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60화 (60/180)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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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재를 쏟아내는 불로 뒤덮인 하늘은 솔직히 말해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지상은 그러지 못했다.

처음 대성이 검에서 뿜어낸 화염 방사를 맞고 숯덩이가 되어 널브러진 기거의 유해 사이로 살이 문드러진 인간의 시체가 드문드문 섞여 있었으니까.

미처 죽음의 비를 피하지 못하고 절명한 <카이트> 대원들이었다.

그 참혹한 광경에 착잡함을 넘어 허망하기까지 한 오범석이 어금니를 빠득거렸다.

“……사상자들 아머에서 인식표 챙기고, 치유 담당들은 나머지 부상자들을 치료해주게.”

하지만 그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감성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한 공략대의 대장이자 대형 클랜의 단장인 이상, 지금이라도 차분히 대원을 이끌어야 하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들 긴장을 풀지 말도록.”

아까 하늘로 솟구친 대성에게서 돌아오는 소식이 없었다.

그가 저 높디높은 창공 위로 출격한 뒤에야 죽음의 비가 멈춘 게 결코 우연은 아닐 터.

그런데도 게이트가 폐쇄되지 않는다는 건, 아직 보스 몬스터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단장님 명령 들었지! 일단 부상자부터 빨리 옮기자고!”

오범석의 지시를 거들어주고 대원을 움직인건 박선일이였다.

그가 호령(號令)하자 대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박선일 또한 손이 부족한 상황이니만큼 직접 팔을 걷어붙이며 아직 숨이 붙은 생존자를 찾았다.

그렇게 사방에 즐비한 기거 유해를 조심스레 넘어가며 열심히 눈에 불을 켜던 그때.

꿈틀-

“응?”

문득 어떤 이변을 느낀 박선일의 발걸음이 멈췄다.

분명 불에 타서 하반신이 바스러진 기거의 유해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걸 본 것 같기 때문이다.

“…….”

기분 탓은 아닌 듯했다.

무언가 있었다.

박선일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방금 이변이 발생했던 기거의 유해에 천천히 다가갔다.

그 순간.

팍-

“……?!”

시커먼 녀석의 유해에서 돌연 촉수 다발이 튀어나왔다.

그 어떤 전조도, 예고도 없이, 영화의 컷(Cut)이 바뀌는 것처럼 갑작스레 벌어진 기습.

콰악-

“커, 헉……!”

그 예기치 못한 기습에 배가 꿰뚫린 박선일이 입에서 핏물 한 덩이를 왈칵 쏟아냈다.

박선일의 단말마 같은 비명을 들은 오범석과 <카이트>의 대원들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선일아!”

“부단장님!”

시커먼 촉수 다발에 몸을 관통당한 박선일의 두 팔이 축 늘어졌다.

의식을 잃은 그의 앞에는.

기긱- 기기긱-

쇠를 쇠로 긁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며 숯덩이가 된 몸을 서서히 회복하는 기거가 있었다.

비디오를 거꾸로 재생한 것처럼.

“헉!”

“저, 저게…….”

순식간에 부활한 기거 한 마리를 본 <카이트> 대원들이 소스라쳤다.

푸확-

놈은 등허리에서 뽑아낸 촉수 끝에 꿰인 박선일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기긱, 기기긱-

끼이이…….

좌우 네 개씩, 여덟 갈래로 뻗어 괴상한 울음소리를 흘리는 촉수의 끄트머리는 마치 아귀와 같은 모습이었다.

동그랗게 벌어진 입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저 촉수가 그 어떤 신체 기관이 아니라 다발 하나하나가 ‘생물’임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등급 위험종, 네임드.

기거 왕(Giger king).

바로 보스 몬스터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붙든 오범석이 다급하게 외쳤다.

“교, 교전 준비-”

명령을 받은 대원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던 무기를 꺼내 들고 진영을 구축하던 순간.

기거 왕의 입이 좌우로 쩌억- 벌어지더니,

기긱- 긱-

푸우우-

놈의 입에서 새파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카이트>의 대원들이 있는 곳까지 퍼져갔다.

“우욱……!”

“뭐, 뭐야, 이건 또!”

“다들! 숨을 쉬지 마!”

“연기가 퍼진 영역에서 최대한 벗어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메마른 대기 사이로 빠르게 퍼지는 정체불명의 연기 앞에서, 대원들이 우왕좌왕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연기가 퍼지는 속도를 뛰어넘을 순 없는 노릇.

그렇게 황폐한 중세풍 도시 일대가 삽시간에 짙은 푸른색 연기에 뒤덮였다.

“허, 허억…….”

“섣불리 움직이지 마! 진영이 무너지면 안 돼!”

“침착해! 다들 침착하라고!”

전후좌우에 죄다 시퍼런 안개가 가득 껴서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기이이…….

거기다 귀청을 사포로 긁어내는 듯한 기괴한 울음소리가 대원들의 공포심을 한껏 자극했다.

여기서마저 냉정함을 잃어버리면 정말 끝인 걸 알기에, <카이트> 대원들은 어떻게든 이성을 붙들려고 노력했다.

