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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게이트가 상공에 출몰하고, 당일 바로 사라진 지 이틀째.
일반인들이야 곧장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각국의 사냥꾼 협회 관계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중국 사냥꾼 협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광활한 대륙 위를 모조리 뒤덮은 미라 괴물과 게이트의 등장을 쉬쉬할 수는 없었다. 설령 지금은 무사히 진압되었다고 해도.
그래서 협회 관계자들은 추후 대책 마련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무에 돌입했다.
‘제발…….’
그리고 중국 사냥꾼 협회의 회장, 장정영은 지금, 모든 직무를 잠시 미룬 뒤 전용 리무진을 타고 질풍과 같이 마카오로 향했다.
초대형 게이트로 인한 비상령만 아니었으면, 그는 엊그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를 협회 만찬에 초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게이트로 인해 대륙 전역이 들썩였고, 협회로 이동 중이던 장정영의 가족은 잠시 마카오에 발이 묶여 만다린 호텔에 머물게 됐다.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협회 근처로 데려오는 거였는데!’
장정영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에 깊은 후회를 느꼈다.
설마하니, 가족이 투숙한 호텔에서 사고가 생길 줄은.
게다가 좀비라니!
게이트가 터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곳에 있던 사람이 몬스터로 변해 튀어나왔단다.
이 황당무계한 소식을 듣고 인근의 공안과 클랜이 현장으로 출발했다고는 했으나, 그는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발 무사하기를.’
‘제발’이라는 단어만 속으로 수백 번을 되뇌는 사이, 장정영이 탄 리무진이 만다린 호텔 앞에 정차했다.
사고현장 앞에서 술렁이는 시민들 사이로 공안 부대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장정영은 급히 경례를 해오는 공안들을 무시하고 호텔 건물 가까이 다가갔다.
“아, 아아……!”
회전문 너머, 사람의 피로 낭자한 로비를 눈에 담은 장정영이 아연실색했다.
그는 가까이에 있던 공안을 붙잡으며 절박한 어조로 물었다.
“상황은? 현재 상황 보고하게! 지금 당장!”
“그, 그게…….”
평소엔 말 한마디 섞는 것도 불가능했던 높으신 분이 채근하자, 공안이 당황하던 그때였다.
묵직하게 울리는 발소리가 장정영의 고개를 돌아가게 했다.
하얀 머리의 남자와 그의 소환수로 보이는 괴인이 로비를 벗어나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당신은…….”
하얀 머리 남자, 대성과 장정영은 서로 구면(舊面)이기는 했다.
이 2년간, 당연히 대성이 국내에만 머문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냥꾼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사건이 벌어진 즉시 호텔로 진입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그게 한대성일 줄은.’
긍지 높은 대국(大國)의 협회장 자리에 앉은 장정영조차 시원하게 인정하는 것이 대성의 실력이었다.
한대성, 그가 왜 예고도 없이 중국에 있는지는 차치하고.
‘어쩌면!’
대성이 직접 이번 일에 나서 주었다면 희망이 있었다.
가족은 무사할 거라는 희망이!
아니나 다를까.
“아아!”
이윽고 장정영은 커다란 대성의 장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손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리리야!”
“……할아버지? 할아버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먼저 달려가는 둘이었다.
리리를 와락 껴안은 장정영은 안도하기 무섭게, 이내 형언키 어려운 불안감을 느끼고는 물었다.
“리리야. 엄마랑 아빠는? 그 애들은 어떻게 됐느냐!”
“……흑!”
“아…….”
리리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많은 걸 내포하고 있었다.
장정영은 털썩 주저앉아 혼절하려다가도, 적어도 손녀 앞에선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지 좀 더 억세게 리리를 끌어안았다.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박동혁이 대성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보따리를 내놓을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지 않냐, 이거?”
“지금 당장은 아니지.”
냉혈한인 대성도 분위기를 살필 눈치 정도는 있었다.
물론 분위기상 당장엔 말을 꺼내기 힘들다고 해서 이 기회를 영영 놓칠 생각은 없었다.
‘설마 중국 사냥꾼 협회장의 가족이 호텔에 있었을 줄은.’
저들에겐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리는 비극일 테니 천운(天運)이라 표현하긴 싫었으나.
‘이걸 계기로 잘하면 그걸 손에 넣을 수도 있겠어.’
적어도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겠는가.
***
그 후로 대성은 무려 사흘 동안 중국에 체류해야만 했다.
