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40화 (40/180)

# 40

040

정진철은 순간 불꽃이 말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놈이다 보니 그만 허무맹랑한 착각을 해버렸다.

저건 어둠 속에 숨은 누군가가 오러 테크닉으로 불꽃을 피우고 있는 것뿐이다.

‘화력이 꽤 쓸 만한 걸 보니…… 분명해. 아까 그 새끼군.’

아까 2층에서 용의 날개를 펄럭이며 프로스트 로크를 쓸어버렸던 정체불명의 1등 주자.

툭-

정진철은 쥐어뜯으려 했던 신초영의 오른팔을 손에서 놓았다.

‘마침 잘됐어.’

신초영만큼이나 저 이름 모를 놈이 눈꼴시던 참이었다.

영 쓴맛을 보여줄 기회가 보이지 않아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저놈이 먼저 이렇게 다가와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가 여기를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이냐고? 맞아. 내가 그랬어.”

만면에 잔학한 조소를 띤 정진철이 양팔을 활짝 벌리며 불꽃을 향해 다가갔다.

어디 해보라면 해보라는 듯이.

“근데 뭐? 어쩔 건-”

그 순간.

휙!

“어?”

두꺼운 팔뚝 하나가 어둠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그를 낚아채는 게 아닌가.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저항할 틈도 없었다.

상대방의 손에 이끌린다는 무력감이 닥쳐옴과 무섭게.

꽈- 앙!

“끄억?!”

돌연 솥뚜껑만 한 주먹이 날아와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멀쩡했던 코뼈가 뒤틀리고 이빨 서너 개가 순식간에 뽑혀나갔다.

정진철이 핏물을 터뜨리며 뒤로 넘어지려던 순간.

턱-

다시 한번 뻗어 나온 팔이 정진철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제일 가까운 벽에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쾅-!

“커, 헉!”

등허리에 작렬한 충격이 정진철의 폐부를 쥐어짜 입에서 선혈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저벅, 저벅. 화륵-

땅을 짚고 일어서기도 전에, 느릿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불꽃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제야 정진철은 볼 수 있었다.

흉신악귀처럼 일그러진 두 눈 사이로 피처럼 시뻘겋게 번들거리는 대성의 안광을.

“힉……!”

정진철의 눈에 들어온 대성의 얼굴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정말로 귀신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척-

불꽃에 휩싸인 나뭇가지가 정진철의 코앞에 겨눠졌다.

“무슨 개수작을 벌였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만해라.”

필드의 어둠보다도 훨씬 음산한 눈이 정진철을 노려보았다.

정진철은 어이가 없었다.

‘왜, 왜 여기서 나뭇가지를……?’

활활 불타고 있는 나뭇가지를 겨눠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협박하는 건지, 웃기려고 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이 새끼, 누구 놀리나!’

안 그래도 억하심정 가득했던 정진철이 받아들인 쪽은 후자였다.

콱-!

그는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움켜쥐었다. 보란 듯이 그것을 으스러뜨릴 심산이었으나.

“끄아아아악-!!”

화르륵-!

살이 타들어갈 것같이 뜨거운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 뇌신경까지 뒤흔들었다.

나뭇가지가 불에 휘감겨 있다는 걸 감안하고 뻗은 손짓이었다.

그런데 이건, 보통 뜨거운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마그마에 손을 푹 담근 것 같은 격통이었다.

“으아아악-! 끄아아악-!!”

불붙은 손을 바닥에 탕탕 내려쳐 보았지만 도무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팔, 그냥 차라리!’

꺼지지 않을 불이면 그냥 이 손으로 놈의 머리통도 태워버리자는 작전을 떠올렸다.

정진철은 코앞에 겨눠진 나뭇가지를 피해 옆으로 몸을 틀은 뒤, 대성을 향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뒈져, 시X놈아!”

정진철은 불꽃에 타들어간 손을 쭉 뻗어 동귀어진을 감행했다.

서걱-!

“응?”

그러나 다음 순간 정진철의 시야에 잡힌 건, 제 기술에 넘어가 머리통이 불에 타는 대성의 모습이 아닌.

허공 위로 찢겨 날아가는 자신의 팔이었다.

화륵-

어둠 속에서 춤추듯이 분출하는 핏물 사이로.

업화의 불꽃이 찬란히 타올랐다.

그리고 정진철의 절규가 이어졌다.

“끄, 끄아아아아악-!!”

“5초다.”

정진철이 지저분하게 잘려나간 오른팔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가운데, 대성이 냉혹하게 말했다.

