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068
박정호 협회장이 쏟아지는 게이트 폐쇄 보고를 받고 입을 다물지 못하기 한참 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
적잖이 긴장한 기색을 유지하던 군인 한 명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치직- 다시 한번 전달한다. 현재 성남시 전역에 퍼지는 중인 검은 연기는 한대성 사냥꾼의 소환수다. 각 위치에서 대기 중인 담당관은 당황하지 말고 그냥 통과시키도록.>
군인은 여전히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전에다 입을 대며 알겠다고 응답했다.
지금 교신이, 그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은 연기.
그리고 그 연기를 뚫고 튀어나올, 교신에 의하면 몬스터와 대단히 흡사하게 생긴 소환수 팀.
곧 있으면 다른 구역과 마찬가지로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이쪽에 도착할 터이다.
“아, 썩을……. 나 진짜 그런 것들 극혐하는데…….”
군인은 소위 말하는 ‘몬스터 포비아’였다.
흉물스럽게 생긴 괴물을 보면 몸에 막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진저리를 치는 그에게, 몬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소환수를 게이트로 안내해야 한다는 임무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차라리 이쪽엔 오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그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부웅-
“응?”
대형 픽업트럭 다섯 대가 바리케이드를 지나고 공원 안으로 진입했다.
무슨 일인가하고 픽업트럭을 바라보던 그의 의문은 차체에 새겨진 로고를 보자마자 사라졌다.
Yellow Sky.
다름 아닌 이곳 성남시를 주름잡는 빅10 클랜, <황천>이었다.
‘<황천>이 여길 왜?’
혹시 착오가 있나 싶어서 군인은 손에 든 카탈로그를 확인했다.
하지만 서류상엔 분명 게이트를 예약한 대표자 성명이 ‘한대성’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덜컹! 덜컹!
번잡하게 아무렇게나 주차를 끝낸 픽업트럭의 차 문이 호쾌하게 열리고, 오러 아머를 걸친 <황천>의 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개중엔 군인의 눈에도 꽤 낯이 익은 남자가 섞여 있었다.
‘강기범?’
강기범.
세간에선 ‘호랑이’라 불리며 혹독하게 신입 대원들을 훈련시키기로 유명한, <황천>에서도 손에 꼽는 실력자인 A급 사냥꾼이었다.
‘그럼 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신입 대원인가? 아니, 그보다 강기범이 왜 여기에…….’
군인이 얼을 타는 사이.
저벅-
대원들을 데리고 앞장선 강기범이 천천히 군인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황천> 길드 제2 관리과 팀장인 강기범이라고 합니다.”
“아, 네, 네! 충성!”
군인은 서둘러 상념에서 벗어나 강기범에게 예우를 갖췄다.
강기범이 하하 웃으며 똑같이 경례 사인을 보낸 뒤, 뒤에서 대열을 유지한 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최근에 저희 팀에 막 들어온 신입 대원들입니다. 오늘이 합동훈련 날이라서요.”
“예.”
“그래서 말인데, 지금 그쪽에 있는 게이트를 우리 대원들 훈련장으로 삼을까 하거든요. 그러니 들여보내주시죠.”
“예?”
잠시 군인이 이해하지 못한 눈치로 강기범을 바라보았다.
뭘 잘못 들은 걸까?
아니, 그럴 리가.
군인은 재차 묻기 전에, 한 번 더 카탈로그에 기재된 대표자 성명을 확인했다.
착오 같은 건 없었다.
군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하지만 여기 게이트는 이미 예약하신 분이 계셔서-”
“압니다.”
“…….”
“알고 온 겁니다. 설마 제가 모르고 왔겠습니까? 들여보내주시죠.”
웃는 얼굴로 억지를 부리는 강기범을 마주 보고서, 군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머지, 급기야 군인은 서류에 적힌 대표자 성명을 직접 강기범에게 보여주었다.
“저, 여길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공략권을 낙찰받은 대표자가 따로 있습니다. 공략권이 없으신 분을 들여보내면 이게, 규정 위반이라-”
“지금 규정을 누가 위반하고 있는지.”
그 순간.
군인은 느꼈다.
사아악-
어떤 거대한 손 같은 것이, 자신의 오감을 억누르는 듯한 감각을.
온몸의 털이란 털이 쭈뼛쭈뼛 세워지고 서늘한 예기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상황 판단이 잘 안 됩니까?”
“어, 어어…….”
