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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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쇠칼 같은 손으로 박동혁의 머리를 들고 있는 괴인이 추하게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괴인은 얼굴을 전부 가리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가면에 그려진 가짜 이목구비가 녀석의 감정에 따라 진짜인 듯이 표정을 바꿔갔다.
목 아래서부터 시작해 반대편 정수리까지 꿰뚫린 박동혁의 머리는, 죽었다고는 해도 아직 미미하게 혈색이 돌고 있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됐다는 의미였다.
“아…….”
“선생님…….”
황준영의 입에서 무언가 말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결국 언어가 되지 못하고 신음만 흘러나왔다.
신초영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인 박동혁보다도, 지금 당장 옆에서 불안정한 반응을 보이는 황준영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털썩!
이윽고, 망연자실한 황준영의 무릎이 땅에 부딪혔다.
“도, 동혁아…….”
“아저씨, 안녕하세요. 우리 오늘 처음 보는 거죠?”
갑자기 괴인이 황준영에게 아는 체를 하기 시작한 순간.
땅바닥을 향하고 있던 황준영의 머리가 차츰 위로 올라갔다.
가면에 그려진 검은 입이 낫처럼 휘어지며 비릿한 조소를 자아냈다.
“아저씨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아저씨를 알아요. 유명하시잖아. <소울>의 단장, 황준영. 정의로운 사냥꾼. 하지만 지금은 제자의 복수를 자처한 대량 살인마.”
“……너 이 새끼. 나를 아나?”
“박동혁 소장님한테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존경하고 있었어요.”
박동혁 소장님.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괴인은 지금 분명 박동혁을 ‘소장님’이라고 불렀다.
마치…….
“그런데 이걸 어쩐다? 제가 소장님과 더불어 존경하고 있었던 분과 최악의 첫 만남이 되어버렸네?”
마치 예전부터 쭉, 이 괴인은 박동혁과 알고 지냈던 사이라는 것처럼.
그제야.
저 말이 의미하는 ‘결론’이 황준영의 뇌리를 스침과 동시에, 괴인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저씨! 저는 박동혁 소장님의 전속 조수로 ‘일했던’ 남재우라고 합니다!”
“……!”
“지금은 ‘로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요!”
내막이 드러났음에도,충격을 받은 나머지 황준영은 연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만 지었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대성이 가늘게 눈을 좁혔다.
-조수도 있었군.-
-그럼. 옆에서 보조할 인간도 없이 그 넓은 연구실을 운영하겠나.-
‘조수가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남재우, 아니, 로만으로부터 느껴지는 저 익숙한 기운이 사가트와 제롬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분석할 필요도 없다.
그도 그럴 게, 몬스터가 말을 하고 있다면 십중팔구 그거 아니겠는가.
‘디멘션 테이커였을 줄은 몰랐군.’
<귀안>을 통해 확인한 제롬의 기억에 따르면, 박동혁은 분명 혼세의 존재들과 내통하던 기술자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디멘션 테이커가 박동혁을 죽인다?
거기다 그 디멘션 테이커의 정체가 알고 보니 박동혁의 조수였고?
‘일이 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빌어먹을.’
느닷없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대성이 골치를 앓는 사이.
그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사태의 경황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황준영이 떨리는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대체 이게 다 뭐란 말이냐!”
“궁금해요? 예 뭐, 당연히 궁금하시겠죠. 어차피 아저씨도 곧 소장님 따라가실 텐데 서비스로 대답해드려야-”
화르륵-!
커다란 대검에 휘몰아친 업화의 불꽃이 로만의 말을 가로막았다.
“뭘 구구절절하게 설명해.”
얼음장같이 서늘한 연구실을 단숨에 뒤덮는 열풍.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잠시 대성을 돌아보았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는, 너를 죽이고 내 눈으로 직접 보면 그만이거든.”
“너 바보냐?”
로만이 찢어질 듯이 입꼬리를 귀까지 비틀어 올렸다.
“죽은 놈한테서 대답을 어떻게 듣게? 아니, 그보다 이 시건방진 새끼야. 네가 날 죽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가시 돋친 도발이 날아왔지만 대성은 굳이 입 아프게 대꾸하지 않았다.
