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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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정원은 사방이 가시덤불 벽으로 가로막힌 미로였다.
망자의 강과 같이 <비행> 같은 편법은 절대 통하지 않고, 정통으로 맞서야만 헤어 나올 수 있는 미로.
이 미로를 벗어나야 귀왕이 주둔하는 고성, ‘미궁나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도 전에 살이 썩지만 않으면 다행이지만.’
대성이 뗏목에서 내려 무덤 정원의 초입에 발을 올린 그 순간이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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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구현 퀘스트-2 (진행 중)
‘134p 귀왕의 영지’
난이도 : 불명
내용 : 무덤 정원의 미로를 벗어나십시오.
제한시간 : 생명력 소진 전까지.
목표 : 미로 탈출
보상1 : 공적 포인트 + 10,000pt
구현화 : 귀왕의 영지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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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정원에 서린 죽음의 기운이 대상의 생명력을 갉아먹습니다.]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기 전에 미궁을 벗어나십시오.]
[미궁의 각 지점에는 ‘메이즈 키퍼(Maze keeper)’가 존재합니다. 메이즈 키퍼를 처치해 아이템을 얻어 생명력을 회복하십시오.]
퀘스트 창을 제외하면 과거에 봤던 것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시에 대성은 몸에서 차츰 기력이 새어 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애당초 산 자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죽은 이들의 땅이, 그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맨 정신, 정상 체력을 가져도 탈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마당에, 목숨이 걸린 시간 제한까지 걸린 셈이었다.
‘일단 움직인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당시의 대성은 생명력이 아슬아슬할 지경까지 떨어지는 걸 수없이 반복했고 피골(皮骨)이 말라붙어 거의 반 사령이 되어서야 겨우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미로를 탈출했다고 해서 출구까지의 경로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발길이 향하는 대로 마구잡이로 걷다 보니 어느덧 출구였었나.’
순전히 운이 좋았던 덕이었다.
대성은 그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은 느낌이 가는 대로 미로를 헤쳐 나갔다.
몇 발짝 옮기기도 전에 벌써부터 몇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이 등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갈림길 중 하나를 택해 좀 정상적인 길인가 하면,
꾸구국-
가시덤불 벽이 짓쳐들어오거나 넝쿨 줄기가 엉키면서 멀쩡히 뚫린 길이 가로막히는 건 다반사였다.
‘상관없다.’
하지만 대성은 허탈함을 느끼지도, 조급함을 가지지도 않았다.
이러는 순간에도 생명력이 갉아먹히는 피부가 점점 부패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우선적인 목표는 미로를 벗어나는 게 아니니까.’
미로를 탈출하기 전, 일차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가로막힌 길과 마주한 대성은 주저 없이 방향을 선회해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커어억-
다음 경로로 나아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해골 병사 한 마리를.
메이즈 키퍼였다.
“그래. 너를 찾고 있었다.”
파지직-!
대성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에 쥔 발라르크의 뇌창이 맹렬한 울음을 터드렸다.
커어억-!
메이즈 키퍼가 쩌렁쩌렁 번개가 휘몰아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떨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해골 병사치고는 몸집도 커다랗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히는 박도(朴刀)도 흉흉한 살기를 내뿜었다.
파지직-!
그러나 움직임은 느리고 박도의 범위는 짧았으며, 무엇보다 이쪽은 충분한 거리를 유지했을 때 압도적인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창을 쥐고 있었다.
벼락을 휘감은 창날이 앞으로 내뻗치며, 이미 한 번 죽은 해골 병사의 심장과도 같은 낙인(烙印)을 단숨에 꿰뚫었다.
생명줄이 절단된 해골 병사가 힘없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어차피 길을 막아서는 짓거리밖에 못 하는 방해꾼에 불과한 놈들. 한 마리, 한 마리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장기간 미로를 헤매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마모된 빈사 상태라면 모를까.
정상적인 컨디션에다가, 방심만 않는다면 오히려 패배하는 게 이상한 약골들이다.
무엇보다.
“어디…….”
방금 시스템 메시지가 통보한 것처럼, 미로를 오래 탐색하려면 오히려 메이즈 키퍼와 맞닥뜨리는 건 반겨야 할 일이었다.
