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49화 (49/180)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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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가 본 영상 속 광경까지 매스컴을 타지는 않았다.

어쨌든 <홍마>가 원인 불명의 사태로 무너졌다는 소식은 일반인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사건이 벌어진 당일, <홍마>를 급습했던 황준영은 본인이 이석우를 죽이지 않았다고 진술하여…….]

[경찰 측은 평소 이석우에게 악감정을 가진 사냥꾼의 소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와, 진짜 사냥꾼이 한 짓이면 세상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

무릎을 세우고 소파에 앉은 지수가 앵커의 보도를 듣고 그렇게 말했다.

소파 아래서 사과를 깎고 있던 혜정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보았다.

‘<홍마> 정도 되는 규모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놈이면, 약하진 않다는 거다.’

지수 옆에 앉아 있던 대성마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약하지 않다는 건 대성 본인의 기준이 아닌, 지구에 있는 다른 각성자들을 기준으로 내린 평가였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엔 악인이 많군.’

대성은 이런 결심을 했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와 게이트의 씨를 말릴 거라고.

그런데 <홍마>가 같은 각성자의 손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그 씨를 말려야 될 대상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몬스터고 인간이고 죄다 함부로 믿을 수 없다.’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지금 저 뉴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의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뻗칠 수도 있었다.

만일 자신이 게이트에 들어가 있는 사이 가족이 위험에 처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대책을 세워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선은 만에 하나의 사태에도 가족이 무사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놔야 했다.

그것도 ‘이중’으로.

일단 첫 번째는.

“엄마. 지수야.”

말없이 TV만 보던 대성이 갑자기 입을 열자 둘의 이목이 쏠렸다.

대성은 좀처럼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둘은 약간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다짜고짜 대성이 먼저 꺼낸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우리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

***

사람은 겉으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어릴 적부터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왔지만, 실제로 있는 집, 없는 집은 어느 정도 겉모습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고, 중개사 남자는 믿어왔다.

그런데 오늘, 그는 믿음을 철회하고 가정교육이 옳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와, 대박! 지금까지 둘러본 곳 중에선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은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어, 엄마는 글쎄……. 아까 거기나 여기나 다 커서 차이를 잘 못 느끼겠는데…….”

“엄마도 참! 이런 건 마음으로 느끼면 돼, 마음으로!”

아무리 봐도 ‘부티’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세 가족의 재력(財力) 앞에서, 중개사는 한 수 접어야 했다.

대한민국 부촌(富村) 중에서도 손에 꼽는다는 강남구 도곡동. 그것도 1%의 떼부자들만이 입주하는 최고급 타워팰리스.

그중에서도 드넓은 전경이 한 방에 관조 가능한 60층대에, 대성과 그의 가족들이 발을 들인 것이다.

재벌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내부를 입을 다물지 못하며 구경하던 지수가 물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유리창으로 된 벽면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대성을 향해.

‘여기가 KHA랑 제일 가깝군.’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선 KHA 제1 지부의 마천루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그가 가족과 이사를 떠날 새집을 고른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넓을 것.

두 번째. 협회랑 가까울 것.

첫 번째가 당연한 만큼, 두 번째 또한 중요했다.

KHA엔 수많은 실력파 사냥꾼들이 주둔하는 중.

주변에 대피소가 없으면 도곡동으로 도망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오늘날이다.

그만큼 게이트 프렉쳐가 터져도 제일 안전한 동네가 도곡동이었던 셈이다.

“여기가 조망도 제일 좋고, 협회와도 제일 가까우니 이만한 곳을 또 구하시긴 어려울 겁니다.”

중개사 또한 협회 근처라는 이점을 놓치지 않고 어필했다.

엄마와 지수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이것이 최선이라고 마음을 굳힌 대성이 중개사에게 물었다.

“언제 들어올 수 있습니까?”

“아! 원하신다면 내일부터 바로 입주 가능합니다! 저, 그럼…….”

중개사가 조심스레 대성의 눈치를 살피며 저자세로 나왔다.

결정했냐는 질문이 담긴 눈빛.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 대성이 말없이 혜정과 지수를 돌아보자, 둘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이 났다.

“이 집으로 하죠.”

