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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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프의 전음(傳音)을 받은 대성은 <비행> 스킬을 발동해 곧바로 분당구에 있는 중앙공원으로 날아갔다.
아래쪽에 펼쳐진 경치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대성은 돌프가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휘하의 병사로부터 한 가지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중앙공원 쪽에서 이미 다른 인간들이 선수를 쳤다고….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순간, 대성은 실수로 예약하지 못하고 놓친 게이트가 있나 싶어서 KHA 사이트에 접속했다.
물론 실수는 없었다.
중앙공원 쪽에 출몰한 게이트를 낙찰한 대표자 성명은 분명 ‘한대성’이라고 나와 있었다.
“쯧.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차피 4등급에 불과해서 프렉쳐가 터져도 크게 치명적일 건 없다.
다른 사냥꾼들은 몰라도, 대성의 전력이라면 얼마든지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중앙공원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대성의 얼굴이 급격히 구겨진 이유는, 프렉쳐가 우려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남이 침 발라놓은 먹잇감에 숟가락을 들이밀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옵니다. 처분을 내리시옵소서, 주군.]
“어.”
쐐애액-!
불어 닥치는 바람이 그의 앞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분노로 일그러진 주름살과 함께, 핏줄이 군데군데 솟아 있는 표정이.
“죽여 버려야지.”
대성이 붉은 안광을 흉험하게 번뜩이며 날아가기를 잠시.
탁-.
그는 5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중앙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바리케이드와 통제선으로 둘러싸인 공원 내부엔, 안색이 하얗게 질린 군인과 검은 진물을 뚝뚝 흘리는 사령 병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
파지직-!
“…….”
이미 입장 불가 상태가 된 구체 덩어리 표면에는 벼락이 세차게 졸아붙고 있었다.
이 이상 외부의 진입을 허락할 수 없다고 의지 표명이라도 하듯이.
그으으-.
그어….
명령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사령 병사들 또한,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태에 머리만 긁적였다.
“아침부터 스트레스 장난 아니군.”
이런 촌극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대성은 게이트 앞을 지켜 서던 군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히, 히익…!”
역시나 찔리는 게 있었는지 군인이 어깨를 좁히며 화들짝 놀랐다.
대성의 걸음이 한 발짝씩 가까워질 때마다 군인의 심장도 터질 듯이 쿵쿵 뛰었다.
탁-.
“뭡니까.”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간격을 두고 마주 선 대성의 그림자가 군인의 정수리 꼭대기까지 뒤덮었다.
뒤통수가 등에 닿을 때까지 젖혀야만 겨우 올려다볼 수 있는 덩치.
목에 칼이 들어온 사람 같은 얼굴로 군인이 입술을 달싹였다.
“예, 예…?”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여기에 있는 게이트, 분명히 제 이름으로 이미 예약이 되어 있을 텐데요?”
“그, 그게….”
무서운 건 둘째 치고서라도, 군인 또한 확실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뼈저린 반성을 느낌과 동시에, 그는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을 대성에게 설명했다.
“<황천> 클랜이….”
그 이름을 기억한다.
얼마 전, 그에게 입단을 권유했던 빅10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 <황천> 클랜이 그랬단 말이지.”
이제야 내막을 알게 된 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4등급 통상형.
그러나 <황천>의 간부급인 A급 사냥꾼이 선봉에 섰다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하리라.
한 마디로, 프렉쳐가 터질 확률은 대단히 낮았다.
‘먹고 내빼겠단 말이지?’
하지만 재차 강조하지만, 프렉쳐가 터지고 말고의 여부는 그에게 있어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웬 불한당 같은 것들이 본인의소중한 밥그릇을 가로챘다는 사실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사냥꾼님. 제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이게, 정말….”
“…….”
대성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덜덜 떨며 사죄의 말을 연신 뱉는 군인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 처량한 모습에, 군인을 향하고 있었던 분노의 감정이 조금이나마사그라들었다.
그답지 않은 심정 변화였으나,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힘을 가지지 못한 설움이라면 나 또한 잘 이해하고 있다.’
군인은 자신이 <황천> 클랜의 사냥꾼에게 협박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성은 지구라는 세계엔 지옥과는 다른, 무력이 아닌,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에 격(格)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로 지옥엔 없었던.
갑(甲)과 을(乙)의 격차를 말이다.
“몹쓸 놈들이군요.”
“예?”
의아하게 눈만 깜박이는 군인을 뒤로 한 채.
저벅-.
대성은 격렬한 스파크에 휩싸인 게이트 앞에 우두커니 섰다.
‘입장이 불가능한 게이트라….’
이미 허용 가능한 외부 차원의 존재를 전부 받아들여, 입구를 전부 닫아버린 게이트.
드득, 드득-.
