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44화 (44/180)

# 44

044

가족과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저녁.

오늘은 제발 같이 한잔하자는 성찬호의 애원에 못 이긴 대성은 대충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나섰다.

부아앙-!

직접 차를 끌고 인근의 명물로 통하는 바(Bar)로 향하며, 성찬호가 조수석에 앉은 대성에게 말했다.

“너 완전 인기 스타 됐어.”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 벌써 네 번째 듣는 말이다.”

“궁상맞게 굴지 좀 말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봐, 인마. 지금 대한민국 온 사방이 네 이름을 속삭이고 있다니까?”

“부담스럽군. 딱히 유명세 같은 걸 바라지는 않았는데…….”

라이센스 시험의 수석 정도 되는 레벨이라면, 매스컴을 탈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직접 현실로 느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어디 갈 거냐?”

“뭔 소리야. 집 간다니까.”

“아니, 인마. 내 말은 어느 클랜에 들어갈 거냐고. 야, 대성이 좋겠다. 행복한 고민 하겠네.”

한 장만 당첨돼도 대박인 복권이 무려 열 장씩이나 들어맞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기회들이다.

현업 종사 중인 B급 사냥꾼들조차 어떻게든 빅10 중 한 곳에라도 기웃거려보려고 발버둥 치는 시대.

그런데 그 빅10을 일부도 아니고 열 곳 모두 골라 갈 수 있다니.

만일 찬호 자신이 다시 태어나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면…….

‘지금 당장 한강 달려갈 자신 있는데, 젠장.’

성찬호는 잘나가는 자신의 친구가 듬직하기도 하면서 부러워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뚝딱 각성이 됐으면 좋겠다고 성찬호가 망상을 펼치던 가운데.

직후 대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 성찬호를 망상에서 헤어 나오게 했다.

“생각이라면 이미 끝내놨어.”

“응? 어? 벌써? 어디로 들어갈지 결정했다는 거야?”

“어디에도 안 들어가.”

끼익-!

마침 차가 신호가 걸렸다.

브레이크를 밟은 건 본인임에도 성찬호가 관성에 떠밀려 상반신이 살짝 굽혀졌다.

공들여서 정돈한 헤어스타일이 헝클어진 모습으로 성찬호가 물었다.

“안 들어간다고?”

“어.”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은 건데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성찬호는 금붕어처럼 두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 떴다가, 이내 버튼을 눌러 조수석의 창문을 열었다.

서늘한 저녁바람이 갑작스레 얼굴을 때리자 대성이 움찔거렸다.

“갑자기 뭐야.”

“너 머리 좀 식히라고.”

“내가 머리를 왜 식혀.”

“신선한 공기 좀 뇌에 공급해서, 거기 들어 있는 헛바람 좀 정화시키라는 거야, 인마.”

“너야말로 신선한 공기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래, 네 말이 맞다. 내 친구가 굴러 들어온 복덩이를 통째로 걷어차겠다는데, 아주 복장이 터져 돌아가실 지경이거든? 나도 바람 좀 쐐야지, 쓰읍!”

신호가 바뀌자 성찬호는 도로 액셀을 밟으며 운전석 창문도 완전히 내려버렸다.

“이유나 좀 물어보자. 왜 클랜에 안 들어가려는 건데?”

“얽매이는 게 싫어서.”

기껏 돌아온 답변이 추상적이기 그지없었다.

성찬호는일단 딴죽을 걸지 않고 이놈이 과연 뭐라고 뒷말을 덧붙일지 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정적만이 계속 이어지자, 참다못한 성찬호가 태클을 날렸다.

“그게 끝이야? 뭐 더 없어?”

“어.”

“좀 자세히 말해봐. 뭐가 얽매이기 싫다는 건데? 오히려 날개를 달아줬으면 달아줬지.”

“내가 원할 때 날아오를 수 없으면 그건 날개가 아니야.”

열흘간 산속에 틀어박혔을 때.

성찬호는 정말 많은 정보를 알려줬고, 그만큼 대성 또한 정말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퀘스트로 얻은 메모리칩이 지구의 상식과 기억을 떠올리게 해줬다면, 그때 했던 조사와 공부는 ‘대격변’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클랜’과 관련된 정보들도 있었다.

‘결국엔 누군가에게 복종해야 되고,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야만 한다.’

클랜에 소속된 이는 클랜 측이 매입한 게이트에만 입장할 수 있다. 그 외의 독자적인 사냥 행위는 계약 조건에 위배된다.

또, 사냥 활동을 통해 얻은 모든 수익을 클랜 측과 7대3으로 분배하는 게 원칙이다.

한차례 상념을 거친 대성이 약간의 간극을 두고, 하려던 말을 짤막하게 이었다.

“그건 족쇄지.”

“야, 그걸 마냥 족쇄라고만……. 뭐 수익 분배나 게이트 입장 제한 조항 때문에 족쇄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데, 그만큼 너한테 돌아오는 것도 있다니까?”

“장비 지원?”

“그래, 장비 지원! 시중에선 구경도 할 수 없는 개쩌는 것들! 그게 다 공짜로 너한테 지급된다고.”

