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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85화 (85/180)

# 85

085

햇빛 한 점 스며들지 않아 어둡기 그지없는 석굴 안쪽.

-서걱!

은빛 검광(劍光)이 부드러운 횡선을 그리며 어둠을 가르자, 사방에서 녹색 체액이 솟구쳤다.

키에에엑-!!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석굴을 잠식하고 있던 사주들이 그 노도 같은 칼부림에 저항도 못 하며 죽어 갔다.

“끝이 없네, 끝이.”

불평을 내뱉는 신초영이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이빨에 문 하얀 담배가 작게 위아래로 들썩였다.

-팍.

그녀는 팔을 휘저어 쌍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몇 마리 남았지?”

신초영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그리 혼잣말을 중얼거린 순간.

-화륵.

[제2로(路) 돌파에 필요한 사주 토벌 숫자: 87 / 100]

화염에 휩싸인 사각의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옥의 시스템 메시지였다.

“얼마 안 남았네.”

팝업에 적힌 텍스트를 확인한 신초영이 웃음을 짓는 사이, 또 다른 사주 무리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둠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녀는 놈들한테 제대로 시선도 주지 않고 무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파박-! 서걱-!

난무하는 검영(劍影)이 쾌속하게 사주들의 몸을 수십 갈래로 잘라 냈다.

퉤.

그녀는 입에 문 담배를 뱉은 뒤, 메시지를 확인했다.

[제2로가 클리어됐습니다.]

[제1로, 제3로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수정구가 생성됩니다.]

메시지를 달리 해석하자면, 현재 사주 무리를 전부 죽여 할당량을 채우고 클리어된 곳은 제2로가 유일하다는 의미.

뿌듯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은 신초영은 수정구가 생성되는 동안 짧게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털썩.

그녀는 석굴 벽면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몸에 걸친 붉은 로브의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런 신초영의 모습은 얼핏 보기엔 ‘인간’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형체를 하고 있었다.

창백한 걸 넘어 아예 석고상처럼 새하얀 피부는 쩍쩍 갈라지고…….

이마 왼쪽에는 끝이 뾰족한 뿔 같은 것이 피부를 뚫고 빼죽 튀어나와 있었다.

과거엔 뒤로 단정하게 묶었던 검은 말총머리는 지금, 붉게 물든 산발이 되어 흘러내린다.

두 눈은 흰자 대신 검은자만 가득했고, 작게 수축한 샛노란 동공만 조용히 번뜩였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오러를 전부 잃고 삶을 비관했던 그 나약한 여자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변화.

[수정구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때, 한창 휴식 중이던 신초영의 지척에 보랏빛 구슬 두 개가 두둥실 떠오르며 나타났다.

제1로, 제3로의 상황을 보여 주는 수정구였다.

“선생님이랑 아저씨는……?”

신초영이 고개를 쭉 내밀어 제1로의 현황을 중계하는 수정구부터 들여다보기 무섭게.

쾅-!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간 사주의 육편이 CCTV 같은 수정구의 화면에 팍 튀었다.

초록 체액이 찐득하게 천천히 흘러내리는 그제야, 제1로의 광경이 제대로 드러났다.

강건한 골격을 지닌 흑색 피부의 노인이 번개 같은 속도로 석굴을 누비며 사주 무리를 때려잡고 있었다.

용암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오른팔과 냉기를 머금은 왼팔이 유려하게 교차하며 연타를 쏟아 냈다.

“잘하고 계시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노인, 황준영의 거침없는 맹위를 확인한 신초영이 피식 실소하며 제3로 수정구로 눈길을 돌렸다.

혼종 괴물의 모습을 한 박동혁이 난폭하게 참마도(斬馬刀)를 휘두르며 사주들을 썰었다.

참 박동혁다운 마구잡이식 전투라고 신초영이 생각하던 그때.

[제1로, 제3로가 클리어됐습니다.]

[협곡의 동굴이 통합됩니다.]

[여왕의 왕실로 통하는 길이 열립니다.]

쿠구구-.

지축이 희미하게 흔들리더니, 양측을 가로막고 있던 동굴 벽이 흐릿해지며 서서히 사라졌다.

신초영, 황준영, 그리고 박동혁이 각기 맡았던 세 갈래 길이 전부 통합됐다.

저벅-.

투명해진 벽을 넘어온 황준영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입에 물린 담배를 낚아챘다.

“끊으라고 했다.”

“힘들 때마다 피면 도움이 된다고 대성 씨가 알려 줬는데…….”

“그 남자도 참 좋은 거 알려 주는군. 네 선생님은 나다.”

