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45화 (45/180)

# 45

045

게이트는 총 1에서 5등급까지 나뉘어 있다. 물론 난이도는 숫자가 낮을수록 높아진다.

4등급과 5등급은 C급 상위 계열의 사냥꾼이 담합하면 클리어가 불가능하진 않은 정도.

3등급부터는 ‘위험 구(球)’로 분류되어 최소 5인 체제의 B급 사냥꾼 투입을 권고한다.

어디까지나 권고지, 강요는 아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게이트 발생 지역을 지키던 군인이 몇 번이고 만류했지만, 대성이 괜찮다고 잡아떼는 광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웬만하면 사냥꾼의 재량에 간섭하지 않은 군인이 남 일이 아닌 것처럼 걱정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3등급 게이트를 두 명이서, 그것도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겠다고?’

순수 오러 테크닉, 그리고 피지컬로 돌파하겠다는 말인데…….

아무리 봐도 자살행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 정보]

에테르 파장: 3등급

몬스터 예상 출몰 형태: 군단형

클리어 예상 소요 시간: 3일

적정 투입 인원: 40-50명

* 각성 판정 등급 B급 이상을 받은 이들만 입장할 것을 권고함.

* 추가 사항: 일주일 내로 게이트 프렉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니, 가까운 시일 안에 사냥꾼들의 조속한 투입이 필요함.

공터에 출몰한 게이트는 요즘 떠오르는 협회의 골칫거리였다.

게이트 프렉쳐가 발생하면 대규모 인적 피해가 발생하리란 게 자명함에도, 선뜻 공략에 나서겠다는 클랜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정 투입 인원이 최소 마흔 명 이상이라고 나와 있는데, 둘이서 들어간단 말이지.’

군단형 게이트.

말 그대로, 군단을 이루는 몬스터들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지형지물에 주둔 중인 곳이다.

이는 선형적인 필드 구조에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는 통상적인 게이트와는 달리 ‘이레귤러’로 규정된다.

발생 확률은 극히 드물지만, 한번 나타나면 안팎으로 머리를 아프게 하는 녀석인 셈.

‘새로운 자살 희망자인가?’

그러니, 게이트 정보가 입력된 카탈로그를 살펴보는 군인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슥-

군인은 눈길을 슬며시 돌려 대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대성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매스컴이 목청 터져라 떠들어대던 초신성이었으니까.

‘본인 실력에 자만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케이스군.’

게이트에 도전하겠다는 사냥꾼을 만류할 권한은 그에게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까웠다.

아무리 역대 최고의 초신성이라 평가 받는다 해도, 이런 게이트를 두 명이서 공략하겠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으니.

그리고 게이트 공략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속단하고 있군.’

그리고 대성은.

방금 빠르게 자신을 흘겨보던 군인의 시선으로부터 그의 심중을 눈치챘다.

‘속단할 만도 하겠지만.’

대성은 일부러 이 골칫덩어리 게이트를 누구보다도 빨리 예약했다.

적정 투입 인원수가 50명가량이라고 나와 있기는 하나, 실상은 그보다 2배에 달하는 사냥꾼이 투입되어야만 무사히 클리어 된다는 게 통계가 만연하다.

그리고 100명에 달하는 사냥꾼을 게이트 하나에 투입시킬 수 있는 인력을 가진 건 대형 클랜밖에 없다.

물론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대형 클랜 또한 얼마 없고.

그렇다면 클랜끼리 연합을 맺는 게 제일 무난한데, 그럴 경우엔 보상금 배분과 관련하여 피 터지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보통 게이트 프렉쳐가 아슬아슬할 때까지 일부러 방치한 뒤, 대형 클랜 중 한 곳이 총대를 메고 공략에 나선다.

클랜 내적으로 피해를 입더라도, 여론이라도 챙기자는 작정으로.

‘덕분에 예약이 어렵지는 않았지.’

그렇기에 대성과 성찬호는 별 수고 들이지 않고 해당 게이트의 공략 허가권을 따낼 수 있었다.

대성이 하필 이 게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보상 분배 때문에 클랜들끼리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인다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복수의 클랜에게 배분이 가능할 정도로 보상금이 어마어마하다는 뜻.

그리고 대성은 결심했다.

‘다 내 거다.’

그 어마어마한 보상을 모조리 독식하겠다고.

그때.