떨그럭-
대성은 바닥에 널브러진 해골 병사의 백골을 더듬거렸다.
놈들의 뼈마디 어딘가에는 생명력을 회복시켜주는 작은 구슬이 저장되어 있었다.
‘항상 나오는 건 아니지만…….’
물론 그것도 복불복이었다.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
운이 좋을 땐 생명력을 회복시켜주는 구슬이 나오기도 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반대로 소진 속도를 급증시키는 함정이 나올 경우도 있다.
구분할 방법이 존재라도 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빨간색이 회복. 자주색이 함정. 그리고 검은색이 즉사였지.’
당시의 대성은 검은색을 발견하기 전에 빨간색의 효능을 발견한 덕에 즉사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검은색을 먼저 발견했더라도, 딱 봐도 불길한 색깔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겠지만.
그때.
떨그럭-
오랫동안 뼈를 뒤적거린 끝에 손에서 구슬의 감촉이 느껴졌다.
대성은 바로 팔을 빼 구슬의 색깔을 확인했다.
“이건…….”
검은색.
즉사의 구슬이었다.
입에 넣고 목구멍 안쪽으로 삼키는 즉시 생명력이 0으로 줄어들고 사령(死靈)으로 전락하는.
조금이라도 오래 버텨 미궁을 탈출해야 하는 필드의 구조에 완벽히 반(反)하는 최악의 아이템이었다.
“처음부터 검은색 구슬이 나오다니.”
대성은 그렇게 혼잣말하며 손에 쥔 검은 구슬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운이 좋군.”
그는 흑색의 기류가 넘실거리는 검은 구슬을 서슴없이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즉효(卽效)가 돌았다.
[검은 구슬이 대상의 생명력을 모조리 집어삼킵니다.]
[생명력이 0이 됩니다.]
[대상이 사망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의 글귀를 채 확인하기도 전에 머리가 핑 돌았다.
그와 동시에 오감(五感)이 사라지며 팔다리를 비롯한 전신이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죽음의 순간.
또렷했던 영혼이 탁한 색깔로 오염되는, 뭐라 차마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거야.’
대성은 분명 망자로 전락하는 순간에도 웃고 있었다.
본래 지옥에서마저 목숨을 잃은 존재는 판데모니움이라는 무(無)의 세계에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지옥의 그 어떤 마수보다 죽음과 가깝고, 가장 능숙하게 생사를 다루는 귀왕의 영지인 이곳 무덤 정원에서는, 죽어도 바로 판데모니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후우-”
생명력이 제로가 된 대성의 입에서 냉기를 머금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현재 그의 모습은 그가 현실에서 영혼수감소를 통해 다루었던 사령 병사와 너무나도 똑 닮아 있었다.
썩은 살갗 위로 먹물을 뒤집어쓴 좀비 같은 모습.
사령화(死靈化)였다.
‘여기서 죽은 모든 영혼은 귀왕의 것이라는 거겠지.’
적어도 이 땅에서 절명한다는 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귀왕의 노예가 된다는 의미였다.
의도적으로 생명력을 0으로 만들어 사령으로 전락하는 건 과거의 대성이었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극단의 방안이었을 터였다.
‘어차피 이번 퀘스트만 완료하면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즉, 귀왕의 영지를 벗어난 이후의 사태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대비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한 번밖에 사용할 기회가 없는 극약 처방.
하지만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반대로 말해 그만큼 효과 또한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저벅-
좀비가 된 그가 진물을 뚝뚝 흘리며 메이즈 키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읊조렸다.
“빙의.”
[대상이 영혼이 남아 있지 않은 껍데기임을 확인.]
[현재 접속 중인 망자에 깃든 영혼을 ‘메이즈 키퍼 32호’로 옮깁니다.]
사실상 껍데기 속에 깃든 사념(死念)이 본체인 망자이기에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메시지가 지나간 뒤 한차례 짧은 어둠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 대성은 자신이 지금 바닥에 널브러져 있음을 자각했다.
해골 병사, 메이즈 키퍼 32호로의 빙의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떨그럭-
대성이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미로를 수호하는 모든 메이즈 키퍼는 다른 키퍼들과 의식과 위치를 공유한다.’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서였다.