스윽-

스윽-

“헉!”

그러나 그들은 보았다.

자욱하게 깔린 연기 너머로 하나둘씩 증식(增殖)하는 기거 왕의 검은 실루엣을.

한 마리 상대하기도 벅찬 보스 몬스터가 기하급수적으로 그 개체 수를 늘려가는 모습에 모두가 경악성을 흘렸다.

“으, 으아아-”

결국 그 공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대원 몇몇이 비명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무기는 기거 왕의 허상(虛像)을 가를 뿐이었다.

이성이 무너진 이들이 무의미한 저항을 이어가던 와중.

팍-

어딘가에서 이빨 달린 촉수가 총알처럼 뻗어 나와 대원들을 유린했다.

“끄으으윽……!”

“커헉, 쿠흡-!”

허무하게 뒤를 찔린 이들이 토혈을 쏟으며 즉사했다.

이때, 오범석이 촉수가 짓쳐든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쪽이다! 저쪽에 본체가 있다!”

그 말을 들은 대원, 그중에서도 레인저들이 오범석이 가리킨 기거 왕의 실루엣을 향해 오러의 힘이 실린 기탄(氣彈)을 퍼부었다.

하지만.

파스스-

기탄에 격발당한 실루엣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다 사라질 뿐.

즉, 본체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헛짚었다는 걸 자각한 오범석이 난색을 보이기 무섭게.

팍-

다시 한번 촉수 다발이 들이닥쳐 대원들의 목숨을 앓았다.

대원들은 배와 미간이 꿰뚫린 채 선혈을 쏟아내며 죽어갔다.

그 처절한 광경 앞에,

털썩-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오범석이 주저앉고야 말았다.

끼이이…….

아귀 머리 같은 촉수들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천천히 오범석을 향해 다가왔다.

“아, 아아……!”

찐득하게 체액이 늘어지는 흉악한 송곳니가 코앞까지 닥치자 오범석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촉수 다발이 오범석의 머리에 쑤셔 박히려던 찰나.

촤악-

돌연 허공을 가른 붉은 횡선(橫線)이 촉수 다발을 모조리 베어냈다.

“어, 어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던 오범석이 감았던 눈을 떴다.

저벅-

시야를 가득 메운 커다란 뒷모습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칠흑의 갑옷을 걸치고, 한 손에는 불길에 휩싸인 대검을 든 남자.

대성이었다.

한순간 말문이 막힐 뻔했던 오범석이 겨우 목소리를 뱉었다.

“다, 당신……. 사, 살아 있었-”

“이놈들은 분신이 아니다.”

“예, 예?”

“잔영 하나하나가, 실체(實體)가 있는 것들이지.”

오범석은 별다른 대꾸도, 그런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따지지도 못했다.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지옥도 속에서도 그렇게 냉정할 수가 있는지.

사방에서 피바람이 불고 절규가 휘몰아치는 아비규환 속에서, 대체 어떻게 그토록 차분하게 전황을 살필 수 있는지 말이다.

오범석이 진땀을 흘리며 물었다.

“다, 당신은……. 이런 악몽 같은 광경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악몽이 두려우면 빨리 깨어날 생각부터 해.”

대성이 짤막한 대답을 뱉었다.

이건 꿈일 거라고 도피해봤자 거기엔 지옥밖에 없다는 걸, 80년이란 긴 세월이 입증해주지 않았던가.

저벅-

연기 너머의 실루엣을 향해 대성이 한 발짝 내디뎠다.

와중에도 사방에서 또 다른 촉수 다발들이 연기를 뚫고 몰아쳤으나.

쉬익-

콰직-

대성은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불꽃의 대검을 휘둘러 심드렁하게 촉수를 베어 넘겼다.

‘하나하나 전부가 실체여도, 결국 본체의 명을 따를 뿐.’

지잉-

실루엣들을 주시하는 대성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사주의 눈이 발동되었습니다.]

[반경 1㎞ 내에 시전자에게 적의를 가진 대상을 마킹합니다.]

그리고 보였다.

실체가 있을 뿐 근본은 어디까지나 허상에 가까운 가짜들 틈새에 자리한, 진짜로 ‘적의’를 가진 녀석의 낯짝이 말이다.

목표를 발견한 대성은 업화대검의 화력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린 뒤 녀석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

그 거침없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오범석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내 대성의 뒷모습이 새파란 연기 속에 잠겨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기긱- 긱-

콰직- 콰악-

연기 너머에서 칼이 휘둘러지는 파공성과 기거 왕의 비명이 한데 뒤엉키며 불쾌한 소음을 자아냈다.

초록색 체액이 난잡하게 흩뿌려지고 새빨간 불똥이 튀겼다.

기긱-

기거 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단말마가 짤막하게 울려 퍼지더니, 폭탄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고요한 적막이 싸늘하게 이어졌다.

꿀꺽-

오범석이 말을 잇지 못한 채 살벌한 메아리가 울려 퍼지던 연기 너머를 응시하던 그때.

저벅-

검은 인영(人影)이 또렷이 윤곽을 드러내며 연기를 빠져나왔다.

