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46화 (46/180)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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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급 군단형 게이트 보상금은 500억이었다.

비유하자면, 천만 영화를 겨냥하는 고예산 상업 영화 두 편의 제작비가 수중에 들어온 셈이다.

30분도 안 돼서.

정확히 20분 만에.

“평생 따르겠습니다, 한대성 님.”

오늘 하루의 수익이었다.

대성과 성찬호는 신나게 드라이빙을 즐기고 있었다.

띠링-!

대성의 휴대폰에 알림이 도착했다.

꺼내서 확인해보자 모바일 뱅킹 계좌에 돈이 입금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었다.

50,000,000,000원.

3등급 게이트의 공략을 확인한 KHA 측에서 즉시 대성의 계좌에 500억을 꽂아주었다.

‘……쉽군.’

이제야 좀 사냥꾼이 떼돈을 쓸어 담는 직종이라는 성찬호의 열변이 피부로 체감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것은 지구로 귀환하고 난 뒤 처음으로 일을 해서 번 돈이 아닌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노력 끝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기쁨을 느끼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한대성 님.”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오늘 딱 하루만 제가 그쪽을 보스로 모시겠습니다.”

“맘대로 해.”

성찬호 또한 상당히 들떴는지 웃음이 걸린 입가가 귓바퀴에 닿을 정도였다.

“보상금을 제외한 나머지 부산물들 처리는 전부 나한테 맡겨. 내가 진짜 티끌 한 점 남기지 않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쓸어 온다, 리얼로.”

“믿고 맡길게.”

“또, 뭐 가서 조지고 싶은 게이트 있으면 나한테 말하고! 내가 아주 그냥 딴 새끼들 침 바르기 전에 전광석화로 공략 허가권 따낼 테니!”

정말 믿음직스럽다.

대성은 새삼스레, 다시 한번 성찬호를 전속 파트너로 둔 것에 대단히 만족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말한 부산물 처리와 게이트 허가권 취득까지 자신이 혼자 해야 됐을 터.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부아앙-!

성찬호는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실어 형편 좋게 뻥 뚫린 길을 기세 좋게 질주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성이 너 아니었으면 진짜 지금까지도 내가 이 시간까지 회사에서 이 실장한테 쪼들렸을 거다!”

덧붙여, 그는 패기 좋게 사직서도 쓰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열흘 정도 무단결근을 해서 저쪽에서 알아서 내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오늘은 내가 끝내주는 곳에서 한턱 쏜다! 아니, 모시겠습니다! 한대성 님!”

“까치산역까지 좀 데려다줘.”

“오, 까치산? 까치산은 갑자기 왜. 거기 뭐 아는 맛집이라도 있어?”

“아니.”

“그럼 거기를 왜 가.”

남들 일하는 시간에 신나게 부어라 마시는 게 일생의 소원이었던 성찬호가 약간 시무룩해진 얼굴로 물었다.

물론 대성 또한 이런 날에는 여유롭게 성찬호와 한잔 걸치면서 회포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던가.

생각난 김에 ‘그곳’에 들러, 밀린 일 처리를 끝내두고 싶었다.

‘블랙마켓이 거기에 있다고 했지.’

지금은 사령이 된 강현도가 말했던, 신흥동파의 비밀 자금이 있다던 암시장.

3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 금고 안에 있다고 했었다.

‘포기할 순 없지.’

오늘 하루 수익이 500억 원이라고 해서, 30억 원이 작은 돈이 되는 건 아니다.

또한, 사냥꾼이라는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불법 암시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에도 적은 액수가 아니었고.

“미안한데 끝내주는 곳은 다음에 가자.”

대성은, 한다면 하고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는 남자였다.

***

용산이 IT의 메카라면, 블랙마켓이 있는 화곡동 까치산은 불법의 메카였다.

그만큼, ‘불법’ 하면 떠오르는 모든 단어가 이곳 블랙마켓에서 성행했다.

마약, 성매매, 도박 등.

몬스터가 등장한 오늘날, 블랙마켓에는 거기에 불법 게이트 공략 허가권, 승인되지 않은 사냥꾼 장비 판매 등이 추가되었다고 보면 된다.

“저기, 저놈들? 오케이. 협력에 감사하지, 마스터.”

그리고 불법이 용인됨으로써 얻는 이득이 많아진다면.

그때부터 불법은 ‘필요악’이 되고, 사회의 암암리에 행해지는 법이었다.

그것이 KHA가 블랙마켓의 존재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이유였다.

