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58화 (58/180)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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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호는 안산시와 부평구에 2등급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뜨자마자 대성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로 입장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하나는 왜 안 샀냐고?]

“어.”

[동시에 발생한 2등급 게이트를, 동시에 사들이는 정신 나간 놈이 세상천지 어디 있어? 몸이 2개세요?]

“저번에는 6개도 해치웠잖아.”

[그건 5등급이랑 4등급 게이트라서 가능했던 거고. 아니, 원래는 그것도 불가능한데 그나마 너라서 가능했던 거지만……. 아무튼 2등급은 안 돼, 대성아. 너를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라, 진짜 안 돼서 그래.]

5년 전.

수많은 사냥꾼의 목숨과 인명 피해를 자아냈던 악몽의 대명사, 1등급 게이트에 비하면 그래도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낫다는 의미다.

1등급 게이트가 S급 사냥꾼 연합도 버거운 정도라면,

2등급 게이트는 최소 S급 사냥꾼이 마지노선으로 참가해야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이니까.

아무리 대성이라고 해도 2등급 게이트를 한 번에 2개 도는 게 과연 가능할지, 성찬호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2개 예약은 불가능했어. 미련 버리자.]

“왜?”

[이미 류서연이랑 <포트리스>, <황천(皇天)> 클랜에서 선수를 쳤거든. 부평구 쪽에서.]

솔로(Solo)로 공략이 가능한 게이트는 3등급까지다.

2등급까지는 반드시 하나의 S급 사냥꾼과 하나의 클랜, 혹은 셋 이상의 클랜이 연합을 맺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흠…….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난 어디 클랜이랑 함께 가는 거지?”

[기다려봐. 어디 보자……. 아, <카이트> 길드네.]

얼마 전 대성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보냈던 빅10 중 한 곳이었다.

물론 그 제안에는 답장조차 주지 않았다. 다시는 볼 일조차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이 대성은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연합을 맺고 공략을 하는 이상 수익을 나누는 것 또한 불가피할 터.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내 몫을 조금이라도 더 챙길 궁리를 해봐야겠군.’

이쪽은 개인, 그리고 <카이트>는 대규모 집단.

그 집단을 압도해 독보적인 공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성은 그럴 자신(自信)이 충분했다.

허깨비 몇 놈들한테 오롯이 자신의 몫을 떼어 줄 정도로 지옥에서 허송세월한 게 아니니까.

“알았어. 이따 보자.”

[지금 거기로 갈게. 밥이나 같이 먹자.]

삑-

대성은 전화를 끊고 밖을 나설 채비를 했다.

보통 공략에 앞선 사냥꾼이라면 장비를 점검하거나 현장에서 운용할 오러의 흐름을 안정시키거나 하겠지만, 대성은 달랐다.

그냥 이 앞에 산책하러 나가는 사람처럼 가볍게 세안하고 옷을 갈아입는 게 전부였다.

그가 휴대폰 배터리를 확인하던 그때였다.

덜컥-

현관문이 열리고 곤란한 얼굴을 한 지수가 들어왔다.

“응?”

대성이 눈썹을 치켜떴다.

얼마 전 그녀는 대성 덕에 대치동에서 제일 유명한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학원 첫날이라 방금 막 집을 나선 참이었는데.

“무슨 일이야.”

“오, 오빠. 그게……. 밖에 사람들 때문에 나갈 수가…….”

“……?”

대성은 곧바로 거실로 향해 유리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벌 떼처럼 모여들어 주민들은 완전히 오도 가도 못하게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의 향연을 눈에 담은 순간.

“이 무례한 새끼들이.”

머리끝까지 피가 확 몰린 대성은 곧장 베란다로 나가자마자 난간을 휙 넘었다.

“오, 오빠!”

느닷없는 투신(投身)에 지수가 경악하며 베란다로 달려가 난간 아래로 고개를 빼려던 순간.

휘잉-

“꺅!”

날갯짓이 자아내는 회오리바람이 그녀를 뒤로 주춤거리게 했다.

섬멸룡이었다.

타워팰리스 상층에 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래쪽에 있던 기자들이 웅성거리며 위를 보았다.

“한대성 사냥꾼이다!”

“뭐 해! 저거 빨리 찍어!”

“어, 어어? 다들 뒤로 물러서!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잖아!”

