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67화 (67/180)

# 67

067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가 쳐진 성남시 어느 주유소.

“하~ 암. 으…….”

군인 한 명이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무료한 하품을 뱉었다.

그의 뒤에서는 3등급짜리 통상형 게이트 하나가 힘차게 공진하고 있었다.

그는 상부로부터 해당 구역에 발생한 게이트를 지키고 공략대를 자처하고 온 사냥꾼을 안내하라는 명령을 받은 몸.

직접 게이트로 들어가서 몬스터랑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근무만 서는 게 끝이니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임무였다.

하지만 어려울 것이 없다는 건 달리 말해 미친 듯이 지루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술 마시고 싶다…….”

사회의 공기를 맡으니 온갖 잡념이 휘몰아쳤다.

그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때.

“응?”

무심하게 뜬 군인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분명 구름이 없었던 쾌청한 하늘 사이로 웬 시커먼 연기가 날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저, 저게 뭐야?”

그는 헛것인가 싶어서 눈가를 슥슥 비비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이쪽에서 봐도 확연히 눈에 들어올 만큼 커다란 검은 연기는 절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아니.

사아악-!

오히려 이쪽을 향해 내려오는……?

“으, 으아악-!”

군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훙-

지면에 당도한 검은 안개가 수증기처럼 스산하게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평범한 주유소 내부가 마치 커다란 장막을 뒤집어쓴 것처럼 암흑에 뒤덮이고야 말았다.

“어, 어어…….”

이런 기현상이 오늘날에 벌어졌다면, 원인은 뻔했다.

몬스터가 틀림없으리라.

철컥-!

다급히 소총의 장전을 마친 군인이 총구 끝을 연기가 있는 방향으로 겨눴다.

마치 드라이아이스의 그것처럼 격렬하게 퍼져나가는 검은 연기를 노려보며 군인이 메마른 침을 삼켰다.

그때.

사아악-!

팟-!

스산하게 흐르던 검은 연기가 짧은 찰나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곳에.

쿵-

가시왕관을 쓴 해골 기사가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헉…….”

군인은 순간 심장이 덜컥 정지하는 것만 같았다.

해골 기사뿐이랴.

주유구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거구 뒤로 먹물을 흠뻑 뒤집어쓴 듯한 좀비들이 떼를 지어 몰려 있는 게 아닌가.

“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군인이 두 다리를 사시나무처럼 파들파들 떨기 시작했다.

거구의 해골 기사가 자아내는 박력과 살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군인이 너무 공포에 질린 나머지 소총의 방아쇠도 차마 당기지 못하던 그때.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비켜라.”

해골 기사가 입을 열었다.

온몸의 털이란 털은 송두리째 뽑혀나갈 것 같은 중후한 음성이었다.

군인이 급기야 눈물까지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

“예, 예……?”

“나는 네놈 뒤에 있는 저 공 같은 것에 들어가라는 주군의 명을 받고 왔다.”

슥-

해골 기사가 손가락을 들어 군인의 어깨 너머에 있는 게이트를 가리켰다.

“한시가 급하다는 명이다. 빨리 비켜.”

“그, 그, 며, 명령을 누가 내렸는데요……?”

실낱같이 희미하게 남아 있던 이성 덕분에 군인은 용기를 내어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도 국방부에 소속되어 사명을 짊어진 자.

정체도 모르는 몬스터들을 함부로 게이트에 들여보낼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해골 기사가 자줏빛 안광을 형형하게 빗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명령을 내렸냐고?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당연히 나의 주군이지.”

“그, 그러니까 그 주군이 누, 누구냐고요!”

“함부로 그 존함을 입에 담아선 안 될 분이시다.”

“그, 그게 무슨-”

군인이 말을 마치기 전.

치직-

그의 허리춤에 꽂힌 무전기에서 통신음이 울려 퍼졌다.

<치직- 현재 성남시 전역에 검은 연기 같은 게 게이트 출몰 지역에 날아오는 중.>

“…….”

