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032
자신보다 몸집이 수십 배는 커다란 적과 싸울 땐,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눈을 노려 사각을 점한 뒤, 급소나 심장 부위를 공격한다.
키아아악-!
고통에 못 이겨 날뛰는 수호사를 앞둔 대성은 그 순서를 착실히 따라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
최대 100m까지 원격 조종이 가능한 단검은 마력의 강도와 컨트롤에 따라 그 힘이 더욱 강해진다.
고오오-
혈귀화를 통해 방출되는 마력의 위력을 세 배로 증가시키자 수호사의 눈알에 파고드는 단검도 도신에 붉은 강기(强氣)를 두른 채 기세를 더해갔다.
콰지직-!
키아아악-!
그러자 수호사의 길쭉한 동공에 박힌 단검이 드릴처럼 회전하며 안구를 관통해나갔다.
제아무리 몸집이 거대한 놈이라도 날붙이에 눈이 꿰뚫리는 고통은 끔찍할 터.
키아아악-!
그리고 그 고통의 끔찍함을 표현하듯, 놈이 길쭉하고 두꺼운 온몸을 마구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녀석의 사이즈로 치는 몸부림은 자연재해와 맞먹는 파괴력을 낳았다.
쾅-! 쾅-! 쾅-!
단단한 비늘로 이루어진 몸이 여기저기 날뛸 때마다 지축이 사납게 울려댔다.
화염이 둘린 바윗돌이 벼락 같이 튀어 오르고, 대지에 흐르는 마그마가 불똥이 되어 곳곳에 흩날렸다.
치이익-
난동의 여파로 튄 돌조각이 대성의 오른팔을 스치자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화상 자국이 번졌다.
태생적인 재생력과 혈귀화의 효과 덕에 상처는 빠르게 치유됐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고작 단검 한 자루에 쓰러질 녀석이면 재미없지.’
쾅-!
대성은 땅을 뒤로 밀어내듯이 높이 뛰어올라 놈의 몸통에 안착했다.
‘놈의 대가리까지의 거리는 300m.’
대성은 곡선으로 난잡하게 휘어진 길을 올려다보며 눈대중했다.
300m 남짓한 거리 저 너머로, 고통 어린 포효를 쏟아내는 수호사의 대가리가 보였다.
파파팟-!
그곳을 향해, 대성은 힘차게 땅을 밟아 내달렸다.
놈이 몸을 뒤틀 때마다 대성의 다리도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렸다.
그러나 대성은 절묘하게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놈의 하얀 비늘을 밟고, 또 밟으며 질주했다.
그리고 놈의 목 언저리까지 왔을 즈음.
탕-!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대성의 신형이 잔영을 그려내며 놈의 대가리로 훌쩍 점프했다.
착-
그렇게, 그는 시퍼렇게 뜨인 놈의 오른쪽 눈에 도착했다.
두 다리는 수호사의 위아래 눈꺼풀에 지탱해둔 상태.
슥-
대성이 솥뚜껑 같은 주먹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아무리 이만한 크기의 뱀 새끼라도 대가리가 터지면 살아남지 못하겠지.”
고오오-
홍련의 기운이 굳게 쥔 대성의 주먹에 회오리처럼 몰려들었다.
살기를 느낀 수호사의 동공이 한층 더 가늘게 수축했다.
끔찍한 고통이 작렬할 거라 예감한 수호사는 다급히 눈꺼풀을 닫으려 했지만.
“늦었어.”
쾅-!
3배로 폭증된 마력을 엔진 삼아 휘둘러진 대성의 주먹 한 방이 놈의 각막을 강타한 순간.
펑-!
짧은 파공성(破空聲)이 허공에 일더니, 수호사의 육중한 대가리가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단숨에 터졌다.
“더러워.”
지저분하게 튀기는 살점 조각과 눈알 찌꺼기들이 거북했던 대성은 훌쩍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했다.
착-!
쏴아아-
하늘에서 녹색 체액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고, 수호사의 거체가 힘없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피하는 게 좋겠군.’
저 길쭉한 몸뚱이에 깔리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놈이 쓰러질 위치를 대충 계산한 대성은 그 반경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 달려 나가려고 했다.
우뚝-
놈이 아래로 허물어지면서 지면에 커다랗게 드리우던 음영이 갑자기 확장을 멈췄다.
“……?”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대성이 한 번 더 위를 올려다보았다.
화르륵-
대가리가 터져나가고 훤히 드러난 단면에서 초록색 불꽃이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5초도 채 안 되어 불꽃이 사그라지더니,
츠르르-!
흔적도 없었던 놈의 대가리가 감쪽같이 복구되었다.
“뱀 새끼라도 너 정도 크기면, 대가리가 터져도 살아남는 모양이지?”
어이가 없었던 대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키아아악-!