그 말이 대성의 입에서 나온 순간.

대박 실적을 한 건 올린 중개사의 표정이 환해졌다.

중개사는 몰래 주먹을 불끈 쥔 뒤, 아까부터 다짐했던 결심을 의례적인 감사 인사 대신 입에 담았다.

“저, 그리고…… 중개수수료는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느닷없이 중개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파격적인 제안에 혜정과 지수는 깜짝 놀랐다.

수수료가 반값도 아니고 아예 없다니?

둘이 휘둥그레 눈을 뜬 가운데.

“혹시 최근에 초신성으로 뉴스에 나오셨던 분 아닌가요?”

중개사가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묻자 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아! 역시……. 아까부터 계속 낯이 익다 했더니 제 눈이 틀린 게 아니었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대성이 가만히 듣고 있자니 중개사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앞으로도 이곳 강남, 아니, 대한민국 전역을 지켜주실 분인데 이 정도 혜택은 당연하죠.”

“…….”

“오히려 제 권한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죄송할 지경입니다.”

처음엔 혜정과 지수를 보고 이런 궁전 아파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중개사였다.

그런데 이들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초신성의 가족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모든 게 납득이 간 동시에, 겉모습으로만 인간을 판단한 자신의 옹졸한 생각에 깊이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내색하진 않았어도 그는 진심으로 대성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었다.

“중개사로 일하면서 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도, 다 사냥꾼분들 덕분입니다. 그런 분들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정말…….”

살짝 감정이 복받칠 뻔한 중개사가 마음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와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부디 앞으로도 기억해주세요.”

“…….”

좀처럼 숙인 허리를 펴지 않는 중개사 앞에서 대성은 멋쩍어했고, 지수는 은근하게 웃으며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혜정은.

‘사냥꾼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게, 마냥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구나.’

다름 아닌 그 자리에서 제일 기쁜 감정을 느끼던 이였다.

***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달동네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혜정과 지수는 들뜬 마음을 품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제일 늦게 잠자리에 들고, 제일 일찍 눈을 뜨던 대성은 말없이 가족의 안락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

하나뿐인 가족을 이 치안도 좋지 않은 달동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넓은 집에서 살게 해주는 것.

그건 저번에 성찬호의 집에 처음 갔을 때부터 바랐던 소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집이 넓고 협회와 가깝다고 해서 100%의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협회조차 감당할 수 없는 적이 자신이 없는 사이에 가족을 습격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이중 철벽이 필요하다.’

그 어떤 재해로부터 외부의 위험을 막아줄 수 있는 이중 철벽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사령 병사를 경비원으로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그딴 허약해빠진 놈들한테 엄마와 지수의 목숨을 맡길 수는 없지.’

총알 몇 방에도 쩔쩔매던 놈들이니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뭔가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 대성은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판테온.”

화르륵-!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선 대성이 말하자 허공에 화염에 휩싸인 석문이 생성되었다.

[판테온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끼익-

화아악-

고개를 끄덕이자 석문이 활짝 열리며 섬광이 쏟아졌다.

대성은 판테온으로 입장한 뒤 거대한 일지 앞에 마주 섰다.

‘분명 지옥의 모든 요소를 구현할 수 있다고 했지.’

강림 퀘스트를 마친 날, 시스템은 그렇게 안내했었다.

모든 ‘요소’라면, ‘아이템’뿐만이 아니라 ‘환경’도 어떻게든 지구에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일 터.

확인이 필요했던 대성이 시스템을 향해 본론을 꺼냈다.

“내가 지금 뭘 바라는지 눈치껏 알고 있겠지. 어때, 가능하나?”

시스템은 빠르게 대답했다.

[필드 구현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알림창에 적힌 시의적절한 내용에 대성은 만족했다.

아이템 구현에 이은 필드 구현 퀘스트.

지옥의 환경 중 일부를 지구에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임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현재 구현 가능한 필드의 종류는 총 다섯 개입니다.]

[1. 포식자의 숲 2. 귀왕의 영지 3. 염왕의 영지 4. 섬멸룡의 둥지 5. 발라르크의 철성 6. 거미 계곡]

선정된 필드 목록의 기준이 뭔지는 일목요연했다.