상극(相剋)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 굳게 닫힌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장이 조금씩 대성을 뒤로 밀어냈다.
근처에도 다가오지 말라는 것처럼.
[저항력이 상당하옵니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
[억지로 문을 열려고 했다간, 자칫하면 두 차원의 틈새에 끼일 수도 있사옵니다.]
‘그래서.’
[네?]
‘문 잠갔으니까, 그냥 밖에서 잠자코 기다리라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화가 나 죽겠는데 여기서 무슨 인내심을 더 발휘해야 할까?
‘이건 원래 내 거였어. 내 것인데, 내가 왜 기다려야 하지?’
[주, 주군. 하오나….]
‘됐다. 입 다물고 있어.’
차원의 틈새에 끼이는 걸 떠나서 대성은 그냥 이 상황 자체가 몹시나 불쾌했다.
고려할 가치도 없는 문제라고 판단한 대성이 전류가 맹렬히 튀어 오르는 게이트로 손을 뻗는 순간.
“어, 어어! 사냥꾼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군인이 소스라치며 그를 만류했다.
이내 대성의 손가락 끝이 게이트와 접점을 이루었고,
파직-!
“음….”
일렁이는 게이트에 푹 담그고 있었던 오른손을 도로 빼보았다.
딱히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통을 느껴야 할 오른손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으니까.
“으, 으아아아악-! 사, 사냥꾼님!”
[주군-!]
“…….”
군인과 나비 소녀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 경악했다.
당사자인 대성은 너무나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지만.
“어, 얼른 의료지원 요청을…!”
군인이 황급히 무전기를 꺼내려고 하던 그때.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본 군인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다래졌다.
“어, 어어…?”
분명 끔찍한 몰골로 훼손된 대성의 오른손이, 잠깐 무전기에 한눈을 판 사이에 상당한 경과로 회복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놀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성의 오른손은 재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A급 버퍼가 치유 오러를 불어넣는다 해도 저렇게 빨리 부상이 회복될 순 없으리라.
저게 S급의 수준이란 말인가?
군인이 상식을 벗어난 현상 앞에서 충격을 느끼는한편.
‘자물쇠 한 번 단단하군.’
망자의 강과 비슷한 경우였다.
회복력과는 별개로, 몸을 전부 담그는 순간, 흔적도 없이 뼈와 살이 사라질 터.
‘자물쇠를 풀 수 없다면.’
하지만 고작 손 하나 다쳤다고 꼬리를 말며 물러서기는 싫었다.
‘자물쇠를 잘라내면 그만이다.’
오른손이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수확은 있었다.
출입금지 상태가 된 게이트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은 대성은 분명히 느꼈다.
세차게 회전하는, 어떤 톱날 같은 것의 감촉을.
어디까지나 손끝의 감각으로만 느꼈기에 그 톱날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해. 그 톱날 같은 것이 외부의 침입을 막아내고 있어.’
톱날.
달리 말해, 그것이 바로 ‘자물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똑똑히 깨달았다.
화르륵-!
대성은 활성화된 아공간 안쪽에서부터 폭발적인 열기를 머금은 업화대검을 쑥 뽑아냈다.
그리고 검날의 끝을 게이트를 향해 겨누며 물었다.
‘염왕.’
-앞으론 마그누스라고 불러주십시오. 주군 앞에서 감히 제가 어찌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겠나이까.
오랜만에 들어보는 대검에 깃든 염왕, 아니, 영령 마그누스의 중후한 목소리였다.
여차하면 휘두를 기세로 검날 끝을 앞으로 쭉 세운 자세를 취하며, 대성은 의념을 통해 물었다.
‘잘라낼 수 있겠나?’
-잘라내진 못하더라도… 태워버릴 수는 있을 겁니다. 저라면 가능합니다. 믿어주시기를.
‘좋은 대답이야.’
대성이 입가를 말아 올림과 동시에.
화륵-!
업화대검의 검극을 휘감은 불길이, 태양 빛이 넘실거리는 듯한 열풍을 토해냈다.
“사, 사냥꾼님! 지금 무슨…?!”
난데없이 불꽃의 칼을 꺼내든 대성을 보며 군인이 크게 경악했다.
하지만 지독한 탄내와 함께 휘몰아치는 열풍 때문에 차마 그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는 사이.
콱-!
업화대검이 벼락처럼 타오르는 전류의 벽을 뚫고 세차게 게이트에 쑤셔 박혔다.
***
비쩍 마른 체구에 산발로 헝클어진 적갈색 머리카락.
넝마처럼 찢어진 묵 빛 천 옷.
그리고 두 팔과 두 다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언뜻 보기엔 똑같은 인간처럼 생겼으나….
