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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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을 돌파한 선착순 20명.
그것이 이번 시험의 합격 커트라인이었다.
중간에 사고로 인해 당초의 기준점에서 낮아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카메라만 조금 돌려보면 누가 먼저 2층을 클리어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즉,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말.
“완전 헬이었어.”
“씨파, 참 여러 가지 의미로 헬이었긴 했지. 난이도도 지X 맞았고, 특히 신초영은…….”
“황준영 그 인간, 화가 머리끝까지 났겠구먼.”
“이석우는 죽은 목숨이지. 뭐, 그 새끼도 만만찮은 놈이라 황준영한테 순순히 죽어줄 것 같지는 않다만.”
“그것뿐이겠냐? 아예 <홍마> 클랜 자체가 공중분해될 걸.”
전광판에 집계 결과가 갱신될 때까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이번 시험과 관련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요 화두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후 정부와 KHA에서 내릴 <홍마>의 처분에 관해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냥 이번 시험은 커트라인에 있는 애들 중 1, 2명만 데려와도 대박이다.”
“TOP5 애들은 뭐……. 우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몸값도 아니고.”
의외로 104번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어차피 104번 같은 피지컬을 지닌 사냥꾼이라면 대형 클랜들이 개처럼 달려들 게 뻔할 터.
104번뿐만이 아니다.
이번 시험 자체가 사냥꾼으로서 지닌 역량의 극한을 드러나게 해주었다.
톱5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냥 커트라인에 들어온 이들 자체가 보배인 셈.
대다수의 중소 규모 클랜들은 이제 본격적인 영입 준비에 들어섰다.
띵-!
“떴다!”
홀 상단에 설치된 거대 전광판에서 20명의 합격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1st. 한대성]
물론 이변은 없었다.
***
치열하고 우여곡절이 가득한 시험이었으나, 완전한 종료까지는 반나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하나 게이트 밖으로 비척비척 걸어 나오는 응시생들은 마치 한 달은 혹사당한 것처럼 초췌한 모습이었다.
“다들 고생하신 건 알지만, 앞사람이 완전히 퇴장하기 전까지 먼저 나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질서를 유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총 열 개로 분리된 퇴장용 게이트에서 응시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알림판에는 각자의 성적이 기록되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희비의 교차는 옅었다.
이중 20명을 제외한 대다수가 탈락자였을뿐더러.
‘혹시 몰라’ 같은 헛된 기대감을 품기엔 미친 난이도였으니.
‘젠장, 감독관은 속 편해서 좋겠네. 미친놈, 네가 시험 쳐봐라.’
‘빨리 가서 좀 씻고 싶은데 질서는 개뿔이 질서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시험은 시험대로 망하고…….’
습도가 하늘을 찌르는 열대우림에서 고블린과 씨름을 하고,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엄동설한에서 암벽등반을 하고 오는 길.
속 편하게 잔소리나 하는 감독관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좌절감보다, 용케 안 죽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결과고 뭐고 빨리 집에서 쉬고 싶다는 열망이 그들 사이로 번져갔다.
동시에.
‘……사냥꾼 이거, 개나 소나 하는 게 아니었구나.’
‘씨X. 집에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야지.’
‘짐꾼으로라도 취직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아, 미치겠네.’
사냥꾼.
이 세 글자가 지닌 중압감을 모두가 재고해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멋져 보였을 거다.
TV 화면 속에서, 거대한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의 영광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은.
블록버스터 영화에나 나올 법한 히어로가 ‘직업’으로서 구체화되고, 또 실현되었으니 얼마나 멋지겠는가.
하지만 슈퍼맨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장비 몇 개에만 의지해 총도 안 통하는 괴물과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하는 사냥꾼이란 직종은.
흔히 말하는 ‘사’짜 직업이 되려고 고시 패스하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모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뼈저리게 절감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헉.”
‘쟤, 쟤야?’
‘타고난 놈은 풍기는 포스부터 다르네, 와…….’
