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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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은 섬멸룡을 재촉해 10초도 안 되어 타워팰리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입에 조성된 정원을 눈에 담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추잡하게도 날뛰었군.”
인조이기는 해도 아름다운 녹음으로 우거진 정원 위로 끔찍한 형태로 훼손된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다.
‘하루 만에 다 빠질 피비린내가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은 이 진한 악취가 들러붙을 터.
그리고 내일 가족과 함께 이사를 올 집에 이런 추악한 흔적이 남았다는 사실을, 대성은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었다.
“…….”
분노를 잠시 접은 그는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극도로 민감해진 청력이 밤거리 사이로 찌르르 울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 등을 전부 거세시켰다.
날카로이 곤두세워진 감각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타워팰리스 내부.
‘숫자는 대략 50에서 60. 다섯 마리씩 짝지어서 전력을 분산시켰군.’
대성은 넓디넓은 아파트 내부에서 펼쳐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청각만으로 스캔했다.
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백랑 병사들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 날뛰는 소리. 문을 깨부수는 소리. 창칼을 휘두르는 소리. 맥없이 절명하는 사람들의 절규.
한마디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터가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지옥도로 돌변하는 소리였다.
‘이 이상 이 개새끼들이 날뛰게 내버려둘 순 없다.’
대성은 구상하고 있던 작전을 살짝 변경했다.
원래는 발라르크와 철성의 센티넬이 지닌 전력만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필드, ‘발라르크의 철성’을 구현하시겠습니까?]
[해당 필드가 내장된 고유결계(固有結界)를 전개할 범위를 설정해주십시오.]
“내 눈앞에 있는 건물 전부.”
수십 마리의 개새끼들이 곳곳에 분산된 이상.
놈들을 아예 한곳에 몰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
털썩!
피범벅이 된 중년의 남녀가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 남매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일 것이다.
“흑, 흐흑…….”
“오, 오빠……. 어, 엄마랑 아빠가……!”
눈앞에서 부모가 도끼에 머리가 으깨진 채 죽는 건.
난데없이 늑대인간이 집에 들이닥치더니 이런 악몽이 펼쳐졌다.
어린 남매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물콧물을 쏟아내며 늑대인간을 올려다보았다.
크르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쇠도끼를 쥔 늑대인간이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은 자신이 방금 벌인 살육의 여운이 아직도 가지 않았는지, 하얀 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어, 어으아…….”
“히, 힉…….”
그 가학적이고 무정한 모습에 남매는 몸서리를 치며 새파랗게 안색을 물들였다.
본능이 알려주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괴물에겐, 자신들을 한 번에 죽일 마음이 없다고.
좀 더 잔인하게, 좀 더 오랫동안, 괴롭히고 고문하다 죽일 거라는 그 욕망이 괴물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크르르-
스윽…….
눈에 핏발을 세운 늑대인간이 침을 줄줄 흘리며 손을 뻗어왔다.
“……!”
곧장 이어질 끔찍한 격통이 두려워 남매가 눈을 질끈 감은 그때.
꽈드드득-
“……?”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엉덩이와 두 다리가 닿은 바닥에 묘한 괴리감을 느낀 남매가 감았던 눈을 떴다.
세상이 뒤집히고, 또 바뀌고 있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꽈드드득-
말 그대로, 바닥부터 벽, 그리고 천장까지 모든 것이 회전문이 돌아가듯 회전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오, 오빠? 뭐, 뭐야 이거?”
“모,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나도.”
꿈만 같은 광경이었다.
촤르륵-! 콰드득-!
대리석이었던 새하얀 바닥이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돌바닥으로 돌변했다.
샹들리에가 달려 있던 천장과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던 벽이 뒤엎어지며 새카만 벽돌들로 채워졌다.
크르르-?
이 마법 같은 순간에 당황한 건 늑대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남매를 위협하고 있던 녀석은 물론, 다른 방을 뒤지며 남은 생존자가 없나 물색하던 잔당들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당혹스러워했다.
이윽고.
쿵-!
바닥마저 전부 뒤집히는 걸 마지막으로, 변화는 멈췄다.
“이, 이게 뭐야?”