그 덤덤한 반응에, 절대 내려갈 것 같지 않았던 로만의 입꼬리가 수평이 되었다.
“……뭐, 좋아.”
로만이 팔을 내저어 쇠칼에 꿰고 있던 박동혁의 머리를 내던졌다.
그리고 1인용 방공 셸터의 문과 맞닿은 벽에 달린 붉은 레버로 손을 뻗었다.
“그럼 다들 그렇게 끝까지 알쏭달쏭한 채로 이승 하직하셔.”
덜컹-!
로만이 레버를 내린 순간.
텅-! 텅-! 텅-!
넓은 연구실을 잔뜩 메우고 있었던 유리관의 문이 활짝 열리며 드라이아이스로 만든 것 같은 연기가 자욱하게 뿜어져 나왔다.
“……!”
오러를 펼치지 못하는 신초영도 일순 직감할 정도의 불길한 기척.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크르륵-
크으윽-
으아악-!
분명, 죽은 걸로 보였던 유리관 속의 인간과 몬스터가 저마다 들끓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는 광경을.
“소장님도 해낼 수 없는, ‘나’의 인생 역작들이지.”
싯누런 용액에 흠뻑 젖은 좀비 같은 인간과 몬스터 무리가 순식간에 셋을 에워쌌다.
끄으으-!
그때, 인간 무리의 육체가 기괴한 변이(變異)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대성의 눈에는 그것이 꽤 낯설지 않았다.
‘……정진철도 저랬었지.’
라이센스 시험 때, 몬스터의 육신으로 돌변했었던 정진철의 모습과 굉장히 흡사했다.
여긴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각성제의 생산 공장과 같은 곳.
저 변이 또한 ‘융합 앰플’로 인해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다.
“서, 선생님. 일어서세요. 지금 주저앉으실 때가 아니에요.”
“초영아…….”
혼란에 빠진 황준영을 일으켜 세운 신초영이 뒷걸음질을 치며 대성의 몸에 가까이 붙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연구실 내부가 군단형 게이트를 연상케 하는 괴물들의 소굴로 돌변한 상태였다.
“너희들, 산 채로 짐승들한테 살이 뜯기는 고통이 어떤지 모르지?”
로만이 킬킬 웃었다.
“마음처럼 숨이 멎지도 않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와중에 살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지옥 같은 공포를 한번 느껴보라고.”
“지옥 같은 공포?”
듣고 있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로만의 말에 되돌아온 건.
대성의 실소였다.
로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왜 웃어?”
“웃기니까.”
“웃겨?”
“고작 이따위 짐승 몇 마리 내세우면서 지옥 같은 공포니 뭐니 운운하니 어이가 없어서.”
허세 부려도 소용없다는 말이 제롬의 입에서 튀어나오기 직전.
-섬찟.
로만은 느꼈다.
‘이, 이건……?’
디멘션 테이커가 되어 혼세의 세계를 왕래하면서도 느껴본 적 없었던,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해일’과도 같은 무언가가 사방천지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감각을.
그것은 단순한 기분 탓도 아니고, 심지어 로만만 그 감각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서, 선생님. 저, 왠지 속이…….”
“뭐, 뭔가가 오고 있어.”
대성과 같은 편이었던 그 둘도 로만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성을 제외한 모두가 섬뜩한 뭔가에 몸서리를 칠 무렵.
대성이 말했다.
“진짜 지옥이 뭔지 보여주지.”
[필드, ‘귀왕의 영지’를 구현합니다.]
[해당 필드가 내장된 고유결계를 전개할 범위를 설정해주십시오.]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시스템 메시지가 대성의 시야를 스치며 떠오른 순간.
너무나도 시커먼, 작디작은 만월(滿月)이 돌연 그의 손에 떠올랐다.
“여기 전부.”
파각-!
대성이 그렇게 말하며 흑요석 같은 검은 보름달을 깨부수기 무섭게.
사아아-
불길한 안개가 연막탄 수십 개를 동시에 터뜨린 듯한 속도로 연구실 내부에 스산하게 퍼져나갔다.
“윽……!”