신초영이 살짝 토라진 얼굴로 속으로 불만을 삼켰다.

맞은편에서 걸어 나오던 박동혁이 거구에 흠뻑 묻은 체액을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얘 아빠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피면 좀 어때.”

“이 얘긴 나중에 또 할 거네. 아무튼, 슬슬 끝내고 여기서 나가자고.”

황준영이 가운데 서고, 양쪽에 각각 신초영과 박동혁이 자리 잡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돌 벽으로 가로막혀 있던 곳에는, 어느덧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철문이 나타난 상태였다.

다름 아닌, 여왕 사주의 왕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황준영이 문에 손을 갖다 댄 순간.

쿠구구궁-!

귓속을 무겁게 울리는 소음과 함께 철문이 활짝 열리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넓은 공동이 드러났다.

황준영이 새카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기척은 많이 느껴지는데……. 이렇게 어두우면 거의 장님 신세나 다름없군.”

“제가 밝혀 볼까요?”

“어두운 곳에서 벌레들이랑 싸울 순 없지. 그러거라.”

신초영이 몇 발짝 걸어 나와 오른손에 움켜쥔 길쭉한 마검(魔劍)을 세차게 땅에 내리꽂았다.

파지직-!

그러자 노란 뇌전이 광채를 번쩍이며 어두운 공동을 환하게 밝혔다.

“이런…….”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훤히 드러나자, 박동혁이 징그럽다는 듯이 이맛살을 구겼다.

사각-. 사각-.

아까 통로에서 봤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의 사주들이 꾸물거리며 물밀 듯이 몰려왔고…….

케에에에엑-!!

공동 제일 안쪽에, 여성의 상반신이 달린 거대한 거미가 기괴한 포효를 터뜨렸다.

‘거미 계곡’을 지배하는 상위 마수, 여왕 사주다.

광채를 뿜어내며 공동을 밝히던 신초영이 식은땀 한 방울을 흘렸다.

“이만한 숫자의 사주에다 여왕이면……. 만만치 않겠는데요?”

“그래. 쉽지 않겠구나.”

셋 모두, 지금 이 순간 같은 풍경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있었다.

2년 전.

처음으로 이곳 ‘거미 계곡’에 떨어졌던 그때도, 이렇게 수많은 사주 무리가 끝없이 몰려오며 그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며 마음을 굳건히 다진 황준영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여왕이 있는 진로는 내가 맡지. 초영이랑 동혁이 너희들은 나머지 것들이 방해할 수 없도록-.”

그의 말이 방점을 찍기도 전.

화아-악!!

돌연 천장에서 쏟아진 불벼락이 사주 무리를 일제히 휩쓸었다.

“…….”

갑작스레 벌어진 사태지만, 셋은 놀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르륵-!!

강렬한 기세와 함께 쏟아져 내린 업화의 불길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공동을 집어삼키듯 퍼져나갔다.

그 많던 사주 무리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검은 재가 되어 타 죽었다.

어처구니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화력이라고 셋 모두 탄성을 흘리는 사이.

-팟.

불벼락이 멈추고.

쿵-!

위쪽에서 떨어진 하얀 머리의 거한이 바닥에 착지하자, 굉음과 함께 공동 전역이 흔들렸다.

탁-!

하얀 머리 거한이 땅을 박참과 동시에, 무거운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뒤에 있던 셋을 밀어냈다.

“……!”

신초영이 오른팔을 세워 충격파를 막아내는 와중, 한쪽 눈만 찔끔 떠서 전방을 바라보았다.

키에에엑-!!

불길 너머 거뭇하게 실루엣만 드러난 여왕 사주가 공포에 질린 비명을 토해냈다.

그리고 하얀 머리 거한의 새카만 인영이 불길 속에 불쑥 난입하더니, 화염을 뿜어냈던 대검을 난폭하게 휘둘렀다.

콰지지직-!!

키에에엑-!!

살이 도륙당하는 소리 사이로 여왕의 절규가 뒤섞이며 끔찍한 하모니를 자아냈다.

황준영이 감탄했다.

“여왕을 한 방에….”

“뭘 새삼스럽게 놀라고 있어. 저놈이 자기 혼자 무쌍 찍던 게 하루 이틀이냐?”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쉬는 박동혁이었다.

그리고 신초영은…….

‘2년 정도 지났으니 근처까지는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가공할 만한 힘 앞에서 따라잡는 게 불가능한 격차를 느끼고 있었다.

‘목표 삼을 게 따로 있지. 그냥 생각을 말자, 말아.’