남매는 자신이 알던 집의 풍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눈이 휘둥그레 돌아가는 변혁 끝에 펼쳐진 장소는, 사방이 벽돌로 채워진 축축한 지하실 같은 곳이었다.
똑…… 똑…….
지하실 천장에 고인 차가운 물방울이 늑대인간의 콧등 위로 떨어졌다.
크르르…….
그 서늘한 감촉에 놈이 으르렁대며 고개를 젓는 순간.
퓽-! 팍-!
컥……!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놈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두꺼운 화살에목울대가 관통당한 동료가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잔당조차 사태의 원인을 짐작하지 못하고 당황하던 가운데.
퓽-!
깽……!
한 번 더, 어둠의 지하실 어딘가에서 화살이 빠르게 날아와 그 잔당의 미간에 적중했다.
크, 크르르……!
남은 한 놈이 쇠도끼를 치켜들며 가장 가까이에 있던 벽에 등을 기댄 채 공습에 대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놈은 어둠 속에 은신한 누군가가 암습(暗襲)을 가하는 중이라고 생각했지만.
덜컹-!
콰직-!
찰싹 들러붙어 있었던 벽이 활짝 열리며 창날이 튀어나와 녀석의 몸을 관통했다.
허, 억…….
쇠꼬챙이에 꿰뚫린 놈은 쓰러지지도 못하고 선 채로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 아아…….”
“흐, 흐흑?”
처음부터 열까지 영문 모를 사태의 연속에, 어린 남매는 거의 혼절해버릴 지경이었다.
***
무력한 사냥감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할 때는 즐거웠다.
그런데 그 학살의 대상이 역전될 줄은, 타워팰리스의 백랑 군단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덜컹-! 퓩-!
퓨퓩-! 퓽-!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갑자기 바닥과 천장, 벽이 뒤집히며 다른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사방천지에서 화살이나 창 같은 게 연발로 발사되는 게 아닌가.
콱-!
크르륵-!
원인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재난이 닥치자 백랑 군단들은 이성적인 대처도 못 하며 화살과 창에 꿰뚫려 이승을 하직했다.
촤르르륵-
비상계단을 올라 14층 복도를 거닐던 놈들 앞에는 기나긴 칠흑의 통로가 뻗어졌다.
덜컹-!
그곳 또한 여지없이 천장과 벽이 덜컥덜컥 열리면서 함정이 쏟아져 나왔다.
크르르……!
몇몇 순발력 있는 녀석들은 무기를 휘둘러 가까스로 함정을 쳐냈다.
물론 이 짧은 사이에 함정이 발동되는 일정한 패턴을 간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처음에 한두 번은 운 좋게 막아냈다고 쳐도,
퓽-!
끄, 끄으윽……?!
그 행운이 세 번, 네 번이 넘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위에선 화살의 비. 옆에선 창날의 기습. 아래에선 시커먼 어둠을 삼킨 무저갱이 펼쳐졌다.
크, 크르륵-
타워팰리스를 점령하던 백랑 병사는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학살이고 뭐고 사는 게 우선이었던 백랑 군단들은 혼비백산하며 줄행랑을 쳤다.
처음 보는 장소이기는 하나, 일단은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쨌든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빠져나갈 입구가 나올 터.
크르륵-!
물론 계단을 내려가는 과정도 함정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래도 동료를 총알받이 삼아 목숨을 건진 몇몇 녀석이 몸을 던지듯이 해서 계단을 전부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지옥 같은 장소의 출입구로 보이는 석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그 석문을 찾은 백랑 병사가 헐레벌떡 달려갔다.
붕-!
콰직-!
그러나 어디선가 사선으로 휘둘러진 거대한 미늘창이 녀석의 대가리를 통째로 부숴버렸다.
철성의 센티넬.
그는 입구 근처에서 대기해 도망치려는 놈을 척살하라는 대성의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센티넬이 그야말로 석상처럼 석문 앞을 굳건히 선 한편…….
파지지직-!
뇌성(雷聲)이 작렬하며 백랑 군단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크르르…….
이제야 좀 함정을 피해 한숨 돌리려던 참인 백랑 군단들이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며 눈앞의 존재를 응시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는 절대자의 명을 받았다.”
잿빛 갑옷을 입은 광전사 발라르크가 매섭게 번뜩이는 뇌창을 겨누며 말했다.
