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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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미쳤어.”
차창 너머.
진폭을 키워가며 서서히 닫혀가는 게이트를 바라본 성찬호는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 이게 벌써?”
“세상에…….”
공사 현장 앞에 대기하고 해당 게이트를 주시하던 담당 군인들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벅- 팟-
거세게 흔들리는 게이트밖으로 빠져나온 대성이 땅에 발을 딛자마자 게이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5등급 게이트 하나.
4등급 게이트 다섯.
어젯밤 예약해두었던 총합 여섯 개의 게이트를 전부 클리어했다.
총 소모 시간, 이동 시간 포함해서 1시간 24분.
5등급 게이트라고 해도 클로징(Closing)까지 최소 2시간은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경이적인 속도였다.
탁-
조수석에 앉은 대성이 땀 한 방울 묻어 나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군.”
“…….”
“점심 먹고 시간 비는 거 있으면 또 예약하자고.”
“미친놈.”
정녕 자신이 사람을 친구로 둔 건지 괴물을 친구로 둔 건지 혼란스러워진 성찬호가 실소를 흘렸다.
“점심이고 뭐고 대성아, 우리 기네스한테 이거 알리자. 이거 기네스 감이야. 세상천지에 두 시간도 안 돼서 게이트 여섯 개를 먹어치우는 놈이 어디 있어?”
“없었어?”
“세계 사냥꾼 역사를 통틀어도 없을 거다.”
또, 성찬호 본인에게도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루 만에 게이트 여섯 개 분량의 에테르 코어 처리, 보상금 정산 작업을 하는 건 <소울> 클랜에서 일할 때도 못 해봤으니까.
어쨌든 6일치의 수익을 2시간도 안 돼서 올린 거니 기분은 좋았지만.
“그리고 너, 그저께 요 근처에서 터졌던 거, 2등급 게이트 프렉쳐도 해결했다면서.”
“어.”
“그, 네가 잘 몰라서 지금 실감이 별로 안 나는 모양인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니거든?”
“그게 무슨 뜻이지?”
“이건 내 감인데, 확률이 한 80% 정도 되는 감이야. KHA에서 조만간 너한테 S급 안 되어보겠냐고 연락 넣을 거야.”
“…….”
S급.
더할 나위 없이 강함은 물론, 협회와 대중이 인정하는 공적을 세운 이들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레벨.
“2등급 게이트 프렉쳐 혼자 막고, 또 하필 그 장소가 높으신 분들 많이 사는 도곡동이네? 하마터면 협회가 독박 쓰일 뻔한 거, 네가 해결해준 거야.”
즉, KHA는 대성으로부터 빚을 진 셈이다.
미안해서라도 어떻게든 빚을 갚고 보상을 해줄 터.
그 보상이 바로 대성을 여섯 번째 S급 사냥꾼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성찬호는 예상한 것이다.
“만약에 내 예상대로 들어맞아서 너한테 그런 제안이 오면, 대성이 넌 어떻게 할 거냐?”
“받아들여줘야지.”
의외의 즉답에 성찬호가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찮은 일은 질색하는 성격이었잖아. S급 되면 성가신 일들에 되게 많이 휘말릴 텐데?”
“피해야 할 귀찮음과 감수해도 될 귀찮음은 다르니까.”
사냥꾼을 보유한 전 세계를 보아도 S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즉, S급이 되는 순간 무지막지한 이목과 시선이 집중된다.
이전까지의 삶과는 180도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조용하게 살고자 하는 대성의 철칙과 상반되는 이야기.
하지만.
“그만한 혜택이 동반된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지.”
S급 사냥꾼에겐 A급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부와 명예가 후속으로 뒤따른다.
굳이 게이트 공략을 하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매년 연금이 지급되는데, 그 액수만 해도 웬만한 3~4등급 게이트 토벌 보상금을 웃돈다고 한다.
물론 랭크의 유지를 위해선 어느 정도 일정한 실적을 올리긴 해야 하겠지만.
“귀찮고 성가시다는 걸 이유로 그 많은 이득을 포기하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오랜만에 맞는 말 하네, 우리 대성이. 난 또 네가 굴러 들어온 복 걷어찰까 봐 마음 졸이고 있었거든.”
“일단 굴러는 들어오고 난 뒤에 생각하자고.”
마치 꼭 얘기가 이미 제안이 들어온 상태인 듯이 흘러갔다.
김칫국 그만 마시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대성이 입을 열려던 그때.
