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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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오는 기척은 전부 셋이었다.
두 놈은 이승을 하직했고.
남은 건 한 놈.
“…….”
꽈직-
부서진 난간의 파편을 밟고 선 대성이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사주의 눈이 발동됩니다.]
[반경 1㎞ 내에 시전자에게 적의를 가진 대상을 마킹합니다.]
상대방의 머리 위에서 깜빡거리는 거미 문양의 낙인.
선뜻 대성이 문답 무용으로 공격을 가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었다.
‘망설이고 있군.’
상대방은 지금 자신을 공격할지 말지 갈등하고 있다는 거니까.
즉,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
적인지 아닌지 속단하기엔 이르다.
“나, 나는…….”
상대방은 메마른 침을 꿀떡 삼킨 뒤, 힘겹게 입을 열었다.
“KHA의 감시과 소속 사냥꾼, 고광현이라고 한다.”
고장 난 전등처럼 거미 문양이 점멸하는 가운데.
고광현이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KHA 소속 사냥꾼?”
그 말을 듣자마자 대성이 전신에 한가득 두르던 살기를 걷어냈다.
상대방이 협회 소속이라면 일단 말을 들어볼 가치는 있다는 거니까.
“그, 그쪽은…… 분명 한대성 맞지? 최근에 우수한 성적으로 라이센스를 취득한…….”
대성은 그 질문에 말 없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상대방이 협회 소속이든 뭐든, 대화의 주도권은 자신이 꾹 쥐는 게 현명할 터.
그는 자신이 사냥꾼의 신분을 가졌다는 걸 고려해 일단 존댓말을 하기로 했다.
“협회 소속 사냥꾼이 저한테는 무슨 볼일입니까?”
“너한테 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
고광현의 목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대목에서 고광현은 침을 한번 삼키며 목을 가다듬었다.
눈앞의 남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니, 그래야만 했다.
“나는 그쪽이 방금 죽인 두 명을 잡아 오라는 협회의 명령을 수행 중이다.”
“그러니까, 절 뒤쫓은 게 아니라 날 쫓던 이놈들을 미행한 거다, 이 말이로군요.”
“그렇지.”
고광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더벅머리 남자는 이미 틀렸다.
머리가 터졌으니 뭐 어떻게 신분 조회를 할 방법도 막연해졌다.
하지만.
푸우- 푸우-
말총머리 여성은,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되어 있긴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숨이 붙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호흡기 갖다 붙이면 되살려낼 희망 정도는 있으리라.
“이놈들은 <홍마>의 잔당인데, 생포해 오라는 협회장의 명령이 있었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나도 공무 집행은 해야 하니까, 아직 살아 있는 저 여자라도 데려가야 하는데…….”
고광현은 지금 본인이 꺼낸 말을 곱씹으며 대성의 눈치를 살폈다.
자칫하면 방금 네가 죽이려고 한 사냥감을 내놓으라는 의도로 들렸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하얀 머리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고분고분히 말을 따라줄지 막연한 상황이었다.
싫다는 대답이 돌아올 경우, 그때의 대처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광현이 막막해하던 때였다.
‘다행이군.’
고광현이 신중하게 대성을 살피는 것처럼 대성 또한 고광현의 머리 위를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거기엔.
‘감정을 조절할 줄은 아는 놈이야.’
거미 문양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성은 그걸 보고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도 같은 사냥꾼을 위협하고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쨌든, 협회에 소속된 이들은 자신이 지옥에 있는 사이 원래 세계인 지구를 지켜줬던 이들이니까.
그게 꼭 협회의 모든 이들이 믿을 만한 자들이라는 의미가 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교섭의 여지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적대해야 할 놈들도 아니란 거지.’
이미 고광현에게 적의가 없음을 확인한 대성은 어깨에 힘을 풀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걸 깨달은 고광현이 대성의 입술에 집중했다.
이때 대성의 입에서 나온 것은,
“가져가십시오.”
의외의 대답이었다.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올 줄은 몰랐던 고광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 그래도 되겠나?”
“왜 제 눈치를 보시는 겁니까.”
“아, 아니, 뭐…….”
고광현은 혼자 있었더라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바닥이 꺼질 때까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굳었던 고광현의 표정이 풀어지는 걸 본 대성은 생각했다.
‘영혼수감소로 기억을 훔쳐보는 건 한 명이면 충분하다.’
고광현의 입에서 죽은 남성의 시체까지 수거하겠다는 통보가 나왔다면 몰랐겠지만.
여자만 데려가겠다고 하니 그냥 줘버려도 상관없었다.
쓸데없는 고집을 내세울 필요가 하나도 없는 상황.
저 고광현이란 협회 관계자도 필요한 건 챙기는 셈이니 서로 충돌 없이 윈윈이 성립하는 셈이었다.
가족들을 등에 업은 입장이니만큼 굳이 피곤한 일에 말려들고 싶지도 않았고.