대성은 가만히 의식을 집중해 지금 빙의한 32호의 기억 속 어딘가에 저장된 다른 키퍼들의 위치를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59호.’
미로의 탈출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는, 메이즈 키퍼 59호의 위치를.
이제 남은 일은 하나였다.
‘녀석이 있는 곳의 위치를 알았으니, 착실하게 걷는 일만 남았나.’
59호가 있는 지점까지 이어진 화살표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기분이었다.
떨그럭-
대성은 적응하기 어려운 몸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
털썩-!
고맙게도 출구 바로 앞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59호를 쓰러뜨리기 무섭게 시스템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10,000pt의 공적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현재 구현율 : 귀왕의 영지 66%]
하지만 32호의 모습을 한 대성은 시스템 메시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저벅-
미로를 벗어난 그의 앞으로칼바람보다도 싸늘한 죽음의 기운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행동력 하나는 칭찬해줄 만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마중까지 나오고 말이야.”
무덤 정원을 탈출하고 죽음의 땅에 발을 디딘 대성은 보았다.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무수한 사령 병사들이 도열(堵列)한 광경을.
마치 그를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철갑을 걸치고 장병기를 움켜쥔 망자들이 입에서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냉기를 토해냈다.
죽은 자들의 군대.
그리고 그 군대를 이끄는 왕이, 이 수많은 망령의 틈바구니에서도 짙은 살의를 토해내고 있었다.
가시 왕관을 쓴 해골 기사.
죽은 자들의 왕.
지옥의 15주(主).
대성은 그 추악하고도 지고(至高)한 자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말했다.
“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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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구현 퀘스트-3 (진행 중)
‘134p 귀왕의 영지’
난이도 : 불명
내용 : 죽은 자들의 군단과 맞서 귀왕을 쓰러뜨리십시오.
제한시간 : 없음.
목표 : 귀왕 격퇴
보상1 : 공적 포인트 + 30,000pt
구현화 : 귀왕의 영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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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영지 자체가 귀왕의 전신과도 같았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녀석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내가 고문실을 벗어날 때부터 낌새를 알아채고 군대를 일으킬 준비를 했을 거다.’
32호가 사용했던 박도를 쥔 대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아악-!
가아악-!
그러자 고깃덩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사령 병사들이 진물을 뚝뚝 흘리며 포효를 토해냈다.
[네놈은 망령이 아니군.]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
이곳 땅에 짙게 깔린 어둠이 직접 입을 벌리고 말하는 것처럼 웅장한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귀왕이 낸 목소리였다.
‘나 자신이 사령이 되었기에, 귀왕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건가.’
요컨대, 죽은 자의 목소리는 죽은 자밖에 듣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오랜 세월을 검과 검을 나눈 적수였으나 목소리를 듣는 건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 껍데기 속에 깃든 영혼……. 너는 정체가 뭐냐?]
“곧 알게 될 거야.”
[오만한 놈. 내 영지에서 멋대로 망자의 영혼을 거둔 대가는 절대 작지 않을 거다.]
슥-
귀왕의 오른손이 올라간 순간.
가아아아악-!!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던 망자들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대성을 향해 돌진해 왔다.
박도를 움켜쥔 대성의 손에 한층 더 강한 힘이 실렸다.
‘이 몸으로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다.’
현세의 대성은커녕.
이때 당시의 대성과도 비교를 불허하리만치 형편없기 짝이 없는 잡종 마수의 육체.
발라르크의 뇌창도, 그의 갑주도 없이, 날이 다 빠진 박도 하나만을 의지한 채 귀왕의 군단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취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도박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이 오리란 것을 이미 상정했기에 자신을 사령으로 만든다는 선택지를 택했다.
그때처럼 마냥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도 없는 데다가, 단숨에 승부를 봐야 하는 지금.
그는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할지 말지는 나에게 달렸다.’
가아악-!
제일 선두에 섰던 덩치가 32호의 곱절은 커다란 사령 마수가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놈을 비롯해 망자의 병사들이 진격할 때마다 대지가 둥둥 울렸다.
하지만 대성은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가다듬고, 박도를 쥔 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선두에 선 덩치 큰 사령 마수와의 거리를 쟀다.
그리고 지금!
‘빗나가선 안 돼.’