그것은 기거 왕의 것과는 다른, 명백한 인간의 실루엣이었다.

“세상에…….”

오범석은 감탄을 흘렸다.

연기를 뚫고 나온 실루엣, 대성의 큼지막한 손에는,

기거 왕의 머리통과 그 에테르 코어가 한꺼번에 쥐어져 있었으니까.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보스 몬스터가 토벌된 순간이었다.

“……저런 인간을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니.”

이미 지난 일이긴 하지만, 오범석은 뒤늦게 자신이 주제넘은 제안을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보스 몬스터가 토벌된 순간 게이트의 진폭이 급증한다.

각자의 아머에 부착된 측정기가 그 진폭을 감지하면 게이트의 폐쇄가 진행 중이라 판단.

2시간 안에 들어왔던 입구로 돌아가 다시 현실로 귀환하는 방식이다.

원래 같았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지긋지긋한 시궁창을 벗어났겠지만.

“……절반도 못 살아남았군.”

“제발 누가 꿈이라고 해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오범석을 포함해 <카이트>의 대원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대로 안심하고 현실로 돌아가기엔 죽어간 동료의 수가 너무 많았다.

2등급 게이트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기에 이 무수한 죽음 또한 너무나도 낯설었다.

특히나.

“……박선일 부단장.”

그 누구보다 돈독한 사이였던 전우(戰友), 박선일의 죽음 앞에서 오범석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게이트 돌입 전, 예술의 전당 앞에서 그와 농담을 나눴던 게 불과 1시간 전의 일이었다.

이 모든 게 그저 거짓말 같고 질 나쁜 꿈만 같았다.

<카이트>의 대원들도 부단장의 죽음에 고개를 숙이며 말 없는 애도를 표했다.

“잃어선 안 될 인재를 잃었다.”

오범석이 단지 그렇게만 말하며 박선일의 인식표를 떼려던 순간.

“아직 숨이 붙어 있어.”

대성이 불쑥 말했다.

인식표에 손을 뻗던 참이던 오범석은 물론, 그 말을 귀에 담은 모두의 이목이 대성에게 집중됐다.

너 나 할 것 없이 이해하지 못한 눈치이자 대성이 친절하게 한 번 더 말해줬다.

“살아 있다는 말이다.”

“뭐……!”

오범석이 어깨를 흠칫 떨며 다급히 박선일의 맥을 짚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대성의 말대로 숨이 아직 붙어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오범석이 절박한 어조로 외쳤다.

“치유 담당! 빨리-”

“소용없어.”

“예?”

“치유의 오러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처가 아니야.”

“그, 그럼……. 아,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지 않습니까. 밖으로 데려간 다음에 처치하기에도 늦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오범석이 아연실색하며 박선일을 다시 돌아보았다.

꿰뚫린 배에서 흘러나온 피가 얼마나 방대한지, 바닥에 새빨간 웅덩이가 고일 지경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5분도 안 되어 과다 출혈로 사망할 것이다.

스릉-

“물러서.”

대성이 업화대검을 도로 손에 쥐더니 박선일에게 다가갔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향해 칼을 꺼내 들고 접근하는 모습이 퍽 불길해 보였음에도, 오범석은 일단 순순히 대성의 말대로 뒤로 물러나 주었다.

척-

대성이 검극을 앞으로 뻗어 그 끝을 살며시 박선일의 피투성이 복부에 갖다 댔다.

그 순간.

[‘성화’ 모드의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치유>]

따스한 빛깔의 녹색 불꽃이 은은하게 피어올라 박선일의 배에 조용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망가진 내장이 적나라하게 보이던 복부의 구멍 위로 새로운 살갗이 덧씌워졌다.

“…….”

그 초현실적인 광경과 마주한 오범석과 <카이트>의 대원들은 귀신에라도 홀린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잠시 뒤.

“푸우- 푸우-”

살짝 벌어진 박선일의 입에서, 굳이 맥을 짚지 않아도 또렷하게 귀에 들리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고 고통에 일그러졌던 표정에도 느긋한 안식(安息)이 떠올랐다.

“아……!”

그 평온한 얼굴을 본 그제야, 오범석의 두 눈에서 꿋꿋이, 그리고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던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렸다.

과열된 숨결이 새어 나오고, 푸들푸들 떨리던 다리에서 힘이 완전히 사라졌다.

털썩-

무릎이 땅에 닿은 오범석이 그대로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더니, 처량하게 흐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정말…… 고맙, 습니다…….”

“…….”

“이 은혜는, 오늘, 저희 클랜에 베풀어주신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소리 없이 저물어가는 황폐한 중세 도시 사이로, 오범석의 환희에 찬 오열이 하염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2등급 게이트는 성공적으로 공략되었다.

비극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역대 2등급 게이트 공략 중 최소한의 피해로 토벌에 성공한 사례로 꼽히게 되었다.

그 공(功)은 오롯이 ‘한대성 사냥꾼이 함께해준 덕분’이라며,

<카이트>의 대원과 그들의 단장인 오범석이 입을 모아 증언했다.

그리고 화려한 성적으로 데뷔 무대를 마친 대성에게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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