“그쪽 상급자가 누구든 간에, 이런 얘기가 흘러들어 가면 많이 곤란해지실 겁니다. ‘일개 게이트 담당관 하나가 <황천> 클랜의 관리과 팀장에게 빠꾸를 먹였다’고 말이죠.”
“그, 그게…….”
“까짓것 규정 위반 한 번 하고 조용히 눈감고 넘어갈지, 아니면 창창하게 남은 앞길 개같이 꼬아버릴지, 선택하세요.”
작고 날카로운 수백 개의 바늘을 꼿꼿이 세워 겨눈 듯한, A급 사냥꾼의 오러.
각성도 못 한 일반인이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입장하셔도 됩니다.”
군인은 결국 입술을 파들파들 떨며 옆으로 한 발짝 비켜섰다.
강기범은 씩 웃으며 군인의 어깨를 두드린 뒤 게이트로 다가갔다.
나머지 대원들도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얼어붙은 군인을 지나치며 강기범을 따랐다.
그렇게 <황천>의 인간들이 게이트 너머로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화아악-
때마침 저 멀리서 검은 연기가 몰려왔다.
***
사방이 어둠에 잠긴 숲길을 걸어가며 대성은 생각했다.
참 짜증 난다고.
“필드고, 몬스터고…….”
쉭-!
철퍽-!
극독이 발라진 경단이 시야의 사각에서 날아왔으나 대성은 업화대검의 검날을 벽처럼 비스듬히 세워서 여유롭게 막아냈다.
키이익……!
기습에 실패한 키드가 무심코 노성을 흘리다가 황급히 기척을 죽이며 장소를 옮기려 했다.
휙-!
그러나 놈의 위치를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던 대성이 미리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심판의 단검을 놈의 미간에 던졌다.
끼에……!
비명을 지르다 말고 숨이 다한 키드가 허공에서 고꾸라지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수거.”
휙-!
키드의 미간에 박힌 심판의 단검이 부메랑처럼 그의 손에 되돌아왔다.
기습을 막아내고, 그로 인해 적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죽인다.
단순 작업의 단순 반복이었다.
“이런 속도로 어느 세월에 보스 잡고 게이트를 닫지?”
[주군께서 게이트에 입장하신 지 정확히 16분 32초 지났나이다.]
“그걸 또 세고 있었나?”
[이 비천한 종이 주군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드리기 위해……!]
“너는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매몰찬 대성의 한마디에 나비 소녀가 활달하게 파닥거리던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
대성이 어떻게 하면 이 답답하기 그지없는 전황을 시원하게 뒤엎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때.
데구르르…….
펑-! 퍼벙-!
[힉……?!]
“…….”
무언가 동그란 것이 대성이 있는 지점에 굴러오더니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그것이 일종의 폭탄인 줄 알았던 대성은 눈살을 찌푸렸고, 나비 소녀는 몸을 움츠렸다.
쉬이익-
그러나 폭탄은 아니었다.
대신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순식간에 대성의 주변을 집어삼켰다.
연막.
쉬쉬쉬쉭-!!
연막이 퍼지기 무섭게 아까까지만 해도 한두 개씩 날아오던 투척물이 전후좌우에서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휘리리릭-!
대성은 커다란 대검을 가뿐하게 역수로 쥔 다음 쌍절곤처럼 휘둘렀다.
까가가가강-!
대검이 허공에 포물선을 한 줄씩 그릴 때마다 연기를 뚫고 날아오는 투척물이 넓적한 검날에 부딪혀 속절없이 튕겨나갔다.
안개 바깥쪽.
키이익-?!
어둠 속에 은신해 연기 속의 사냥감에게 기습을 가하던 키드들은 그 신들린 묘기에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제까짓 것이 과연 얼마나 버틸까 싶었던 녀석들은 쉬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날카롭게 다듬은 돌칼, 독이 발라진 경단 등.
던질 수 있는 건 모조리 던졌다.
휘릭-!
캉-!
그러나 대성의 손목 스냅을 따라 휘둘러지는 대검이 안개 밖의 기습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연기는 아니고…….’
대성은 사방천지에서 휘몰아치는 공격들을 정확하게 막아내면서 냉철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떤 가루 같은 건가.’
가늘어진 그의 동공이 일대에 자욱하게 퍼진 새하얀 입자의 정체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연기 같은 기체가 아닌, 손을 휘저으면 흔적이 손바닥에 묻어 나올 가루였다.
즉.
‘분진(粉塵)이로군.’
“날파리.”
[예, 예! 주군!]