<전부 대표자 한대성 사냥꾼의 소환수다. 검은 연기에서 뭔가 튀어나와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그대로 게이트 안에 통과시키도록.>

무전음을 들은 군인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최근 사냥꾼을 보유한 세계 각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법령이 협회에 등록되었다고.

바로.

한대성 사냥꾼의 소환수도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게 공략 권한을 인정한다는 법률이었다.

‘그럼 설마?’

거기까지 사고가 도달한 순간.

그제야 해골 기사를 조준하고 있던 총구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그, 그쪽 분들은 그럼, 한대성 사냥꾼님의 소환수 되시는……?”

“우리는 소환수가 아니라 그분의 충복(忠僕)이다. 그리고 주군의 존함을 함부로 그 입에 담지 마라.”

“어…… 네, 네…….”

군인이 멋쩍게 반응하며 슬며시 옆으로 비켜섰다.

척, 척-!

그러자 해골 기사와 그의 좀비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게이트로 접근했다.

“저, 저기 근데 여기에 사인을 해주셔야……!”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군인이 서류를 들이밀었으나.

웅-

이미 그들은 게이트 입장을 마치고 자취를 감춘 뒤였다.

털썩!

“으, 으아…….”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긴장과 함께 다리에 완전히 힘이 풀린 군인이 땀범벅이 된 모습으로 주저앉았다.

***

대성이 입장한 게이트는 월광(月光)만이 희미하게 땅을 비추는 어둠의 정글이었다.

손전등이라도 없으면 자기 발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데다, 필드의 사방엔 거목들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어서 길도 험했다.

나비 소녀가 안절부절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으…… 아무것도 안 보이옵니다. 상점에 ‘앙겔로의 램프’라는 아이템이 있사옵니다. 그걸로 조금이나마 길을 밝히시는 것이 어떠시나이까?]

“이 정도 어두운 건 어두운 것도 아니지. 아깝게 공적 포인트만 허비하는 거다, 그건.”

[아! 과연…….]

지옥에 있을 때, 그는 눈을 멀게 하는 식물을 잘못 먹어서 일주일 내내 맹인으로 지내며 마수와 싸웠던 적도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 어둠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감히 주군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하고 실언을 했사옵니다.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됐어.”

그보다 정신 사나우니까 옆에서 그만 좀 조잘댔으면 좋겠다고 대성은 생각했다.

어제, 나비 소녀의 쓸모를 파악한 대성은 이제 됐다며 그녀를 아공간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물건이나 사물이 아닌 나비 소녀는 아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덕분에 옆에 귀찮은 것이 달라붙게 되었다.

대성이 나비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 좀 다물라고 명령하려던 순간.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너…….”

[왜 그러시옵니까?]

“앞으로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되지?”

[아! 제 이름 말이옵니까? 저는 주군의 은총을 받고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존재. 부디 주군이 좋으실 대로 명명해주시옵소서!]

“그럼 날파리 정도가 좋겠군.”

[날파……!]

환하게 웃음 짓던 나비 소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내 나비 소녀는 애써 입가를 끌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날파리……. 날파리 아주 좋은 이름인 것 같사옵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표정은 안 그래 보이는데.”

사박-

흙바닥 밟는 소리만 은은히 퍼지는 정적 속.

대성은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 각 구역에 퍼뜨렸던 죽음의 군단을 떠올렸다.

‘잘 하고 있겠지?’

귀왕…… 아니, 이제 그는 대성에게 복속(服屬)되어 ‘왕’이라는 칭호를 박탈당했다.

사령단장(死靈團長) 돌프.

지금은 그런 이름이 된 돌프가 대성의 하명에 따라 사령 병사를 이끌고 성남시 전역에 있는 게이트를 토벌하고 있을 터였다.

‘가장 어려운 3등급 생존형은 돌프면 충분할 거고……. 그다음으로 까다로운 3등급 군단형은 게드락을 필두로 세운 병사들이라면 닫을 수 있겠지.’

모든 게이트에는 입장할 수 있는 공략대 인원에 제한이 있었다.

