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77화 (77/180)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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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초영은 강하다.

무력(武力)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말이다.

들판에 핀 잡초처럼 굳세고, 팽팽한 고무줄처럼 억세며, 뿌리를 깊숙이 내린 거목처럼 꼿꼿하다.

그 강함은 어릴 적부터 부모가 괴물의 발에 짓밟히는 참경(慘景)을 보고, 일평생을 복수귀로 살아온 지난 삶에 기인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 여성’의 기준.

“…….”

온갖 더러운 꼴과 마주하는 ‘사냥꾼’의 멘탈과 비교하면 엇비슷하거나 좀 더 나은 수준.

그러니, 웬만한 고강도 멘탈의 사냥꾼이 봐도 트라우마가 될 법한 장면 앞에서 어찌 얼어붙지 않겠는가.

엉- 엉-

허으- 허으아-

흑- 흑흑…….

숱한 사람이 통곡(痛哭)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살가죽이 온통 벗겨지고, 심장이 적출당한 상태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쇠꼬챙이에 꿰뚫린 야시장의 고깃덩어리처럼.

“…….”

애당초.

살가죽이 벗겨지고 심장이 적출당했는데 울 수 있다니?

내가 지금 뭐를 잘못 본 건가?

…….

아니다.

저 사람들은 분명 소리 높여 오열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옥이란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광경일 테지.

“…….”

신초영은 비명을 지르지도, 침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냥 눈꺼풀이 찢어질 것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붙었을 뿐.

“조금 떨어져 있어.”

“…….”

“야.”

“아, 예? 아…….”

의식의 저편에 머물던 신초영을 현실로 데려온 목소리는 대성의 것이었다.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온 신초영이 퍼뜩 대성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의 말을 듣고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저도 모르게 발이 알아서 움직인 것에 가까웠다.

-탁.

그녀의 발바닥이 바닥을 밟은 순간.

“웁……!”

마치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신초영의 뺨이 터질 것처럼 부풀고, 그녀가 황급히 입을 가리며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이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뺨이 부풀고 목울대가 요동칠 때, 그녀의 입이 위액을 쏟아냈다.

“우웨에엑-!”

“그러니까 들어오지 않은 편이 좋다고 했잖아.”

음의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

하지만 대성의 미간엔 누가 봐도 선명한 주름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돼지머리도 제사상에 이따위 꼴로 올리지는 않아.’

이보다 더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잔인한 몰골이 된 인간들.

이들은 모두 제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혼세의 존재들에게 납치당하고, 죽고, 혼돈의 거신에게 바칠 영혼이 끄집여 나오고…….

그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모습이 되어 억겁의 세월을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말로(末路)에 접어든 것이겠지.

“…….”

대성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저들 중에 아는 사이는 없어도, 아는 얼굴은 몇 있었다.

최근 매스컴이 끊임없이 납치 피해자들의 면면을 자료 화면으로 내보내는 걸 어렴풋이 봤었으니까.

자료 화면 속 저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웃고 있는 얼굴도 있었고, 무표정한 얼굴도 있었고.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는 가장도 있었고,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도 있었고, 손주를 돌보던 노인도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이게 다 뭐예요?”

신초영이 울먹이며 물었다.

구역질이 치솟게 하는 광경이지만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다.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똑바로 직시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 개새끼들…….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라지만, 이건…….”

“그래. 심하네.”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이런 걸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수가 있어요? 대체 어떻게 하면…….”

“울면서 가만히 노려본다고 해서 저들의 넋이 달래지나?”

화르륵-!

업화대검이 불탔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신초영이 불의 검을 한번, 그리고 참상을 응시하던 대성을 번갈아 보았다.

저 남자가 저토록 태연할 수 있는 건 냉혈한이라서가 아니다.

그랬다면, 저 시뻘건 눈동자가 저렇게 빛나지도 않았을 거다.

‘강한 사람이구나.’

꾹 쥔 그녀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무서워서 떠는 건지, 본인이 한심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꼼짝도 못 하겠는데…….’

원래 그것이 정상이었다.

아니, 사실 이 광경을 보고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하는 게 진짜 정상적인 반응일 터.

하지만 신초영은 혼미해지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옆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선 대성을 보며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으니까.

‘재고의 여지가 없어.’

대성은 죽어서도 구천(九泉)으로 떠나지 못하고 잔혹하게 능욕당하는 이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따위 개짓거리를 벌이는 놈들을 인간들의 세계에 풀어놨다고?

‘한 마리도 남기지 않는다.’