“5초 안에 개수작 부린 거 철회 안 하면 다음엔 왼팔이다.”

“시X! 시X 진짜!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개새끼야아!”

정진철이 비통하게 눈물을 흘리며 분개한 순간.

우드득!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절단된 오른팔이 도로 재생되는 것이 아닌가.

뼈부터근섬유, 그리고 새 살갗이 덮이기까지 2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피부가 재생하는 우드 골렘의 유전자가 섞인 앰플 덕분이었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우드 골렘의 효력을 발동시킬 수 있는 남은 횟수는 열아홉.

즉, 팔다리 좀 잘려도 그에게는 열아홉 번의 기회가 있는 셈.

무서울 게 뭐가 있는가?

“으아아아아!!”

정진철은 곧바로 다음 앰플의 효과를 발동시켰다.

오크 챔피언.

수많은 몬스터의 피와 유전자가 섞인 앰플 중에서도 그야말로 엑기스라 할 수 있는 녀석.

A급이 떼로 몰려들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보스 몬스터인 오크 챔피언의 힘을, 지금 이 순간 재림시킬 심산이었다.

콰드득-!

정진철의 몸에서 심상찮은 수증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그의 몸이 단숨에 부풀어 오르려고 했다.

콱-!

“억?!”

하지만 업화대검의 두 번째 검격이 그의 등을 뚫더니,

푹-!

오장육부를 할퀴고 지나가 가슴팍까지 뚫어버렸다.

“커, 허억……?!”

일순 폭발적으로 커졌었던 정진철의 몸이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신체를 재생시킬 수 있는 놈이라 다행이군. 어떻게 힘 조절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푸확-!

대성이 녀석의 몸에서 검을 뽑아내는 것과 동시에 정진철이 입에서 피를 콸콸 쏟아냈다.

허억, 허억-

비명을 지를 기력도 남지 않은 정진철이 눈물콧물 범벅인 얼굴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 뭔 놈의 나뭇가지가……. 너, 너 이 씨X놈아……. 적어도, 썅, 사람이 변신할 시간은…….”

“5, 4, 3…….”

죽음의 카운트가 이어졌다.

정진철은 자신이 건드리면 안 될 괴물을 건드렸음을 깨달았다.

꾸득, 꾸드득-

헤집어진 내장과 꿰뚫린 피부가 순식간에 재생을 마쳤다.

‘이, 이 미친 새끼는…… 어떻게 싸워서 해결을 볼 수 있는 놈이 아냐.’

5초의 카운트가 이제 제로를 외치기 바로 직전.

팍-!

정진철은 그대로 네 발로 기듯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이번엔 눈알을 도려낼 생각이었던 대성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서는,

“허억, 허억- 네가 시바……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란 건 알지만…….”

정진철이 바닥에 쓰러진 신초영의 얼굴을 한쪽 발로 사뿐히 지르밟는 중이었다.

그의 각력이라면 발바닥에 조금이라도 힘을 싣는 순간 신초영의 얼굴은 잔인하게 으깨질 것이다.

“허억- 겉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귀신인 척해도, 눈앞에서 여자가 죽어가는데 모른 체할 순 없겠지? 당장 썩 물러서. 안 그러면 이년 얼굴을 묵사발로-”

“지금 네 발밑에 깔린 여자랑 나랑 무슨 상관이지?”

“……뭐?”

“5초 지났다.”

[‘작열’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염탄>]

화륵, 퍼버벙-!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염탄 한 발이 정진철의 미간에 적중했다.

“허, 억-?”

얼굴 가죽이 통째로 폭발한 정진철이 뒤로 고꾸라졌다.

저벅-

대성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이름도 모를 여자의 안위 따윈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5…….”

다음엔.

과연 어디를 태워야 놈이 고분고분해질까.

고민에 잠긴 대성이 느긋하게 카운트를 셌다.

“4…….”

“으, 으아악-!”

무정하게 카운트가 줄어들자 정진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이대로 있다간 저 미친 새끼가 날 죽일 거야!’

어쭙잖게 틈을 보이고 자비를 베풀 줄 아는 허깨비가 아니다.

그렇다면 저 괴물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죽여야 돼……!’

오로지 그 수 말고는 없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괴물과 전면전은 무조건 피하라고.

‘숨어서 뒤를 친다!’

정정당당한 싸움이 성립이 안 될 땐, 비겁하게 싸우면 그만이다.

뒤에서 따라오는 괴물과 충분한 거리를 벌린 정진철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도 저 괴물이 쥐고 있는 나뭇가지에선 불이 일렁이는 중이었다.

