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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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이군.”
“이건 완전 수준이 다르잖아……. 이게 사냥꾼, 아니, 인간이 내는 게 가능한 힘인가?”
“이래가지곤 누가 인간이고 몬스터인지 모르겠군. 괴물보다도 더 괴물 같은 양반이야, 저 사람.”
대성이 일으킨 불의 파도가 한차례 휩쓸고 간 일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올해 말에 철거 일정이 잡혀 있었던 폐공장은 그 일정을 대대적으로 취소해야 할 판.
급하게나마 소화(消火) 작업을 하던 군인들은 숯덩이가 된 채 불타 죽은 오크들을 둘러보며 진저리를 쳤다.
“말씀이 사실이었군요. 이런 물건이 있었다니…….”
한편.
짧은 프렉쳐가 벌어졌던 현장을 아연하게 쳐다보던 박정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프렉쳐를 5분도 안 돼서 해결한 대성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인위적으로 프렉쳐를 일으킬 수 있는 장치라니……. 솔직히 지금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그럴 법도 하겠죠.”
“저…… 대성 씨.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박정호가 수고를 무릅쓴 대성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대성이 말해보라는 듯이 박정호를 흘겨보았다.
“그, 대성 씨를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협회장으로서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 같아서요.”
“…….”
“아까 그 ‘브레이커’라는 물건. 그 용도가 인위적으로 프렉쳐를 일으키는 장치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래.
그런 질문이 올 줄 알았다.
이래서 협회 측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짓은 피해야 한다.
곤란한 질문이 날아오고, 그럴 때마다 궁색한 대답을 떠올리는 데 머리를 굴려야 하니까.
물론 딱 브레이커‘만’ 정보를 공유하기로 결정했던 시점에서, 이런 질문이 날아오리란 건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해둔 상태지만.
그리고 대성이 태연한 표정으로 그 답변을 꺼냈다.
“평소와 달리 성남시에서 굉장히 불길한 기류를 느꼈습니다.”
“불길한 기류요?”
“파장과 진폭이 상당히 이질적인 게이트가 느껴졌죠. 그래서 들어가봤더니, 필드에 수상쩍게 생긴 장치가 하나 설치되어 있더군요.”
본인이 생각해도 거짓말은 서툴렀으나…….
그 거짓말이 대성의 입에서 나오는 이상 박정호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그냥 느껴졌습니다. 제 몸속의 오러가 알려주더군요. 이 구슬이, 게이트의 파장을 어지럽히던 원인이라고요.”
“그럴 수가…….”
“실제로 구슬은 게이트를 조금씩 좀먹고 있었습니다. 프렉쳐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었죠. 그래서 제 임의로 그 구슬의 이름을 ‘브레이커’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대성의 거짓말에 잔뜩 몰입한 상태였던 박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적절한 명칭’이라고 생각했다.
“뭐, 제 입으로 직접 말하기엔 낯 뜨거운 표현이지만 S급의 기감이라고 할까요.”
“S급의 기감……. 그럼 혹시, 성남시의 게이트를 전부 예약한 것도 이 사태를 전부 예감하셨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두죠.”
S급의 기감이라는 부분만 빼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다.
대성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박정호는 잠시 말문을 잃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충격적인 건 두 가지.
첫째는 ‘브레이커’에 대한 얘기.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전부 예상하고 보란 듯이 미연에 방지한 대성의 뛰어난 기감이었다.
어중이떠중이 사냥꾼이 이런 말을 했다면 당연히 의심했겠지만…….
눈앞의 남자는 S급.
그것도 세계 어디에서도 보고되지 않은 희귀한 오러 테크닉을 구사하는 특급 사냥꾼이 아닌가?
그런 그가 한 말이니 엄청난 신빙성이 느껴졌다.
“……말씀대로라면, 자칫했다간 오늘 성남시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커다란 재앙이 벌어질 뻔했었군요.”
“…….”
“그리고 대성 씨는 우리 협회보다 몇 발짝은 더 일찍 그 재앙을 막아주셨고요.”
왜곡이 섞여 있기는 해도, 어쨌든 대성이 성남시를 지켜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내막을 알게 된 박정호는 다시금 눈앞의 남자, 대성을 올려다보았다.