만약 저 자리에 혜정과 지수가 있었더라면, 같은 상상은 처음부터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런 현실이 벌어질 가능성은 0.0001%도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찾아내, 저들이 받았던 고통의 2배, 3배를 쳐서 되돌려주지.’

억울하게 제물이 된 이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그 혼세의 주민인가 뭔가 하는 괴물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악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척-

그는 맹렬히 불꽃을 터뜨리는 검을 가로로 눕혀 머리 높이로 들어 올린 뒤, 직선으로 힘차게 뻗었다.

[‘업화’ 모드의 두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염왕의 숨결>]

화아아-악!!

불의 소용돌이가 광풍(狂風)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대성이 조금씩 손잡이를 비틀며 검날의 끝이 옆으로 이동할 때마다, 수십이 넘는 원혼이 불타올라 재가 되었다.

너무나 기이하고 요란한 화장(火葬)이 하염없이 이어졌다.

“…….”

열풍이 신초영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자 슬픔에 젖은 눈이 드러났다.

그녀는 눈물을 삼켰다.

너울거리는 불꽃 너머, 처연하게 일렁이는 원혼들의 검은 실루엣을 바라보며.

***

제물을 태우고 제단 전체를 상당 부분 파괴하고 나자 공간 그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사방이 아지랑이처럼 한참을 일렁이더니, 이윽고 대성과 신초영의 눈앞에 펼쳐진 건 이름조차 없는 평범한 뒷산이었다.

‘출구가 무작위로 설정되는 건가.’

입구는 분명 신초영이 입원해 있었던 병실이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출입구가 다르다는 사소한 일보다는, 다음 일에 집중할 때였다.

‘황준영은 지금 하남시 구치소에 갇혀 있다고 했었지.’

지금 이 이름 모를 뒷산이 대한민국의 반대편 땅이 아닌 이상에야 하남시까지 섬멸룡을 타고 날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구현의 인을 발동시키기 위해 대성이 팔을 내뻗기 직전.

“어디로 가시게요?”

신초영이 초조한 눈빛을 보내며 그렇게 물었다.

“어디로 가든, 너를 데려갈 생각은 없다. 이제 서로 제 갈 길 가자고.”

“아니, 그……. 따라가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뭐, 솔직히 말해 동행을 허락했으면 하긴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신초영이 후련하다는 어조로 그리 말하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세 번째 시도 만에 온전히 전할 수 있었던 감사 인사였다.

“이번 일에 대해서뿐만이 아니에요. 들었어요. 저번 라이센스 시험 때, 정진철을 죽인 것도 당신이죠?”

“널 위해서 한 짓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어요. 결과적으로 그때 당신이 없었더라면…… 저는 그대로 정진철 그 새끼한테 목이 뽑혀 죽었을 테니까요.”

그녀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될 수 있는 만큼, 이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부족함 없이 저 남자에게 전하고 싶었다.

“저, 실은 아까까지만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

“당신을 보면서, 지금은 그런 생각 접었지만요.”

“내가 뭘 한 기억은 없는데.”

“그건…… 저도 뭐라 딱 잘라서 말은 못 하겠지만. 그냥…… 그냥 아까부터 옆에서 당신을 지켜보면서, 묘한 불씨가 마음속에 맺혔어요.”

동경과 경외에 가까운 듯하나, 확실히 정의 내릴 순 없는 감정.

하지만 그 감정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녀를 끌어 올려줬다.

죽을 뻔하다 살아나 생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진 것도 있었고.

“지금 당장은 무리지만, 그래도 언젠간 당신에겐 꼭 보답하고 싶어요. 제 능력이 닿는 일이라면.”

“마음대로 해.”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지만.

뒷말은 일부러 삼킨 대성이 구현의 인을 통해 섬멸룡을 불러냈다.

섬멸룡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포효했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온순한 양처럼 얌전히 몸을 숙였다.

탁-

대성은 가볍게 발돋움해 섬멸룡의 목덜미에 올라탔다.

신초영은 그것을 마치 무슨 신화적인 장면이라도 보듯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잠깐.’

그때.

이대로 황준영이 있는 하남시로 날아가려던 대성이 생각을 바꿨다.

‘황준영에게 가는 거라면, 저 여자도 데려가는 편이 낫겠지.’

황준영과의 접선에 성공한다고 해서, 그가 순순히 박동혁에 대한 정보를 분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사제(師弟) 간이었던 신초영을 내세운다면 조금은 그의 경계심을 허무는 데에 도움이 될 터.

대성이 신초영을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보답하고 싶다고 했지?”

“네? 아, 네!”

“뒤에 타.”

대성이 엄지로 섬멸룡의 등허리 부근을 가리켰다.