되살아난 수호사가 입을 쩍 벌리며 거친 숨결을 토해냈다.
놈도 자신이 지금 부활했다는 걸 인지했는지 토해내는 숨결에 분노의 감정이 실려 있었다.
“방금 그 불꽃.”
통상적이라면 부활한 적 앞에서 기세가 한풀 꺾었어야 할 상황.
그러나 대성은 태연한 얼굴을 하며, 차갑게 가라앉은 두 눈으로 수호사를 노려보았다.
“굉장히 눈에 익은데, 그걸 왜 너 같은 뱀 새끼가 가지고 있는 거지?”
키아아악-!!
질문에 대답한 건지, 아니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포효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알 수 없다.
뱀 새끼가 짖어대는 소리 따위, 애당초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생각할 시간에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겠지.”
다음에 올 공격에 대비하려는 듯, 대성이 양팔의 간격을 조금 넓히고 허리를 살짝 숙였다.
언제든지 오라는 신호.
캬악-!
그리고 수호사는 그 신호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콰드득-!
똬리를 튼 상태였던 놈의 기다란 몸이 용수철처럼 꼿꼿이 튀어 올라 대성에게 쇄도했다.
쩌- 억!
놈의 아가리가 위아래로 크게 벌어졌다.
무저갱 같은 목구멍 사이로 질척한 극독(極毒)이 실처럼 늘어졌다.
집어삼켜지는 순간 끝.
언뜻 그냥 옆으로 몸을 굴려 피하는 것이 상책으로 보였으나.
“와라.”
대성은 오히려 정면으로 당당히 맞서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거리를 전부 좁힌 수호사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코앞까지 닥쳐든 순간.
콱-!
대성은 미리 간격을 벌려두고 있던 양팔을 휘둘러 놈의 아가리 위아래를 단단히 붙들었다.
콰악-
대성은 상하 방향에서 압박하듯이 치닫는 무시무시한 턱 힘을 가볍게 밀어낸 다음.
가늘게 눈을 좁혀 눈앞에 아득하게 펼쳐진 놈의 시커먼 목구멍 너머를 노려보았다.
‘이놈이 그 불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그것이 분명 놈의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손과 발이 있는 것도 아닌 뱀이 ‘그것’을 소유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터.
‘몸속에 삼켰다는 뜻.’
이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콰득-!
대성을 사이에 두고 있던 수호사의 윗니와 아래턱이 완전히 닫혔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망에 빠집니다!]
[어떤 마수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립니다!]
마수들에겐 대성이 영락없이 수호사에게 잡아먹힌 광경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엄밀히 말해,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대성은 지금 수호사의 목구멍 안쪽으로 집어삼켜진 상태였다.
츠르르-
가까스로 포식을 마친 수호사가 혀를 날름대며 몸을 높이 일으켰다.
그 순간.
우득-
키에엑-?
놈이 이상한 기척을 위장과 후두부 안쪽으로부터 느끼기도 잠시.
촤아악-!
키에엑-!
일직선으로 솟구친 검격 한 방이 놈의 입천장을 찢고 정수리를 거칠게 뜯어냈다.
파- 악!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는 놈의 정수리를 뚫고 대성의 신형이 힘차게 튀어나왔다.
그는 온몸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이건 내 거다, 망할 뱀 새끼.”
칼날 전체가 은색 사슬에 휘감긴 대검이 한 자루 쥐어져 있었다.
[아이템, <업화대검>을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구현화가 50%밖에 진행되지 않아 아이템이 완전한 성능을 내지 못합니다!]
[고유 스킬 1, 2, 3이 봉인되었습니다.]
불사의 군주, 염왕이 생애 가장 아꼈던 애검(愛劍)이자, 훗날 대성의 소유물이 되었던 아이템.
애초에 수호사와의 문답을 완료해 자격을 증명하라는 것은, 다르게 말해 놈이 이미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불꽃.’
재생의 성화(聖火).
그것은 업화대검이 지닌 대표적인 고유 스킬 중 하나였다.
성화가 놈의 치명상을 치료해주는 걸 목격한 덕에 녀석이 이미 검을 소유함으로써 그 은총을 받는 중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저놈에게서 떠난 이상, 재생의 성화는 봉인되었겠지만.’
시스템은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아 업화대검이 50%밖에 출력을 내지 못한다고 했지만,
‘충분하다.’
저 뱀 새끼를 쓰러뜨리는 건.
키아아악-!
정수리가 직통으로 관통당한 수호사의 입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괴성이 터져 나왔다.
재생의 성화로 인해 상처가 수복되지도 않을 테니, 아주 그냥 미쳐버릴 지경이리라.
저벅-
대성이 한 걸음 내디뎠다.
“딱 절반만 보여주마.”
아직 50%밖에 구현이 안 된 업화대검의 위력.