빠르게 허리를 젖히고 오른팔을 휘저은 대성의 손에서, 박도가 떠났다.
투척.
쐐애액-!
그의 손에서 떠난 박도가 파공성을 자아내며 대기를 갈라냈다.
이윽고.
팍-!
가, 아악……?!
총알처럼 빠른 속도, 정확한 일직선 궤도를 유지하며 날아갔던 박도의 검날이 덩치 큰 사령 마수의 급소 한가운데에 박혔다.
사실상 죽은 자의 진짜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낙인’이 찍힌 부위였다.
쿵-!
덩치 큰 사령 마수가 줄 끊어진 인형처럼 허망하게 쓰러짐과 동시에.
“빙의.”
[현재 접속 중인 망자에 깃든 영혼을 ‘게드락의 사령’으로 옮깁니다.]
딩-!
한 육신에서 영혼이 사라지고 새로운 껍데기에 새로운 영혼이 스며드는 종음이 울려 퍼졌다.
느닷없이 32호가 쓰러지는 걸 본 사령 병사들이 멈칫하는 순간.
[빙의다! 놈은 지금 빙의를……!]
귀왕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지금 군주가 한 말의 의미를 망자들이 이해하기도 채 전.
콰악-!
거대한 철퇴가 사선으로 휘둘러져 망자들을 휩쓸었다.
지척에서 갑작스레 작렬한 기습.
“저 몸보다는 낫군.”
바로 선두에 섰던 덩치 큰 사령 병사, 게드락의 빙의에 성공한 대성이 휘두른 일격이었다.
선두에 강한 병사를 내세우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그리고 대성은 그런 녀석의 육신을 지배했다.
불리했던 전황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순간이었다.
[게드락이다! 놈은 지금 게드락에 빙의했다!]
난처함이 가득 묻어나는 귀왕의 고함이 이어졌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마친 사령 병사가 게드락, 아니, 대성에게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후웅-!
무차별하게 휘둘러지는 철퇴의 세례 앞에, 놈들은 바람에 쓸리는 낙엽처럼 쓸려나갈 뿐.
두꺼운 다리에서 폭발하는 압도적인 기동성과 종잇장처럼 가볍지만 한번 휘두를 때마다 땅거죽이 퍽퍽 뒤집히는 파괴력을 지닌 철퇴.
“나쁘지 않은 몸이야.”
폭주 전차처럼 날뛰며 적들을 일망타진하던 대성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파상공세로 앞으로 나아가며 난장을 일으킬 때마다 전열이 무너지고 망자들이 찌꺼기처럼 으깨져 하늘을 날았다.
순식간이었다.
‘이 정도면…….’
귀왕과 충분히 거리를 좁히는 건.
살이 썩어 문드러진 흑마(黑馬) 위에 앉은 귀왕의 자줏빛 안광이 매섭게 번들거렸다.
[이놈……!]
“거의 다 갔다. 조금만 기다려라.”
군대를 짓밟으며 귀왕의 지척까지 거의 근접한 대성의 몸은 검상(劍傷)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지금 점(占)한 육체가 강인하다 해도, 이런 대군의 격류를 뚫으면서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아니, 오히려 한계라고 해도 좋으리라.
창칼에 찔리고 베인 게드락의 거죽은 너덜너덜하기 그지없었다.
[목을 쳐낸 뒤 그 속에 든 영혼을 꺼내 모조리 찢어발겨주마!]
흑마가 기괴한 울음을 터뜨리고 귀왕이 마침내 자신의 무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군주의 분노에 영지 전역의 지축이 뒤흔들리고,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선 검은 번개가 우렁차게 벽력을 터뜨렸다.
그리고 대성의 귀에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승리를 예고하는 팡파르처럼 들렸다.
‘녀석의 무기.’
그것은 얼핏 보기엔 손잡이가 있고 날이 있는 평범한 대검의 형체를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덩어리’에 가까웠다.
진물이 뚝뚝 덜어지는 망자의 얼굴 껍데기를 마치 진흙처럼 한데 뭉치고 섞은 형태.
5만 망령의 영혼을 갈아 넣어 탄생시킨, 귀왕의 역작.
죄악검(罪惡劍).
‘저 검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생물이었다.’
그러나 온전한 형태의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어중간한 틈새에 끼인 흉물.