그 매서웠던 화살 쪼가리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뇌창의 살기에, 백랑 병사들이 애달픈 신음을 삼켰다.
“원한은 없으나, 명령을 받았으니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쿠르르릉-!
발라르크가 뇌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공간 전역이 들썩였다.
어디선가 울려 퍼진 천둥소리를 듣고 두려움을 느껴 입구로 달음박질치는 녀석들은 철성의 센티넬이.
쥐새끼처럼 숨어 공포에 휩싸인 잔당은 함정의 세례와 발라르크가 무자비하게 목숨을 취했다.
크르륵-!!
피의 유희를 즐기러 온 백랑 군단은 이날 처음으로 사냥당하는 먹잇감의 공포를 깨달았다.
***
대성은 피바람이 몰아치는 아래층을 지나 타워팰리스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니, 지금은 철성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로드는 분명히 작용했다.’
발라르크의 철성은 현재 타워팰리스라는 껍질을 두른 상태였다.
고유결계를 펼칠 범위를 타워팰리스로 설정하고 로드했더니 철성의 외관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필드의 상호작용이 적용되는 대상을 설정할 수도 있었고.’
죄 없는 거주민까지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었다.
대성은 철성에 설치된 함정이 오로지 백랑 군단에만 발동되도록 설정해두었다.
그밖에도 척살령을 받은 발라르크와 센티넬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군.’
지금 이곳 필드의 지배자가 그이기 때문일까.
타워팰리스보다 훨씬 면적이 넓은 철성 내부 곳곳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그 감각을 통해 대성은 발라르크와 센티넬이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섬멸룡과 마찬가지로, 센티넬과 발라르크 또한 지옥 때와 다를 바 없는 전력을 지니고 구현되었다.’
이제 남은 건.
아까부터 꼭대기 부근에서 발산 중인 광폭한 기운의 파장이었다.
분명 백랑 군단의 수장일 터.
‘2등급 보스 몬스터의 에테르 코어는 각별하다고 했지.’
대성은 라이센스 시험을 준비하면서 참고했던 자료에 그런 정보가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모든 2등급 몬스터의 에테르 코어가 값어치가 높은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2등급 ‘보스’ 몬스터의 에테르 코어가 지닌 가치는 그야말로 금은보화가 따로 없었다.
‘내 손으로 직접 취한다.’
그걸 위해 대성은 직접 놈을 잡으러 꼭대기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꼭대기에 도착한 대성은 금은보화를 품은 놈과 마주칠 수 있었다.
크르르-
바우칼라크였다.
놈은 아까 봤던 졸개들이랑 비교도 안 되는 휘황찬란한 갑주와 무구를 지니고 있었다.
‘실망이군.’
과연 2등급 몬스터의 수장은 얼마나 강할까, 내심 그런 호기심을 품던 참이었다.
그런데 직접 보니, 놈은 센티넬의 반절만도 못한 허깨비였다.
지옥엔 저 정도 기백과 살기를 지닌 마수 따위는 널리고 널렸다.
“업화대검을 꺼낼 필요도 없겠어.”
크르르-!
바우칼라크가 어금니를 드러내자 녀석의 뒤에 주저앉아 있던 중년의 남녀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바로 그때.
크르륵-!
팟-!
바우칼라크가 거대한 대검을 높이 치켜들며 대성에게 달려들었다.
“…….”
대성은 그저 우두커니 선 채 심드렁한 눈으로 휘둘러져 오는 대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성이성가신 모기를 내쫓듯이 무심하게 팔을 휘저은 순간.
쩌적-
콰직-!
크르륵……?!
그 커다랗던 대검이 몸체부터 시작해서 손잡이까지 유리잔처럼 허무하게 깨졌다.
휘둥그레진 바우칼라크의 눈에 경악이 서리기 무섭게.
콰- 악!
커, 헉…….
대성이 남은 왼팔을 정면으로 뻗어, 바우칼라크의 복부 깊숙이 손목을 쑤셔 박았다.
우악스러운 손이 꿈틀대며 바우칼라크의 오장육부를 헤집었다.
그러기를 잠시.
턱-
“여기 있군.”