행정상의 문제를 떠나 게이트가 받아들일 수 있는 외부 존재의 진입에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열여섯 게이트의 제한 인원에 맞추려면 수천에 달하는 사령 군단 중에서도 게이트를 확실하게 공략할 수 있는 강한 병력을 선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라면 분명 주군의 명을 능히 수행해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 그럴 거다.”

싸워봤기에 안다.

돌프가 이끄는 사령 군단은 패배를 넘어, 아예 죽음 그 자체를 모르는 불사의 병사들.

충분히 안심하고 뒤를 맡길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놈들은 그놈들이고. 나는 내 할 일에 집중해야겠지.”

1시간이라는 타임 리미트가 걸려 있는 지금.

미적거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통상형이니 분명 어딘가에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할 터.

‘잡병들한테 시간 뺏기지 말고 한 번에 보스부터 잡아야겠어.’

그리 판단한 대성이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그때.

휙-!

어디선가 날카롭게 각이 다듬어진 돌멩이가 짙은 칠흑을 갈라내며 날아왔다.

팍-!

대성은 기습이 날아온 방향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심드렁하게 오른손을 들어 돌멩이를 잡아냈다.

그와 동시에.

칙-

돌멩이를 쥔 손바닥의 살갗에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독을 발랐나.”

[주, 주군!]

“호들갑은.”

대성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며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기습을 가한 녀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는지 시선이 향한 곳엔 빛 한 점 없는 칠흑과 거목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우, 우선은 치료부터 하셔야…… 어?]

상점창을 열어 회복 아이템을 뒤지려던 나비 소녀가 깜짝 놀랐다.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살갗이 녹아내렸던 대성의 손바닥이 상당한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

나비 소녀가 그 경이로운 광경에 넋을 잃으며 감탄하는 사이.

지잉-

대성의 눈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사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그 어떤 어둠 속에서도 집요하게 적들의 낯짝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이 개안(開眼)하는 순간이었다.

‘적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대성은 표면에 독이 잔뜩 발라진 돌멩이를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똑똑히 보였다.

사사삭-!

우뚝 솟은 거목과 거목 사이로 거미 문양의 낙인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유인원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3등급 이족 보행 몬스터 키드(Kid).

전면전에 잘 나서지 않고 지형지물을 오가며 기습을 가한다는 점에서 늪지대 오크와 엇비슷했다.

한 가지 오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악하군.’

오크보다는 똑똑하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놈들은 오크처럼 미련하게 기습을 행한 지점에 멀뚱멀뚱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심지어 기민한 움직임으로 옅은 기척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숨겼다.

‘사주의 눈도 잘 잡아내지 못하는군.’

공교롭게도 사주의 눈에 투시(透視) 기능까지는 없었다.

저렇게 놈이 거목 뒤로 몸을 숨기면 자연스레 거미 문양도 거목에 가려질 수밖에.

[기습을 하려면 상대는 필연적으로 거목 밖으로 고개를 뺄 수밖에 없사옵니다!]

어째 대성 본인보다 더 긴장한 기색인 나비 소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상대가 고개를 빼는 틈을 타 반격을-]

하지만 나름 머리를 굴려서 뱉어본 나비 소녀의 말은 방점을 찍지 못했다.

휙-!

대성의 손에서 투척된 돌멩이가 나비 소녀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저편의 어둠을 꿰뚫었다.

퍽-!

끼에에엑-!!

그리고 돼지 멱 따이는 것 같은 비명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머리통이 깨진 키드 한 마리가 거목 꼭대기에서 추락했다.

[…….]

돌멩이가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이 귓전에서 메아리처럼 맴돈 나머지, 나비 소녀가 안색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경악스러웠던 건 대성의 반사 신경이었다.

그는 시야 바깥에 있었던 키드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허리를 비틀어 돌멩이를 던진 것이었으니까.

정확히 머리 쪽에.

그것도 이 어둠 속에서.

[부, 분명 적은 주군의 사각에 있었을 텐데……?]

“내가 그깟 원숭이 한 마리 날뛰는 것도 못 잡아낼 줄 알았나 보지?”

피식.

실소한대성이 마저 가던 길을 걸으며 말했다.

“스킬은 어디까지나 거들 뿐이야.”