비교적 후발대 라인에서 퇴장 게이트를 나서는 이들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좀비처럼 비척대는 이들이랑은 달리 걸음걸이부터가 각이 잡힌 거구의 남자였다.
이번 시험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앞세우고, 당연하다는 듯이 톱1의 자리를 꿰찬 응시번호 104번.
대성이었다.
“퇴장하신 분들은 탈의실로 이동하신 다음, 각자 지정된 번호의 로커 안에 아머를 반납해주시면 됩니다.”
감독관의 안내가 이어지자 대성은 속으로 명령어를 읊었다.
‘로드 해제.’
그러자 겉으로 보이는 재질이랑은 달리 철컥거리던 감각이 사라졌다.
시험용 아머 위에 투명하게 로드되어 있었던 발라르크의 갑옷이 아공간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발라르크의 갑옷이 사라지니 확실히 알겠군. 지옥의 아이템이 사냥꾼들이 쓰는 장비보다 훨씬 좋다.’
그가 처음으로 ‘지옥’과 관련되어 고평가를 내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참 우스웠다.
덜컥-
탈의실에 도착한 대성은 로커를 연 뒤, 입고 있던 아머를 훌훌 벗었다.
당장 잡지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자리가 제대로 잡힌 근육질 체구가 드러났다.
일반인이라면 헉, 소리를 냈겠지만.
“…….”
“…….”
탈의실에 있는 이들 또한 합격 여부는 둘째 치고 이번 시험을 위해 피를 쏟아부은 각성자들이었다.
근육덩어리 좀 봤다고 입 벌리고 감탄하기엔 그들의 몸매도 썩 나쁜 편은 아니었다.
다만,
‘몸에 뭐 어디 깨끗하게 성한 부분이 없네.’
‘재능 있는 인간이 노력도 하니 꽃길을 걸을 수밖에 없지.’
눈앞에, 이번 시험에서 1등을 한 괴물이 있다.
그런데 그 괴물의 몸이 상처투성이다. 자잘한 생채기부터 해서, 크게 번진 칼자국과 화상까지.
제일 먼저 든 선입견이 이거다.
저건 다 이번 시험을 위해서 ‘훈련’하는 과정에서 생긴 거라고.
어떻게든 이번 시험의 합격을 위해, 똥밭에라도 구를 열정을 보인 증거라고.
물론 실상은 완전히 반대였지만 말이다.
‘……내년 노리자.’
그들은 감탄하지 않았다.
대신,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기분 축 처지게 만드는 무거운 반성이 아니다.
저 정도는 하자.
더 열심히 해서 내년을 노리자.
그런, 스스로를 다독이는 활기 띤 반성이었다.
본의 아니게 대성이 탈의실에 있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준 셈이었다.
‘자꾸 신경 쓰이게 하는군.’
그걸 알 리가 없는 그는 묵묵히 옷만 갈아입을 뿐이지만.
***
탈의실을 빠져나와 스타디움 밖을 나서기 직전 휴대폰이 울렸다.
성찬호에게서 온 문자였다.
‘절묘하네.’
시험 끝나고 밖에 나가려 하기 무섭게 문자가 온 것이, 마치 타이밍을 계산하고 보낸 듯한 느낌이었다.
대성이 메신저 알림을 클릭하자, 거기엔 짤막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남들 눈에 띄지 말고 조용히 화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5분 뒤면 도착한다.]
의도를 알 수가 없는 내용.
뭐든 좋으니 제대로 된 바깥공기를 쐬고 싶은 대성은 불만 가득한 답장을 보냈다.
[왜.]
띠링-
10초도 안 되어 답장이 도착했다.
[아, 조ㅁ! 제발 부탁할게! 베프 소원 하나 들어주는 셈 치고! 3분이면 도착ㅎ한다!]
텍스트에 섞인 오타가 그의 절박한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이번 시험과 관련해서 성찬호는 결코 적지 않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시험에 필요한 자료들은 전부 그가 조달해준 것이니.