신초영과 황준영, 그리고 로만이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내 연기가 잦아드는 낌새가 보이자 신초영이 얼굴을 가린 손을 서서히 내렸다.
“……!”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어떤 악몽인지 알 수 없었다.
적막한 암흑이 천지에 깔린 죽음의 황야가 저 아득한 지평선까지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방금 대성의 손에서 떠올랐던 것과 똑같은 검은 만월이, 지금은 저 잿빛 창공에 못 박혀 핏물 같은 폭포를 쏟아냈다.
“이, 이게 다 뭐야?”
느닷없이 뒤바뀐 풍경에 로만이 공황에 빠진 가운데.
이면(異面) 세계를 불러온 장본인, 대성이 말을 이었다.
“나와라.”
[죽음의 군단이 절대자의 명령을 따릅니다.]
쿠르릉-!
묵빛 하늘에 블랙홀 같은 구멍이 뻥뻥 뚫리며 검은 불기둥이 죽음의 황야에 내리꽂혔다.
무수한 망자의 군단이 절대자의 명을 듣고 공간을 찢으며 나타났다.
그어어-!
가시 왕관을 쓴 해골 기사, 사령단장 돌프가 대성이 위치한 선봉에 나란히 섰다.
“어…….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를 헤아릴 수가 없는 망자의 대군이 로만과 연구실의 짐승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모두가 발을 떼지도, 숨을 쉬지도, 목소리를 뱉지도 못했고.
슥-
대성이 미리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명(命)했다.
“유린하라.”
우어어어억-!!
지옥이 도래했다.
***
연구소 안에 있었던 유리관의 개수는 기껏해야 50~60개.
하지만 대성의 명령을 듣고 나타난 사령 군단은 수백이 훨씬 넘어갔다.
뒤엎는 게 불가능한 판도(版圖).
[사령단장 돌프가 고유 권능, <광화>를 발동합니다.]
[사령 병사의 사기가 오르며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진홍색 갑주를 입은 사령 병사들이 문자 그대로 불타올랐다.
두두두두-!
화염을 몸에 두른 수백의 군단이 대지를 박차며 유리관의 괴물들을 향해 진격했다.
푸욱-!
끼에에엑-!!
창칼이 튀어나가 괴물들의 낯짝과 심장을 무자비하게 꿰뚫고…….
척후(斥候)에 있는 병사들이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리자 묵빛 하늘이 잠깐 새까맣게 물들었다.
우어어억-!!
끼에에에-!!
섬뜩하게 드높여지는 망자들의 전투 함성 사이로 유리관 괴물들의 처절한 비명이 뒤엉켰다.
“서, 선생님…….”
“…….”
“선생님. 제, 제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나도 모르겠다. 이건, 이게 다 무슨…….”
중세시대, 아니, 현실에서도 영원토록 보지 못할, 마치 전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환각이라기엔, 혹은 꿈을 꾸고 있다기엔 사방에서 넘실대는 피비린내와 땅을 둔중하게 울리는 저들의 난폭한 기세가 너무나도 진짜 같았다.
“저 남자……. 저 한대성이란 남자…… 대체 정체가……!”
그리고 이 거짓말 같은 현실에 압도된 황준영이 황망하게 중얼거리던 그때.
투두두두-!! 화아아악-!!
퓨우우우-!!
육신의 절반이 기계로 이뤄진 유리관 괴물들이 개틀링을 발사하거나, 화염방사기로 불을 뿜거나, 등허리에 달린 바주카로 미사일을 마구 쏘아대며 나름대로 반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현대 화기와 냉병기가 격돌하는 순간이었다.
퍼버버벙-!!
폭연(爆煙)이 지상을 수놓았고 땅거죽이 뒤엎어졌다.
검과 창, 그리고 화살이 총알과 미사일을 앞서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설령 냉병기 쪽이 압도적인 수적 우세로 밀어붙인다 할지라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개틀링의 총알 세례에 벌집이 되는 병사들이 있는가 하면, 미사일에 당해 산산조각 폭사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위대한 현대 병기도 이미 죽은 망자들을 두 번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어어어-
콰- 악!