“군인 아저씨, 제발 이 새끼 좀 말려주세요. 전 죽기 싫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새끼가 신박한 방법으로 저랑 동반 자살을 하려고 하잖아요!”

대성의 뒤에 서 있던 성찬호는 아예 군복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애원할 기세였다.

카탈로그를 확인하던 군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이분은?”

“제 짐꾼입니다. 공략대 멤버에 등록해놨으니 확인해보시죠.”

“아, 예. 성찬호 씨. 여기 있네요. 신분 확인되셨고, 이제 입장하시면 되겠습니다.”

“가자.”

대성은 땅을 치고 후회 중인 성찬호의 손을 잡아끌고 게이트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마치 주사 맞기 싫다고 버티는 어린애처럼 성찬호가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내 친구냐!”

질질-

물론 5톤 트럭도 슈퍼마켓 카트처럼 끌 수 있는 대성의 악력을 거스르기엔 무리였지만 말이다.

웅-!

그렇게 둘의 모습은 푸른 구체 너머로 사라졌다.

“……이거, 안 말렸다고 괜히 내가 욕먹는 거 아냐?”

머리를 긁적이던 담당 군인이 힘차게 소용돌이치는 게이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

게이트를 넘어서자마자 거친 모래바람이 부는 황야가 펼쳐졌다.

황야…… 아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황무지였다.

모래가 쌓인 사막의 대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늘로 삼을 만한 나무는 고사하고, 엄폐로 써먹을 수 있는 바윗돌 같은 지물 자체도 없었다.

오로지 건조하게 쩍쩍 갈라진, 평탄한 모래 바닥만이 이계(異界)의 끝까지 아득히 펼쳐져 있을 뿐.

“각성도 안 한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한대성 이 새끼야. 난 누구고, 여긴 어디냐?”

“…….”

반쯤 삶을 포기한 성찬호가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는 사이, 대성은 묵묵히 할 일을 했다.

[사주의 눈이 발동되었습니다.]

[반경1㎞ 내에 시전자에게 적의를 가진 대상을 마킹합니다.]

징-

붉은빛을 띠던 대성의 동공이 자색으로 영롱히 물들었다.

그밖에도 그는 마력을 넓혀 기감을 확장시켰다.

전방위로 뻗어나가는 그의 기감은, 이 드넓은 황무지의 적지 않은 면적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들리는군.”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굳이 사주의 눈을 통해 보지 않아도 확장시킨 기감이, 그리고 극도로 곤두세워진 촉각이 끊임없이 주의를 보내고 있었다.

반면, 일반인인 성찬호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들려? 뭐가 들린다는 거야. 내 속 뒤집어지는 소리가?”

“밑을 봐봐.”

“대체 무슨-”

그 말에 따라 성찬호는 고개를 숙여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슥, 파슥-

제대로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아주 작은 흔들림이었다.

하지만 대성의 말을 듣고 인지한 성찬호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파슥, 파슥-

바닥의 모래알갱이들이 조금씩 위아래로 튀어 오르고 있는 걸.

“이건…….”

“슬슬 보이는군.”

그리고 마침내, 대성이 발동한 <사주의 눈>이 반경 1㎞ 내로 접근한 이들의 기척을 잡아냈다.

쿵, 쿵, 쿵-!

모래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머나먼 지평선 너머.

거미 모양의 낙인이 보였다.

“머릿수만큼은 군단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군.”

당장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 해 도합 500이 넘어가는 거미 모양의 낙인이.

“어, 어어…….”

‘그들’이 진격을 하면 할수록, 성찬호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대성과 자신이 게이트에 입장한 순간, 끝자락에서부터 물밀 듯이 몰려오는 몬스터의 군단이.

“……대성아.”

“어.”

“진짜 자신 있는 거 맞지?”

리자드맨(Lizard man).

한 마리, 한 마리의 일개 병사마저 3등급으로 분류된 위험종.

그런 그들이, 대군(大軍)을 이루어 떼로 몰려오는 중이었다.

왜 내로라하는 대형 클랜마저 공략을 꺼리는지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으나,

“말이라고. 물론 자신 있지.”

대성은 조금 다른 실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왜 KHA가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업화대검은 쓰지 않겠다.’

업화대검을 구현했던 퀘스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규모의 천상의 군단들과 맨손으로 맞선 그였다.

판테온의 시련도 능히 완수해낸 자신이 고작 저런 도마뱀 무리를 맨손으로 압도하지 못할 리는 만무.

