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034
“딱 봐도 역대급 경쟁률 찍겠네.”
축구 경기장보다 2배는 큰 규모의 대형 부지가 꽉 찰 정도로 모인 인파에, 누군가 그렇게 감탄했다.
이번 상반기 라이센스 시험이 개최될 시험장이었다.
<각성자 수 작년 대비 25% 증가!>
<각성자의 급증에 따라 올 상반기 사냥꾼 시험의 경쟁률 또한 동반 상승할 전망으로…….>
<협회 측은 과도하게 몰리는 응시생 수에 대비하여 올해부터는 시험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고…….>
현장에는 근래의 이런 뉴스들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열띤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어?”
“잠깐, 저건…….”
그때, 각성자나 민간인 할 것 없이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몰렸다.
부릉-
<紅魔>라는 로고가 새겨진 슈퍼카 한 대가 부지 안으로 막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슈퍼카의 정체가 값비싼 마세라티 쿠페라는 점에 주목한 게 아니다.
차체에 새겨진 로고가 주변인들의 이목을 이끈 것이다.
덜컥-
이내 운전석과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남자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석우가 여길 직접?”
“대형 클랜의 단장이 시험장까지 직접 오는 경우는 드문데…….”
“옆에는 그럼 이번에 저쪽에서 내세우는 멤버인가?”
“이석우가 직접 바래다 줄 정도면 푸시가 장난이 아니라는 건데…….”
<홍마> 클랜의 단장 이석우와, 이번 라이센스 시험에 응시할 신인 루키 정진철이었다.
일반인들은 유명인이 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해할 따름이지만,
“개 같네, 진짜.”
대형 클랜에서 육성한 루키와 직접 맞붙어야 할 응시생들 입장에선 개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촤촤촥-!
이때, 현장에 있던 언론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이석우와 정진철에게 몰려들었다.
거성이 떴는데 인터뷰를 놓칠 수야 있나. 기자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달려들며 이석우에게 마이크를 마구 들이댔다.
“이석우 씨! SBC의 오재철 기자라고 합니다! 옆에 계신 분은 이번 홍마 클랜에서 내세우는 루키인가요?”
“오늘 라이센스 시험에서 홍마 클랜이 예상하는 성적은 대충 어디까지입니까?”
“부정행위로 인해 홍마 클랜은 작년에 시험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오늘 2년 만의 루키 투입에 관해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석우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 앞에서 말없이 웃었다.
‘초입부터 성가시게 하는구먼, 버러지 새끼들.’
속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이대로 인터뷰를 거절해도 문제 될 건 없다.
그래도 대형 클랜은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하니만큼, 간단한 리액션 정도는 해주는 게 좋을 터.
“재작년의 사고는 저 또한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 시험은 깨끗하고 공정하게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석우가 반응해준 것은 세 번째 기자의 질문이었다.
대답을 마친 그는 질문의 표적이 정진철로 바뀌기 전에 기자들 사이를 빠져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동행하던 정진철이 킥킥 웃었다.
“그냥 놔두지 그랬어요. 머릿속으로 간지 터지는 명언 몇 개 생각해놨었는데.”
“그런 건 이따 시험 끝나고 해도 안 늦어.”
“시험 끝나면 어디 무서워서 저한테 말이라도 제대로 걸겠어요?”
멈칫-
한 걸음 앞서서 걷던 이석우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멈춘 것이 분명해 보임에도, 정진철은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진철아.”
“예, 형.”
“즐기는 건 좋은데 너무 흥분하지는 마. 그게 겉으로 드러나 버리면 우리도 곤란해지니까.”
“알아요.”
“잊지 마라.”
정진철 쪽으로 몸을 돌린 이석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당부했다.
“절대 흥분하면 안 돼.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으로 통제를-”
“뭘 흥분하지 말라는 거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둘의 대화에 갑작스레 끼어들었다.
이석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낀 추레한 복장의 중년 남성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모습의 남자.
하지만 이석우 또한 A급 사냥꾼.
그 기량에 걸맞은 감각이 중년 남성의 정체를 단숨에 간파해냈다.
“황준영 단장님 아닙니까.”
“오랜만이군.”
<홍마> 클랜 이상 가는 규모의 대형 클랜, <소울>의 단장 황준영이었다.