잠깐 정적이 내려앉고, 신초영은 약간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비행기도 타본 기억 없는데…… 요, 용을?’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

자정이 넘은 시각.

하남시 구치소의 담당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휘~ 휘~”

소변기 앞에 바짝 서서 볼일을 보던 그가 입술을 빼죽 내밀며 휘파람을 불었다.

다 필요 없고 빨리 교대 시간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콰- 앙!

“……?!”

바로 그때, 돌연 귀청을 따갑게 때리는 굉음이 바닥을 뒤흔들면서 그의 오줌 줄기를 흐트러뜨렸다.

“이런 씹, 뭐야, 이거?!”

담당관은 서둘러 바지춤을 추스른 뒤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위잉-! 위잉-!

비상 센서의 붉은 경광등이 어지러이 회전하며 야단법석을 피워댔다.

얼마 안 가 굉음이 들려왔던 방면으로 헐레벌떡 달려간 그의 얼굴이 아연한 기색을 띠었다.

“아…….”

그럴 만도 한 게, 화장실 한 번 갔다 온 사이에 구치소 방 하나가 문짝뿐만 아니라, 아예 그 좌우측의 벽면까지 통째로 뜯겨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아이 씨-!”

담당관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세상이 다 무너진 사람처럼 절규했다.

지금 박살이 난 저 방은 다른 잡범들을 잡아 가둔 곳이 아니었다.

무려 그 거물, 황준영이 있던 1인실 독방이 아니던가.

그것도 내일 당장 ‘스퀘어’로 호송될 예정인.

“아우 씨, X 됐네, 진짜!”

실오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독방 안을 살피던 담당관의 눈이 이제는 죽은 동태의 그것처럼 변했다.

문 쪽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크기의 구멍이 독방 제일 안쪽에 뻥 뚫려 있었다.

황준영이 한 짓일 수는 없었다.

각성자인 그에겐 난동을 피우지 못하도록 오러의 출력을 제어하는 초커(Choker)가 채워졌으니까.

“이런 씹팔 노인네! 뭐 어떻게 탈출한 거야?!”

부정을 넘어 분노의 단계로 접어든 담당관이 무전기를 꺼내며 외쳤다.

“여기는 ‘나’동 903호실! 탈옥 사태 발생! 반복한다! 여기는 ‘나’동 903호실……!”

***

하남시 외딴곳에 세워진 어느 의류 쇼핑몰은 벌써 1년째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방치된 폐건물이었다.

주변이 심각한 허허벌판에다 을씨년스런 분위기까지 겹쳐서 불량 청소년들이 놀이터로도 이용하지 않는 장소.

그곳 5층에서, 혼절해 있던 황준영이 싸늘한 바닥에 뺨을 처박은 채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으……. 으으……?”

둔탁한 뭔가에 연수(延髓)를 가격당해 기절한 건 생각난다.

아니, 정신을 차리니 기절했던 순간보다 좀 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테러……. 무슨 테러라도 발생한 게 틀림없어.’

가만히 잘 있던 구치소의 문과 벽이, 외부에서 누가 도폭선(導爆線)이라도 달아 터뜨렸는지 뜬금없이 폭발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벽이 뜯겨 나갔으면 사람이 들이닥치는 게 당연한 수순일진대, 그 뒤로 그냥 목덜미에 충격을 느끼고 픽 기절해버렸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그것도 구치소에서 이런 짓을 벌일 놈이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겠지.’

분명 그에게 원한을 가진 악질 각성자일 터.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미친놈은 구치소는 있는 대로 들쑤셔놓고, 정작 포로로 잡아 온 황준영의 손에는 아무런 조치도 해두지 않았다.

의자에 앉혀 밧줄로 칭칭 묶은 것도 아니고, 입에 재갈을 물려놓은 것도 아니다.

‘……혼란스럽군.’

오히려 이게 어떤 고도의 함정이 아닐까, 황준영이 의아해하던 그때.

저벅-

황준영은 발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누워 있는 탓에 뒤집힌 시야에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어떤 남자의 발이 들어찼다.

발은 영상의 컷(Cut)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처럼 갑자기 번쩍 나타났다.

“정신이 드나.”

마치 커다란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꾹꾹 압박하는 듯한 무거운 음성이었다.

황준영이 뻐근한 목덜미를 비스듬하게 꺾어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너, 너는……?!”

아마 적어도 10년, 20년은 지나야 겨우 잊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위압감인데 어찌 몰라보랴.

얼마 전 라이센스 시험에서, 황준영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던 하얀 머리 남자가 독기 어린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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