“협회분께서 부탁하신 건데 이 정도 협조는 당연하지요. 앞으로도 맡기실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밖에도, 그쪽 놈들 중에 여기 들락날락거리는 놈들 있으면 계속 연락 주고.”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블랙마켓의 마스터인 송만수는 눈앞의 갈색 머리 남자를 향해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KHA 소속 사냥꾼, 고광현.

그는 일전에 일거리 하나를 맡긴 송만수로부터 정보를 받고 블랙마켓에 잠복 중이었다.

일거리의 내용은 간단했다.

<홍마>와 관련된 인간이 블랙마켓에 찾아오면 바로 보고하는 것.

그리고 일전부터 계속 <홍마> 쪽 관계자들이 블랙마켓 주변을 서성이는 걸 보고 송만수는 바로 고광현에게 연락을 걸었다.

이와 같이 KHA는 블랙마켓이 자신들의 수사에 협조해주는 대신,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실태들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어디…… 이젠 적당히 타이밍 재는 일만 남았군.”

대마와 아편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블랙마켓 내부.

고광현의 시선은 조선족 남자 두 명과 마작을 두고 있는 후줄근한 차림의 남녀에게 꽂혀 있었다.

“론! 론!”

방금 송만수가 정보를 팔아넘긴 <홍마>의 소속원 두 명이었다.

고광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들 클랜 뒤집어지는 것도 모르고 론은 개뿔이……. 속 편한 놈들.”

<홍마>를 처단하라는 박정호 협회장의 지시가 내려진 지 다섯 시간.

단장인 이석우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멤버들까지 모조리 구속하라는 명령이었다.

KHA는 이미 <홍마>를 일개 클랜이 아닌 규모가 큰 범죄 조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두 놈……. 각성 등급은 둘 다 B급. 잡는 데 어려움은 없겠어.’

협회 소속 사냥꾼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강자인 A급 각성자 고광현에게는 쉬운 작업이었다.

이제는 적당히 타이밍을 재서 덮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저놈들 도박하는 꼴을 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거야, 난.’

사방에서 풍기는 아편 냄새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후딱 저 두 놈을 잡고 이딴 곳에서 벗어나자고 결심한 고광현이 발걸음을 뗀 그때.

드르륵-!

“음?”

돌연 저쪽에서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한창 흐름을 탄 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말이다.

“무슨…….”

고광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둘의 동향을 가만히 응시했다.

둘은 심각한 얼굴로 속삭이며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고광현의 시선 또한 그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갔다.

거기엔.

“저놈 말하는 건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거구의 남자가 블랙마켓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아무리 후드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꼈다고 해도, 그런 조잡한 위장으론 가릴 수 없는 게 있다.

190에 달하는 거구의 신장이라거나, 삐죽 튀어나온 하얀 백발, 그리고 얼굴과 목덜미에 그어진 상처들이 그랬다.

“우연이 아니겠지?”

“어. 절대 우연이 아니야.”

말총머리 여성이 묻는 말을, 더벅머리 남자가 받았다.

둘은 <홍마> 쪽 사람이었다.

블랙마켓에 잠복해 있으라는 이석우의 명령을 받고 거의 반나절 넘게 까치산 주변을 전전하던 참.

마침내 그들은 이석우가 주시하라고 했던 인상착의를 지닌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저런 포스를 지닌 놈이, 하필 여기 블랙마켓에 찾아올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고.”

‘우연히’ 비슷하게 생길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둘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저 남자가 타깃임을 확신했다.

더벅머리 남자가 말했다.

“일단 단장님한테 보고부터 해. 이 빌어처먹을 아편 소굴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이젠.”

“동감이야, 썅.”

고개를 끄덕인 말총머리 여자가 곧장 휴대폰을 꺼내 이석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

“왜 그래. 안 받아?”

한동안 귀에 수화기를 가져다 댔던 여자는, 이내 의아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응. 안 받는데?”

***

같은 시각.

KHA는 단단히 칼을 빼 들었다.

어젯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감시과 직원이 눈물을 흘리며 협회로 돌아왔다.

한 손에는 선물 상자를 든 채.

상자에 든 건.

그 직원과 함께 보낸 감시과 김성수의 목이었다.

이석우의 소원대로.

그의 메시지는 아주 잘, 박정호에게 전달된 셈이다.

<홍마> 본사가 있는 화곡동 담당 사냥팀들의 조력은 물론, KHA 쪽에서도 협회 소속 사냥꾼 열다섯, 그리고 완전무장한 특수 기병대를 <홍마>의 본거지에 투입시켰다.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 모두가 이런 예상을 했다.

