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54화 (54/180)

# 54

054

KHA가 병력을 A팀, B팀, C팀까지 나눈 것처럼, 백랑 부대 또한 군사들을 총 둘로 나누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늘 밤을 피로 물들이는 것.

그렇기에 사냥감이 제일 많이 몰려 있는 방향으로 병사들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하나는 지하 대피소 근처.

그리고 나머지 하나, 바우칼라크가 직접 이끄는 부대는 도곡동에서 가장 크고 높은 타워팰리스를 향했다.

크르르-

타워팰리스 근처에 도착한 바우칼라크가 건물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냄새가 났다.

저 안에 있는, ‘나는 안전하겠지’ 하고 안주 중인 사냥감들의 냄새가.

지금 당장 그 안주를 끝없는 비탄(悲歎)으로 만들고야 마리라.

그리 다짐한 바우칼라크가 곧 있을 학살이 줄 쾌감을 기대하며 나아가려던 찰나.

쉬익-

팍!

바우칼라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왼손을 들었다.

녀석의 손에는 날이 푸른색 기운에 휩싸여 있는 화살이 쥐어져 있었다.

크르르……!

바우칼라크와 그의 병사들은 느닷없이 닥친 기습에 으르렁댔다.

저벅, 저벅-

타워팰리스 입구에 조성된 녹음이 우거진 인공 정원.

각양각색의 광원을 뿜어내는 오러 아머를 걸친 사냥꾼들이 가라앉은 밤의 음영의 뚫고 나타났다.

“개새끼들이. 여기가 누구 사는 곳이라고 함부로 들어와?”

각기 운용하는 오러의 빛깔에 따라 다른 광원만 제외하면 일관된 디자인의 아머엔 브랜드 마크가 하나 새겨져 있었다.

가디언.

이곳 타워팰리스를 수호하는 보안 업체 사냥꾼들이었다.

“여기 말고 저기 저, 대피소 쪽에 사람들 많으니까 그리로 꺼져. 조용히 주무시는 분들 깨우지 말고.”

가디언의 팀장, 권승혁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그의 양손에는 작은 석궁이 손목에 부착된 암(Arm)에 끼워져 있었다.

‘슬리브 크로스보우’라고 불리는, 흔히 지원형 포지션에 특화된 사냥꾼들의 전용 오러 웨폰이었다.

크르르-

그것을 본 바우칼라크는 방금 날아온 화살이 저놈이 쏜 것임을 눈치챘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저놈부터 죽인다고.

철컥-

“역시 개새끼들이라 그런지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

화살을 장전한 권승혁이 무기가 장착된 양팔을 앞으로 들었다.

“말로 해서 안 되면, 대가리에 화살을 박아-”

쐐애액-!

총탄처럼 투척된 대검 한 자루가 권승혁의 말을 도중에 끊어냈다.

“……?!”

보통 저런 무거운 대검을 던질 땐 예비 동작이 불가피한 법이다.

그런데 저 늑대인간, 바우칼라크는 허리를 젖히지도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대검을 투척했다.

“이런 씹……!”

짧은 순간, 권승혁은 뛰어난 순발력을 발휘해 몸을 숙여 날아오는 대검을 피해냈다.

하지만 권승혁의 뒤에 있던 다른 가디언의 멤버는 그러지 못했다.

콰직-!

“꺽…….”

육중한 대검은 그대로 권승혁의 후방에 서 있었던 애꿎은 멤버의 몸에 내다 꽂혔다.

미간부터 복부까지 칼에 꿰뚫려 쓰러지는 멤버를 본 권승혁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명백한 판단 미스.

뒤에 부하들이 있으니 피하지 말고 그대로 어떻게든 쳐냈어야 했는데.

“민식아……!”

머리가 새하얘진 권승혁이 절명한 멤버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짤막한 순간.

크르르-

“……!”

권승혁은 소름이 돋았다.

늑대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가, 귓전에서 바로 들려왔으니까.

선명하게.

콰직-!

그리고 그것이, 권승혁이 생애 마지막 듣는 소리였다.

어느새 권승혁의 뒤통수까지 당도한 바우칼라크가 팔을 휘둘렀다.

그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 권승혁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피식, 피쉬익-

명치 윗부분이 사라진 몸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

“…….”

나머지 가디언의 멤버들은 할 말을 잃었다.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리더가 죽어버렸다.

사람이 수용 가능한 범위 이상의 공포와 마주할 땐 비명도 못 지르고 바짝 굳어버리는 법.

아연실색하며 우두커니 선 그들이 바우칼라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녀석은,

크르르- 크르르-

웃고 있었다.

개의 형상을 한 얼굴인데, 마치 사람의 그것처럼 아주 지독한 조소를 자아내고 있었다.

인간 본연의 불쾌감을 자극하는 그 기괴한 웃음.