낮 12시, 하늘 높이 떠올라 내리쬐는 태양 빛이 대성의 후광이 되어주었다.
‘저번 도곡동 사태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최근 협회가 이 남자한테 몇 번의 빚을 진 거지?’
더군다나 이번 경우엔 사냥꾼을 보유한 나라 그 어디에서도 알지 못하는 ‘브레이커’라는 정보를 가져왔다.
아니.
미국이나 일본 같은 사냥꾼 강대국들은 이미 ‘브레이커’에 대해 알고 있으나 일부러 정보를 숨기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은 모르고 있었고, 이분은 그 누구보다도 빨리, 처음으로 그 장치에 대한 정보를 찾아주셨다.’
감히 그 가치를 환산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도움.
눈앞의 사냥꾼은 ‘다르다’.
슥-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마자, 박정호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 인사.
누군가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대성은 말없이 뺨만 긁적였다.
그때.
“야야.”
“아, 왜. 나 바빠.”
“아니, 저거 좀 보라고.”
“무슨…… 잉? 저건 또 무슨 상황이래.”
현장을 정리하던 주변인 또한 저마다 속닥이며 박정호와 대성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협회장인 박정호가 활약을 떨친 사냥꾼에게 상패 같은 것을 전달하며 노고를 치하한 적이라면 많다.
하지만 저렇게 허리를 깊게 숙이면서까지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협회장과 사냥꾼’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감사 인사.
박정호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않다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리고 결연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헌터 연맹에 ‘브레이커’의 존재를 알릴 겁니다.”
헌터 연맹((聯盟).
한 명 이상의 사냥꾼을 보유한 국가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범세계적 국제 사냥 기구.
비교적 발언권이 적은 사냥꾼 약소국인 대한민국의 대표 박정호가 전면에 나서서 충격적인 소식을 연맹에 알리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브레이커’가 반드시 한국에만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죠. 분명 게이트가 출몰하는 나라라면 어디든 존재할 겁니다.”
“…….”
“대성 씨가 발견하신 이것은 세계를 놀라게 할 겁니다. 그리고 한국도 그렇고, 모두가 불안에 떨겠지요.”
강제적으로, 인위적으로 프렉쳐를 일으킬 수 있는 물건.
즉, 이제는 분석 장치를 통해 프렉쳐 발생 시간을 예상하는 것도 더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적어도 ‘남은 시간’ 정도는 표시가 되었던 시한폭탄이, 이제는 언제 터질지 예상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 시한폭탄의 실체를 지금 막 확인한 참인 박정호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
대성은 그 표정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협회장님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브레이커’의 존재.
그것에 대해 알게 된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애당초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절망적인 저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미리 알게 됨으로써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축복이었다.
박정호가 대답을 내놓았다.
“더욱더 경각심을 가져야겠죠. 이제부터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트의 경계 레벨을 올릴 겁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그제야.
대성은 아주 조금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하군요.”
그것은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그가 듣고 싶어 했던, 너무나도 모범적인 대답이었으니까.
***
성남시의 게이트를 전부 닫았으니 사태가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했다.
일단 오늘은 이 이상의 특정한 사건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자정까지는.
‘특이적인 사항이 있었다면 허공록에 적혀 있었겠지.’
허공록에는 성남시의 게이트에 관한 이야기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덕분에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으니 대성은 ‘정보 구매’가 지닌 유용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정보가 적혀 있다고 했으면서, 왜 브레이커나 사가트, 혹은 강기범에 관련된 이야기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던 거지?’
사실상 저 셋이 오늘 대성이 겪은 사건의 핵심이었고, 주축이었다.
하지만 허공록은 그들에 대한 정보는 일절 알려주지 않았다.
미래를 예지해주기는 해도 모든 걸 알려주진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허공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때, 그 허공록을 판매했던 상점 시스템의 관리자인 나비 소녀가 대성의 의문에 대답했다.
[허공록은 어디까지나 주군께서 나아가셔야 할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에 불과하옵니다.]
‘이정표라.’
[그 이정표 너머에 이어진 길에 무엇이 펼쳐지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옵니다. 저도, 주군도.]