2년 전에 마력(魔力)을 개방하고 성장의 활로가 트였음을 깨닫자, 그녀는 이대로 쭉 정진하면 저 남자를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어깨너머로 저 남자의 맹위를 지켜볼 때마다 느껴지는 건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위압감이었다.

진심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허무맹랑하지 않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저 남자의 강함은 허무맹랑했고 비현실적이다.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주홍색 불빛으로 뒤덮인 신초영의 얼굴이 씁쓸한 웃음을 그렸다.

그때.

저벅-.

하얀 머리의 거한, 대성이 산책이라도 하듯 화염 속에서 태연히 걸어 나왔다.

박동혁이 커다란 참마도를 어깨에 올린 채 물었다.

“최종 점검으로 우리 보고 여왕 사주랑 싸우라고 한 건 너잖아? 시험 출제자가 시험을 대신 끝내 주다니. 이게 무슨 경우람.”

“최종 점검이 중요한 게 아니야.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뭐?”

대성은 미간을 좁히며 물어 오는 박동혁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시스템을 불러왔다.

[해당 지역에서 퇴장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를 선택하자 업화에 휩싸여 난장판이 된 공동이 사라지고 새하얀 판테온의 세계가 나타났다.

살짝 서두르는 그 움직임에, 황준영이 물었다.

“밖에 무슨 일 있나?”

“많은 일이 있었지. 일단 자세한 설명을 하기 전에…….”

대성이 말끝을 흐리며 조용히 셋을 돌아보았다.

2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이 눈빛만으로도 대성이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말은 절대적.

셋은 순순히 “열람.”이라고 말했다.

-화륵.

현재 셋의 스테이터스가 동시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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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영]

레벨: 46

종족: 마수

보유 스킬: [발화(發火) Lv.4] [냉각(冷却) Lv.3]

보유 SP: 0

[근력 138(+41)] [내구력 102(+31)] [민첩 150(+45] [체력 116(+35)]

피로도: 33 (%)

마력: 287 / 470

고유 특성:《복수(複數) 차원의 이용자: 모든 능력치가 30%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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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혁]

레벨: 34

종족: 마수, 혼세종(昏世種)

보유 스킬: [광기의 포효 Lv.1]

보유 SP: 0

[근력 94(+94)] [내구력 87(+87)] [민첩 68(+68] [체력 70(+70)]

피로도: 23 (%)

마력: 310 / 350

고유 특성:《융합체(融合體): 현재 레벨의 모든 능력치가 2배로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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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일컬어도 부족함 없을 내용.

그들은 정확히 1년 만에 대성이 제시했던 목표치인 레벨 20을 달성했고, 그의 일행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다.

“…….”

처음엔 가볍게 베팅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판테온으로 데려왔는데 예상 이상으로 크나큰 성장을 해 줬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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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초영]

레벨: 49

종족: 마수

보유 스킬: [난도(亂刀) Lv.4]

보유 SP: 0

[근력 153] [내구력 117] [민첩 179] [체력 122]

피로도: 21 (%)

마력: 245 / 500

고유 특성:《불굴(不屈): 피로도가 80%를 초과할 시, 모든 능력치 5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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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초영은 미친 듯이 지옥을 전전긍긍하며 레벨을 올렸다.

고유 특성의 도움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황준영과 박동혁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곱절의 노력이 들어가야 했던 건 당연할 터.

그렇게 그녀는 둘보다 먼저 1차 목표인 레벨 20을 달성했고, 그 과정에서 잠금 상태였던 고유 특성마저 해금할 수 있었다.

‘이놈들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나한테는 나쁠 거 없지.’

어디까지나 짐작이지만, 저 정도 스테이터스면 아마 웬만한 S급 사냥꾼도 가볍게 압도할 터.

그런 이들을 세력에 넣는다는 건 굉장한 이득이었다.

‘내 뒤통수를 칠 염려도 없고.’

단순히 그들을 맹신하기에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모르는 얘기지만…….

2년 전 그 날, 이 셋을 ‘거미 계곡’에 방치하고 판테온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시스템이 이런 메시지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이(異)차원의 생명체들이 지옥의 에너지를 받아들였습니다.]

[절대자께서는 그들을 ‘지옥’의 주민으로 변절시킬 수 있습니다.]

[마수화된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절대자께 영원토록 충성할 것입니다.]

[생명체들을 마수화(魔獸化)시키겠습니까? 예 / 아니오]

천상의 초월자를 나비 소녀로 만들었을 때 등장했던 메시지와 얼추 비슷한 내용이었다.

대성은 고민하지도 않고 그들을 마수로 만들었다.