대성은 녀석의 단전 부근에서 결석처럼 단단한 감촉을 느꼈다.
바우칼라크의 에테르 코어였다.
푸확-!
한 움큼 코어를 쥐어 잡은 대성이 팔을 도로 빼자, 창자까지 튀어나오며 피 분수가 쏟아졌다.
커, 커헉…….
두 번째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코어를 상실한 바우칼라크가 눈에 초점을 잃더니 쓰러졌다.
‘이거 하나당 10억을 호가한다고 했었지.’
대성은 흥미 어린 눈길로 루비처럼 붉은 에테르 코어를 살펴보았다.
10억. 손에 얻은 삼중의 방호책을 확인하기 위해 감수한 성가신 일치고는 나쁘지 않은 추가 이득이옸다.
만족한 대성이 아공간 속으로 에테르 코어를 보관하려던 그때.
“여태까지 뭐 하느라 이렇게 꾸물댄 거야!”
갑자기 그런 노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이대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려던 대성의 고개가 돌아갔다.
바우칼라크에게 붙잡혀 있었던 중년의 부부.
그중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소리 질렀다.
“너, 가디언 소속이지? 아니, 저 괴물 새끼들이 고용인 자는 방까지 들어올 동안 뭘 한 거야! 뭘!”
“…….”
“하여간 자기들이 누구 덕분에 먹고사는지도 모르고 빠져가지곤.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
“멀뚱멀뚱 바라보지만 말고, 뭐 해 이 새끼야! 빨리 나랑 우리 와이프 안전한 곳으로 안 데려가고…… 어, 어어?”
남성이 눈을 부릅떴다.
대성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입에 물었기 때문이다.
후욱-
스산하게 퍼지는 담배 연기를 본 중년 여성이 질겁을 했다.
“아, 아니, 이 사람이. 고용인이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버릇없는 행동이에요?”
“와, 이 새끼, 이거. 이젠 아예 막 나가자는 거지?”
“늑장 부렸으면 서둘러 경호라도 열심히 해야지. 지금 누구 앞에서 똥배짱 부리는 거예요!”
“너, 당장 이름 말해. 내일 아침에 바로 전화 넣어서 모가지를-”
치이익-
대성은 아직 뜨겁게 담뱃불이 타오르는 꽁초의 끝을 남자의 미간에 대고 비볐다.
“으, 으아아아악-!”
“여, 여보!”
남자가 화상을 입은 미간을 움켜쥐며 바닥을 뒹굴었다.
저벅-
대성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에게 다가가, 죽 늘어진 티셔츠 자락을 붙잡아 그를 높이 들어 올렸다.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남자가 파닥거렸다.
“이, 이 새끼! 이 미친 새끼가! 이게 대체 무슨 짓-”
콰- 앙!
혈관이 불끈불끈 솟은 바윗돌 같은 주먹이 남자의 안면을 강타했다.
눈두덩을 포함한 이목구비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얼굴 깊숙이 말려 들어갔다.
그 한 방에 쇼크사로 심장이 멈춘 남자의 손이 허공에서 맥없이 축 늘어졌다.
“어, 어어……. 어어?”
아직 현실 수긍을 끝내지 못한 중년 여성은 난잡하게 눈동자만 굴리며 금붕어처럼 입을 끔뻑거렸다.
터진 이빨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남성을 휙 던져버린 대성이 중년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저벅-
그제야 중년 여성은 지금 이 짧은 순간에 펼쳐진 일련의 사태를 깨닫고는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고맙다는 말도 할 줄 모르는 너희는 짐승 새끼만도 못하다.”
왜 죽는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그것이 대성이 유일하게 베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
***
<어젯밤 강남구 도곡동에서 벌어진 2등급 게이트 프렉쳐 사태는 한 대성 사냥꾼의 활약 덕에 겨우 최악을 면하고 소강될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갑자기 성이 펼쳐졌다는 생존자들의 진술이 있었으나, 전문가들은 그들이 집단 환각 증세를 겪었을 확률이 높다고 하였으며…….>
다음 날.
뉴스에선 아침부터 속보가 끊이질 않았다.
<불행히도 그곳에 있던 유진제약 김 모(56) 대표와 그의 아내인 이 씨(55)는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