참변을 당한 장정영이 타인과 대화를 나눌 이성을 갖출 시간이 적어도 사흘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지금.
대성은 아무도 없는 협회장 직무실에서 소파에 앉아 <더 북>을 읽고 있었다.
황준영 일행은 밖에 세워 놨다.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자들을 협회로 발을 들여 놓을 순 없으니까.
덜컥-.
이윽고, 문이 열리고 장정영과 정장 여성 한 명이 직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말라붙은 장정영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탁.
<더 북>을 집어넣은 대성이 여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목례를 해오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두 분의 통역관을 맡게 된 유령옥입니다. 부디 편하게 한국어로 말씀하십시오.”
“…….”
국적이 다른 두 명이 만나는 자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을 터.
통역관에서 시선을 떨어뜨린 대성은 맞은편에 앉은 장정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중국어로.
심지어 네이티브 수준.
놀란 통역관이 무안한 듯이 웃으려다 서둘러 미소 진 입을 가렸고, 장정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고맙소. 그나저나 전에 만났을 때는 중국어를 전혀 못 하시더니.”
“배웠죠.”
“1년 안에 이 정도 수준으로 우리 언어를 통달하는 게 그리 쉽진 않을 텐데……. 역시 난 분은 다르구려,”
“과찬의 말씀.”
당연히 게이트와 디멘션 테이커를 상대하는데 바쁜 대성이 중국어를 공부했을 리는 없다.
영어라면, 회화 정도는 가능할 정도로 조금씩 배우기는 했지만.
괜히 장정영이 오기 전까지 <더 북>을 읽고 있었던 게 아니다.
<권능 정보>
소통
[300m 반경에 있는 존재들의 언어를 통합합니다.]
라미쉬가 고마울 정도로 책에는 별의별 권능이 있었다.
덕분에 대성에게는 장정영이 말이 한국어로, 장정영에게는 대성의 말이 중국어로 들리는 중이다.
낯빛이 어두웠던 장정영은 통역관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한 뒤, 길게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우선…… 고맙소. 이 말부터 해야겠지.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하나뿐인 손녀마저 잃을 뻔했소.”
장정영이 리리는 지금 그의 사저에서 울다 잠들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막은 전부 들었소. 문세걸, 그 천인공노할 놈이 우리 가족들과 같은 층에 머물렀다고.”
“문세걸은 가짜 신분과 다중 브로커들을 앞세워 융합 앰풀을 사들였던 전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놈을 잡기 위해 마카오로 온 거고요.”
“통탄할 일이군. 나 자신의 무력함에 치가 떨릴 지경이오.”
장정영은 하얗게 센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일국의 협회장이란 자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자들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하고. 이 무슨 우스운 꼴인지.”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고맙소.”
장정영은 힘겹게 입가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웃을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았으나, 어쨌든 눈앞의 남자는 생애 최고의 은인이었으니.
“하지만, 이런 나라도 손녀를 구해준 은인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은혜를 갚아서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소.”
“그렇습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하시오. 한국이랑은 달리, 중국 협회에서 내 권한은 절대적이니.”
1년 전, 대국의 위용을 등에 업고 빳빳하게 목을 세웠던 그가 지금은 한없는 호의를 베풀었다.
아까 호텔에서처럼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는 상황.
대성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홍청환(紅靑丸)을 주십시오.”
“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셨다고 하니, 그것을 제게 주시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홍청환은 중국 정부와 사냥꾼 협회가 거액을 들여 발명한 영약이다.
이름 그대로 총알 크기의 환약(丸藥)인 홍청환은 복용하는 즉시 사냥꾼의 오러를 영구적으로 증폭시키는 효능을 지녔다.
B급의 자질을 가진 사냥꾼이 홍청환을 먹으면 S급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침을 삼키는 장정영의 목울대가 무겁게 울렸다.
“지금 홍청환을 달라고 하셨소?”
“어째 망설이시는 듯한데. 말씀하셨던 그 절대적인 권한이 닿지 않는 영역이라서 그런 겁니까?”
“그건…… 아니오.”
“그렇다면요?”
“…….”
중국은 자국에 보유한 사냥꾼의 숫자가 전체 인구 대비로 보자면 적은 편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국제 헌터 연맹에서 높은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홍청환 때문이었다.
다섯 개밖에 없긴 해도, 좌우지간 홍청환을 개발할 기술력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었으니까.