시중에서 양산되는 저급 장비들이 아닌, 클랜 측에서 독자적으로 보유한 기술력으로 제작된 고급 장비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설령 금전으로 환산한다고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로도 부족한 물건들이 무료로 손에 쥐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염왕의 영혼이 깃들고 바다도 태울 수 있는 대검을 보유한 대성에게 장비 관련 얘기는 유혹이 될 수가 없었다.

“줘도 안 받아.”

“미치겠다. 이 미친놈아.”

성찬호는 마음 같아선 운전대에 이마를 쾅쾅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기업에서 모셔 가겠다는데 정작 대성은 직장 문화가 싫다고 떼를 쓰는 걸로 보였을 테니.

‘80년 동안 그 누구의 밑에도 있지 않았다.’

하나 대성은 이런 상명하복의 문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 없는 살인과 폭행이 지구에선 금지라면, 그 정도 규칙은 기꺼이 따라줄 수 있다.

근데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몫을 앗아 가고, 발에 족쇄를 채우면서 이것이 규율이라고 우긴다면.

‘그딴 더러운 똥밭엔 발도 디디지 않을 거다.’

일확천금에 눈이 팔려 그들이 강요하는 규칙에 순응해야 한다니.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관철해 온 그에겐 코웃음을 칠 이야기였다.

“클랜 소속이 아니면 주로 솔로(Solo)로 움직여야 된다는 건데…… 그게 인마, 얼마나 팍팍한지 알아?”

“뭐가 팍팍한데.”

“혼자 움직이는 거니까 졸라 위험하지. 장비 구린 거 써야 되지. 또 게이트 매입이랑 부산물 처리 뭐 이딴 자잘한 것까지 다 혼자 해결해야 되지. 이런데 안 팍팍하겠냐?”

“흠…….”

위험도와 장비 문제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부분이니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확실히 사냥을 뛸 게이트의 확보와 부산물 매각을 혼자 처리해야 된다는 건 귀찮을지도 모른다.

“대성아, 그냥 제일 조건 괜찮은 곳으로 들어가라. 내가 친구로서 우정이 있으니 <소울>로 들어오라는 말은 안 할게. 평소엔 얼굴도 뵙기 힘든 양반들이 어떻게든 너 가져보겠다고-”

“너도?”

“뭐?”

턱을 괸 채 차창 밖만 구경하던 대성이 느닷없이 성찬호 쪽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면 부차적인 문제엔 신경 쓰지 않고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 궁리하던 중.

지금 막 괜찮은 아이디어가 대성의 머릿속을 스쳤다.

“나도? 내가 뭐?”

“너도 나 가지고 싶냐고.”

“이 새끼 이거 갑자기 무섭게 왜 이래?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린다?”

“그런 뜻 아닌 거 알면서 농담하지 말고.”

“뭐…….”

같이 일하는 파트너로서 대성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생각할 것도 없지.’

빅10 전부가 눈독 들이는 귀재. 여섯 번째 S급 사냥꾼 유력 후보. 보고된 적 없는 신기한 오러 테크닉을 구사하는 신성(新星).

이 모든 타이틀을 보유한 인간과 나란히 설 수 있다면, 그만한 찬스가 또 어디 있을까.

실제로도 그 찬스를 얻기 위해 빅10의 단장들이 이 추운 날에 벌벌 떨어가며 고사를 지내지 않았던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랑 같이 일하자고.”

정신 차리고 보니 대화의 흐름이 처음과 완전히 반전되어 있었다.

고용을 당해야 할 대성이 도리어 고용을 하는 입장이 된 것처럼 꺼낸 제안에, 성찬호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 말은 그럼…… 내가 너랑 단독 계약을 맺으라, 뭐 이런 뜻?”

“계약이라는 단어가 좀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뭐 비슷하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급선회하는 이야기에 성찬호가 할 말을 잇지 못하던 와중, 대성이 설명을 덧붙였다.

“게이트 매입, 부산물 처리 등. 사냥 외적인 부분은 네가 담당하는 거야. 고기는 내가 물어 올 테니.”

게이트 예약이야, 허가권만 있으면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끝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부산물 처리는 거래소 등록부터 해서 경매 입찰 및 매입한 사람과 직접 대면해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성가신 절차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호구 잡힐 일 없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선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또한 필수적인 셈이다.

근데 그 문제와 관련해서 누구보다 뛰어난 일 처리를 자랑하는 전문가가 바로 옆에 있었다.

“대형 클랜의 영업팀장으로 일할 정도면 너도 수완이 나쁘지 않다는 거고.”

좀처럼 타인을 믿지 못하는 대성도 성찬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성찬호가 물었다.

“너, 아까 나한테 얽매이기 싫다고 말한 것도 네 몫 줄어드는 게 불만이어서 그런 거 아니야?”

“찬호 너는 괜찮아.”

“엉?”

“너는 믿을 수 있으니까.”

딱 세 명 있었다. 맹목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랑 지수, 그리고 찬호 너밖에 없어서 그래.”

“……아니,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분위기 어색해지게.”