“만약 네가 죽으면, 나는 상점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나?”
[제가 없으면 천상과 관련된 시스템도 말소되긴 하오나…… 그래도 걱정 마시옵소서! 저는 저와 같은 시스템의 운용자이신 주군과 한 몸이나 다름없나이다!]
“그 말은, 내가 죽지 않는 한 너도 죽을 일은 없다는 거지?”
[정확하시옵니다. 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녀의 생사는 왜……?]
“안 죽으면 됐다.”
씩-
대성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팍-!
그의 신형이 단숨에 안개를 뚫고 포탄과 같은 속도로 숲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끼긱-?!
갑작스러운 적의 행동에 주변에 매복한 키드들이 당황하다가 이내 대성의 뒤를 쫓았다.
사사삭-!
총알처럼 내달리는 대성의 뜀박질 속도가 나뭇가지에 꼬리를 휘감으며 숲을 누비는 키드들의 속도를 가볍게 압도했다.
거목 뿌리가 마구 뒤엉키고 지형 자체도 대단히 울퉁불퉁한데 어떻게 평지 위인 것처럼 저리도 매끈하게 달릴 수 있는지, 키드들로선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저 발을 묶어야만 한다!
사냥감의 이동 경로를 엉망으로 만들 작정이었던 키드들이 분진이 담긴 경단을 마구잡이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퍼버벙-! 퍼버버버벙-!
피쉬익-!
한 발짝 늦게 대성의 발치에 떨어진 경단이 일제히 폭발하며 연막을 피워 올렸다.
폭발은 몇 박자 느렸으나, 폭발하고 난 뒤 퍼지는 뭉게구름은 어렵지 않게 그의 달음박질을 따라잡았다.
그럴 때마다 안개 너머로 희끄무레 비치던 대성의 인영이 세차게 연기를 뚫고 튀어나왔다.
피쉬익-! 펑-! 퍼퍼퍼퍼펑-!
그렇게 폭우처럼 쏟아지던 연막이 연거푸 터진 직후.
사아아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둠 때문에 거무튀튀했던 숲속이 온통 새하얀 안개에 뒤덮여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이 정도면 됐겠지.”
끼이이익-!
대성이 뒤로 5m나 주르륵 미끄러지며 급정지했다.
[헥, 헥……!]
그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을 겨우 따라가던 나비 소녀만 죽을 맛이었다.
그때.
파악-!
대성이 업화대검을 들어 올리며 분진이 떠다니는 허공을 휘저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귀는 막는 게 좋을 거다.”
[네?]
나비 소녀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는데, 대성이 검을 쥔 오른손의 손목에 아주 살짝 스냅을 가했다.
마치 다이너마이트의 스위치를 누르듯이.
딸깍-
화륵-
업화대검의 검극을 타고 새빨간 불길이 조용하게 맺히는 1초도 안 되는 찰나.
옅은 탄내를 뿌리며 작은 불씨가 허공의 분진과 맞닿기 직전.
나비 소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대성이 무슨 생각인지.
[설-]
-마, 라는 음절이 이어지기도 전.
나비 소녀와 대성의 얼굴에 붉은 역광(逆光)이 한차례 번뜩였고.
쿠과과과광-!!
하늘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광-!!
대성이 선 지점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폭렬(爆裂)의 파도가 땅거죽을 사정없이 걷어냈다.
폭발의 연쇄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분진이 퍼진 지점을 따라가 순식간에 숲을 통째로 뒤엎었다.
콰콰콰쾅-!!
폭심지에서 뻗어 나오며 휘몰아치는 폭풍이 커다란 거목을 잡초처럼 뿌리째 뽑아내 날려 보냈다.
그 거목에 숨어 얄팍한 수작을 부리던 키드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놈들은 눈앞에 잠깐 빛이 번뜩였다는 것까지만 인식하고, 그 직후엔 필름이 끊긴 영상처럼 의식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쿠구구구-
숲이 울었다.
아니, 사라지고 있었다.
***
“어태커들은 아픈 걸 무서워할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죽여! 레인저들! 너희들은 뒤에서 멀뚱멀뚱 구경만 하지 말란 말이야!”
4등급 통상형 게이트 내부.
<황천> 클랜의 신인 대원들이 강기범의 진두지휘에 맞춰 필드를 점령하고 있었다.
저들 대다수가 실전 게이트를 뛰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초짜였기에 미숙함이 많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들 또한 빅10의 클랜에 당당히 입단할 만큼 전도유망한 신인 사냥꾼들.