이로써 그들이 배반할 위험은 원천봉쇄 된 셈.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예 어느 차원에도 속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수화된 나비 소녀와 달리, 저 셋은 아직 인간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 상태.

마수화는 그 기억까지 전부 지워버릴 정도로 만능은 아니다.

다만, 무의식적으로나마 저 셋은 대성의 말이면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생각 회로가 돌아갈 뿐.

‘그 정도면 만능이나 다름없으려나.’

시간이 흐를수록 황준영과 신초영의 피부가 서서히 변색하고 뿔이 돋는 것도 전부 마수화의 영향이었다.

종족이 비 특이적인 박동혁은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지만 말이다.

저들에게는 모습이 바뀐 게 지옥에 오래 체류했던 영향이라고 설명하자, 그런대로 이해해 주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셋의 상태창을 천천히 훑어본 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수준까지는 성장한 셈이다.

“방금 막 마지막 앰풀의 거래자를 발견했다.”

대성이 운을 뗀 순간, 셋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좀처럼 꼬리가 밟히지 않던 사냥감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는 소식이었으니까.

“십수 명의 여러 브로커를 거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놈이라 행방이 불투명했지. 하지만 오늘, 드디어 그 새끼가 어떤 낯짝을 했는지 알게 됐다.”

“대체 어떻게 찾은 거예요?”

“브로커를 하나씩 족치다 보니 마지막에 그 새끼 이름이 나오더군.”

무식한 대답이 돌아오자, 신초영은 입 아프게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문세걸. 마카오 암흑가에선 상당한 거물이라던데. 아마 이놈 하나 족치려면 더러운 놈들이랑 많이 꼬여야 할 거야.”

살짝 경고하는 어조로 대성이 말하자, 박동혁이 실소를 지으면서 팔짱을 꼈다.

“꼬여도 같이 꼬이는 거잖아? 뭘 새삼스레.”

“아니. 미안하지만 난 이번 일에서 빠진다.”

“엉?”

의외의 대답에, 박동혁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너희 셋이서만 한다.”

“너는?”

“난 따로 할 일이 있어.”

“무슨 할 일.”

“말하지 않아도 여길 나가면 알 수 있을 거다.”

박동혁이 속으로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콧방귀를 꼈다.

그들이 1년 만에 레벨 20을 달성한 뒤로, 대성은 그들에게 많은 일을 시켰다.

대표적으로 게이트를 돌게 하거나, 디멘션 테이커와 앰풀의 거래자를 잡는 일이었다.

게이트로 보내는 거야, 이미 그들의 생김새는 인간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소환수라고 주장하니 문제없이 해결되었다.

하지만 디멘션 테이커가 엮인 일은 다르다.

대성은 저 셋이 과연 혼세의 핵심 병력인 디멘션 테이커도 능히 쓰러뜨릴 수 있을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작업만큼은 항상 본인이 따라나섰다.

그랬는데…….

“상태 창을 살펴보니 내가 없어도 알아서들 잘하겠어.”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대성의 칭찬이 뿌듯했는지 신초영이 배시시 웃었다.

“당장 떠날 수 있도록 박정호 협회장이 전용기를 대기시켜 놨다. 최종 점검은 너희들이 문세걸 그놈을 얼마나 깔끔하게 족치는 지로 하지.”

“알겠어. 알겠으니까 슬슬 여기서 나가면 안 될까? 문세걸인지 문지방인지 하는 놈보다 네가 해야 한다는 일이 뭔지가 더 궁금하네.”

아까부터 묘하게 신경 쓰인 참이던 박동혁이 재촉해 왔다.

판테온에서 백날 떠들어 봤자 시간 낭비라는 건 대성도 동감하는 바.

“그래. 나가서 보면 알 거다.”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판테온에서 퇴장합니다.]

현실로 복귀하고 고즈넉한 밤 풍경이 펼쳐진 순간.

그들은, 판테온을 나가면 알게 된다는 대성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단박에 깨달았다.

“……진짜인가?”

아연실색한 황준영이 낮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미 계곡을 갔다 온 반나절 사이.

분명 출발하기 전에는 ‘없었던 것’이 창공의 흑운(黑雲) 사이로 막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상 유례없는 크기를 지닌 그것은, 대기권에 떠올라 마치 달이나 태양처럼 전 세계 사람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대성을 제외하면.

“1등급 게이트다.”

그는 북두칠성이라도 가리키듯이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마카오로 가.”

7년 만에 나타난 1등급 게이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느긋하게 움직일 생각도 없었다.

“저건 내가 닫을 테니까.”

2년 전.

엘하임의 기억 덕분에 예감했던 그날이, 이제는 코앞까지 도래했다는 증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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