초라한 복장과 조잡한 분장 탓에 그런 거물과 동일인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꼴이 왜 그러십니까?”
이석우는 대놓고 시비조로 말하면서도 나긋하게 눈웃음을 쳤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듯 황준영은 의연하게 받아냈다.
“극성인 기자 놈들 눈을 피하려면 이 정도 분장은 기본이지. 덕분에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자네처럼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었네.”
그 말이 꼭 자신은 기본이 덜 되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처럼 들려, 이석우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황준영은 그런 이석우의 반응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뒤, 그의 옆에 있는 정진철을 곁눈질했다.
‘……오러의 흐름이 안정적인 녀석이군. 많지만, 넘치지 않는다. 깨끗하게 정제되어 있어.’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순간, 황준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위적인 약물이 투입된 흔적은 없다. 겉으로 보기엔 말이지.’
그저 순수하게 기량이 뛰어난 루키일 뿐이다.
다만.
‘아주 교묘하게 손을 썼구나, 이석우.’
어떤 더러운 수작을 쓸지 모르는 <홍마>를 피하고자, 다른 대형 클랜이 이번 시험에는 루키 투입을 포기할 정도였다.
이런 판국인데 녀석들이 정정당당하게 나온다?
황준영은 알 수 있었다.
이 정진철이라는 루키한테, ‘뭔가’가 있다는 것을.
다만 그것은 직접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아낼 수도, 추궁할 길도 없다는 게 문제일 뿐.
황준영은 정진철에게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홍마는 이번 시험에서 깨끗하고 공정하게 임하겠다면서?”
“물론이죠.”
피식.
황준영은 웃었고, 이석우는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디 그러기를 바라지.”
“마음대로 하시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 이상 불필요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이석우는 정진철과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황준영으로부터 거리가 꽤 멀어지자마자 정진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아냥댔다.
“꼴같잖은 늙은이가 음탕하게 보고 지X이야. 형, 저 사람 변태예요?”
“진철아.”
“예, 형.”
“난 저 새끼한테 어떻게 해서든 엿을 먹이고 싶어.”
“저도요.”
“그럼 저길 봐.”
이석우가 턱짓으로 낯익은 얼굴을 가리켰다.
드넓은 공동 한쪽의 여자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석우는 물론, 정친절도 그 여성이 누군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신초영이네요. 이번에 <소울>에서 심혈을 기울였다는 루키.”
“네 경쟁 상대기도 하지.”
“저런 잡년은 제 상대가 되지 못해요. 형도 알잖아요.”
“알지. 그러니까-”
“망가뜨리라는 거죠?”
이석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만하게 선보인 루키가 망가지면, 아주 단단히 망신살이 뻗치겠지.”
신초영의 육성에 적잖은 비용이 투입됐음은, 이미 알 만한 이들 사이에선 소문이 쫙 퍼진 상태.
근데 만약 신초영이 망가지고 거기에 들어간 모든 투자가 헛일이 되어버린다면?
황준영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만 해도 짜릿해졌다.
“진철아,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두말하면 잔소리죠.”
사실.
이석우가 먼저 명령하지 않아도 정진철은 그럴 생각이었지만.
***
이석우는 황준영에게 엿을 먹이고 싶다.
반대로.
황준영도 이석우에게 엿을 먹이고 싶었다.
재작년, 불법 약물을 투여한 <홍마>의 응시생이 시험 도중 폭주한 탓에 <소울> 측 루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던 적이 있다.
황준영은 그 복수를 하고자 했고, 그래서 방금 이석우를 노골적으로 도발했다.
그리고 녀석은 고맙게도 그 도발에 걸려주었다.
이제는 전면전뿐.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든, 초영이는 당하지 않는다.’
오늘까지 신초영이 거듭해온 지옥 훈련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저들은 상상도 못 하리라.
그리고 지독한 만큼 성과 또한 찬란했다.
지금의 신초영은 순수 역량만 보면 A급 상위와도 맞먹을 실력자가 되었으니까.
<홍마> 쪽에서 S급도 수습해내기 버거울 수작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그녀를 압도할 일은 없을 터.
문제없다. 완벽하다.
황준영은 속으로 그렇게 자신했다.