“혀, 협조해주니 고맙네. 아, 그리고 저놈들이 먼저 흉기 꺼내서 위협한 거 확인했으니 그 부분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알고 한 겁니다.”
“으음, 그런가?”
아직 얼떨떨한 기색이 가시지 못한 고광현이 뒤에 있던 여성을 어깨에 둘러멨다.
“그럼.”
탓-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아래로 훌쩍 떨어져 물러났다.
“…….”
보는 눈은 없어졌다.
성가시지만, 해야 할 일을 할 때가 왔다.
대성이 오른 중지를 앞으로 뻗어 영혼수감소를 발동시켰다.
“수거.”
그러자 저 아래 골목에 쓰러진 더벅머리 남자의 시신이 먼지처럼 부서지며 흡수되었다.
고광현은 이들이 <홍마>의 잔당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배후가 그쪽 클랜의 단장인 이석우란 건 확실.
그래도 놈이 무슨 연유로 자신에게 추격자를 붙였는지 확인해둘 필요는 있었다.
“사령 병사 소환.”
대성은 더벅머리 남자를 사령으로 부활시킨 뒤 눈을 마주쳤다.
파직-
마주친 시선 사이로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영혼이 지닌 기억이 공유되었다.
-블랙마켓에 잠복해 있어. 잠복해 있다가, 이놈이 말한 인상착의와 비슷한 남자가 블랙마켓을 찾아오면 곧바로 내게 보고하도록.-
‘역시 이석우였군.’
이미 한참 전부터 놈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으나, 굳이 이쪽에서 먼저 손을 뻗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석우가 직접 이빨을 드러낼 놈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만.
‘틀린 판단이었군.’
설마 했는데 이렇게 부하까지 직접 보내는 막가파였을 줄은.
결론이 났다.
뒤탈은 남겨두면 언젠간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법.
‘그때 시험에서 개수작 부린 놈 소속이 <홍마> 클랜이라는데, 자꾸 나랑 꼬이는군.’
제대로 멸살해둘 필요가 있다.
아마 협회 쪽에도 <홍마>에게 격분하고 있을 터이니, 다소 과격한 수단으로 놈들을 공격해도 큰 문제는 없을 터.
대성은 오늘내일 중으로 <홍마>를 무너뜨리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홍마> 클랜 조직원 전원 숨진 채 발견!]
[<홍마> 단장 이석우, 현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해당 사태가 벌어진 원인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루아침에 대형 클랜 하나가 통째로 몰살당한 초유의 사태에, 세상이 떠들썩해졌으니까.
***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홍마>의 전멸은, KHA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경악할 만한 사실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KHA는 <홍마>가 사라지면서 놈들이 여태까지 열심히 숨겨왔던 치부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놈들이 만약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나는 협회장의 명예를 걸고 결단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 걸세.”
협회장 사무실.
박정호는 탁상에 놓인 검지 크기의 앰플, 그리고 어지러이 놓인 자료 사진들을 번갈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자료 사진에는 새하얀 연구실 안으로 커다란 유리관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투명한 용액이 가득 찬 유리관 속엔.
“일개 클랜이 감히 협회 승인도 받지 않고 사적으로 몬스터를 소유해?”
3등급부터 해서 5등급까지, 수십 마리가 넘는 몬스터 사체가 보관되어 있었다.
몬스터의 시신은 협회로부터 정식 승인 절차를 거친 뒤 거래소에 넘겨야 한다고 법전에 명시되어 있다.
즉, 자료 사진에 나와 있는 건 블랙마켓에서나 일어날 법한 불법 행위.
그런데 더 경악스러운 건.
“또 저 시체 덩어리들로 약물을 만들어?”
몬스터의 혈액과 DNA로 금기에 가까운 짓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박정호는 탁상 위에 있는 그 금기의 산물을 노려보았다.
융합 앰플.
투여당한 각성자는 앰플에 담긴 몬스터의 특성과 힘을 강제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다.
“정진철의 부검 결과에서 몬스터의 유전자가 검출된 것도 다 이 앰플 때문이었군요.”
박정호의 맞은편에 선 진기홍이 질렸다는 듯이 인상을 구겼다.
얼마 전 자료 사진 속의 현장과 앰플을 확보한 당사자로서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실들이었다.
박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몬스터와 인간의 융합. 이론적인 가능성은 존재한다지만…… 아무리 대형급이라고 해도 전문 연구소도 아닌 클랜이 이런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건가?”
“현장엔 몬스터의 시체들과 앰플 외에 별다른 흔적이나 단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놈들이 직접 앰플을 개발했다는 증거는 없었다는 거군.”
현장에는 단순히 앰플을 피실험자에게 이식할 설비만 갖춰져 있었다.
즉, <홍마>가 직접 그 앰플 자체를 개발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고가 거기까지 확장된 순간, 박정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점쳐졌다.
‘놈들에게 기술력을 지원한 배후가 어딘가에 존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전선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학자들도 개발하지 못하는 물건을, 어디까지나 ‘사냥꾼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은 클랜이 만들었을 확률은 적어 보였다.
