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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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의 눈은 아공간 포켓과 마찬가지로 아이템이라기보다는 패시브 스킬에 가까웠다.
굳이 로드를 통해 위장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든 발동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
‘시험 도중엔 가끔 교묘한 방식으로 같은 응시생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녀석도 있다지.’
이를 테면, 몰래 함정을 파서 경쟁자에게 물을 먹이는 녀석이라든가.
그거라면 ‘몬스터를 없애려고 파놓은 함정에 저놈이 멋대로 빠진 것’이라는 변명거리가 생기니까.
대성은 만에 하나 있을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사주의 눈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보이는군.’
바로 이렇게.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놈들의 낯짝이.’
수많은 거미 모양의 낙인이 어둠 사이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이 암막 속에서 먹잇감을 주시하고 있는 놈들의 낯짝에 박힌 낙인이었다.
[사주의 눈이 발동되었습니다.]
[반경 1㎞ 내에 시전자에게 적의를 가진 대상을 마킹합니다.]
지옥의 거대 거미, 사주.
놈은 이 뛰어난 효과를 지닌 여덟 개의 눈으로 다가오는 먹잇감을 유린하는 악몽 같은 놈이었다.
‘지금은 역으로 내가 놈의 입장이 되었지만.’
화륵-
모든 것을 집어삼킨 어둠 사이로.
붉은 업화가 고요하게 불타올랐다.
***
“키리릭-”
“카아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런 흉물스런 울음소리를 듣는 이의 기분은 어떨까?
아마 대부분은 지독한 공포 속에서 혼절하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릴 것이다.
그리고 어둠 사이로 매복한 몬스터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했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
먹잇감이 두려워한다는 사실.
그 사실들이 안 그래도 포악한 녀석들을 한층 더 들뜨게 만들었다.
“샤아악-!”
어둠 속에 수많은 몬스터가 은신해 있었다.
고블린, 오크부터 우로보로스의 새끼들까지.
녀석들은 이런 어둠 속에서도 육안이 멀쩡히 작동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렇기에 녀석들은 아주 똑똑히 주시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먹잇감의 모습을.
“사아악-”
“카악-!”
녀석들은 철저히 어둠 속에 모습을 숨기면서도, 노골적으로 흉물스런 포효를 뱉어냈다.
다름 아닌 먹잇감의 공포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저벅-
어째서인지 눈앞의 먹잇감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아닌가.
“샤아악-?”
몇몇 녀석이 그 사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보통은 엉엉 울면서 주저앉아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텐데.
그런데 하얀 머리를 한 저 먹잇감은 마치 산책을 하듯 평화롭게 걸어올 뿐이었다.
“캬아악-!”
오기가 생긴 몇몇 녀석이 더 소름 끼치게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먹잇감의 표정은 똑같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놈인가?
“크르륵-”
아니, 저건 허세다.
마음과는 달리 두려움을 삼키고 일부러 태연한 척하는 거다.
“칵-!”
건방진 놈.
과연 그 태연한 낯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어둠 속의 몬스터들이 송곳니를 그득그득 갈며 살기를 곤두세웠다.
저벅-
그리고 이내 사정 범위까지 먹잇감이 다가온 순간.
“카아악-!”
제일 가까이에 있던 우로보로스의 새끼가 기다란 몸을 쭉 뻗어 먹잇감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팍-!
“케엑-!”
먹잇감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냥 옆으로 팔 한번 뻗는 것만으로 녀석의 목을 박살 냈다.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아주 계산적인 움직임.
손에 묻은 체액을 털어내며 먹잇감이 입을 열었다.
“너 말고.”
감정의 고조가 없는 목소리에, 어둠 속의 몬스터들이 무심코 숨을 삼켰다.
“저기 저놈들이 많이 뭉쳐 있어서 포인트 얻기 쉽겠는걸.”
슥-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먹잇감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둠 사이로 매복한 몬스터들은 숨을 삼키다 못해 숨이 멎을 뻔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저놈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저기가 노다지란 말이야.”
자신들과 눈이 마주쳤으니까.
지잉-
보라색으로 빛나는 먹잇감의 눈이 섬뜩하게 안광을 번뜩였다.
그 순간 몬스터들은 깨달았다.
어둠 속에 갇힌 건 먹잇감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
화륵-!
퍼벙-!
불꽃에 휩싸인 검이 허공에 붉은 궤적을 새겼다.
업화의 검기가 짙게 드리워진 어둠을 거침없이 베어내며 몬스터들에게 작렬했다.
쾅-!
캬아악-!
‘한 마리당 대략 10포인트인가.’
대성이 거미 모양의 낙인을 따라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누적 포인트 : 300]
30마리를 해치우는 건 금방이었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또 어느 지점에 좀 더 많이 몰려 있는지 훤히 보이니까.
크르르-!
사각에 위치한 방향에서 늑대 형태의 몬스터가 들이닥쳤다.
“한 마리씩 찔끔찔끔 없애는 건 싫다고 했잖아.”