요컨대, 수많은 갈림길 중 어디를 선택하는 게 최선인지만 알려줄 뿐, 그 길에 존재하는 난관을 헤쳐 나가는 건 대성의 몫이라는 의미였다.
‘돌이켜보면 성남시에 관한 얘기를 알려준 덕에 결과적으로 많은 걸 얻고, 알 수 있었긴 했지.’
‘결과’는 알려주지 않고 나아가야 할 길만 알려주는 것.
차라리 이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정해진 결과가 있어서 거기에 휘둘리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냐?”
이때 대성의 상념을 파고든 목소리의 주인은 성찬호였다.
한바탕 성남시를 휘젓고 난 뒤.
둘은 일을 마친 기념으로 고깃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떼돈을 벌었다는 환희와 희열의 분위기는 감돌지 않았지만.
상념에서 벗어난 대성이 말했다.
“너야말로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걸’ 봤는데 그럼 내가 좋다고 실실 쪼개고 있겠냐? 아, 고깃집 괜히 왔나? 비위 상해서 국산 한우가 위장으로 넘어가지를 않네.”
“앞으로 나랑 일하면 그보다 더한 걸 보게 될 거다. 또, 너 말고는 안심하고 보여줄 사람도 없고.”
마지막 게이트를 공략하고 ‘브레이커’를 박정호에게 알려주기 전.
대성은 <황천> 대원의 시체에서 떼어낸 기록용 카메라의 영상 편집을 성찬호에게 맡겼었다.
괴물로 변하는 강기범과 사가트의 본모습을 박정호가 보지 못하게 말이다.
달리 말하면.
“……대성아 난,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게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몬스터였는지.”
영상을 편집한 당사자인 성찬호는 그 뒷부분에 녹화된 당시 상황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성은 설명해줬다.
<귀안>을 통해 봤던 모든 걸.
성찬호는 믿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성찬호는 대성의 말을 믿지 못했다. 아니, 믿기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몬스터란 놈들이 이젠 아예 직접 사람을 잡아간다는 거지? 뭐 혼돈의 거신인가 거시기인가 하는 놈한테 바칠 제물로 삼으려고.”
“어.”
“와, 씨. 세상이 이렇게 살벌해도 되는 거냐? 이러다 나까지 잡혀가면 어떡하지? 야, 대성아. 내가 봉급은 두둑이 챙겨줄 테니까 내 전용 24시간 경호원 돼볼 생각 없-”
“헛소리 그만하고. 네가 그놈들한테 잡혀갈 일은 웬만하면 없을 거야. 아예 없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지만.”
“응? 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던 성찬호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그놈들이 우선하여 접근하는 인간에겐 조건이 있어.”
대성은 <귀안>을 통해 사가트의 기억을 읽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보았다.
사가트의 일생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업화대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그러니 사가트가 알고 있던 막대한 양의 정보를 손에 얻는 건 당연했다.
개중엔 그들이 ‘제물’이나 ‘병사’로 삼으려는 인간을 선별하는 데 정해놓은 나름의 ‘기준’에 관한 정보도 나와 있었다.
“그놈들은 ‘몰려 있는’ 인간에게 먼저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몰려 있는 인간?”
“사정이 힘든 인간들 말이야.”
“아.”
단순히 돈이 많고 적고, 가난하고 유복하고의 사정이 아니다.
훨씬 포괄적인 의미에서 절실하고 필사적이며, 갈망하는 인간들.
사가트는 무의미하고 무자비한 살생을 저지르면서까지 자신의 가학적인 욕구를 채우려고 했다.
피를 부르고, 피를 갈망했었기에 혼세의 주민이 될 수 있었다.
‘강기범은 살고 싶어 했고.’
그때의 그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이성조차 마비된 채 목숨을 갈구했다.
무언가를 원하고, 갈구하고, 갈망하는 이들의 염(念)이 혼세의 존재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지닌 사정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염은 진해지고, 제물과 병사로서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항상 무언가를 원하고 갈구한다.
혼세의 존재들은 그 정도가 유독 심한 이들을 우선하여 잡아갈 뿐.