적어도 강기범의 지휘를 이해하고 따를 수준은 되었다.
‘4등급 통상형……. 최선은 생존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신인들 교육하기엔 나쁘진 않지.’
교관인 강기범 또한 별다른 불만 없이 대원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래도 딱 하나.
아직까지도 분이 안 풀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 미친 도둑 새끼한테 여기까지 빼앗겼으면 진짜. S급이고 뭐고 모가지를 땄을 텐데.’
<황천>의 텃밭 상당수를 대성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 아직도 머리끝까지 피를 몰리게 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오히려 ‘뺏은 쪽’은 이미 타인에게 예약된 게이트를 멋대로 가로챈 강기범 쪽일 터.
‘합동훈련 끝나면 알려줘야겠어. S급이고 개X이고 사람 새끼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상도덕을 말이지.’
하지만 강기범은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이곳에 나가며 반드시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강기범이 이빨을 가는 가운데.
팍-!
그아악-!
몬스터는 빠르게 퇴치되고 있었다.
과연 유망주들다운 전력이었다.
초반 구역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정리되었다.
“별거 아닌데?”
“뭐야? 4등급 졸라 쉽네. 한 3등급은 돼야 성에 차겠다.”
“교관님! 얼른 다음 가죠, 다음!”
신인 대원들은 소풍을 온 것처럼 낄낄 웃으며 으스댔다.
강기범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야. 그렇게 방심하다가 훅 가는 거야. 그리고 다음을 가기는 뭔 다음을 가? 얼른 코어나 캐. 훈련은 훈련이고, 일단 금덩이는 캐야지, 우리?”
“아, 에테르! 깜빡 잊고 있었슴다! 죄송함다!”
그렇게 외친 대원이 과장되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어깨에 메고 있던 소형 케이스에서 코어 추출기를 꺼냈다.
다른 대원들 또한 금덩이를 캔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여간 사냥꾼 아니랄까 봐 돈 밝히는 것 봐. 귀여운 것들.”
강기범이 동굴 벽에 등을 기대며 잠시 눈동자를 아래로 굴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칙-
담배 끝에 라이터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인 그가 다시 눈동자를 앞으로 향했을 때였다.
“컥, 커헉, 컥……!”
제일 먼저 추출기를 꺼내든 대원이 스스로 목을 움켜쥐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지면으로부터 발이 10㎝ 정도 떨어진 채.
“…….”
뭐지?
강기범의 사고 회로가 잠시 작동을 멈춘 순간.
“컥……!”
뚜둑!
대원의 턱과 목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축-
대원이 하얗게 눈을 까뒤집으며 공중에서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는 것과 동시에.
굳어 있던 강기범과 다른 대원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 우아아아악-!!”
***
KHA 본사 사무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검은 정장을 입은 협회 직원 오재익이 컴퓨터 모니터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협회에 발송된 모든 데이터와 메일 전반 등, 협회의 서버를 관리하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동영상 하나가 협회 클라우드 서버에 자동으로 업로드되었다.
“…….”
등록자 명.
고광현.
딸깍-
오재익이 커서를 움직여 동영상을 열람했다.
“…….”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녹화 영상이 재생되자 어둑어둑한 어느 골목의 밤거리가 펼쳐졌다.
플래시조차 작동되지 않은 조잡한 휴대폰 동영상 촬영이었지만 ‘그것’만큼은 똑똑히 보였다.
피투성이 손바닥에 쥐어진 탓에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앵글 속.
절대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 괴물 한 마리가 허공을 찢어발기더니 그 균열 안으로 커다란 몸뚱이를 집어넣고 있는 광경이.
동영상의 총 재생 시간은 무려 3시간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괴물이 균열 속으로 사라지는 처음 5초 구간을 제외하곤 딱히 별다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방전될 때까지 동영상 촬영 모드가 쭉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촬영한 당사자가 촬영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의미.
아니, 누르지 않은 게 아니라.
누르지 못한 것일 터.
“재익 씨, 뭐 해.”
그 순간.
컴퓨터 모니터 뒤편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오재익의 선임 직원이었다.
“이따 점심 뭐 먹을지 의논 중인데 재익 씨도 와서 고견 좀 내봐. ……응? 표정이 왜 그래. 뭔 일 있어?”
선임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던 순간.
딸깍-
동영상 아이콘에 걸쳐져 있던 마우스 포인터가 움직였다.
‘삭제’ 버튼에.
오재익이 싱긋 웃었다.
“아뇨.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