권승혁이 말했던 것처럼 바우칼라크와 그의 병사들은 인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끝 모를 공포감을 선사할 수 있는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크르르-

크르르-

얼음처럼 바싹 굳은 가디언의 멤버를 향해 백랑 부대들이 움직였다.

결과만 말하자면, 그들 전원이 몰살되기까지는 총 5분이 걸렸다.

***

펄럭, 펄럭-!

착륙 중인 섬멸룡이 가만히 체공하여 날갯짓할 때마다 돌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뒤에 있는 사냥꾼들과 민간인들은 물론, 앞에 있는 무수한 백랑 부대의 군집까지 그 매서운 돌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이내.

쿵-!

섬멸룡이 완전히 땅에 내려앉았다.

“이, 이게 대체…….”

지휘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가상의 매체로만 접해본 드래곤이 나타난 것만 해도 경악스러운데 그 드래곤의 등에 하얀 머리의 남자가 탐승해 있었다.

심지어 낯이 익었다.

“다, 당신은 그, 텔레비전에 나왔던 초신성…….”

뉴스를 잘 챙겨 보는 인간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최근 라이센스 시험에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자, 대성이었다.

이상한 좀비를 소환하고 등에서 용 날개가 튀어나오는 등, 상식에서 벗어난 오러 테크닉을 펼쳤다는 소식도 들었다.

뉴스에서 직접 보도되고 관중들의 증언이 쏟아졌음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들었던 것보다 더 허무맹랑한 일이 벌어졌다.

그 한대성이란 남자가, 이제는 아예 용 날개가 아니라 드래곤 그 자체를 타고 이 자리에 등장했으니까.

‘마, 맙소사. 이게…… 이건 오히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지휘관 남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며 대성을 바라보았다.

대성은 드래곤, 섬멸룡의 목을 쓰다듬으며 뭐라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그르르-!

갑자기 섬멸룡이 살짝 몸을 낮추며 임전 태세에 돌입했다.

대성은 친절하게 섬멸룡의 등에서 내려오더니 팔짱을 낀 채 녀석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지, 지금 무슨…….”

대성이 직접 용을 타고 싸울 거라고 예상했던 지휘관과 주변의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던 가운데.

훙-!

섬멸룡이 날개를 활짝 펴며 낮게 체공했다.

한 쌍의 검은 날개가 위에서 아래로 왕복을 거듭할 때마다 가벼운 풍압이 바닥을 쓸었다.

날개 펄럭이는 소리만이 정적을 지배하는 폭풍 전야.

크르륵-!

제일 선두에 서 있던 백랑 병사가 그 바람 소리만이 가득한 고요함을 참지 못하고 쇄도하던 그때.

후- 웅!

육중한 신형을 살짝 뒤로 젖히며 날갯짓하던 섬멸룡이 대기를 박차고 발진(發進)했다.

크르-?!

의기양양하게 맨 처음에 나섰던 백랑 병사가 시야에 뭔가 커다란 게 닥쳐온다고 인지하기 무섭게.

콰과과과각-!

놈의 몸이 형체도 없이 분해되어 찌꺼기가 되었다.

그걸 시작으로.

콰과과과곽-!

검은 밤하늘보다 훨씬 시커먼 어둠의 잔영이 드릴처럼 회전하며 앞으로 쏘아져 나가, 수십에 달하는 백랑 병사를 덮쳤다.

섬멸룡이 포탄과 같은 위력과 속도로 적들 무리를 누빈 것이다.

“어억-!”

섬멸룡이 폭주를 펼치는 경로의 정반대에 있던 이들조차 휘몰아치는 파동과 후폭풍을 견디지 못해 몸의 중심을 잡기에 급급했다.

지휘관과 그의 부하들이야 사냥꾼이니 겨우겨우 두 다리에 힘을 줘 지탱할 수 있었다.

“내 손 잡아!”

“아, 앞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하지만 한낱 일반인에 불과한 민간인들은 눈앞에서 제트기가 바로 급발진한 것만 같은 충격 앞에서 나뒹굴거나 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져야 했다.

쿵-!

한 번의 돌격만으로 벌써 군단의 절반 이상을 흔적도 없이 짓밟은 섬멸룡이 내리꽂히듯 땅에 착지하자 아스팔트 지면이 뒤집혔다.

크르륵…….

야만적인 짐승일수록 강자가 지닌 기백을 더 잘 느끼는 법일까.

백랑 군단들이 시계를 아득히 채우는 거대한 포식자 앞에서 하나둘씩 주춤거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유희를 즐기듯 신나게 인간을 학살했던 기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로 그때.

크오오오오-!

섬멸룡이 목을 길게 쭉 빼 위로 들어 올리며 벽력과도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섬멸룡이 드래곤 피어(Dragon fear)를 사용합니다!]

[피어에 휘말린 대상의 모든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찌릿, 찌릿-

뼈와 근육에 직접 스며드는 듯한 비릿한 살기와 무거운 공포.