‘그 배후들이 <홍마>에게만 손을 뻗쳤다는 확신도 할 수 없고.’
어쩌면 KHA의 눈이 닿지 않는 영역 곳곳에서 이 앰플을 받은 자들이 암약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산 넘어 산.
박정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정말로 현장에는 황준영 단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나?”
“네. 작전에 투입되었던 인원 모두가 이 잡듯이 건물을 뒤져봤으니 확실합니다. 출입구로 보일 만한 장소도 전부 봉쇄했고요.”
“건물 안엔 보안 카메라가 있으니, 거기에 뭐라도 분명 잡혔을 텐데?”
“그게…….”
진기홍이 난처하다는 듯 말을 흐리자 옆에서 대기 중이던 직원 중 한 명이 분위기를 읽고 잽싸게 노트북을 들이밀었다.
노트북엔 재생이 멈춰져 있는 동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홍마>의 본거지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의 데이터 영상들이었다.
시점은 황준영이 사건을 터뜨리기 바로 전.
틱-
직원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영상 속의 시간이 흘러갔다.
“…….”
박정호는 손가락을 턱에 대고 분할된 영상들에 집중했다.
<홍마>에 소속된 수십 명의 각성자가 분주하게 건물 1층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외부로 침입한 황준영 단장을 막으러 간 전력이군.’
바깥쪽 시체들은 황준영이 벌인 짓이라고 본인 입에서 들었다.
중요한 건, 건물 내부 펜트하우스에 벌어진 학살극.
박정호는 펜트하우스 쪽 카메라 영상으로 시선을 이동했다.
거기엔 황준영의 난동에 당황 중인 이석우를 중심으로 스무 명 남짓한 각성자가 둥글게 경호를 서고 있었다.
저마다 칼과 창 따위의 오러 웨폰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벌집을 만들어버리겠다는 듯 기관총들도 들고 있었다.
영상 너머로도 느껴지는 펜트하우스 속 고요한 폭풍 전야.
바로 그때.
“음……?”
제일 가까운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 중 한 명이, 느닷없이 공중으로 부유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진땀을 흘리는 걸 보니 본인이 직접 어떤 오러 테크닉을 발동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과 이석우도 그 갑작스러운 광경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던 순간.
-!
공중에 부유한 놈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같은 편을 향해서.
“이게 무슨…….”
소리가 녹음되지 않은 영상 속에서 침묵의 총성이 벼락처럼 울려 퍼지며 사상자를 내고 있었다.
-! -!
그 무차별 난사에 휘말린 이들이 피를 쫙쫙 튀겨대며 쓰러졌다.
제일 후편에 있던 이석우가 날듯이 책상 뒤로 돌아가 엄폐하고, 공황에 빠진 나머지 경호 인력은 기겁하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뭐……!”
그러나 무차별 난사를 가하던 남자가 잠시 사격을 멈추더니,
-! -! -!
돌연 팔다리 관절을 이상한 방향으로 꺾기 시작했다.
절대로 꺾일 수 없는 ㄱ자 모양으로 오른 팔뚝이 꺾이고, 왼쪽 다리는 관절 바깥의 ㄴ자로 접혔다.
기괴한 광경.
체공해 있던 남자의 몸이 끔찍한 모습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금의 장면을 눈에 담은 모든 이가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
영상을 보던 박정호는 경악성조차 뱉지 못하며 그저 숨죽인 채 다음에 벌어진 일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영상 속 전원이.
방금 남자가 당한 것처럼, 저마다 기형적으로 사지를 비틀고 꺾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관절이 꺾이는 팔다리 피부를 뚫고 뼈가 튀어나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멀쩡했던 목이 180도로 확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악몽 같은 참극 앞에서 이석우는 울고 있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신이 낫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카메라조차 담지 못하는, 눈으론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이들을 몰살시키고 있었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영상이 거의 끝자락까지 재생되었을 즈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이석우가 뭐라 외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극도의 공포 때문에 정신이 나간 나머지 되는대로 절규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응?”
영상 속 이석우가 무릎을 꿇더니 허공 쪽을 향해 양손을 맞대며 빌고 있는 게 아닌가.
살려달라는 것처럼.
“이건…….”
마치 어떤 대상을 특정한 듯한 행위.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영상 안에는 절명한 시체들과 이석우밖에 없었다.
영상이 종료되기까지 10초를 앞두고.
-!
보고 받은 대로 이석우의 머리통이 척추까지 확 꺾였다.
순식간에 지옥만이 남겨진 영상의 남은 10초.
이석우가 죽었으니 굳이 그 10초까지 일일이 챙겨 볼 필요는 없었지만.
“…….”
박정호는 결국 영상이 끝날 때까지 넋이 나간 얼굴로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박정호보다 먼저 영상을 확인했던 진기홍은 지금 그가 느끼는 심정과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보시기 전에 제가 미리 경고를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