그런데.
“……음?”
가느다란 실낱보다도 희미하고 미세한 찰나.
하지만 그 찰나에, 황준영은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휙!
여태까지 침착한 페이스를 유지하던 황준영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단장님?”
그때, 지금 막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온 신초영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지만 황준영은 곁에 그녀가 왔다는 걸 알았음에도 신초영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니, 줄 수가 없었다.
“저…… 단장님?”
꿀꺽.
황준영의 목울대가 무겁게 울렸다.
“초영아.”
“네?”
“조심해라.”
“갑자기 무슨…… 아아. 홍마 쪽 애들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알려주신 대로 절대 방심 안 하고 정줄 꽉-”
“아니, 걔들을 말하는 게 아니야.”
황준영이 굳은 얼굴로 저 멀리 건물 입구 쪽을 가리켰다.
신초영의 시선도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저 남자를 말하는 거다.”
거기엔,
백발의 남성이 유유히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야, 미안하다. 내가 직접 보러 가야 하는데 이쪽에도 일이 많이 밀려서…….]
“괜찮아.”
게이트 시커란 게 상당히 바쁜 직업이라는 건 누누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렇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오는 성찬호의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었다.
‘어차피 찬호가 오든 안 오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구경꾼이 얼마나 됐든, 혹은 경쟁자가 얼마나 많든,
자신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 어떤 변수가 있다고 해도.
자신을 막아설 수 있는 자는 없을 테니까.
그걸 위한 열흘이었다.
그때였다.
<10분 뒤, 상반기 사냥꾼 라이센스 시험이 시작합니다.>
<응시생들은 3관 시험장에 늦지 않도록 집결해주시길 바라며…….>
부지 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 사항이 울려 퍼졌다.
[야, 곧 시작하나 보다. 늦지 않게 들어가고! 끝나면 연락 줘!]
“어.”
[파이팅이다, 인마! 끝나고 한잔하는 거 잊지 말고!]
“그래.”
삑-
통화를 마친 대성은 열흘의 결실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저 한없이 고요한 얼굴로.
***
안내받은 3관에 입장하니 대기 중이던 감독관이 응시생들에게 상자 하나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각자의 사이즈에 맞는 전신 밀착형 보디슈트가 한 벌씩 들어 있었다.
흔히 사냥꾼들이 실전에서 사용하는 강화복, 오러 아머(Armor)라고 불리는 녀석이었다.
물론 응시생들에게 주어진 건 어디까지나 시험용으로 개량된 것이다.
응시생들은 남녀를 나눠 탈의실로 들어간 뒤 빠르게 아머를 장착했다.
잠시 뒤.
짙은 남색의 아머를 입은 응시생들의 도열과 마주 선 감독관이 시험의 안내를 시작했다.
“이번 라이센스 시험의 메인 테마는 ‘적응’입니다.”
딱-
감독관이 손가락을 튕기자 뒤에서 대기 중이던 협회의 직원들이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쿠구궁-
공동 가장자리에 설치되어 있던 직사각형의 대형 철문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무색투명한 소용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험용 인공 게이트였다.
오오-
재수생을 제외한 첫 응시생 중 몇몇이 감탄을 터뜨렸다.
“이번에 주최 측에서 준비한 게이트는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험용 게이트는 현실의 게이트처럼 이계로 들어가는 기능은 없다.
그냥 최대한 실제 상황과 흡사한 환경이 갖춰질 수 있도록,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꾸민 것.
그건 달리 말해서, 가끔 실제 상황과는 괴리된 무언가가 제시될 때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이 그랬다.
“3층?”
“그게 뭔 말이야.”
“살다 살다 게이트에 층수를 나누는 건 또 처음 보네.”
게이트 너머는 또 다른 장소, 혹은 또 다른 세상일 뿐이다.
층이 나뉘는 탑 같은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
응시생들의 의문은 당연했기에 감독관이 재빠르게 보충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번 시험에 유례없는 숫자의 응시생이 몰린 만큼, 이전의 방식과는 차이를 두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몬스터를 얼마나 잘 사냥하는가가 아닌, 총체적인 사냥꾼으로서의 기량을 판단할 필요가 있었지요.”
게이트가 무서운 건 몬스터 때문만이 아니다.