오늘, 전쟁이 벌어지리라는 걸.

그런데.

“……이게 이럴 수가 있나.”

작금에 펼쳐진 현실의 광경은.

열이면 열 명 모두가 했던 예상을 아득히 빗나갔다.

“이게 다, 뭐야……?”

이번 작전의 책임자이자 사냥팀과 기병대를 전두 지휘하는 A급 각성자 진기홍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드리웠다.

비단 진기홍뿐만이 아니다.

그를 따르는 수십의 사냥꾼, 수십의 기병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헛숨을 삼키며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진득한 피비린내를 뿌리는 핏물들이 연못처럼 아스팔트 바닥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의 강 위로는, 목덜미가 베이거나 팔다리 사지가 절단된 시체들이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이거, <홍마> 쪽 애들 맞지.”

높다란 마천루.

<홍마>의 본거지 입구에,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떼죽음이 보란 듯이 도심지 한가운데 펼쳐져 있던 것이었다.

“…….”

사생결단을 다짐한 진기홍과 그의 수하들은 온몸의 핏기가 쭉 가시는 불쾌함을 느꼈다.

혈전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고 뜨거워졌던 머리와 가슴이, 드라이아이스라도 퍼부은 것처럼 팍 식었다.

그들은 창백한 안색을 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1층 로비부터 넓은 공동이 펼쳐진 2층, 3층까지.

쥐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고 아주 고요했다.

하나 그 텅 빈 광경 위로, 아까 그 입구의 피바람이 오버랩처럼 떠올라, 몇몇 비위 약한 사냥꾼들은 숨죽여 헛구역질을 했다.

“……계속 간다.”

필두에 선 진기홍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수하들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이석우가 있는 곳은 건물 최상층 꼭대기의 펜트하우스라고 들었다.

문제는, 건물 초입의 난장판을 보아하니 이석우가 형편 좋게 그 펜트하우스에 있어줄 거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는 거지만.

아니,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대체 뭐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끼익-

최상층에 도착한 진기홍이 조심스레 펜트하우스로 통하는 비상 출입구 문을 열자마자 풀렸다.

“헉!”

“우웁!”

해답이 풀린 순간.

필사적으로 헛구역질을 삼키던 몇몇 비위 유약한 사냥꾼이 참지 못하고 토악질을 했다.

하나 그 행태를 질책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충분히 그럴 만했으니까.

“……비극이로군.”

진기홍이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펜트하우스 내부에는 입구의 참상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끔찍하고, 추잡하게 죽은 시체들이 사방 천지에 깔려 있었으니까.

입구에 있던 시체들이 어떤 날붙이 같은 것에 사지가 절단된 것에 그쳤다면.

펜트하우스의 시체들은, 정말 한 줌의 자비도 엿보이지 않게 무정히도 팔다리가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구체관절인형도 이렇게는 못 망가뜨리겠다 싶을 정도로.

심지어 어떤 시체는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목뼈가 뒤로 확 꺾여 머리통이 등허리에 닿고 있었다.

잘 보니, 그게 이석우였다.

“……당신은 이러면 안 됐습니다.”

그리고 끔찍하게 살해당한 이석우 앞에.

황준영이 서 있었다.

그것이, 방금 진기홍이 ‘비극’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이유였다.

“…….”

황준영은 온몸에 핏물을 흠뻑 뒤집어쓴 악귀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최근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진기홍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참상의 맥락이 한 방에 이해가 갔다.

“제자의 복수를 위해서라지만, 이건 선을 넘었습니다. 황준영 단장님.”

“…….”

“죽은 이들 중에 비각성자인 일반인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당신이 모를 리는 없고요.”

사냥꾼이 정당방위를 행사할 수 있는 건, 같은 사냥꾼에게 살의가 담긴 습격을 받았을 때뿐이다.

착잡했다.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고 싶어도 이건 너무했다.

“황준영 단-”

진기홍이 바싹바싹 메마른 입술을 겨우 떼려고 할 때.

절레절레.

갑자기, 황준영이 고개를 저었다.

진기홍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황준영이 말했다.

“바깥은 내가 한 게 맞네.”

“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던 황준영이 미간에 주름을 새기던 가운데.

슥-

여태껏 뒷모습만 보이고 있던 황준영이 슬쩍 고개를 돌려 진기홍을 흘겨보았다.

언뜻 드러난 황준영의 옆얼굴은.

진기홍과 마찬가지로 경악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여긴 내가 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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