쉽게 말해, 홍청환은 중국의 위상을 대변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이렇게 쉽사리 눈앞의 남자에게 건네줘도 되는 걸까.
장정영은 갈등에 휩싸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런 고민을 품는 자신에게 멸시를 느꼈다.
‘뭘 고민하고 있단 말인가. 이 남자는 리리를 구해 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하나밖에 없는 손녀마저 변을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아마 견디지 못했으리라.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내 권한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 남자에게 홍청환을 줄 수 있어. 그럼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지?’
아무리 홍청환이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지만, 그게 하나뿐인 손녀의 생명보다 귀중하랴.
장정영은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마음이 흐려져서 생각이 길어졌나 보오. 홍청환이 필요하다고 하셨나? 기꺼이 드리겠소이다.”
***
한국에 있는 오피스텔로 돌아온 대성의 앞에는 장식이 화려한 옥갑(玉匣)이 놓여 있었다.
딸깍.
뚜껑을 뒤로 젖히자, 잘 포개어진 천 위로 색이 알록달록한 환약 한 알이 놓여 있었다.
‘이게 홍청환인가.’
협회 고관들 사이에서 무성한 소문만 들어봤지, 직접 실체를 보는 건 그도 처음이었다.
“여행 기념품치고는 어째 좀 초라하다?”
옥갑 속에 담긴 홍청환을 본 성찬호가 농담을 건넸다.
성찬호, 그는 대성의 곁에 있는 파트너 중 유일하게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남자였다.
일관된 성격, 일관된 모습, 일관된 행색으로 열심히 대성과 황준영 일행을 보조해 왔다.
수십 억을 주고 통째로 사들인 이 오피스텔도 말하자면 대성을 위시한 이 비공식 클랜의 본부 건물이라 할 수 있겠다.
신분이 없는 황준영 일행이 마음을 놓을 수 있고, 버젓한 환경에서 성찬호가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
“홍청환……. 도시 전설인 줄로만 알았더니 진짜 있긴 있었네. 근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의미가 없으면 사흘 동안 중국에 발 묶일 필요도 없었겠지.”
“아니, 근데. 어차피 넌 마력으로 싸우는 놈이잖아. 뭐 그놈의 권능인가 뭔가 하는 걸 사용하려면 에테르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지옥의 스킬과 아이템을 구현하는 데에는 마력이 필요하고, 혼세의 권능을 사용하려면 에테르를 소비해야만 한다.
그리고 대성의 주력은 ‘지옥’ 쪽.
물론 권능 또한 야무지게 써먹고 있기는 하나, 굳이 홍청환을 먹으면서까지 강화할 필요가 있을지 성찬호는 의문이 든 것이다.
게다가.
“이거 잘못 먹으면 탈 난다더라. 적어도 한 달은 위아래로 피를 쏟으면서 개고생한다던데.”
홍청환의 또 다른 도시 전설이다.
하지만 홍청환이 실재하는 이상, 그 얘기도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걸 먹을 가치가 있냐는 거지, 내 말은. 대성아.”
“내가 이걸 왜 먹어.”
“뭐?”
“네 말이 맞아. 홍청환을 먹어도 얻을 건 있겠지만, 반대급부로 감내해야 할 부담도 많지.”
애초에 본인이 직접 먹으려고 가져온 홍청환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찬호가 그 말의 진의를 헤아리지 못하며 물었다.
“그럼 어쩌려고 그걸…….”
“팔 거다.”
“팔……! 제정신이야? 천금을 바쳐도 못 사는 그걸 어디다 팔아?”
“정확히는 물물교환이지.”
“뭔 소린지, 대체.”
“나도 천금을 줘도 못 사는 것을 얻으면 윈 윈 아니겠어?”
맥락만 드러나는 말들의 연속에 질린 걸까. 성찬호가 알아서 하라는 듯이 자리를 떴다.
이때, 대성이 오로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플라이.’
[부르셨나이까, 주군.]
바로 그가 천상의 시스템을 이용하게 해주는 창구 같은 존재, 나비 소녀였다.
2년 전에는 ‘날파리’라고 불렀으나,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점점 낯빛이 어두워가는 그녀가 딱해 ‘플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상인(商人)을 불러와.’
[명대로 하겠나이다.]
말이 떨어지는 즉시 플라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상점 창을 소환해, 우측 상단에 표시된 ‘호출’ 버튼을 눌렀다.