그 불을 지표 삼아 녀석 몰래 기습을 가하면 된다.

‘아무리 저 새끼가 눈이 밝아도, 작정하고 숨어서 공격하면 어쩔 방도가 없겠지!’

짙게 깔린 어둠 사이로 매복한 정진철이 숨소리를 죽였다.

저벅-

조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대성의 발소리가 들렸다.

화륵-

반딧불처럼 일렁이며 어둠을 헤치는 불꽃.

그 불꽃이 나아가는 방향을 확인한 정진철은 신중하게 거리를 계산하며 대성의 뒤를 잡았다.

‘지금!’

파악-!

대성이 눈치를 못 챘다는 걸 100% 확신한 정진철의 신형이 총알 같은 속도로 도약했다.

야수 같은 손이 대성의 뒤통수를 관통하려던 순간.

서걱-!

허공에 새겨진 붉은 횡선(橫線)이 어김없이 정진철의 팔을 잘라냈다.

“아아악-!”

벌써 두 번째 오른팔이 잘린 정진철이 비명을 질렀다.

직후 도마뱀 꼬리처럼 잘린 오른팔이 도로 재생하기도 전에.

서걱-!

“끄흑, 끄흐윽……!”

재차 휘둘러진 나뭇가지, 아니, 업화대검이 정진철의 남은 왼팔마저 잘라냈다.

카운트가 이어졌다.

“5, 4, 3…….”

“살려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살려줘 좀…….”

“2, 1…….”

서걱-! 팍-!

재생을 끝마친 오른팔이 잘리고 이제 막 뼈가 돋아나려 했던 왼팔이 으깨졌다.

짙은 핏물이 퍽퍽 튀기며 대성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아직 다리가 잘리지는 않았던 정진철이 쏜살같이 뛰쳐나가 어둠 속으로 은신했으나.

화륵, 파바방-!

“어헉……!”

불덩어리에서 발사된 <염탄>이 유도탄처럼 날아와 정진철의 몸에 작렬했다.

정진철은 신체 일부가 터져나가고 불타는 격통을 집어삼키며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하지만.

서걱-! 화륵, 퍼버벙-!

향하는 길목마다 불꽃의 검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마치 이쪽이 어디로 도망칠지 전부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움직임.

아무리 기감을 넓게 확장시켜도 이런 어둠 속에서 이토록 정밀하게 상대방을 식별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네가 아무리 도망쳐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서슬 퍼렇게 울렸다.

“네 머리 위에 ‘낙인’이 찍힌 이상, 너는 나한테서 도망칠 수 없어.”

‘낙인이라고?’

낙인이라는 말을 들은 정진철이 황급히 이마를 더듬었다.

물론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머리 위에 찍힌 낙인은, <사주의 눈>을 발동시킨 대성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니까.

그러니 대성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간단한 작업이다.

서걱-! 화륵-!

그 낙인을 따라가고, 낙인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피로 얼룩진 숨바꼭질이 서너 번쯤 반복된 후.

철퍼덕-!

“……죽여, 이 미친 새끼야. 나 그만 괴롭히고, 그냥 죽여줘…….”

사지가 잘린 정진철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울면서 애원했다.

잘려나간 팔다리는 더 이상 새로 돋아나지 않았다.

스무 번의 재생 횟수를 전부 소진해버린 탓이다.

대성이 걸레짝이 된 모습으로 쓰러진 정진철을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아니. 안 죽일 거다. 네놈이 개수작 부린 거 철회하기 전까진.”

“……미친, 허억- 미친 새끼야……. 지금 내 꼴을 보고도…… 허억- 어차피 뒈질 놈한테…… 허억- 말이 되는 소리를…….”

그것은 최후의 순간까지 선보이는 정진철의 발악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 절대로 저놈의 비위는 맞춰주지 않겠다는 고집.

하나 다음에 이어진 대성의 대답은 그 억센 고집마저 꺾어버렸다.

“너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뭐, 뭐?”

그 순간.

업화대검에 휩싸인 불꽃이 녹색을 띠기 시작했다.

[‘성화’ 모드의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치유>]

화륵, 사아악-

으깨진 레고 조각 같은 정진철의 몸 위로 초록 불꽃이 휘감기더니,

“어, 어어?”

절단되었던 그의 팔다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도로 재생되었다.

성화의 기적을 맛본 정진철이 어안이 벙벙해지던 와중, 대성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열흘에 한 번밖에 못 쓰는 스킬인데 널 위해 내가 인심 썼다.”

