

눈앞의 인간을 조롱하려는 듯, 이석우가 일부러 말을 더듬으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조롱을 받은 당사자는 전혀 기분 나빠 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나쁜 티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슥-

유진성이 슬며시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참고로.

그 건물에서 살아남아 <홍마> 클랜을 찾아온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이 여기에 있는 유진성.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설마 친구 때문에 그래요?”

확실히 유진성의 옆에 앉아 있었다.

쇄골 윗부분이 통째로 터져나간 상태이긴 했지만.

덜덜-

어깨를 떨던 유진성이 급기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석우가 쯧쯧 혀를 차며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유진성은 흠칫 놀라더니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새파란 낯빛을 했다.

하지만 공포로 마비된 전신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사이에 다가온 이석우가 유진성의 어깨를 몇 번 주물러주더니, 이내 냅킨으로 그의 눈물까지 훔쳐주었다.

“괜찮아요.”

“제,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당연하죠.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셨는데, 살려드려야죠. 단, 저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조건하에.”

푸쉬익-

터져나간 시신의 단면에서는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저 친구의 전철을 밟지 마세요, 부디.”

“어흑, 흑, 흐윽!”

“우린 받기로 한 돈만 받으면 돼요. 당신들 조직의 운영 자금이 몇 번 로커에 보관됐고, 그 비밀번호까지. 저한테 전부 알려주세요.”

“제발, 제발…….”

당연하지만.

막내인 유진성이 조직의 주요 기밀 사항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석우도 알면서 괜히 물어본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인간이 벼랑 끝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제법 유쾌했으니까.

휙-

이석우가 냅킨을 던졌다.

슥, 슥-

그리고 이번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유진성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쪽 동료들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했죠.”

이때.

징-

유진성의 눈가에 갖다 댄 이석우의 손가락이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형 집행의 전조라는 사실을, 유진성은 모르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에 똑같은 방식으로 동료가 산산조각 나는 걸 봤으니.

“제발, 제발……!”

“흔적도 없이……. 그건 정말, 정말이지 마법 같아요.”

“꺼흑, 윽! 끄아아아아악-!”

인두로 살갗을, 그것도 눈 부위를 지지는 듯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격통.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지르는 유진성의 얼굴에 급기야 거미줄 같은 푸른 선이 번져갔다.

“근데요. 그 마법.”

“끄아악-! 끄아아악-!”

드드득- 드드득-

식탁보 위에 세팅된 스테이크 접시가 흔들렸다.

이석우의 손가락이 더욱더 짙게 발광할 때마다 진폭이 거세졌다.

“왠지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그 순간.

펑-!

콰직-!

유진성의 몸이 아주 잠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터져버렸다.

터져나간 육편은 막대한 고열에 휩쓸려 증발되었다.

치익-

뜨거운 열기가 수증기가 되어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허공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눈으로 좇으며, 이석우가 재차 한숨을 쉬었다.

“후우-”

애꿎은 분풀이를 하기는 했지만, 역시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이석우는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걸 직감했다.

그럼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그리고 제대로 화를 풀기 위해선.

‘그놈을 직접 내 손으로 죽이는 수밖에 없겠지.’

“블랙마켓에 잠복해 있어.”

이석우가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정장의 남녀를 향해 곧장 명령을 내렸다.

“잠복해 있다가, 이놈이 말한 인상착의와 비슷한 남자가 블랙마켓에 찾아오면 곧바로 내게 보고하도록.”

“네.”

정장 남녀는 고개를 숙인 뒤 행동에 돌입했다.

화는 나더라도 식사는 마저 하겠다는 듯, 이석우는 테이블에 앉아 식기를 들었다.

그러다.

툭-

뭔가가 테이블 아래쪽에서 발에 채였다.

상반신이 통째로 증발한 유진성의 남은 발목이었다.

‘그 새끼는 꼭 발끝 하나도 남기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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