‘구매’와 ‘판매’를 제외하고, 상점 창의 ‘열람’과 ‘닫기’, 그리고 ‘호출’은 천상의 시스템을 직접 활성화하는 주체인 플라이만 가능했다.
그때.
[저, 아미타가 ‘천국 상회’를 대표해 고객님께 문안 인사 올립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저희 상회를 찾으셨는지요?]
걸걸한 목소리가 우선 들려오고, 황금색 빛살이 플라이의 옆에 모여들었다.
빠르게 형체를 갖춰간 빛살은 어느새 인영(人影)과 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눈, 코, 입은 유령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2년간 여러 번 판테온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천상의 초월자를 죽이면서 상점창 또한 수차례의 업데이트를 거쳤다.
‘호출’로 상점창의 상인을 부르는 것 또한 그 업데이트로 새로 생긴 기능 중 하나였다.
‘거래할 물건이 좀 생겨서 말이지.’
[아하, 거래라. 그 말인즉슨, 상점창의 개편(改編) 작업에 지불할 대가를 뜻하시는지?]
‘그래.’
천상의 시스템 업데이트를 통해 상점 창 또한 진화했다.
그렇게 개편을 거듭하며, 구매할 수 없었던 아이템과 스킬이 차근차근 해금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천상의 초월자를 아무리 잡아도 개편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 대신, ‘호출’이라는 버튼이 생겨 ‘천국 상회’의 상인들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상점 창의 실질적인 관리자들. 그놈들이 혹할 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상점창이 다시 업로드된다.’
상점 창에 장물을 내놓고 관리하는 그들은 요구했다.
더 좋은 상점 창을 이용하고 싶으면 대가를 내라고.
물론 그 ‘대가’란 것도 아무거나 지급한다고 해서 그들의 환심을 살 순 없었다.
[이전 상인을 통해 들으셨겠지만, 저희가 고객님의 요구를 맞춰드리려면 최소 ‘상(上)’등품에 속하는 대가를 받아내야 합니다. 이게 저희 상회의 규정이라서요. 혹시…….]
‘준비되었으니 부른 거 아니겠나?’
[허허,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어디 한번 볼까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성은 바로 옥갑에서 꺼낸 홍청환을 아미타에게 건넸다.
아미타가 목을 길게 쭉 빼며,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 노파심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공정성의 문제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 꽤 ‘눈’이 좋거든요. 슥 보기만 해도 이 물건이 세상에 몇 개나 있는지, 얼마만 한 가치를 지녔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 안목이 보기엔 어떻지?’
[‘상(上)’등품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군요.]
바람직한,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마땅한 대답이었다.
전 세계에 다섯 개밖에 없는 환약이니 상등품이 아닌 게 이상할 터.
[희귀도로만 따지면 제가 지금까지 봤던 물건 중에서도 손에 꼽겠는데요? 차라리 포인트로 환산하시면 천만은 가볍게-.]
‘포인트는 관심 없고. 아무튼, 개편 가능하다는 말이겠지?’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장 해 드리지요.]
대성의 손에 들린 홍청환이 자취를 감춘 순간.
-띵.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천국 상회’가 ‘천상의 상점 창’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개시합니다.]
[‘천상의 상점 창’이 2.2ver으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2.2 업데이트 내역:
1. 구매 가능 아이템 품목 증가 및 ‘하(下)’ 등품 아이템 판매 가격 20% 할인.
2. 구매 가능 스킬의 품목 증가 및 ‘중위(中位)’ 계열 스킬의 판매 가격 10% 할인.
3. ‘정보 구매’ 기능 개선.]
[다음 업데이트 내역을 지금 미리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살펴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 지금이 아니더라도 ‘호출’을 통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1과 2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3’의 항목에 적힌 내용이다.
‘정보 구매’의 기능 개선.
홍청환을 바치면서까지 대성이 이번 업데이트에 목을 맨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껏 아이템과 스킬 항목은 꾸준히 변화를 보였으나, ‘정보’ 항목만큼은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아는 게 곧 힘. 이건 어느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만 물러나 보겠다는 아미타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대성은 상점창의 ‘정보’ 항목을 열었다.
그리고.
“오…….”
눈앞의 홀로그램을 본 대성은 가볍게 경탄했다.
확실히.
홀로그램 속에 적힌 내용은, ‘개선’이라고 표현할 만한 가치를 품었으니까.