벌집이 되어 온몸에 구멍이 송송 뚫린 병사도, 화염방사기에 당해 온몸이 그을린 병사도, 미사일에 맞아 몸뚱이가 절반가량 사라진 병사도.
촤아악-!
콰드득-!!
끼에에엑-!! 크아아아악-!!
다들 어떻게든 땅을 기거나 다리를 질질 끌며 유리관 괴물들의 목을 물어뜯고 심장을 찢어발겼다.
“……! ……?!”
당하는 처지에선 악몽도 이만한 악몽이 없었다.
이성과 상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치를 아득히 초월한 사태.
로만은 좀처럼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이, 이거는 아무리 봐도…….’
어떻게 자신이 저 유리관 괴물들에게 가세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는, 그런 속 편한 상황이 아니었다.
휙-!
로만이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려 달음박질쳤다.
이 지옥 같은 세상이 과연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은 줄행랑이 최선이었다.
로만이 헐레벌떡 달리던 중.
치리리링-
화- 악!
“으억-!”
뒤에서 갑자기 불쑥 날아온 은색 사슬이 로만의 발에 휘감겨 그를 고꾸라뜨렸다.
콱-!
사슬의 끝에 달린 갈고리가 로만의 발목을 관통했다.
의식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격통이 치밀었으나, 로만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촤아아악-
발에 칭칭 감긴 사슬이 그를 속수무책으로 끌어당겼으니까.
“컥……! 끄, 어헉……!”
로만이 뒤통수와 등골이 울퉁불퉁한 바닥에 쓸리는 아픔에 몸부림치면서도 눈동자를 굴렸다.
저 끝에.
검은 투구를 쓴 괴물이 힘차게 사슬을 잡아끌고 있었다.
지옥에서도 잔학무도함이라면 손에 꼽는 고문 집행관 마수, ‘망령 채집가’였다.
“어흑, 흑……?!”
까까까까깡-!
로만이 다급하게 양손의 쇠칼로 발에 묶인 사슬을 잘라내려고 했다.
쇠로 쇠를 자르는,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발악이었으나…….
“조금만, 조금만 더……!”
혼세의 힘이 담긴 강력한 권능, <발검(拔劍)>의 쇠칼은 느리지만 조금씩 사슬에 균열을 새기고 있었다.
“조금만, 헉, 조금만……!”
로만이 조금만, 이라는 말만 안쓰럽게 되풀이하며 서두르던 그때.
훙-!
거구의 사령 마수, 게드락이 자신 쪽으로 질질 끌려오는 로만을 바라보며 철퇴를 치켜들고 있었다.
타이밍 맞춰서 언제든 내려찍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어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개……!”
이대로 가다간 쥐포가 될 판.
칭-!
“아……!”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쇠칼로 사슬을 자르는 데 성공한 로만이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다시 도망쳤다.
한편.
“병신 같은 새끼들.”
저들의 실책에 욕설을 뱉은 건 사령단장 돌프였다.
돌프가 나란히 선 대성을 슬그머니 흘겨보았다.
-끄덕.
대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제가 직접 저놈의 목을 주군께 바치겠나이다.”
돌프가 고삐를 휘둘렀다.
푸르륵-!!
살이 뭉개지고 부패한 흑마가 흉흉하게 눈을 빛내며 대지를 질주했다.
먼지의 띠를 뿌옇게 날리며 달리는 흑마가 빠르게 로만과 거리를 좁혀나가는 것과 동시에.
스릉-
돌프의 검집에서 죄악검이 살기 어린 기세로 뽑혀 나왔다.
“콜렉션이 또 늘었군.”
저놈의 목은 주군께 바치고.
남은 영혼은 이 죄악검에 박아 넣어 보란 듯이 전시(展示)하리라.
그렇게 결심한 돌프가 광야를 내달리는 흑마의 질주에 박차를 가하려던 그때.
“음……?”
백골의 눈두덩에 박힌 돌프의 자줏빛 동공이 흔들렸다.
당황한 건 돌프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저건.”
영지의 한복판에 서서 전방을 주시하던 대성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기 멀찍이서 도망치는 로만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저벅-
유리관의 괴물도, 사령 마수도 아닌 무언가가 걸어오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