피어가 적용된 대상인 백랑 군단은 말할 것도 없고,

“대, 대체…….”

“이, 이런 게 실제로…….”

비록 피어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신화 속의 드래곤이 현실에서 세차게 울부짖은 진풍경을 본 사람들 또한 사색이 되어 압도되어야 했다.

쿵-

크, 크르륵…….

섬멸룡이 그 커다란 발을 한 발짝 내디뎠고, 바로 지척에 있었던 백랑 병사는 무거운 신음을 삼켰다.

쩌억-

섬멸룡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자 느닷없이 칠흑의 심연이 백랑 병사의 눈앞에 펼쳐졌다.

녀석이 하얀 털만 꼿꼿이 곤두세우며 얼어붙던 그때.

콰직-!

섬멸룡이 아가리를 닫으며 단숨에 백랑 병사의 육체 절반을 집어삼키더니 다시금 창공으로 비상했다.

쐐애액-!

아연실색한 백랑 병사들이 밤하늘의 섬멸룡을 올려다보기 무섭게.

콰직-!

후두둑…….

놈들의 하얀 갈기 위로 새빨간 핏빛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방금 육체 절반이 집어삼켜진 놈이 완전히 짓이겨지며 그 핏물 덩어리들이 떨어진 것이다.

섬멸룡이 보내는 효시(梟示)였다.

크, 크륵…….

크르륵-!

끝났다.

백랑 군단들은 그 참상을 목격한 시점에서 전의를 상실하더니 사방으로 헐레벌떡 흩어졌다.

한낱 개새끼가 아무리 천성이 사나워봤자, 용이 지닌 위엄과 그 잔혹함을 뛰어넘을 순 없다는 걸 깨달은 거다.

크오오오-!

섬멸룡이 재차 피어를 토해내며 운석처럼 날개를 뒤로 접고 땅으로 낙하했다.

광역으로 퍼지는 피어의 파문에 발이 묶인 백랑 부대들은 다리가 파들파들 떨려서 도망치는 것조차 제대로 못 했다.

백랑의 잔당이 저마다 털퍼덕 주저앉아 낑낑대고 바닥을 기었다.

콰과과과곽-!

섬멸룡은 거칠고 난폭하게, 그러나 더없이 집요하고 정확하게 놈들을 물어뜯었다.

“허…….”

지휘관이 넋 잃은 감탄을 흘리며 딸꾹질했다.

이 틈에 얼른 민간인들의 대피를 도와야 할 나머지 병사들도 잠시간 그 절경에 눈을 떼지를 못했다.

심지어 서로 뒤엉켜가며 대피소로 들어가려 발악했던 민간인조차 발걸음을 멈출 정도였다.

피가 낭자한 가운데 용의 포효와 늑대의 비명이 한데 어우러지며 강남 밤거리를 수놓았다.

“…….”

마치 신화 속의 싸움이 현실로 구현된 듯한 장면이었다.

종이 다르고, 격이 다르다.

감히 범접하기도 어려운 맹위 앞에서, 몇몇 병사는 허탈하게 소총을 쥔 손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잠시 뒤.

살점과 뼛조각만이 남은 백랑 군단의 시체들이 지저분하게 즐비했다.

크르르…….

한바탕 신나게 날뛴 섬멸룡이 입김을 뿜어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서, 설마 우리한테도 불똥이 튀지는 않겠지?’

눈 깜짝할 사이에 2등급 위험종을 일거에 쓸어버린 섬멸룡의 다음 먹잇감이 자기들 차례라고 생각하면 심장이 다 아찔해졌다.

등 뒤에 무수한 시민을 둔 지휘관과 그의 병사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려던 그때.

“저기요.”

“네, 네?!”

대성이 불쑥 말을 걸어오자 긴장 상태로 바짝 얼었던 지휘관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대성이 개의치 않고 물었다.

“나머지 놈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그게…….”

지휘관이 우물쭈물했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나머지 놈들이 어디 있는지 정말 몰라서 말을 더듬은 거였다.

그런데 이때.

<치직- 여기는 C팀. 놈들 병력 일부가 두산아이디오 타워팰리스 101동으로 진입한 걸 확인. 여유 나는 병력은 즉시 두산아이디오 타워팰리스 101동으로 지원 나와주기를 바람.>

무전에서 보고가 흘러나온 순간.

“헉…….”

지휘관은 무심코 숨을 삼켰다.

밀랍인형처럼 무심하고 딱딱했던 대성의 얼굴에 핏대가 불끈불끈 돋아났으니까.

명백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대성이 고개를 돌려, 여기서도 훤히 보이는 궁전 아파트를 주시했다.

두산아이디오 타워팰리스 101동.

그곳은, 대성이 내일 가족과 이사를 할 새로운 보금자리의 이름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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