어차피 그들은 대성이 용을 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

그렇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사진 건졌다는 듯이 열심히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이윽고.

쿵-

기자들의 행렬이 알아서 뒤로 물러나준 덕에 생겨난 자리에 섬멸룡이 착지했다.

촤촤촤촤촤-

벼락처럼 터지는 플래시 세례와 단숨에 들이쳐 오는 인파들.

왜 지수가 그리도 질겁했는지 알 것 같았다.

“S급이 되신 뒤로 데뷔 무대가 정해졌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등급 게이트 공략에 나서는 건데, 많이 떨리시진 않나요?”

“<카이트> 길드와 호흡을 맞추시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혹시 결과가 좋을 시 <카이트>에 입단하실 의향은 없나요?”

저들은 대성이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목줄 풀린 광견처럼 뒤엉키며 다짜고짜 마이크부터 들이밀고 봤다.

심지어 여긴 남의 집 앞이고.

하물며 사전에 따로 인터뷰 요청을 보낸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

그래, 좋다.

S급 승급 후 처음으로 제대로 마련된 무대다.

저널리스트인 저들로서는 이만한 특종, 이만한 먹잇감도 없을 터.

그 입장은, 백번 천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당신들은.”

그 집념과 집착 어린 직업의식이 아무런 관련 없는 가족한테까지, 심지어 더없이 중요한 날을 맞이한 지수에게 방해를 끼쳤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신들은’까지만 말한 대성의 첫 발언에, 좌중이 침묵하며 곧 이어질 뒷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뒷말이 이어졌다.

“당신들은 제가 타고 있는 이 용이, 인간은 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

모두가 그 발언의 진의(眞意)를 이해하지 못하던 찰나.

대성은 의념(意念)을 통해 명령을 내렸고, 섬멸룡은 고개를 뒤로 크게 젖혔다.

크오오오-!

[섬멸룡이 드래곤 피어를 사용합니다!]

[피어에 휘말린 대상의 모든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헉……?!”

“자, 잠깐……!”

그 순간.

섬멸룡의 포효가 주변에 울려 퍼졌고, 피어의 대상이었던 기자들이 소스라치며 새된 비명을 삼켰다.

절규를 지르게 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공포가 아니다.

손발을 푸르르 떨리게 하고 등골을 서늘케 하는 경고였다.

털썩- 와장창-

털퍼덕-

그리고 그 살기 가득한 경고가 전신에 스며든 기자들은 저마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거나 손에 힘이 풀린 나머지 방송용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모이 달라고 쪼는 새끼 조류처럼 조잘대던 기자들이 하나같이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돌풍과도 같은 여파 때문일까, 멀쩡하게 작동하는 카메라가 한 대도 없었다.

그나마 손에서 안 떨어뜨리고 간신히 붙잡았던 것도 렌즈에 픽픽 금이 가고 모니터에 스크래치가 끼고 있던 상태였다.

기자들이 기가 잔뜩 눌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대성이 말했다.

“인터뷰라면 응하겠습니다. 장소가 여기만 아니라면요.”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보통은 보복심으로 내일 ‘그놈 그거 버릇없더라’라는 투의 기사라도 썼겠으나, 지금은 차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제 허락 없이 집 앞까지 찾아오지 마십시오. 그때는 여기서 안 끝날 테니까.”

대성은 분명히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경고를 거스르면서까지 저널리즘 정신 발휘할 만용(蠻勇)을 지닌 이는, 그곳에 없었으니까.

***

안산시에 나타난 2등급 게이트는 ‘통상형’으로 분류됐다.

이레귤러, 혹은 변종(變種)으로 불리는 ‘군단형’이나 ‘생존형’과 달리 이름답게 평범한 게이트.

물론 2등급이니만큼 ‘평범’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겠으나, 어쨌든 부평 쪽의 ‘생존형’ 2등급 게이트보다는 나은 것도 사실이다.

“한대성 씨랑 함께면, 적어도 공략에 실패하지는 않겠군요. 사상자 제로는 무리겠지만…….”

이것이 아직 2등급 게이트 토벌 경험이 다른 빅10에 비교해 적은 <카이트>가 서슴없이 공략에 나선 이유였다.

<홍마>가 사라지고 주춧돌을 잃은 <소울>이 삐걱거리는 지금.

<카이트>는 조금이라도 더 치고 올라설 필요가 있었다.

“…….”