‘나 자신의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내 가치를 드러낸다.’

다른 이였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찬호는 다르다.

성찬호만큼은, 자신의 강함을 똑똑히 마주 볼 권리와 자격이 있었으니까.

“자, 자신이 있다고 하니까 난 너를 믿는다, 대성아. 아니, 안 믿으면 내가 뒈져, 진짜.”

성찬호는말과는 달리 인생 다 살았다는 듯이 사색이 되어 그리 말했다.

그러자 대성이 성찬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허들을 높이지.”

“뭐?”

“30분 안에 끝내는 걸로.”

“……30분 안에 짓밟힌다는 말을 거꾸로 한 건 아니지?”

대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30분 안에 클리어하고 우리 둘은 여기를 나간다.”

100명의 사냥꾼이 전력 분투를 해도 사흘이 꼬박 걸리는 게이트를, 30분 안에 끝내겠다고.

그것도 혼자서.

장비 없이.

“야, 너 그게 무슨 허무맹랑한-”

“거기서 보고 있어.”

그때.

파앙-!

성찬호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 대성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처럼.

귀신이 곡할 노릇에 성찬호가 눈을 감았다 뜨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 대성아?”

그러다 그의 시선이 문득 저편에 있는 리자드맨의 대군으로 향했다.

다름 아닌 그곳에, 대성이 기세를 한껏 폭발시키며 질풍같이 쇄도하는 중이었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거야, 뭐야?’

물론 순간이동도 뭣도 아닌, 순수 보법으로 단숨에 적들과 거리를 좁힌 것이다.

하지만 성찬호의 상식은 그 신기에 가까운 경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방금 막 대성이 말했던 것처럼.

“맙소사…….”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친구가 내재하고 있는, 끝 모를 잠재력이 폭발하는 광경을.

크르아악-!

순식간에 리자드맨 군단들이 대성을 에워싸나 싶더니,

콰- 앙!

폭음이 황무지를 뒤흔들고 거세게 불던 모래바람이 폭풍이 되어 저편에서 휘몰아쳤다.

그리고 성찬호는 보았다.

“억……!”

소용돌이치는 폭풍 사이로 휩쓸려나가는 리자드맨들의 공중 곡예를.

펑-! 펑-!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질 때마다 리자드맨들이 수십 마리씩 튕겨나가고 폭사(爆死)하는 진풍경 사이로.

“실화야……?”

수라장이 펼쳐진 전장을 초고속으로 누비는 대성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잔영만을 겨우 눈으로 좇을 수 있었다.

어렴풋이 허공 위로 아로새겨지는 대성의 상(像)이 황무지를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리자드맨들의 몸이 수십 갈래로 갈라지고 터져나갔다.

“…….”

툭-

안절부절못하며 가슴팍 언저리를 맴돌던 성찬호의 두 팔이 축 아래로 늘어졌다.

“미친…….”

소문으로는 많이 들었다.

대성이 듣도 보도 못한 오러 테크닉을 구사하며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했다는 걸.

하지만 소문으로 듣는 것과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했다.

‘저, 저 움직임도 어떤 일종의 오러 테크닉인가?’

발바닥 근육과 신경에 오러를 집중시켜 기동력을 상승시키는 건 매우 흔한 오러 테크닉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성찬호가 작금 대성이 펼치고 있는 맹위가 오러 테크닉인지 아닌지 확신을 못 내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저건 완전 사기 아니야?’

저 정도 움직임은, 이미 오러 테크닉 같은 레벨이 아니라 축지법 같은 도술의 경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성찬호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심초사하며 들끓었던 심정도, 등판 한가득 흘러내리는 진땀도 더는 없었다.

콰- 앙!

퍼버벅-!

“……대체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네.”

저것이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상에 누워 의식을 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친구가 맞는지.

그 사실에 의구심을 품어야 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

한편.

“역시 말리셨어야 했지 말입니다.”

게이트 바깥쪽. 후임 병사가 담당 군인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담당 군인은 멋쩍은 얼굴로 그 말을 흘려 넘겼다.

‘셀프로 사지에 몸을 던지겠다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

게이트 발생 지역을 통제하는 군인에겐 사냥꾼의 의사에 개입하거나 사견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오늘과 비슷한 이유로, 이전에 B급 사냥꾼을 만류했다가 거하게 욕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덧붙여, 그 B급 사냥꾼에겐 그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었고.