띠링-
대성의 휴대폰에 설치된 KHA 애플리케이션으로부터 쪽지 하나가 도착했다.
“…….”
대성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며 쪽지의 내용을 확인해보니.
[승급에 관해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대성 사냥꾼님. 자세한 얘기는 직접 만나 뵙고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편하실 때 협회를 방문해주십시오.]
무려 KHA 본사 측에서 직접 보낸 전언.
자세한 얘기는 만나고 난 뒤에 하자고 나와 있지만, 본론이 뭔지는 첫 줄을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승급.
현재 A급인 대성에게 ‘승급’이라 함은 하나밖에 없다.
“……어, 어어?”
정작 쪽지를 받은 당사자보다 옆에서 구경하던 성찬호가 더 당황했다.
그러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이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속보) 협회, 여섯 번째 S급 사냥꾼으로 한대성을 지목하다!>
<(속보) 제안은 보낸 상태. 아직 한대성 사냥꾼의 대답을 기다리는 중.>
<(속보) 승낙할 시 바로 S급 라이센스 발급 예정!>
각종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기사를 본 성찬호가 목을 뒤로 빼며 탈력감에 젖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본인의 뛰어난 감에 내심 예찬을 보내며 말했다.
“진짜로 굴러 들어왔네?”
***
KHA의 쪽지를 확인하자마자 대성은 곧장 본사로 이동했다.
성찬호는 자신이 개입해도 될 만한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대성을 협회까지 데려다준 뒤 빠져주었다.
“한대성 사냥꾼이다!”
“한대성 사냥꾼이야!”
촤촤촤촤촥-
오늘 속보의 주인공이 등장하자 입구에서 협회 직원과 씨름 중이던 기자들이 순식간에 몸을 돌려 대성에게 몰려들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마구 터지는 가운데, 기자들은 다짜고짜 대성의 얼굴 앞으로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JBC의 윤지혜 기자라고 합니다! 이번에 S급 승급과 관련하여 협회를 방문하신 건가요?”
“승낙 여부에 대해 많은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으실 예정인가요?”
“그저께 있었던 프렉쳐 사태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용을 타고 다니셨는데, 그것도 오러 테크닉의 일종인지!”
쏟아지는 질문들의 향연.
개중엔 심지어 이미 다 지나간 일들까지 꼬치꼬치 물고 넘어지는 질문도 있었다.
“…….”
대성은 눈 아프게 터지는 플래시 세례 앞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 같아선 힘으로 확 밀어붙이고 싶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
‘섬멸룡을 불러서 드래곤 피어를…… 아니, 아니야.’
고작 기자 몇 물리려고 용족의 권능을 동원하는 건 효율에 맞지 않는다.
대성은 구현의 인이 새겨진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화르륵-.
“우왁!”
“꺄악!”
벌떼처럼 모인 기자들의 지척에 두 갈래의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이 사그라지자 철성의 센티넬과 발라르크가 신형을 드러냈다.
“헉……!”
“무, 물러서!”
느닷없이 중세풍 갑주를 걸친 광전사 두 명이 등장하자 기자들이 소스라치며 거리를 벌렸다.
입구로 향하는 틈이 넓어지자 대성이 여유롭게 발걸음을 마저 옮기며 둘에게 명령을 덧붙였다.
“귀찮게 달라붙지 않도록 잘 감시해라.”
“맡겨주십시오, 주군이시여.”
발라르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이 앞부터는 한 발짝도 못 간다는 듯이 기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렇게무사히 건물 로비에 들어선 순간,
“바쁘신 와중에 협회를 방문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대성 사냥꾼님.”
대성이 온 걸 보자마자 박정호의 명령을 받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이하원 비서실장이 그를 맞이했다.
사근사근 요염한 눈웃음을 그린 그녀가 로비 한쪽의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협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해드리죠.”
“…….”
대성은 말없이 이하원의 안내를 받아 회장실로 했다.
곧장 최상층에 도착한 대성은 이하원의 뒤를 따라 회장실에 도착했다.
이하원이 대신 문을 열어주자 회장실 내부의 정경이 드러나면서 박정호의 모습이 보였다.
“아! 한대성 사냥꾼님!”
회장석에 느긋이 앉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리던 박정호가 대성을 발견하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설마 오늘 이렇게 바로 와주실 줄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환영합니다.”
“……아뇨.”
대성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며 박정호와 악수했다.
탁상을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 앉았고, 박정호가 이하원에게 커피를 한 잔 내오라고 했다.