“근데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러세요, 단장님. 어디 속이라도 불편하신 겁니까?”

<카이트>의 부단장 박선일이 단장인 오범석에게 물었다.

클랜의 명성을 널리 알리고 입지를 넓힐 중요한 날.

오범석의 표정엔 불만이 가득했다.

“마음에 안 들어.”

“뭐가요?”

“한대성 말이야.”

“네?”

뜬금없는 소리였다.

딱히 대성이 <카이트>에게 책잡힐 만한 짓은 하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어떻게든 영입하고 싶었던 인재랑 같은 현장을 뛸 기회잖아요. 근데 왜 지금 와서 갑자기…….”

“영입하고 싶었던 인재지. 근데 결국 영입 못 했잖아.”

“그렇긴 하죠?”

“우리 쪽이 고삐를 쥐고 있지도 않은 신인 놈이랑 같이 뛰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배도 좀 아프고.”

“뭐, 선택을 강요할 순 없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한대성 씨, 결국 아무 클랜에도 안 들어갔잖아요? 배 아플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요?”

“아, 건방져서 그렇지.”

입지는 빅10 중 뒤에서 세 번째일지라도, <카이트>는 굉장히 고고하고 자존심이 높기로 유명한 클랜이었다.

그리고 그 평가를 끌어낸 원인 중 9할 이상은 단장인 오범석의 높디높은 프라이드에 비롯된 것이다.

“그때 그 추운 날에 벌벌 떨면서 기다렸는데 결국 씹었더라.”

“흠, 그건 좀 상도가 아니기는 했죠. 인정해요.”

“내세운 계약 조건도 우리가 제일 좋지 않았냐?”

“그렇긴 한데……. 그래서 본론이 뭐예요? 단장님 저희, 이제 1시간 뒤면 사지(死地)로 다이빙해야 하거든요. 마음은 이해하지만 벌써부터 힘 빼지 맙시다.”

3등급도 아니고 2등급 게이트 돌입까지 1시간을 앞둔 상태.

무교라서 망정이지, 어디 종교에 몸담고 있었으면 각자 믿는 신에게 기도라도 올리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마음에 안 드니까 뭐, 들어가서 몰래 팀킬이라도 하자, 이겁니까.”

“아니, 야, 미쳤어? 농담도 진짜. 우리가 <홍마> 같은 놈들이니? 아무리 사람이 밉고 고까워 보여도 그런 짓은 하면 안 되는 거야, 인마.”

“당연히 농담이죠. 너무 과민 반응을 하시네.”

“그 대신.”

위협적이거나 강압적인 수단을 행사할 생각은 없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단단히 알려주자고. 아무리 S급이 혼자 날뛰어봤자, 개인이 집단보다 우월할 수는 없다는 걸. 그리고 후회하게 만드는 거지.”

“그때 스카우트 받았을 때 <카이트>에 들어갈 걸, 뭐 이런 말이 나오게요?”

“그렇지.”

“뭐……. 듣고 보니 저도 오기가 좀 생기네요.”

현재 서동철과 백하린을 제외하면 나머지 S급은 전부 클랜에 소속되지 않은 솔로 사냥꾼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를, 박선일은 내심 탐탁잖게 여기던 참이다.

‘나는 강하니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을 거야’라는 도도한 자존심이 눈꼴이 시렸다.

단원구 고잔동 예술의전당 앞.

그곳엔 다섯 개 방송사에서 파견된 기자들과 30명가량의 <카이트> 인원이 결집해 있었다.

이제 대성만 도착하면 본격적인 돌입 개시인 상황.

카메라들의 포커스가 집중된 가운데, 오범석이 서른에 달하는 멤버의 도열을 향해 몸을 돌린 뒤 외쳤다.

“S급이 대수냐! 우리의 진면목을 보여주자!”

우와아아-!

우레와 같은 패기 넘치는 함성이 이어졌다.

그때.

부우웅-

아우디 한 대가 바리케이드를 넘고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한대성 사냥꾼이다!”

어느 눈치 빠른 기자의 입에서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촤촤촤촤-!

<카이트>를 향하고 있던 십수 대의 카메라 렌즈가 순식간에 이제 차에서 막 내리던 참인 대성을 향해 몰렸다.

그렇게 <카이트>의 주변은 눈 깜짝할 사이에 휑해졌다.

괜한 억하심정이 올라온 오범석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저 건방진 새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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