“난 지금 너한테 선택의 여지를 주고 있는 거야. 좀처럼 오는 기회는 아니니까 오래 고민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아마 이마까지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길쭉한 혓바닥.
고양이처럼 세로로 가늘게 찢어져 있는 동공과 눈자위는 안에서 핏물이라도 차오른 것처럼 새빨갰다.
절대로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인간이라고 불러서도 안 될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괴인(怪人).
“다시 물을게. 너, 우리 쪽 병사가 될 생각은 없어? 응?”
그리고 그 괴인이 간드러진 여자 목소리로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꺽, 꺼억….”
하관이 뜯겨나가 피를 폭포처럼 흘려대며 쓰러져 있는 강기범을 향해서 말이다.
얼굴 아래쪽 3분의 1이 사라졌다는 점을 빼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몸이었다.
“아, 미안. 입을 뜯어버려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지? 하, 실수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팔이나 다리를 꺾는 거였는데.”
“끄, 끄윽….”
“그러게 왜 무모하게 덤비고 그래? 뭐, 깡다구는 있어 보여서 더 마음에 들긴 했지만.”
괴인이 킥킥 웃으면서 강기범의 끔찍한 몰골을 쓰다듬었다.
아까 괴인과 처음으로 마주친 순간.
강기범은 공포를 느끼기도 잠시, 곧바로 대원들의 죽음에 분노를 느끼며 괴인에게 맞섰다.
하지만 울분을 실은 일격이 괴인에게 닿기도 전.
강기범은 기묘한 일을 겪었다.
‘…손발이 내 멋대로 움직였어.’
두 손이 의지에 상관없이 저절로 움직이며 그의 턱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직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금 바닥에 굴러다니는 그의 하관만 보아도 자명했다.
‘정신 장악계? 아냐…. 의식을 통제 당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강기범은 순간 심장이 덜컥 정지할 뻔한 감각을 느꼈다.
어느새 코앞까지 얼굴을 가까이 댄 괴인이 험악하게 생긴 두 눈을 부릅떴다.
방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거운 살기가 전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턱 다음엔 척추가 뽑히기 싫으면 얼른 대답이나 해. 우리 병사가 될 거야, 말 거야?”
“…….”
“다시 말하지만 난 네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으면 좋겠어. 너한테도 나쁜 얘기는 아니거든.”
턱관절이 뽑혔다는 고통 이상으로.
강기범은이 모든 것들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괴인은 뭔가.
병사는 또 뭐고?
질문을 쏟아내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으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 궁금한 게 많겠지.”
괴인 또한, 강기범의 눈에 떠오른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이쪽 세계의 인간인 너한테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
“자세한 얘기는 혼세(昏世)의 주민으로 건너온다면 말해주지.”
강기범이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혼세의 주민….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저 말은, 지금 자기 보고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뜻임이 분명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주민이 되면 뭐가 좋냐고?”
괴인은 아주 정확하고도 예리하게, 강기범의 속내를 파악하고 있었다.
강기범은 처음에는 저 눈동자 때문에 고양이가 연상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일단 넌 목숨을 건질 거야.”
독사(毒蛇)
더할 나위 없이 잔학무도하면서도, 너무나도 능숙하게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뱀이었다.
“그리고 지금 인간의 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절대 후회 안 할걸?”
“…….”
“아직도 내가 하는 말이 협박 같아? 아니면….”
귓바퀴까지 길게 찢어진 괴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진저리를 치게 만들 광경이었으나, 강기범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생각이 있으면 그냥 고개만 끄덕여. 턱이 없어도 끄덕거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머릿속을 채운 무수한 상념들이 두려움을 무감각하게 해주었으니까.
살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대가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 대가를 따졌다가는 가차 없이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대가는 무슨 놈의 대가.
‘일단 살고 봐야 해!’
인간을 포기한다는 건, 달리 말해 인류를 배신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뭐?
그놈의 신념 때문에, 이 아무도 없는 마굴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끄덕.
강기범의 고개가 위아래로 천천히 왕복했다.
“잘 생각했어!”
괴인은 손뼉을 마주 부딪치면서 크게 웃었다.
기뻐하는 괴인을 보며, 강기범은 부디 이 모든 게 녀석의 허풍이나 기만이 아니기를 바랐다.
“좀 따가울 거야.”
괴인은 앙상한 손을 뻗어 강기범의 흉부를 건드렸다.
그 순간.
치이익-!
“흡, 흐읍…?!”
“엄살은.”
인두로 살을 지지는 듯한 작열통이 전신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괴인이 손바닥을 떼고 난 뒤에도, 피부가 지져지는 참혹한 소리와 함께 한동안 이어졌다.
“흑, 헉, 흐억-!?”
교살당하는 사형수처럼 강기범이 팔다리를 허우적대는 사이.