그러나 그 절반의 위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눈앞의 하얀 이무기는 아마 영영 알 수 없으리라.
알기도 전에, 죽을 테니까.
파앙-!
대성이 놈의 눈높이가 있는 곳까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
소리 없는 기함을 쏟아낸 대성이 흉포한 궤적을 허공에 그려내며 업화대검을 휘둘렀다.
콰직-!
대검의 끝이 철갑보다 단단한 비늘에 깊숙이 파고들더니,
촤아아악-!
키아아악-!!
놈의 피부를 죽 그어 내렸다.
쩌- 억.
핏물을 왈칵 쏟아낸 수호사의 거체가 좌우로 갈라졌다.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보상 ‘수호사의 피’가 지급되었습니다!]
[20,000pt의 공적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현재 구현율 : 업화대검 100%]
[구현화 작업 완료!]
***
수호사를 무찌르고 퀘스트의 성취를 알리는 메시지가 떴으나 대성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그는 사슬이 풀리는 중인 업화대검을 땅에 꽂았다.
이내 사슬이 전부 사라진 검의 손잡이를 움켜쥔 순간.
화르륵-!
퍼벙- 화르륵!
칼날에서 무지막지한 화염이 폭발하듯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대성의 몸을 휘감았다.
기름을 끼얹고 거기에 성냥불을 던져넣은 것처럼, 발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마저 남기지 않고.
‘처음 얻었을 당시엔 열흘을 이러고 있어야 했지.’
염왕을 죽였다고 해서 곧바로 업화대검을 손에 넣을 순 없었다.
지옥의 권좌를 점했던 왕 중 한 명이 사용했던 재보였던 만큼, 그 권능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끔찍한 시련을 극복했어야 했다.
[업화대검이 당신에게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련을 내립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업화(業火)의 시련을 견뎌내십시오.]
[남은 시간 : 239 : 59 : 47]
[업화의 시련은 목숨을 앗아 가지는 않지만 고통은 이어집니다.]
업화대검의 소유권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이렇게 불에 타는 고통을 240시간, 즉 열흘 동안 버티면 된다.
시스템에 나온 대로 죽지는 않는다. 그 대신, 불에 타는 고통은 가감 없이 느껴진다.
‘그편이 오히려 더 잔인하지만.’
그야말로 초열지옥(焦熱地獄).
차라리 중간에 숨이 멎어 영원한 안식을 얻으면 모를까, 열흘 내내 죽지도 못하고 불에 타는 건 죽는 것보다 잔혹하다.
현재진행형으로 극한의 화상을 입고 있는 대성의 피부는 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안에 있는 근육과 뼈까지 녹아내리고 있었다.
살이 전부 타서 없어지고 동그랗고 새하얀 안구만 멀쩡히 돌출된 그 모습은, 흡사 하드코어 B급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화륵, 화르륵-!
‘그때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며 땅을 굴러다녔었지.’
지금도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불에 타는 아픔은 신경을 찢어발기고 뇌를 할퀴는 듯했는데, 이건 단순히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픈 것 이상으로.
화가 났다.
‘내가 왜 이미 한번 소유했던 검을 얻기 위해 이런 시련을 감내해야 하는 거지?’
순순히 업화대검, 그놈이 강요하는 시련에 장단 맞춰줄 생각은 없다.
그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뱀 새끼 뱃속에서 고생 좀 했다고 오랜만에 보는 주인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건가?”
대기마저 바싹바싹 말라가는 불지옥 속에서, 대성의 눈은 너무나도 싸늘히 가라앉아 있었다.
화르륵-!
“아직도 모르겠나. 지금 너를 쥐고 있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
240시간이라는 타이머는 정직하게 1분 1초가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대성은 여기서 240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개새끼도 주인에게 이를 들이밀지 않는 법인데, 너 같은 명검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우둑-
대성이 으스러뜨릴 기세로 업화대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내 눈앞에서 타이머 치워. 안 그러면 영원히 이 폐허 속에서 묻어버린다.”
그렇게 선언한 순간.
[남은 시간 : 00 : 00 : 00]
[시련을 종료합니다.]
-……주군의 목소리를 듣고 지금에 와서야 정신을 차립니다.
화륵-
불똥을 사방으로 토해내며 타오르던 불길이 귀신같이 뚝 멈췄다.
그러자 마치 비디오를 거꾸로 재생한 것처럼 대성의 불탄 육체가 원상 복구되기 시작했다.
-주군의 미천한 종이 그만 외적에게 자아를 빼앗겨 크나큰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부디 용서를 베푸소서.
“됐다.”
그것은 검끝을 타고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의념(意念)의 목소리였다.
오직 소유자인 대성만이 들을 수 있는 업화대검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은, 대성도 잘 알고 있는 자였다.
“오랜만이군. 염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