화륵-!
대성의 뒤통수 부근에서 도깨비불 같은 불덩어리 하나가 타올랐다.
[‘작열’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염탄>]
파바방-!
그리고 동그랗게 뭉친 불덩어리가 여러 갈래로 폭사했다.
가시바늘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불꽃의 탄환들이 일대에 매복해 있던 몬스터들을 유린했다.
시전자 본인이 직접 컨트롤하는 ‘업화’ 모드와 달리, 자동으로 알아서 적을 추적하는 ‘작열’ 모드.
그것은 대성이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각의 적들까지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화륵-!
콰과각-!
검신 한가득 불꽃을 두른 대성이 전차처럼 날뛰며 무쌍을 펼쳤다.
카아악-!
[누적 포인트: 400]
키이익-!
[누적 포인트: 450]
그리고 그 전차가 돌진하는 길목에 위치한 놈들은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 휩쓸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예 접근 자체를 쉬이 할 수가 없었다.
대성의 업화대검이 사납게 뿜어내는 고열 때문이었다.
“도망치지 마라.”
그 고열을 피해 슬금슬금 물러나는 녀석들을 향해 대성이 살벌한 시선을 쏘아냈다.
놈들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도망쳐야 할 건 먹잇감인데, 오히려 자신들이 물러서고 있으니.
사사삭-!
크아악-!
몇몇 용기 있는 녀석들이 타들어갈 것 같은 고열도 무릅쓰고 대성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파바방-!
콰직-!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염탄의 세례에 갈기갈기 찢겨나갔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쉬이익-
[누적 포인트: 530]
첫 번째 노다지를 티끌 하나 없이 캐내는 건.
“이건 시간 낭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의 갈증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날뛰었는데도 필요 포인트까지 절반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작열>의 발동 시간 동안 소모되는 마력의 양을 생각해보면 이건 그야말로 기력 낭비, 시간 낭비였으니.
‘각 몬스터마다 보유한 포인트가 다르다고 했었지.’
그렇다는 건, 지금 이 녀석들보다 더 많은 포인트를 보유한 몬스터들도 있다는 말.
그놈들을 찾아서 없애는 쪽이 효율 면에서 이득이리라.
‘여기는 끝났고…….’
저벅- 저벅-
‘더 강한 놈들을 찾는다.’
그야말로 먹잇감을 물색하는 맹수 같은 생각을 품으며, 대성이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지잉-
낙인에 반응하는 사주의 눈이 또렷하게 빛을 발했다.
꽈드득- 꽈득-
어떤 갑각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관절이 비틀리는 소리.
굳이 사주의 눈을 통해 낙인을 확인하지 않아도 기감으로 느껴졌다.
‘이놈이라면 좀 두둑하겠어.’
덩치가 얼마나 커다란지, 어둠에 파묻혀 있음에도 녀석의 거체가 언뜻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거체에 비례해, 낙인의 크기 또한 다른 녀석들과 궤를 달리했다.
끼긱, 끼기긱-
쩌어억-
“이거 또 본의 아니게 후발 주자들한테 좋은 짓 해주게 되었군.”
놈이 아가리를 벌리자 초록 체액이 찐득하게 묻어나오는 송곳니가 흉흉히 드러났다.
바로 성인 남성의 10배에 달하는 크기의 거대한 전갈이었다.
<자이언트 스콜피언>
첨언하자면, 녀석은 응시생이 잡으라고 배치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오히려 피하라고 설치한 함정에 가까운 녀석.
하나.
“이 정도 덩치라면 50마리분은 하겠군.”
대성에겐 그저 포인트 덩어리에 불과했다.
***
콱, 콱-!
핏발이 잔뜩 선 우악스런 손이 단단한 얼음벽을 짚었다.
그렇게 군데군데 불룩 튀어나온 모서리를 하나씩 짚고 빠르게올라간다.
“개새끼들 진짜! 이러다 시험이고 뭐고 피똥 싸겠네!”
가파른 암벽을 등반 중인 이는 다름 아닌 정진철이었다.
정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눈발은 거세지지, 손은 시리지.
죽을 맛이었다.
‘아주 존나게 판타스틱한 시험이구먼, 시팔.’
현직 상위 클래스의 사냥꾼도 과연 통과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난이도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까부터 계속 그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존재가 한 명 있었다.
‘그 날개 달린 새끼는 또 어디서 튀어나온 십장생이지?’
마치 용 날개 같은 걸 펄럭이며 싸웠던 그놈.
처음에는 몬스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뭇가지에서 불을 뿜어내며 프로스트 로크를 통구이로 만드는 해괴한 광경을 목격한 순간, 녀석이 같은 응시생인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틀림없어. 1층의 그놈이랑 같은 놈이야.’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와 신초영 외에도, 지금 이 시험을 독주하고 있는 놈이 존재한다는 것이.
‘젠장. 석우 형 말로는 이번 시험은 신초영만 적당히 조심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건 말이 다르잖아!’