“어, 어어……. 어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지.”

“자, 잠깐……. 잠깐, 잠깐만…….”

“5, 4, 3…….”

편히 죽지도 못하는 악몽.

졸졸졸-

실금한 정진철의 하반신 아래로 노란 액체가 번져갔다.

***

‘슬슬 보안 담당 쪽에서 카메라를 복구할 시간인데…… 진철이 녀석, 아직도 즐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같은 시각.

새카맣게 전원이 나간 3층 모니터를 본 이석우가 손목시계를 넌지시 확인하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앰플에 펄스 헤지혹의 인자를 섞는 건 틀린 판단이 아니었어.’

펄스 헤지혹(Pulse hedgehog).

3등급 위험종 중에서도 ‘네임드’로 분류된 녀석인데, 그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EMP.

강력한 전자파 펄스를 방출해 주변의 디지털 장비를 모조리 무력화시키는 것이 놈의 주특기였다.

대부분 디지털로 구동되는 장비를 갖춘 사냥꾼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공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진철이 주입받은 앰플에는 펄스 헤지혹의 인자가 섞여 있었다.

즉, 그 EMP 방출이라는 능력을 정진철도 사용할 수 있는 셈.

이걸로 잠시나마 감시 카메라의 눈을 가렸고, 그 틈에 신초영을 실컷 유린할 수 있었을 터.

‘이제 곧 카메라가 다시 복구돼도 진철이가 했다는 증거는 없고……. 결국 신초영만 불쌍하게 된 거지.’

만신창이가 된 그녀가 만천하에 공개될 순간을 상상하자, 이석우의 입가에 절로 가학한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때.

“……응?”

히죽히죽 올라가던 이석우의 입꼬리가 일직선으로 변했다.

반응이 없던 모니터가 도로 복구되는 것과 똑같은 타이밍이었다.

“어!”

“3층 카메라 복구됐다!”

“협회 이 새끼들 일 처리 빨리도 한…… 엉? 저게 뭐야.”

웅성웅성-

그리고 모니터에 비친 광경을 목격한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기, 기다려! 아, 아니. 기다려 주세요! 이건 저도 어떻게 돌이킬 수가 없단 말이에요!>

절박함 가득한 비명이 카메라에 내장된 마이크를 타고 관중석에 전달되고 있었으니까.

그 비명을 들은 관객들은 저마다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한번 터진 EMP를 도로 취소할 수는 없어요!>

그 비명을 지르는 이가 바로 정진철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은 정진철 앞엔 한 사내가 가만히 서 있었다.

불꽃에 휩싸인 나뭇가지를 든 채.

모두가 그 얼굴을 안다.

방금까지도 그들이 그렇게 열광하던 104번 응시생이었으니까.

104번이 입을 열어 물었다.

<네가 한 짓이잖아.>

<제, 제가 한 짓은 맞지만…… 근데 그걸 도로 취소할 순 없어요.>

그 말이 울려 퍼진 순간.

관중석의 술렁임이 더욱 커져갔다.

“……카메라가 나갔던 게.”

“정진철이 한 짓이라고?”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저 짧은 대화가 의미하는 바를 모를 수 없었다.

이로써 정진철이 내부의 카메라를 망가뜨리고 3층 게이트를 닫은 장본인이란 게 확실해졌다.

<그, 그냥 시간이 지나면 주최 쪽에서 무슨 대책을 세울 겁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리시면 돼요!>

<얼마나.>

<그, 그건 저도 모르죠.>

<…….>

<부탁이에요.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저 같은 게 분수도 모르고 먼저 덤빈 건 죄송합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화면 속의 정진철이 자세를 바로잡더니, 이내 손바닥을 맞대며 싹싹 빌기 시작했다.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로 애걸복걸 사정하면서.

‘저, 저 븅신이……!’

그 추태를 빅 스크린으로 감상 중인 이석우는 당장에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기세였다.

<살려달라고?>

<그, 그쪽은 그쪽대로 괜한 힘 안 빠져서 좋고, 저는 저대로 하던 일 끝내서 좋고! 윈윈이잖습니까! 서로 제 갈 길 가는 거죠!>

<하던 일 끝낸다는 게…… 아까 그 여자를 죽이는 거 말인가?>

<시, 신초영 그년 조지기로 저희 클랜 쪽 단장님이랑 약속을 해놓은 상태라…….>

저 병X 새끼가?

이석우가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시, 신초영을 조진다고?”

“저건 또 뭔 소리래?”

“으아악-! 저, 저저……. 저거……!”