꽈드득-! 꽈직-!
무수한 이변이 그의 몸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우둑거리며 갈라지다가,
그 틈새에 또 새로운 뼈와 관절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팍-!
양쪽 어깨 근육의 결이 좌우로 찢어지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솟구쳤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강기범에게선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쉬이익-.
하얀 수증기가 끓어오르고, 괴인이 된 강기범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새로운 육체를 살폈다.
그의 온몸은 살갗 대신 돌기가 난 갑피(甲皮)로 뒤덮여 있었고, 그렇게 그는 괴인이 되어 있었다.
마치 검은 곤충과 인간을 뒤섞은 듯한 형상.
“이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던 격통이 사라졌다.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깔끔해졌다.
그리고 느껴졌다.
“이건…!”
몸에서 요동치는 힘의 격류가.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맹렬히 날뛰는 파괴 본능이!
‘이 정도면….’
A급 사냥꾼에 걸맞은 오러를 체내에 저장했었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후자가 압도적이었다.
그 말은 즉,
‘지금의 나는 S급보다 강하다!’
각성자가 된 뒤로 강해지는 길만을 추구했던 그로서는, 그야말로 축복이나 다름없는 순간.
쿵쾅, 쿵쾅.
흥분과 희열 때문에 발갛게 상기된 강기범의 얼굴이 괴인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어때? 기분 죽이-.”
괴인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새로이 탄생한 강기범을 축하하려던 그때.
쾅-!!
돌연 터져 나온 폭음이 괴인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강기범과 괴인의 시선이 동시에 굉음의 중심지로 향했다.
처음에 강기범과 <황천>의 대원들이 들어왔던 게이트의 입구.
동굴의 벽처럼 생긴 그 입구가 지금은 산산조각으로 무너진 채, 불기둥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저벅-.
그리고 시커먼 인영 하나가 사납게 타오르는 그 불기둥을 뚫고 나왔다.
“되네.”
인영의 정체는 대성이었다.
그가 무너진 동굴 벽의 파편을 밟고, 불길을 무심하게 걷어내며 짧게 말했다.
“여기 강기범이 누구냐.”
***
스르륵-.
괴인은 곧바로 ‘은신’을 발동해 몸을 숨겼다.
‘저놈이군.’
경망한 태도를 유지했던 괴인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침착하게 대성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우리 계획을 방해한 놈이.’
성남시에 활성화된열여섯 개 게이트의 동시 개방.
그로 말미암아 혼세의 병사들을 인간 세계로 내보낸 뒤, 빠르게 ‘제물’을 모을 작정이었는데….
그 계획이, 한 인간과 그의 수족들로 인해 급격히 틀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모르겠군. 우리 계획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저 하얀 머리 인간이 자신들의 계획을 간파하고, 훼방을 놓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괴인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지금 저놈… <방벽>이 걸린 게이트를 뚫고 들어온 거야?’
외부의 진입을 막기 위해 굳건히 자물쇠를 걸어놓은 게이트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제거해야 해.’
괴인이 그리 결심하던 그때.
슥-.
강기범이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손을 들었다.
“내가 강기범인데? 그 더럽게 개성적인 낯짝을 보니 네가 그 유명한 한대성인 모양이네?”
강기범. 그는 지금 막 새로운 혼세의 주민이 된 자.
마침 그가 지닌 전력을 확인해보기에 알맞은 판이 마련되었다.
괴인은 ‘은신’을 유지한 채 가만히 팔짱을 끼며 강기범을 바라보았다.
‘어디, 저 몸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 지켜볼-.’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쾅-!
몇 초 늦게, 이어지는 굉음.
방금 뭐가 지나갔나?
그렇게 생각한 괴인의 고개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돌아갔다.
복부 위가 통째로 뜯겨나간 강기범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응?”
작금에 벌어진 일을, 사고가 따라잡지 못했다.
괴인은 저기 걸레짝이 되어 쓰러진 사체의 정체가 강기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만 3초를 허비했다.
“뭐…!”
그리고 그것을 인지한 순간.
괴인은 다시 고개를 움직여, 대성이 있는 곳을 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꾸욱-.
고개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은신’을 유지하는 중인 괴인은, 어중간한 각도로 고개가 틀어진 채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개수작 그만 부리고 낯짝을 드러내.”
무감정하고 싸늘한 목소리가 괴인의 귓가에 선명히 들려왔다.
고개가 돌아가던 중에 멈춰서 시선은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괴인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 하얀 머리 인간의 커다란 손이, 지금 자신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것은 모를 터이다.
“내, 내 모습이 보일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래?”
지잉-.
지금 이 순간, 대성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다는 걸.
[사주의 눈이 발동됩니다.]
“내 눈엔 네 모습이 아주 잘 보이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