다른 차원의 세계.
지구와는 다른 환경은 때때로 몬스터 이상으로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가져다주곤 했다.
“그래서 이번 시험용 게이트엔 층마다 다른 환경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시된 조건을 클리어한 분들만이 다음 층으로 나아가는 방식이죠.”
요지는.
매번 달라지는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며 몬스터를 사냥하는지가 이번 시험의 핵심이라는 말.
“합격 커트라인은 3층까지 클리어한 선착순 20명.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신 분?”
없었다.
간결하고 알기 쉬웠다.
이전처럼 무슨 기준으로 얼마나 더 포인트가 책정되는지 따위의 의문도 필요 없다.
그냥 먼저 3층을 클리어한 20명이 합격자가 된다.
이보다 알기 쉬운 이야기가 또 어디 있는가.
“당연하겠지만 다른 응시생을 공격하는 순간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즉석에서 탈락시킵니다. 그리고 입장 시엔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각자 다른 지점으로 이동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유념해주시길. 그럼-”
마지막으로 필수적인 안내까지 마친 감독관이 옆으로 한 발 물러섰다.
웅- 웅-
인공 게이트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대기를 마구 울려댔다.
“1열부터 차례대로 입장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아함이 섞인 정적이 공동을 가득 채웠다.
응시생들 사이에서 “응?”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때, 도저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여성 응시생이 손을 들었다.
“저, 저기…….”
“52번 응시생?”
“무기 지급은……?”
질문을 들은 감독관이 “아” 하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응시생들은 감독관이 단순히 무기 지급을 깜빡 잊었을 뿐이라 생각했으나.
“이번 시험에선 응시생들에게 따로 무기가 지급되지 않습니다.”
“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응시생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사격 훈련에서 총을 주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
하지만 감독관, 그리고 더 나아가 협회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 시험의 주제는 ‘적응’이라고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장비는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이 게임도 아니고, 아이템이 좋다고 모든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냥꾼의 진가(眞價)는 장비가 아닌, 몸에서 흐르는 오러.
즉, 육체의 강함에서 나오는 법.
“순수한 기량을 얼마나 잘 펼쳐낼 수 있는가. 설령 그것이 뜨거운 열대야 아래든, 차가운 혹한기 아래든.”
덤덤히 이어지는 감독관의 설교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가운데.
오직 단 한 명만이 그 말에 백번 동의하고 있었다.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잘 살아남고, 잘 싸우느냐. 이것이 안 되면 목숨을 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지요.”
그 말이 결코 틀린 게 아님을, 그는 80년 동안 몸소 체험해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합니다. 1열부터 차례대로 입장하십시오.”
동의한 이는 대성이었다.
지옥에서 끝장을 봤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님을.
***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 습기 가득한 열대 우림이 펼쳐졌다.
어디까지나 그럴싸한 눈속임이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생생함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마존에서 살아온 인간이 아닌 이상 견디기도 벅찬 습기.
하지만.
‘후덥지근하군.’
아마존보다 더한 습지대도 견뎌본 대성에게는 통하지 않는 얘기였다.
대성은 처음부터 다짜고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나머지 응시생들이 입장 중이어서인지 아머의 알림판에선 별도의 클리어 조건이 송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성이 움직이지 않는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 일이 있지.’
뚜둑-
그는 근처에 제일 가까이에 있던 나뭇가지를 뜯어냈다.
협회는 이번 시험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맨주먹으로 싸우든, 무기를 만들어서 싸우든, 알아서 하라고.
대성이 택한 건 후자였다.
후자가 아니면 지난 열흘의 노력이 모조리 헛수고가 되니까.
우선.
대성은 지금 꺾은 나뭇가지를 무기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로드.”
대성이 명령어를 읊조린 순간.
[업화대검을 절대자께서 인식하신 무기에 로드하시겠습니까?]
손에 쥔 나뭇가지의 감촉이 달라졌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대성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아주 희미하게,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대검 모양의 실루엣을.
그렇게 다른 경쟁자들이 무기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허덕이는 가운데.
‘어차피 협회가 주는 싸구려 무기 따위, 줘도 안 쓸 생각이었다.’
오직 대성 혼자만이 최종 병기를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