‘남이 하는 말 안 듣고 목숨 함부로 굴리는 놈들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지.’

자기 밥그릇도 챙기기 힘든 세상에 그런 오지랖은 불필요한 법.

담당 군인이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던 가운데.

“기, 김 소위님. 저기……!”

돌연 후임 병사가 안색이 새파래진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응?”

담당 군인이 의아하게 고개를 돌린 그 순간.

“헉!”

그가 헛숨을 들이켰다.

지잉- 지잉-

푸른 구체가 지금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진 반응 급상승.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둘 중 하나다. 게이트가 클리어되면서 폐쇄 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혹은 게이트 프렉쳐가 발생하거나.

“보, 본부에 연락해! 당장!”

당연히 가능성은 후자가 높았다.

아까 그 목숨 아까운 줄 몰랐던 사냥꾼이 입장한 지 20분가량이 경과.

그사이에 게이트가 클리어됐을 리는 없고, 역시 카탈로그에 나온 정보랑은 다르지만 게이트가 예상보다 일찍 터진 쪽이 훨씬 확률이 높으리라.

“이런 염병! 군단형 게이트면 이깟 인원으론 시간 벌이도……!”

담당 군인이 욕설을 뱉으며 요동치는 게이트를 향해 소총을 겨누던 그때.

저벅-

“……응?”

본인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던 담당 군인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벅, 저벅-

그 목숨 아까운 줄 몰랐던 두 명이, 보란 듯이 득의양양하게 게이트를 나서고 있었으니까.

“……어, 어어?”

담당 군인이 휘둥그레 눈을 뜨며 할 말을 잃기 무섭게.

지잉- 팍!

공터에 떠올랐던 푸른 구체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게이트 폐쇄.

즉, 클리어했다는 의미였다.

“…….”

담당 군인이 입을 다물지 못하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때.

대성이 옆에 있던 성찬호에게 턱짓을 하며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알아들은 성찬호가 담당 군인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저희 게이트 클리어했습니다. 확인하셨죠?”

“네. ……네?”

“클리어 보상금, 대표자 한대성 계좌로 빠른 입금 부탁드립니다.”

넋을 잃고 아연실색하는 담당 군인을 뒤로하고, 둘은 공터 앞에 주차해두었던 아우디에 다시 탑승했다.

“…….”

정적이 흘렀다.

성찬호는 운전석 시트에 등을 맡기며 후우- 날숨을 뱉었다.

원래 같았으면 딱 담배라도 피웠을 타이밍이지만, 그는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꿈.

짧은 굵은 꿈을 꾸고 온 기분이었고, 그 짜릿하면서도 몽롱한 감각이 아직도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적 끝에.

대성이 짤막하게 말했다.

긴말은 필요 없다는 듯이.

“따라올래?”

성찬호는 슬며시 눈동자를 굴려 대성의 얼굴을 보았다.

숙고할 가치도 없는 문제.

성찬호는 피식 웃으며 기어 앞 수납장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유서가 아니라 사표를 썼어야 했네.”

그리고 공들여 쓴 유서가 담긴 봉투를 집어 든 뒤.

촤악-!

시원하게 찢고는 그 쪼가리를 차창 밖으로 날려버렸다.

***

대형 클랜의 모든 관계자가 화제의 초신성 한대성이 어느 팀에 소속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때.

오직 한 남자만이, 대성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초영아…….”

서울대 대학 병원 입원실.

<소울>의 단장, 황준영이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삐익- 삐익-

스캐너에 표시된 심박수의 선이 가늘었다.

굴곡이 있지만 희미했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기계음만 정적 속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초영아…….”

황준영은, 연신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며 병상에 누운 이의 손을 다정하게 꾹 쥐었다.

신초영.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의식을 잃은 그녀의 전신을 새하얀 붕대가 뒤덮어, 살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돈이나 명예 따위를 좇자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모조리 쳐죽여버리고 싶어요.

그때 신초영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듣고, 황준영은 결심했다.

그녀가 목표로 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말이다.

비슷한 이유로 친아들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황준영이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심전력으로 도와주겠다고 결심했던 제자가, 지금은 이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홍마.

그놈들 때문에…….

‘이석우.’

그 추악한 이름 석 자가.

그놈의 추악한 면상이.

썩어문드러지는 심장에 인두처럼 낱낱이 새겨지는 심정이었다.

‘이석우!’

황준영은 이를 빠득거리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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