그렇기에 사가트는 염의 농도를 무시하면서까지 성남시의 게이트를 터뜨려 마구잡이로 제물을 모으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기는 해도 엉뚱한 방법은 아니었다. 요리로 따지면 신선도는 집어치우고 일단 재료부터 닥치고 모으는 것과 비슷하다 보면 된다.
성찬호가 정색하며 말했다.
“……앞으론 그, 좀 무소유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네.”
“이걸 역으로 이용한다.”
“뭐?”
대성의 목적은 혼세의 존재, 그중에서도 ‘디멘션 테이커’라고 하는 자들을 만나서 더 많은 비밀을 캐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냄새를 좋아하고 이끌리는지 알게 된 이상, 이쪽에서 그 냄새가 잔뜩 풍기는 고기를 던져 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갈망하는 자를 찾는다. 사정이 어쨌든 절박한 처지에 처한 사람을 말이지.”
“그리고 그 ‘디멘션 테이커’라는 놈들이 꼬이도록 유도하겠다?”
“그래.”
“…….”
성찬호가 미간을 좁히며 대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작전이 별로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좀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내 눈엔 대성이 너도 지금, 충분히 절박해 보인단 말이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대성은 지금 성찬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했다.
“이렇게 혈안이 돼서 그놈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소위 말하는 ‘갈망’일 텐데……. 왜 너한테는 그놈들이 먼저 찾아오지 않는 거지?”
“생각해보니 그렇군.”
“뭐 대기 순번 같은 거라도 있나?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찾아오지 않을까?”
대성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혼세의 존재들을 섬멸하고자 하는 자신의 결심이 생각했던 것보다 저들 눈엔 그다지 절박해 보이지 않는 걸까?
‘아냐.’
그럴 리가 없다. 확신한다.
이 마음은, 이 기분은 절대 그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그놈들이 감히 가족이 사는 세계에 멋대로 활개 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 이 순간에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그런데.
사가트의 기억에서 얻은 정보와 이론대로라면 대성에게도 ‘디멘션 테이커’들이 먼저 접근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내가 지옥에 있는 동안 엄마와 지수한테 그놈들이 접근하지 않았던 것도 이상하고…….’
혜정과 지수 또한 대성이 의식을 차리기를 그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바랐을 텐데.
정말로, 성찬호의 우스갯소리처럼 대기 순번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건.
“그놈들이 나한테 먼저 접근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순 없어.”
“왜.”
“내 곁에는 가족이 있으니까.”
혜정과 지수를 등에 업은 이상, ‘디멘션 테이커’들이 근처에서 얼씬거릴 여지를 만들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놈들이 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치러 간다.
그것이 대성이 80년 동안 지옥에서 갈고닦은 싸움의 방식이었다.
“누구 없을까. 그놈들이 꼬일 만한 사람이.”
“흠…….”
사정없는 사람 없다지만, 동시에 그 속사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 또한 그다지 많지 않은 법.
이게 단순히 몽타주 보고 사람을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아!”
그런데도 성찬호는 해답을 냈다.
대성이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성찬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 명 있기는 해.”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 은 맞지.”
그렇게 말한 성찬호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클랜 영업팀 시절에 만나서 딱 한 번 얘기 나눈 게 끝인 사이긴 하지만…….”
***
대학병원.
젊은 간호사가 문을 열고 1인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간호사의 눈에 들어온 건 병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음식 그릇들.
“하…….”
간호사의 한숨이 이어졌다.
음식엔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게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또 안 드셨네요. 하루에 한 끼라도 좀 제대로 챙기셔야 하는데…….”
간호사가 말끝을 흐리며 병상 위의 환자를 쳐다보았다.
환자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옆얼굴에서 어렴풋이 공허의 감정이 엿보였다.
“…….”
딱한 사람.
간호사는 씁쓸한 기분을 삼키며 병상의 간이 식탁에 놓인 식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내일은 꼭 드셔야 해요. 알겠죠?”
“…….”
“신초영 씨.”
환자는, 신초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영혼이 텅 빈 사람처럼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간호사 또한 더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
깨어난 지 이틀.
스승처럼 여겼던 황준영이 그녀의 복수를 하다 구속되었고, 그녀는 단전이 망가져 오러를 펼칠 수가 없게 되었다.
겨우 의식을 되찾은 신초영이 받아들이기엔 가혹한 소식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