대성이 귀왕과 거리를 좁히려 한 건 귀왕 본인이 목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저 검.
‘저것에 빙의한다.’
그리고 대상과의 빙의에 필요한 만큼거리가 좁혀진 지금.
될까 말까 따위의 고민을 할 시간은 없었다.
“빙의.”
대성의 눈이 먹잇감을 발견한 매처럼 집요하고도 정확하게 죄악검에 고정된 순간.
[빙의를 시도하는 대상의 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대상이 아직 영혼의 잔여물이 남았음을 확인.]
[영혼의 잔여물이 남은 사령에게 빙의할 시, 실패할 경우 영혼 그 자체가 소멸합니다!]
[빙의를 시도하시겠습니까?]
잘못했다간 바로 판데모니움으로 떨어질 수 있는 최악의 한 수.
스스로 생명력을 0으로 만들어 사령화를 시도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이 모험에 실패하면, 그때는 진짜로 ‘다음’이 없으니까.
“그래.”
그러나 대성은 망설이는 기색 하나 없이 빙의를 시도했다.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팟-!
게드락에 스몄던 그의 혼백이, 귀왕의 손에 있는 죄악검에 깃들었다.
그 순간.
키이이익-!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죄악검의 탄생을 위해 제물로 바쳐진, 수십, 수백만 망자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혼백 상태의 그는 보았다.
피처럼 새빨간 사령의 의식 세계 사이로 저마다 어수선하게 섞여 비명을 지르는 망자들의 모습을.
‘영혼의 잔여물이란 게 저렇게 생긴 거였나.’
불쾌감을 자극하는 광경이었다.
자칫했다간 대성도 저 굴에 섞여 저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터.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다.’
하나밖에 없는 방법에 몸을 던진 이상 망설이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결심을 굳힌 대성이 혼백을 이끌고 망자들의 격류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절대자의 혼백이 영혼의 잔여물을 모조리 걷어냅니다!]
시스템이 그런 글귀를 내보내기 무섭게 사방을 수놓았던 망자들이 단숨에 재로 변해 바스러졌다.
1초도 안 되는 사이 깔끔해진 죄악검의 의식 세계를 바라보며,
대성은 흡족하게 웃었다.
‘확신이 들어맞았군.’
[현재 접속 중인 망자에 깃든 영혼을 ‘귀왕의 죄악검’으로 옮깁니다.]
꽈드득-!
그 순간.
[뭐……!]
귀왕은 자신의 오른손이 움켜쥔 죄악검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현상은 그의 자의(自意)가 아니었다.
[이, 이놈. 설마!]
꽈드득-
오른손이 움켜쥔 죄악검이 서서히 귀왕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검에 빙의를……!]
귀왕은 똑똑히 느꼈다.
검에 깃든 영혼의 흐름이 급변하고, 그 공백 사이로 커다란 무언가가 들어차고 있는 걸.
그리고 죄악검을 점하고 있는 녀석의 혼백은, 너무나도,
[이놈, 이놈은 대체……!]
커다랬다.
15주…… 아니, 어쩌면.
이곳 차원의 절대적 존재, 마신의 아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이놈, 이놈……!]
절대자의 혼백이 서린 죄악검이 자력에 이끌리는 자석처럼 귀왕의 얼굴을 향해 움직였다.
귀왕은 죄악검의 손잡이를 움켜쥔 오른손도 모자라, 왼손까지 동원해가며 있는 힘껏 그 힘에 저항하고 또 저항했다.
꽈드득-
[이, 이럴, 이럴 수는-]
그러나 이미 귀왕의 지배를 벗어난 죽음의 검은, 그 끝을 꼿꼿이 세워 녀석의 목숨을 앗아 가려 했다.
귀왕이 죄악검을 쥐고 있는 지금.
녀석은 검에 깃든 대성의 짤막한 한마디를 똑똑히 그 귀로 들을 수 있었다.
“이럴 수도 있지.”
죽음을 지배하는 군주조차도 일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콰아악-!
죄악검이 귀왕의 목을 꿰뚫었다.
[퀘스트가 완료되어 구현화 작업이 진척을 보입니다!]
[30,000pt의 공적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현재 구현율 : 귀왕의 영지 100%]
[구현화 작업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