***

한편.

눈발이 휘몰아치는 혹한 지대 위로 날카로운 고드름이 바늘처럼 박힌 이족 보행 몬스터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2등급 생존형 게이트 내부.

허어-

허어-

몬스터, 콜드맨(Cold man).

그들은 입에서 엷은 냉기를 토해내며 얼른 사냥감이 게이트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꿀꺽!

몇몇 녀석은 식욕이 차올라 침 삼키는 소리를 노골적으로 흘리기도 했다.

얼른 사냥감을 죽이고 살을 발라낸 뒤 그 피로 목을 축이고 싶었다.

추운 곳에 살며 얼어붙은 고기만 주식으로 삼는 그들에게 따스한 피는 별미로 다가왔으니까.

그렇게 이 일대를 지배한 콜드맨들이 게이트 입구만 뚫어지게 응시하던 그때.

우웅-

허어-!

마침내 게이트의 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사냥감의 등장!

안달이 난 콜드맨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 준비를 마쳤으나…….

저벅-

게이트를 넘어서고 필드로 들어온 사냥감의 모습을 확인하자 사나웠던 기세가 단숨에 사그라졌다.

그럴 만도 했다.

허어-?

게이트로 들어온 건, 그들이 알고 있던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떨그럭, 떨그럭-

그것은 갑주와 칼을 걸친 한 마리의 커다란 해골과 살이 썩어문드러진 좀비의 행렬이었다.

허어-

허어……?

예상치 못한 존재의 등장에 몇몇 콜드맨은 의문을 표했고, 개중엔 실망감을 드러내는 녀석도 섞여 있었다.

저래서야 먹어치울 살과 시원하게 들이켤 따스한 피도 없지 않은가.

허어…….

일단 다짜고짜 공격을 가할 대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저들은 분명 자신들과 같은 ‘세계’에 거주하는 전사들일 터.

어떻게 이곳 게이트로 넘어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건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다.

저벅-

군단장쯤으로 군림하고 있던 콜드맨 한 마리가 해골 기사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콜드맨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흑마를 타고 있는 해골 기사를 올려다보며 같은 세계의 주민끼리 통하는 언어로 물었다.

‘여기엔 무슨 볼일-’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푸우욱-!

허억-?!

괴기하게 생긴 해골 기사의 검이 문답무용으로 콜드맨의 흉부를 꿰뚫었다.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콜드맨들은 그만 굳어버리고야 말았다.

털썩!

푸른색 선혈을 흘리며 맥없이 허물어진 콜드맨을 내려다보며 해골 기사…… 아니, 사령단장 돌프가 서릿발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섬멸하라.”

군단장의 사인이 떨어진 순간.

돌프의 뒤에 도열한 십수 마리의 사령 병사가 창칼을 치켜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어어어억-!!

화르륵-!!

우렁차게 포효하며 진군을 개시하는 사령 병사들의 신형이 마치 기름에 횃불에 던진 것처럼 맹렬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광화(狂化).

죽음의 군단장이 자신의 망자를 사나운 사냥개로 만들어주는 고유 권능이었다.

두두두두-!!

화염에 불타오르는 사령 병사가 쇄도할 때마다 땅이 뒤흔들리며 눈발이 녹아내렸다.

허어-

허어……!

그 압도적인 맹위 앞에서 콜드맨들이 자신감을 잃고 슬금슬금 물러나려 했으나.

콰직-!

콱-!

칼바람을 뚫고 튀어나온 창칼이 녀석들의 심장과 머리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그렇게 온통 새하얀 색밖에 없는 얼어붙은 땅 위로.

너무나도 새빨간 진홍의 불길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

KHA 본사 회장실.

박정호 협회장은 아침 댓바람부터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옆에 선 이하원 비서실장이 블랙커피 한 잔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무엇이 그리 불안하신지요.”

“불안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지금 난 머리가 터질 것 같네.”

“업무 때문입니까? 이 정도 공문이면 평소에 비해 적은 축에 속하는 듯합니다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닐세.”

방금 그는 출근길 도중 직원으로부터 미리 보고를 받았었다.