그간 대성이 구현화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지나왔던 지역들이었다.

아이템은 로드를 통해 외관을 숨긴 채 지구에 불러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필드 또한 마찬가지일 터.

저 중 하나를 선택해 가족들이 무사하게 안주할 수 있는 두 번째 ‘철벽’을 확보하면 된다.

‘엄마랑 지수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해.’

지옥은 이계이니만큼 대기 중 성분이 지구와는 달랐다.

온도나 습기, 중력 등. 가족에게 불편함이 가지 않도록 최대한 지구와 흡사한 필드를 고를 필요가 있었다.

‘포식자의 숲과 13주들의 영지, 그리고 거미 계곡은 제외다.’

포식자의 숲은 습기가 아마존 밀림 지대에 버금갔다.

사주의 눈을 얻었던 거미 계곡은 악취와 더불어 손과 발이 닿는 모든 곳이 지저분하고 끈적끈적했다.

귀왕과 염왕의 영지는 논할 가치도 없었고.

‘발라르크의 철성이 제일 좋겠군.’

그나마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 구조로 이루어진 필드.

기온이 낮아 약간 쌀쌀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발라르크의 철성’이 제일 지구의 환경과 흡사했다.

더군다나 철성이란 이름답게 외벽이 굉장히 단단했다.

침 대신 용암을 줄줄 흘렸던 섬멸룡의 브레스마저 견딜 정도니.

“발라르크의 영지로.”

처음으로 수행해보는 필드 구현 퀘스트라서 그럴까.

결정이 내린 대성이 입을 연 순간, 해당 퀘스트의 수행 방식에 대한 안내창이 떠올랐다.

[필드 구현 퀘스트는 혼백(魂魄)의 상태로 입장하시게 됩니다.]

[혼백의 상태에선 모든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지에 기록된 당시의 시점으로 ‘잠깐’ 회귀하실 수 있습니다.]

[각 필드의 지배자는 천상의 초월자들에게 세뇌당한 상태입니다.]

[필드에 배치된 ‘세뇌당한 지배자’를 처치하여 인과율을 조정해, 시공간의 봉인을 해제하여 주십시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다.

혼백, 회귀, 지배자, 초월자, 세뇌, 인과율, 봉인 등.

아이템 구현 때에는 보지 못했던 용어들이 남발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안 가, 대성은 얼추 시스템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보고 아예 그때 시절로 돌아가라는 말이군.’

아이템 구현 퀘스트는 어디까지나 ‘공간’만 재현했었다.

천상의 존재인가 뭔가 하는 놈들한테 지배당한 지옥의 공간을.

하지만 필드 구현 퀘스트는,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마저 구현하는 방식이었다.

현세의 육체로, 현재의 지옥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게 아닌.

과거의 육체로, 과거의 지옥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

즉, 회귀(回歸)다.

다만, 그때 시절로 회귀해서 어떻게 인과율을 조정하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직접 부딪쳐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법이겠지.’

새로운 난관, 새로운 시련이라면 8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겪어봤다.

겪어보지 못한 경험 앞에서 두려워하고, 망설이던 시절은 지났다.

그리고…… 회귀.

‘발라르크의 철성에 갔을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도 약했다.’

아득한 과거.

마신을 쓰러뜨리기는커녕 녀석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거니 약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약함은 어디까지나 육체의 약함일 뿐.

‘몸과 정신에 각인된 경험과 기억은 그대로다.’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큼지막했던 기억들.

이를테면 발라르크의 철성에 발을 들였을 때, 자신을 가장 괴롭고 고통스럽게 했던 적들과 함정 등.

그것들은 아직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아니, 설령 잊어버린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면 심신에 각인된 경험과 본능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리라.

‘알면서도 못 하면 그건 얼간이지.’

망설일 이유는 없다고 대성이 생각하던 사이.

촤라락-!

판테온에 부유한 거대 일지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갔다.

[212p : -45년. 78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그때의 재현이 아닌 돌아가겠냐는 메시지.

뭐 아무렴 좋다.

대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번 추가 메시지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본 순간.

“이건……?”

대성은 다시금, 새삼스레 확신하고야 말았다.

판테온은, 그리고 시스템은 역시 자신의 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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