아니, 정확히는 조심하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경계 정도만 해. 어차피 그년은 네 상대가 되지 못하거든.
그 신초영조차 정진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뉘앙스였다.
신초영이 제아무리 지옥 훈련을 거듭해봤자 결국 B급.
A급 중상위 판정을 받은 그와는 이미 태생적인 격차가 존재했다.
그런데.
‘빌어먹을. 1층에서 그년한테 추월당한 것도 쪽팔린데 저 십장생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고.’
아마 관중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이석우가 크게 실망하고있을 터.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선 톱1이라는 결과를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
‘다행히 신초영 그년은 나가리가 된 것 같지만.’
정진철은 신초영과 같은 타이밍에 암벽을 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한참 뒤처졌거나 도중에 추락한 게 분명할 터.
이렇게 되면,
‘신초영을 엿 먹이는 건 둘째 치고, 일단은 그 십장생부터 처리해야 된다!’
이름도 모를 그딴 십장생한테 1등을 허락할 순 없다.
그 거대한 집념이 암벽을 오르는 정진철에게 박차를 가했다.
팍-!
콰득-!
그는 거칠게 두 팔을 휘두르며 아예 널뛰기를 하듯이 설산을 올랐다.
정상이 멀지 않았기에 발휘할 수 있는 라스트 스퍼트였다.
그리고 마침내.
콰직-!
“개새끼들!”
그는 성취감 가득한 욕설을 내뱉으며 정상에 도달했다.
이런 추위임에도 온몸엔 땀이 흥건했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 십장생과 조금이라도 격차를 줄이려면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삑-
<워프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는 닭 쫓는 개처럼 헐레벌떡 게이트를 넘었다.
그리고 3층에 입장한 순간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정진철을 당혹스럽게 만든 건 어둠이 아니었다.
바로…….
“너, 너도 날았냐?”
아슬아슬한 간극을 두고.
먼저 3층 입구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신초영이었다.
‘어떻게?’
분명 설산을 먼저 오른 것도 나. 선두로 나아간 것도 나일 텐데.
어째서, 대체 어떻게 신초영이 먼저 3층에 있을 수가?
“하아……. 하아…….”
어둠 속에서도 비처럼 쏟아지는 신초영의 땀방울이 또렷이 빛났다.
꿀꺽.
그녀는 가쁜 숨을 목구멍으로 삼킨 뒤 걸음을 옮겼다.
꽈득-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걸어 나가는 신초영의 모습이 정진철을 분노케 했다.
“날았냐고 묻잖아, 이 독한 년아! 네가 왜 나보다 먼저 여기 있냐고!”
“…….”
우뚝-
노기 가득한 정진철의 외침에 신초영이 멈춰 섰다.
언뜻 보이는 옆얼굴은 초췌했고 몸은 아직도 추위를 떨쳐내지 못했는지 오들오들 떨렸다.
하지만.
“좀 닥쳐. 더럽게 시끄럽네.”
목소리엔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쫑알쫑알 떠들지 말고 네 갈 길 가렴. 난 내 갈 길 갈 테니.”
“…….”
너무나도 매몰찬 대답에 정진철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신초영은 개의치 않으며 방금 그녀 본인이 말한 것처럼 자신만의 갈 길을 묵묵히 걸었다.
자신이 가야 할 길.
그건…….
-초영아, 저기에 있는 하얀 머리 남자 보이지.
-저놈을 조심해라. 아마…… 아니, 200% 분명 걸림돌이 될 거다.
-되도록이면 저 남자랑 충돌하지 마라.
-멀리 봐야 한다, 멀리.
그 남자.
그때 스타디움에서 보았던 하얀 머리의 남자를 따라잡는 것.
그 누구보다도 빨리 1층을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2층에 도착한 순간 그녀가 본 것은, 상궤가 다른 능력으로 독주하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부터 신초영은 멈춰 설 수가 없었다.
‘숨이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따라잡아야 해.’
거대한 허들과 마주하면 포기하는 이가 있는 반면, 더 맹렬히 승부욕을 불태우는 이도 있다.
자신이 후자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벅-
집념 어린 결의와 맞물린 오러가 예리하게 다듬어졌다.
지금의 자신은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방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하던 그때.
위우웅-
“어?”
돌연 아머에 장착된 오러 리액터가 빛을 잃었다.
각성자의 오러를 더 강하고 세심하게 방출하게 도와주는 오러 리액터.
비유하자면 그것은 아머의 배터리 같은 것.
그런데 그 배터리가 나갔다는 말은 아머가 고장 났다는 의미였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신초영이 당황했다.
주최 측에서 불량을 지급했을 리는 없다. 그런 선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리액터를 더듬으며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던 찰나.
“일단은 네년부터 좀 어떻게 처리하고 넘어가야겠다.”
“뭐?”
등 뒤에서 들려온 정진철의 목소리에 신초영이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푸확-!
정진철의 오른손이 그녀의 등을 꿰뚫기 전까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