어젯밤, 대성이 성남시에 있는 열여섯 개의 게이트를 모조리 예약했다는 소식을.

“이보게, 이 실장. 나는 그, 도무지…… 이분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계신지 알 수가 없네.”

“요 근래 일 중 가장 파격적인 행보이긴 하죠.”

“자네 생각엔 이게 뭘 뜻하는 것 같나?”

“글쎄요, 아마…….”

이하원이 비스듬하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자신이 추정한 내용을 전했다.

“어떤 본보기가 아닐까요?”

“본보기?”

“최근에 한대성 사냥꾼님의 소환수에게 공략권을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됐잖습니까?”

“그렇지.”

“이사진 회의에선 무사히 의결이 났지만, 분명 클랜들 사이에선 반발이 나올 겁니다. 특히 이번 경우엔 <황천> 클랜 쪽에서 말이죠.”

“……그것도 그렇지.”

인간이 아닌 소환수 같은 존재들이 게이트의 공략권을 가진다.

그건 달리 말해, 하나의 사냥꾼이 복수의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졌다는 뜻.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냥꾼들은 일터가 사라지는 느낌일 것이고, 대규모 클랜은 텃밭이 줄어드는 위협을 느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대성 사냥꾼님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똑똑히 보여드리고 싶은 거죠.”

“‘내 행보에 멋대로 토를 달지 마라’…… 뭐 이런?”

“후후, 네.”

이하원 비서실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엷게 웃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박정호의 이상한 성대모사가 웃겼던 모양이다.

괜히 민망해진 박정호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똑바로 전해지려면, 그만큼 소환수들이 완벽하게 게이트 공략에 성공해야 할 텐데…….”

대성 쪽은 걱정할 필요 없었다.

2등급 게이트 프렉쳐도 하룻밤 사이에 소강시킨 그이니, 성남시의 3등급 게이트 따위야 당연하다는 듯이 토벌할 거니까.

하지만 대성이 강하다고 해서, 그가 부리는 소환수까지 강하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만약, 소환수들이 게이트 공략에 실패한다면……?

“안 그래도 요번 도곡동 사태 때문에 시끄러운데, 또 프렉쳐가 터지면 안 된단 말일세.”

“너무 초조해하시지 마시고, 한대성 사냥꾼님의 판단을 믿어보죠.”

“부디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네만…….”

나직하게 한숨을 쉰 박정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바로 그때.

띠링-!

띠링-!

갑자기 회장석에 놓인 컴퓨터에서 미친 듯이 메신저 알림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건 아래 직원의 보고를 받는 용도로만 쓰이는 메신저였다.

성남시 게이트의 토벌 정황이 신경 쓰였던 그는 오늘 아침 직원들에 명령을 하나 전달했었다.

성남시의 16개 게이트가 하나씩 닫힐 때마다 곧바로 보고를 올리라고.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메신저 알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는 건.

‘설마……?’

박정호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메신저를 클릭했다.

역시나 메신저에는 직원들이 올린 보고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보고의 내용은.

<중원구 초등학교 쪽 4등급 통상형 게이트 폐쇄됐습니다.>

<중원구 대형 백화점 쪽 4등급 통상형 게이트 폐쇄됐습니다.>

<분당 쪽 3등급 군단형 게이트 하나 폐쇄됐습니다.>

<수성구 쪽…….>

<…….>

박정호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토벌 완료를 알리는 메신저 숫자는 총 9개였다.

열여섯 개의 게이트 중 절반이 넘는 숫자.

“…….”

협회장 노릇 10년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게이트 토벌 보고를 받았던 적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메신저를 확인한 이하원도 적잖이 놀란 눈치로 말을 잇지 못했다.

꿀꺽.

박정호가 목젖을 울리며 이하원에게 물었다.

“하, 한대성 사냥꾼님이 소환수를 배치한 뒤로 몇 분이 지났지?”

“그게…….”

회장실의 벽시계를 흘끔 쳐다본 이하원이 식은땀 한 방울을 조용히 흘리며 대답했다.

“15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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