후룩-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신 대성이 맛이 썩 괜찮다고 생각할 즈음.
“협회를 직접 방문해주셨다는 건, 이미 결정을 내리셨다는 거겠죠.”
“예.”
“어째…… 받아들이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예.”
1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바로 이어진 즉답이었다.
아니, 그보다 상당히 담백한 반응인 터라 박정호는 놀랐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위의 직위가 주어졌음에도 저런 심드렁한 반응이라니.
이창식 이후로 처음이었다.
‘적어도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지는 않겠어.’
기회가 오면 잡을 줄 알면서, 가벼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직접 대면했음에도 오히려 속내를 더 헤아릴 수 없는 남자.
그 부분이 박정호에게 있어선 호감으로 작용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럼 바로 S급 라이센스 발급하고 등록 절차를 밟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여섯 번째 S급이 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로써 한국은 또 다른, 능력 있는 인재를 가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사냥꾼 선진국이 되는 것도 먼 훗날이 아닐 터.
국력(國力)의 상승은 박정호에게 있어서 기쁨이었다.
-그래도 혼자서 2등급 프렉쳐를 막았는데, S급 승급으로만 퉁치지 말고 협회에서 밥이라도 대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때 문득 박정호의 머릿속에 조한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물론 밥이라도 대접하라는 말이 정말로 먹는 밥을 사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추가적인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에선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의례적이고 필수적인 사안이기도 했다.
S급 사냥꾼에게는 라이센스 발급 외에도 당사자가 요구하는 사항을 최대한 들어주는 특권이 마련된다.
전용 장비 지급, 주택 제공 등. 가능한 선이면 무엇이든.
“특별히 더, 저희가 해드렸으면 하는 점은 없으십니까?”
“…….”
“뭐든 좋습니다. 정말로, 한대성 사냥꾼님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큰 망신을 당할 뻔했습니다. 어떻게든 따로 보상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뭐든 괜찮습니까?”
“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원하는 거라면 있었다.
그것도 오늘 아침에, 성찬호와 게이트를 떠올리면서 막 떠올린 소망.
명백히 자신의 영향권 바깥에 있는 문제였으나, 박정호라면 다르리라.
아무렴.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관의 ‘장(匠)’이 아니던가.
“그럼 이걸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대성이 입을 열어, 그 소망을 말한 순간,
“……네?”
요구라고 해봤자 장비 지급이나 그와 비슷한 선이겠지 싶었던 박정호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그건 정말로.
‘한대성’이란 인간밖에 할 수 없었던 요구였으니까.
***
불그스레 노을이 지는 창공.
대성은 섬멸룡의 등에 올라타 하늘을 누비며 느긋이 귀가하고 있었다.
검은 용의 그림자가 물든, 석양빛이 내려앉은 빨간 구름을 바라보며.
‘지수, 학원 등록했을까.’
문득 오늘 아침 머리맡에 뒀던 쪽지를 떠올렸다.
대성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짧게 이어지고,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오빠!]
“뭐 해.”
[아니, 내가 뭐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빠 S급 됐다면서? TV에서 지금 난리야! 이거 진짜야?]
“어”
[와…….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지금 오빠 사인 미리 받아놓은 다음에 그거 팔아서 용돈 벌면 되겠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대성이 피식 웃었다.
“아침에 놔둔 쪽지 봤어?”
[아, 그거? 아, 당근빳따지! 내일 가서 당장 상담 받아보려고! 오빠, 고마워!]
공부하기 싫어서 괜히 늑장 부리면 어쩌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바람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S급이 됐다는 사실보다, 하나뿐인 동생의 삶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는 기쁨이 더 생생했다.
뿌듯해진 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한대성, S급 되다!>
<대한민국에 여섯 번째 S급 사냥꾼, 탄생!>
<이틀 전 백랑 군단을 토벌한 공로를 크게 인정받아…….>
그날.
대한민국에, 새로운 거성(巨星)이 등장했다.
그렇게 모든 이가 ‘한대성’이란 S급 사냥꾼의 첫 번째 데뷔 무대가 어디서 치러질까 주목하던 가운데.
<대한민국 안산시 단원구와 인천시 부평에 2등급 게이트 발생!>
<전례 없는 2등급 게이트 동시 발생. 해당 지역 주민들 정부 지정 피난 시설로 대거 이동…….>
그 무대는, 생각보다 빨리 마련되었다.
그것도 아주 큰 무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