‘녀석 덕분이 크다.’
화장실에서 좀 기다려달라는 부탁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뭐, 설령 성찬호가 원조를 해주지 않았어도 이 정도 사소한 부탁은 어차피 들어줬겠지만.
텅-
남들 눈에 띄지 말라는 말에, 대성은 최대한 구석진 곳의 화장실에 들어간 뒤 칸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
벌컥-!
“여, 예비 떼부자!”
그리고 정말로 3분 만에 문이 벌컥 열리고 성찬호가 손을 흔들었다.
대성이 피식 웃음을 흘린 뒤 표정을 굳히자, 성찬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 나 네 웃는 얼굴 10년 만에 본다?”
“때부자라는 말이 듣기 좋아서.”
“그래, 보기 좋다, 야. 미리 연습해둬. 앞으로 웃을 일 많을 테니까.”
“화장실에선 왜 기다리라고 한 거야.”
“너 귀찮은 일 같은 거 질색인 거 내가 다 아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지 대성이 의미를 곱씹고 있으려니, 성찬호가 칸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한쪽 벽면에 비치된 작은 유리창을 가리켰다.
밖을 내려다보라는 의미.
“…….”
여전히 의도가 짐작이 가지 않았던 대성은 고개를 갸웃한 뒤 유리창 밖을 보았다.
거기엔, 마치 국빈이라도 행차한 것처럼 검은 세단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또, 정갈하게 빼입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들이 부지 입구에서 가만히 대기 중이었다.
“저건…….”
“뭔지 좀 감이 잡혀?”
성찬호 본인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다 너 영입하러 온 사람들이야.”
“…….”
“대한민국 10대 대형 클랜의 단장들이 소식 듣고 차 몰아서 달려온 거라고.”
“저 외국인은?”
“외국에서 오신 팀장님이겠지.”
“한국인이 외국 클랜에 들어갈 수도 있는 건가?”
“네 국적을 뜯어고치는 한이 있더라도 데려가려고 눈 뒤집힌 거 안 보이냐.”
그들이 대성을 ‘인력’이 아닌, 아예 ‘국력’에 가까운 레벨로 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저기 저 노땅 보이냐? 쟤가 내가 있는 클랜 단장님이셔. 영업팀장인 나보고 따라오라는 거 거절하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국제 클랜 컨퍼런스급의 자리가 아니면 좀처럼 보기도 힘든 이 시대의 ‘별’들이.
오직 단 한 명, 대성을 영입하기 위해 바람같이 달려와 서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네가 뭐, 성적이 좋다거나 1등을 했다고 해서 저치들이 저러고 있는 게 아니야.”
성찬호가 이 전례 없는 진풍경을 차분히 분석했다.
“보고된 바가 없는, 전혀 처음 보는 오러 테크닉을 구사하고.”
그리고 그 통찰은 틀리지 않았다.
“악질 행위를 저지른 정진철을 보란 듯이 무릎 꿇리고 사람들 앞에서 <홍마>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시켰지. 네가 의도했든 안 했든, 쇼맨십이 가산점으로 들어갔다 이거야.”
그 정도 역대급의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에야, 저런 거물들이 차를 끌고 직접 나서는 친절을 베풀어줄 리는 만무했다.
“내 친구지만 졸라 무섭네, 진짜.”
“…….”
“대성할 놈이라고 누누이 드립치긴 했는데 미친놈이 진짜 해내냐.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대성과는 오랜 시간을 지낸 친구이기에 담담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찬호는 솔직히 인정했다.
아예 생판 남이었으면, 이렇게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경외심을 느꼈을 거라고.
“야, 근데 듣다 보니까 기가 차더라. 뭐, 뭐 네가 좀비를 소환하질 않나, 등에서 용 날개도 막 튀어나오고 그랬다는데 사실이냐? 내가 직접 보지를 못해서…….”
“…….”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된 놈이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너 뭐 무협지 주인공처럼 기연이라도 얻었냐?”