성찬호는 닭살 돋는다는 듯이 노골적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입에선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방금 대성이 했던 말이, 꽤나 기쁘게 들렸으니까.

자신이 대성을 믿는 만큼이나 대성 또한 자신을 믿어준다는 사실에 그는 안도했다.

대성 또한, 성찬호의 능력만 믿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게 아니다.

‘성찬호’라는 인간을 믿을 뿐이지.

성찬호가 농담조로 말했다.

“혹시 믿을 수 있다는 그 말, 나보고 열정페이로 일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마땅히 할 일을 했으면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지.”

자신과 같은 지점에 서서 이득을 취해도 될 자격이 있는 이 또한 성찬호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에게 몫을 떼어 주는 것과는 다르다.

“돈은 주겠다는 거네.”

“그럼.”

“클랜과 소속되지 않은 사냥꾼 매니저 노릇 하면서 돈 벌어먹는 순간, 난 실장한테 찍힐 테고.”

“나랑 일하려면 거기서 나와야지.”

“자기 직장 아니라고 말을 참 쿨하게 하는구나, 우리 대성이.”

대성이 자신을 믿어준다는 사실에 기쁜 것과는 별개로.

무릇 인간이라면, 이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오랫동안 일해온, 그것도 한 부서의 팀장으로 부임해왔었던 직장을 포기해야 되는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성찬호는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운 뒤 갈등했다.

‘따지고 보면.’

제값 이상을 주고도 데려오지 못하는 재목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니, 그런 속물적인 생각을 차치하고서라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성의 재능을 썩히지 않고 전력으로 보필할 기회이기도 했다.

계급 따위에 구애받지 않으며.

맨투맨으로.

‘나라면 가능해.’

스스로를 과신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가 나아가는 길에 자갈을 치워주는 역할 정도야,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

대신,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

빅10의 영업팀장이라는 직장을.

과연 무엇이 옳은 판단일지 성찬호가 딜레마에 휩싸이던 그때, 대성이 말했다.

“잘 와 닿지 않겠지. 나한테 투자를 해도 될지.”

“아니, 대성아. 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괜찮아. 이해한다.”

아마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똑같았을 터.

평생 일궈놓은 성취를 포기한다는 건 아무나 내릴 수 있는 결단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직접 봐.”

“응?”

머리를 감싸 쥐던 성찬호가 의문 어린 눈으로 대성을 쳐다보았다.

친구의 고민을 덜어주고 싶었던 대성은 한 가지 묘안을 제시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걸 내려놓고 나한테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직접 보라는 거야.”

***

어젯밤 성찬호와 그런 대화들이 오갔었다.

그리고 지금.

대성은 미련 없이 빅10의 연락을 전부 무시했다.

사이트에는 대성의 얼굴과 각성 등급밖에 기재되지 않았다.

전화번호나 주소 등의 인적 사항까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그쪽에서 집까지 찾아와 끈질기게 들러붙을 걱정도 없을 터.

따로 저쪽에서 집요하게 뒷조사를 해서캐낸다면 모를까.

‘그런 무례한 놈들한테는 쓴맛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간단하게 세안을 마친 대성은 간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니, 성찬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차를 대기시켜놓은 상태였다.

대성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좋은 아침.”

“나한텐 좆은 아침이다, 미친놈아.”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성찬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쾅-

차 문을 닫고 조수석에 탑승한 대성도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이때, 옆에 있던 성찬호가 내리 두 개비 째를 입에 물자, 대성이 연기를 후욱 뱉으며 말했다.

“담배 연달아서 피우면 몸에 안 좋다면서.”

“곧 뒈질지도 모르는데 몸 좀 안 좋아지는 게 대수냐.”

“이건 뭐지?”

콘솔박스 수납 공간에 얇은 새하얀 봉투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겉면에는 아주 공들여 쓴 필체로 한자 두 음절이 적혀 있었는데, 한문에 약한 대성은 이리저리 봉투를 구경해보았다.

“응, 그거 내 유서야.”

“유서?”

“나중에 엄마아빠 보라고. 아, 여친한테는 따로 문자로 보내놨어.”

어쩐지 아까부터 뒷좌석에 놔둔 성찬호의 휴대폰이 진동을 멈추지 않는가 싶더니 그런 이유였다.

끼익-

잠시 뒤, 둘은 한적한 공터로 들어섰다.

요즘 애들도 안 이용할 것 같은 고리타분한 공터의 사방엔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무기를 들고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군인들 사이로.

우웅- 우웅-

거대한 푸른 구체가 힘차게 공진(共振)하고 있었다.

게이트.

성찬호는 체공 중인 푸른 구체를 무슨 지옥으로 통하는 문처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3등급짜리를 너랑 나 둘이서 공략……. 심지어 난 일반인이고. 유일한 각성자인 넌 장비도 없고……. 대성아, 넌 삶에 미련이 없니?”

“짐꾼 등록해놓으면 미각성자도 게이트 입장할 수 있는 거 맞지?”

“응. 그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그냥 짐꾼 안 할 테니까 너 혼자 들어가면-”

“무슨 소리. 옆에서 직접 봐야지.”

덜컹-

대성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보고 싶다며. 나한테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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