신초영을 비춘 카메라를 제일 먼저 본 관객이 질겁했다.

정진철 쪽에만 집중하던 나머지 관중들이 그 소리를 듣고 스크린을 바라보았고.

“이…… 이 악마 같은 새끼들.”

결코 적지 않은 이가 분노를 드러냈다.

그들이 보는 스크린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중상을 입고 기절한 신초영을 여과 없이 비추고 있었으니까.

이걸로 확실해졌다.

정진철은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망가뜨리고 3층 게이트를 봉쇄했다.

심지어 그 의도가 살인이란 게 명명백백히 밝혀진 지금.

그 장면을 지켜보던 누구나가 구역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그거 알고 있나?”

정진철이 감히 눈도 마주치치 못하며 벌벌 떨고 있을 때, 대성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 EMP라는 거, 생각보다 효력이 오래가지는 않는군.”

정진철은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는 한편, 대성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내심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까부터 카메라 불빛이 반짝이는 게 얼핏 보여서 말이지.”

그 순간.

정진철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감각을 느꼈다.

‘그럼 아까부터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밖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 이상 머저리같이 계속 땅에 고개를 처박을 수가 없었다.

“자, 잠깐-”

안색이 새파래진 정진철이 무심코 얼굴은 든 그때.

훙-

서걱-!

포물선을 그린 업화대검이 정진철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켰다.

“아까 네 입으로 직접 나한테 먼저 덤볐다고 말했지. 잘했다.”

툭.

대성이 두 눈을 까뒤집고 절명한 정진철의 머리를 발로 쳐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경우엔 ‘정당방위’란 게 성립하더군.”

***

확실한 전후 상황이 밝혀지기도 전에 섣불리 판단을 내리는 건 금물이다.

하지만.

와아아-!!

관중석에 있던 대부분이 104번의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정진철의 처형.

이는, 녀석이 의도적으로 다른 응시생을 방해하고, 무엇보다 신초영을 반죽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직접 들었기에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정진철, 이 개호로 새끼가!’

그 환성을 내지르는 이들 중에 이석우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정진철이 자신의 사주를 받아 신초영을 공격했다는 게 만천하에 폭로된 상황.

이석우는 똥이라도 씹은 얼굴로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났다.

그리고 또 한 명.

이석우 말고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이가 있었다.

동시에 그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슬픔도.

‘초영아!’

바로 황준영이었다.

평생 곁에서 도와주겠다고 결심한 제자가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혼절한 광경을 본 스승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이석우, 이 개새끼가!’

그 마음 또한, 감히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

***

몬스터로부터 시민과 국가를 지켜줄 사냥꾼이 절실한 오늘날.

그 현재와 미래를 짊어질 신인 사냥꾼을 뽑는 라이센스 시험은 세상 그 어떤 시험보다도 철저하게 이뤄져야만 했다.

완벽하게 공정할 순 없어도, 불합리하리만치 난이도가 어려울 수는 있어도.

적어도, 최소한의 사냥꾼 정신과 인륜에 반하는 사건사고가 터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 얼굴이 다 뜨거워지는군. 이건 사냥꾼의 수치다.”

어두운 회장실 내부.

인상이 꽤나 거친 중년 남성이 모니터를 보며 끌끌 혀를 찼다.

한국 사냥꾼 협회 KHA의 협회장, 박정호.

그는 작금에 드러난 정진철의 범죄행위, 넘어서 <홍마> 클랜의 행포에 미간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그런 박정호의 뒤에 서서, 그와 마찬가지로 불쾌함을 느끼는 한 여자가 있었다.

KHA의 비서실장 이하원이었다.

그녀가 박정호에게 물었다.

“시험은 어떡할까요, 회장님.”

“어떡하겠나. 이만한 사달이 터졌으니 속행은 불가능하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험은 여기서 마무리해. 3층 게이트 다시 열리는 대로 감독관이랑 안전 요원들 들여보내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그럼…… 합격자 선정은 어떻게 할까요?”

“음…….”

그 질문에 박정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내 그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시험 진행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해서 아예 결과마저 무효로 해버릴 수는 없겠지.”

회장실에 설치된 거대한 메인 모니터에는 백 개에 달하는 분할 스크린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각성자들의 분투.

장관이라 표현해도 모자람 없을 광경을 지그시 바라보며, 박정호가 명쾌하게 정리했다.

“합격 커트라인을 수정하지. 지금까지 3층이 아닌, 2층을 클리어한 선착순 20명으로.”

“거기에서 정진철은 제외되는 거죠?”

“그걸 말이라고,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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