“그래서 결국 화장실엔 왜 기다리라고 한 거야.”
“아니, 시펄놈이. 자연스럽게 말 돌리는 거 보소.”
이건 대답할 마음이 없다는 의지 표명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성찬호는 한숨을 쉬었다.
“왜 기다리라고 하긴. 너 지금 밖에 나가면 X돼, 인마.”
“하긴. 저놈들한테 발이 묶이겠군.”
“너도 최소한 오늘은 푹 쉬어야 할 거 아니냐. 어차피 오늘 아니더라도 내일부터 전화기에 불날 거니까 각오하고.”
인재를 얻기 위해서라면 똥밭도 구를 놈들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성찬호의 그럴싸한 배려에 대성이 납득하는 와중, 그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어 건넸다.
“자.”
“……나보고 지금 이걸 쓰라고?”
“슈퍼스타 되셨으니까 미리 연습하셔야죠.”
마스크와 선글라스였다.
위장은커녕 쓰면 더 수상해 보일 것 같은 조합이었다.
“뒷길은 없나?”
“내가 오면서 봤는데 저 새끼들 뒷길에도 대기 타고 있더라.”
“물러갈 때까지 기다리지.”
“뭐 한 자정 될 때까지 여기 틀어박혀 있자고? 그냥 써, 인마.”
마지못해 대성은 허접하기 짝이 없는 변장을 한 뒤 성찬호와 함께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멀찍이서 들려왔다.
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탄탄대로를 보장해줄 이들이 서로 앞다투는 소리가.
무게가 다른 소음 속에서, 둘은 한가로운 대화를 나눴다.
“야, 대성아.”
“어.”
“집 갈래, 아니면 나랑 술 먹을래.”
“집.”
“끝나고 한잔하자는 아침의 약속은 없던 걸로 하는 거냐?”
“집.”
“내가 고기 사 줄게. 마블링 끝내주는 소고기로다가.”
“엄마랑 지수를 볼 거야.”
“아, 새끼. 고민하는 티라도 좀 내라. 졸라 섭섭하네.”
시무룩해진 성찬호가 장난치듯이 대성의 팔을 툭툭 쳤다.
마스크와 선글라스 너머, 대성이 진심이 담긴 말을 꺼냈다.
“내가 이 고생 한 거, 다 가족을 위해서였으니까.”
***
“밖을 좀 내다보시죠, 회장님.”
“안 내다봐도 돼.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박정호 협회장은 테이블에 정리된 서류들을 흥미롭게 훑어보았다.
바깥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거성들의 집결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존심 하나는 하늘을 찌르는 양반들이. 허허…….”
아니, 물론 협회장인 그도 이 사태는 신기하기는 했다.
10대 대형 클랜.
빅10이라 불리는 이들만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을, 박정호는 본 적이 없다.
그런 이들이 오직 단 한 명을 위해 몸소 행차하셨다.
신기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박정호는 이 잘난 놈들의 심정이 백분 이해될 지경이었으니까.
“한대성…….”
“괴물이더군요.”
“괴물이지. 이창식 이후로 그런 기량을 지닌 인물을 본 적이 없어.”
한대성이란 남자는.
이대로 잘 다져나가기만 하면, ‘사냥꾼의 왕’이라고 불리는 남자와 버금갈지도 모른다.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 자신하는 박정호는 그리 확신했다.
“이 비서.”
“네, 회장님.”
“꼭, 그를 협회 인물로 만들게.”
“물론입니다.”
그런 자질의 실력자를 협회가, 그리고 협회장인 자신이 직접 관리한다.
일이 잘만 성사된다면, 한국이 사냥꾼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건 시간문제다.
“저 자존심 높은 양반들한테 뺏기기 전에 우리가…… 응?”
“왜 그러십니까?”
그때, 대성의 프로필을 살펴보던 박정호의 눈이 커졌다.
예상 밖의 내용이 그 서류에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